편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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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경상남도 부산부(현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5년제 부산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경상대학 제1전문부, 한양대학교 경영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1951년부터 국제신보, 부산일보, 세계통신 등에서 정치부 기자로 근무하였다. 1955년 연합신문으로 옮겨 정치부장을 지냈다. 1965년 한국일보 정치부장 및 편집부국장을 거쳤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전국구 국회의원(제12번)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8년 신민당 당직 개편에서 원내부총무에 임명되었다. 이후 신민당 부산직할시당 부위원장을 지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전국구 국회의원(제10번)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73년 신민당 당직 개편으로 대변인, 당기관지 민주전선의 편집인을 지냈다. 또한 신민당의 지도위원과 정무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치러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친야 무소속 김재광 후보와 민주공화당 오유방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6년 신민당을 탈당하였고, 공석이 된 신민당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지구당위원장에는 김재광이 선출되었다.
1978년 3월 15일 새벽 1시 43분 쯤 자택인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서 뇌일혈로 별세했다. 향년 50세.
1951년부터 국제신보, 부산일보, 세계통신 등에서 정치부 기자로 근무하였다. 1955년 연합신문으로 옮겨 정치부장을 지냈다. 1965년 한국일보 정치부장 및 편집부국장을 거쳤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전국구 국회의원(제12번)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8년 신민당 당직 개편에서 원내부총무에 임명되었다. 이후 신민당 부산직할시당 부위원장을 지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전국구 국회의원(제10번)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73년 신민당 당직 개편으로 대변인, 당기관지 민주전선의 편집인을 지냈다. 또한 신민당의 지도위원과 정무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치러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친야 무소속 김재광 후보와 민주공화당 오유방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6년 신민당을 탈당하였고, 공석이 된 신민당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지구당위원장에는 김재광이 선출되었다.
1978년 3월 15일 새벽 1시 43분 쯤 자택인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서 뇌일혈로 별세했다. 향년 5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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