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 BACK << -|- >> HOME <<)

조영규(1913)

최근 수정 시각:
1
편집
현재 사용중인 아이피가 ACL그룹 IDC #12915에 있기 때문에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만료일 : 무기한
사유 : IDC(AS26496)
토론 역사
대한민국 제헌·3-5대 국회의원
조영규
曺泳珪
external/rokps.o...
출생
사망
1986년 6월 21일 (향년 72세)
본관
관해(觀海)
1. 개요2. 제헌 국회 활동3. 선거 이력4. 둘러보기

"여러분, 민주주의 목이 말라서 여기 이렇게 모였습니다. 정부가 말하는 공명선거는 빌 공(空)자 공명선겁니다. 시골에 가면 지서주임과 면장이 굽실거린다는데 이것이 다 조병옥 박사와 장면 박사 덕이고 민주주의 덕입니다. 이젠 국민이 대한민국의 주인이 되는 나라를 세워야 합니다. 이승만 박사와 자유당이 나라의 주인이 아닙니다."
- 1960년 3월 7일 장충단공원 집회 연설 중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의사, 정치인이다. 호는 관해(觀海)이다.

1913년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태어났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베이징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의사시험에 합격하여 고향 영광군에서 의원을 개업하였다. 광복 후 미군정청 의사시험에도 합격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 영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대한청년단 정헌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통합야당 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민주당 구파에 속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만담 연설가로 대중적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정당 서범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전라남도 영광군-함평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윤인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0년 제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신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김대중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1971년 신민당을 탈당하였다. 이후 사망하기 이전까지 영광군에서 의사로 활동했다.

아들 조기상(曺淇相, 1937년~2021년)[1]은 전두환 대통령 시절 제11대, 12대 국회의원(민주정의당)과 정무장관을 역임하였다. 따라서 민주통일당 부총재를 역임했던 박병배와는 사돈 지간이다.

여담으로,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본인의 아버지와 조 의원 간에 있었던 일화를 소개하길, 이 전 총리의 아버지가 무명의 민주당원이었는데, 조 의원이 이 전 총리의 아버지에게 '법성포 조합장' 직책을 제안했으나 이 전 총리의 아버지가 "나는 내세울 경력이 없다. 다른 사람을 찾아가 보시라."며 사양했다고 밝혔다.[2]
  • 1948년 6월 15일 '울릉도어선피습 건'을 발의하였다.[3]
  • 1948년 10월 27일 반란사건에 대해서 "잔인무도한 공산주의자에 의해서 우리 동포들이 죽고있다"며 울분을 토해냈고 죽은 국군과 경찰을 위해서 일동 기립과 묵상하기를 특청하였다.

3.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48
전남 영광
무투표 당선
초선
1950
6,218 (12.80%)
낙선(2위)
1954
25,114 (54.26%)
당선(1위)
재선
1958
민주당 1955년 글자
15,875 (32.07%)
3선
1960
23,198 (46.72%)
4선
1963
서울 성북 을
자유민주당1963
5,116 (9.30%)
낙선(4위)
1967
전남 영광
신민당 흰색 로고타입
28,854 (29.40%)
낙선(2위)

4. 둘러보기[편집]


[1] 박병배의 사위이다.[2] 어느 날 이 전 총리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집 근처에서 본인의 아버지가 우는 소리를 들었고, 왜 우냐고 여쭤보니 아버지께서 법성포 조합장을 사양하고 돌아오는데 눈물이 났다며, "내가 낙연이 너는 꼭 가르치겠다."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오늘의 이낙연이 탄생했다고 회고했다.[3] 김장열,강기문,김상순,조영규,이성우,류성갑,오석주,조옥현,김옥주,황두연,황병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

  •  
  •  
  •  
  •  
  •  
  •  
  •  
  •  
  •  
  •  
  •  
  •  
  •  
  •  
  •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