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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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1월 2일 전라남도 곡성군에서 태어났다. 이후 중학교를 졸업하고 15년간 한문을 수학하였다.
1941년부터 1942년까지 합자회사 남선광업(南鮮鑛業)[1] 중역, 주식회사 남선광업(南鮮鑛業)[2] 감사를 역임했다.
8.15 광복 후 우익 정치인으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광주지부 재정부장, 민주국민당 전라남도당 재정부장·총무부장 등을 지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전라남도 곡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조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민주당에 입당해 중앙위원 및 곡성군당 위원장을 역임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 곡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조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 곡성군 선거구에서 당선되었다. 그러나 1961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 국회가 해산되었고, 의원직 또한 박탈당했다.
1972년 3월 18일 오전 10시에 전라남도 곡성군 입면 입석리 자택에서 숙환인 고혈압으로 별세했다. 향년 75세.
1941년부터 1942년까지 합자회사 남선광업(南鮮鑛業)[1] 중역, 주식회사 남선광업(南鮮鑛業)[2] 감사를 역임했다.
8.15 광복 후 우익 정치인으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광주지부 재정부장, 민주국민당 전라남도당 재정부장·총무부장 등을 지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전라남도 곡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조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민주당에 입당해 중앙위원 및 곡성군당 위원장을 역임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 곡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조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 곡성군 선거구에서 당선되었다. 그러나 1961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 국회가 해산되었고, 의원직 또한 박탈당했다.
1972년 3월 18일 오전 10시에 전라남도 곡성군 입면 입석리 자택에서 숙환인 고혈압으로 별세했다. 향년 75세.
연도 | 선거종류 | 소속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1954 | 제3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곡성군) | 8,092표 (23.8%) | 낙선 (2위) | ||
1958 | 제4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곡성군) | 16,581표 (44.29%) | 낙선 (2위) | ||
1960 | 제5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곡성군) | 10,829표 (27.06%) | 당선 (1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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