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툴리우스 데쿨라
최근 수정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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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툴리우스 데쿨라 라틴어: Marcus Tullius Decula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
사망지 | |
지위 | |
국가 | |
가족 | 아울루스 툴리우스 데쿨라(조부) 마르쿠스 툴리우스 데쿨라(아버지) |
직업 |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81년 |
전임 | |
동기 | |
후임 |
플레브스 집안인 툴리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파스티 카피톨리니에 따르면,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각각 아울루스, 마르쿠스라는 프라이노멘을 사용했다. 기원전 2세기 후반에 'M. Tulli'라는 서명이 있는 데나리우스가 주조되었음이 고고학자들의 연구로 확인되었다. 이로 볼 때, 그는 이 시기에 화폐 주조관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친척인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그나이우스 플란키우스 변호>에서 그가 일찍이 조영관 선거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고 언급했다.
기원전 82년 12월 술라의 내전에서 승리하고 최고 권력을 장악한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자신을 추종한 데쿨라를 기원전 81년 집정관에 귀족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와 함께 세웠다. 당시 집정관 선거는 술라가 원하는 대로 통제되었다. 술라의 뜻에 반하여 집정관 선거에 출마했던 퀸투스 루크레티우스 오펠리아는 술라의 사주를 받은 암살자들에게 피살되었다. 그 후 두 집정관은 어떠한 권한도 없었고 독재관 술라의 의사에 순종하기만 했다. 이후의 행적은 알려진 바 없다.
기원전 82년 12월 술라의 내전에서 승리하고 최고 권력을 장악한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자신을 추종한 데쿨라를 기원전 81년 집정관에 귀족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와 함께 세웠다. 당시 집정관 선거는 술라가 원하는 대로 통제되었다. 술라의 뜻에 반하여 집정관 선거에 출마했던 퀸투스 루크레티우스 오펠리아는 술라의 사주를 받은 암살자들에게 피살되었다. 그 후 두 집정관은 어떠한 권한도 없었고 독재관 술라의 의사에 순종하기만 했다. 이후의 행적은 알려진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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