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역
최근 수정 시각:
함경남도 이원군 이원읍에 있는 평라선의 역에 대한 내용은 리원역 문서 참고하십시오.
이원역 | ||
옥 천 ← 8.3 ㎞ | ||
심 천 10.0 ㎞ → | ||
다른 문자 표기 | ||
Iwon | ||
伊院 | ||
伊院 | ||
주소 | ||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이원역길 51 (강청리) | ||
관리역 등급 | ||
운영 기관 | ||
개업일 | ||
1905년 1월 1일 | ||
2001년 7월 7일 | ||
철도거리표 | ||
경부선 이 원 |
현 역사(1958년 준공) |
꽃과 나무가 싹을 틔우는 역사
이원역은 1905년 1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한 역으로 오랫동안 대한민국 철도사와 함께 해왔다. 힘들고 아팠던 역사의 고비를 넘기고, 꽃과 나무가 함께하는 생명의 장으로 태어난 이원역. 옛 경부선 철도가 지나던 이원면 이원리 일대에 묘목 테마공원이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박한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현재의 역사는 1958년에 지어진 것으로 리모델링으로 새 단장을 했지만 크게 역 구조가 바뀌지 않아 깔끔하면서도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따뜻한 추억의 역사이다.국가철도공단 공식 소개 문구
주변에 이원면사무소, 이원농공단지 등이 있는 완전 시골이다.[1]
1909년에 의병장 문태수 열사(1880~1913) 휘하 의병 100여 명이 이 역에 불을 질렀다. 당시 경부선과 경의선은 일제의 대륙침략의 발판인 데다, 일제가 부설하면서 수용이라는 명목으로 철도 좌우로 50m씩 땅을 몽땅 빼앗아 가서 격노한 대한제국 국민들이 역을 공격한 것이었다. 이는 당시 일본에도 보도될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1909년에 의병장 문태수 열사(1880~1913) 휘하 의병 100여 명이 이 역에 불을 질렀다. 당시 경부선과 경의선은 일제의 대륙침략의 발판인 데다, 일제가 부설하면서 수용이라는 명목으로 철도 좌우로 50m씩 땅을 몽땅 빼앗아 가서 격노한 대한제국 국민들이 역을 공격한 것이었다. 이는 당시 일본에도 보도될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30일 아침 다음과 같은 전보가 통감부 도쿄 출장소에 도착했다. ‘29일 오후 10시경 이원역에 폭도 수백 명이 습격하여 정차장 및 관사를 향하여 발포했다. 일본인 수명이 사상한 것으로 보인다. 군대가 곧 출동해 폭도들을 퇴각시켰다.' 이원역은 대구와 성환역 중간 추풍령 기슭에 위치한다."1909년 10월 31일자 도쿄 니치니치 신문
- 출근과 퇴근시간대 위주의 정차 패턴을 보이는지라 대전역 방면 10시 12분 #1206 열차를 놓치면 9시간 37분이라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상을 초월한 배차간격이 등장했지만, #1218 열차가 추가정차하게 되면서 6시간대로 줄어들었다. 다만 간이역으로 상행 6회, 하행 4회밖에 안서는 역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하행도 마찬가지인게, 9시 45분 #4302 열차를 놓치면 무려 10시간 13분이라는 배차간격이 등장한다.
- MBC에서 방영중인 손현주의 간이역 8번째 촬영지로 결정되었다.
- 2021년 3월 17일부로 승차권 발매서비스가 중단되었다. 차내에서 승차권을 구입하거나 코레일톡 앱 등을 이용하여야 한다.
- 코레일톡의 시작 대기화면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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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역은 예전에는 특정통일호나 가끔 서는 역이었고 그 무궁화호가 처음 들어온 게 2001년일 정도로 이용객이 적다. 이원역 무궁화호 정차 당시 뉴스기사[2] 상행은 #4301, #1202, #1204, #1206, #1218, #4303 하행은 #4302, #1221, #4304, #1361[3] 대전방면 막차는 19:47, 동대구방면 막차는 21:3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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