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조(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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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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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비서실 경제담당비서관 이원조 李源祚 | Lee Won-jo | |
출생 | |
사망 | |
학력 | |
종교 | |
가족 | 아내 홍순례 장남 이동찬, 차남 이동렬 |
의원 선수 | 2 |
의원 대수 | |
경력 | 제일은행 이촌동출장소장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자문위원 대통령비서실 경제비서관 한국석유개발공사 사장 은행감독원 원장 제13대 국회의원 (전국구 10번 / 민주정의당) 제14대 국회의원 (전국구 9번 / 민주자유당) |
이후 전두환의 신군부가 집권하자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자문위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해 9월 전두환이 제11대 대통령에 취임하자 대통령비서실 소속 경제비서관이 되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허화평 대통령비서실 보좌관, 허삼수 사정수석비서관 등의 견제를 받아 석유개발공사 사장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는 이에 앙심을 품고 1982년 전두환에게 "각하께서 허화평 정무제1수석비서관과 허삼수 사정수석비서관 등에게 너무 의존하여 문제가 되고 있으니 이 둘을 용퇴해야 한다"라고 건의하였다. 이후 1986년 1월부터 1988년 2월까지 은행감독원(금융감독원의 전신 중 하나) 원장을 지내면서 관치금융과 정경유착을 주도하였다. 그리고 전두환 정부, 노태우 정부의 정치자금의 황태자, 금융계의 황제로 불릴 정도로 위세를 떨쳤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5공비리 청산 과정에서 대한민국 검찰청의 소환 조사를 받았고 구속되기도 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14대 대선 때 김영삼 후보의 대선자금을 조달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공헌했으나, 문민정부 출범 당시 사정개혁에도 아랑곳 않고 해외로 도피했다. 그러다가 귀국하였고 1995년 김영삼의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 때 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되었고 이후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후 2000년 8.15특사로 사면받았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5공비리 청산 과정에서 대한민국 검찰청의 소환 조사를 받았고 구속되기도 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14대 대선 때 김영삼 후보의 대선자금을 조달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공헌했으나, 문민정부 출범 당시 사정개혁에도 아랑곳 않고 해외로 도피했다. 그러다가 귀국하였고 1995년 김영삼의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 때 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되었고 이후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후 2000년 8.15특사로 사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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