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기원전 242년 집정관)
최근 수정 시각:
|
|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라틴어: Aulus Postumius Albinus | |
생몰년도 | 미상 ~미상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
국가 | |
가족 | |
직업 |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242년 |
전임 | |
동기 | |
후임 |
고대 로마의 대표적인 파트리키 가문인 포스투미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파스티 카피톨리니에 따르면, 그의 조부와 아버지는 각각 루키우스, 아울루스라는 코그노멘을 사용했다고 한다. 학자들은 조부 루키우스는 기원전 275/274년 '신성한 의식의 왕(rex sacrorum)으로 선임된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와 동일인물일 거라 추정한다.
기원전 242년 가이우스 루타티우스 카툴루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된 뒤 새로 건조된 220척의 전함을 이끌코 시칠리아로 출진하려 했다. 그러나 폰티펙스 막시무스인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가 알비누스는 마르스 신의 플라멘(flamen)으로서 로마 시 내부에서 마르스를 모셔야 할 의무가 있는데 군대를 맡기 위해 신전을 떠나서는 안 된다고 반대했고, 결국 카툴루스가 단독으로 출진했다.
기원전 234년 가이우스 아틸리우스 불부스와 함께 감찰관에 선임되었지만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는 기원전 218년부터 모든 플라멘의 죽음을 기술했지만 그의 사망은 전하지 않는다. 이로 볼 때 그는 기원전 218년 이전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들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는 기원전 234년, 기원전 229년, 그리고 기원전 215년 집정관을 역임했으나 제2차 포에니 전쟁 중 실바 리타나 전투에서 보이 족의 기습으로 전군이 궤멸되는 와중에 전사했다.
기원전 242년 가이우스 루타티우스 카툴루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된 뒤 새로 건조된 220척의 전함을 이끌코 시칠리아로 출진하려 했다. 그러나 폰티펙스 막시무스인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가 알비누스는 마르스 신의 플라멘(flamen)으로서 로마 시 내부에서 마르스를 모셔야 할 의무가 있는데 군대를 맡기 위해 신전을 떠나서는 안 된다고 반대했고, 결국 카툴루스가 단독으로 출진했다.
기원전 234년 가이우스 아틸리우스 불부스와 함께 감찰관에 선임되었지만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는 기원전 218년부터 모든 플라멘의 죽음을 기술했지만 그의 사망은 전하지 않는다. 이로 볼 때 그는 기원전 218년 이전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들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는 기원전 234년, 기원전 229년, 그리고 기원전 215년 집정관을 역임했으나 제2차 포에니 전쟁 중 실바 리타나 전투에서 보이 족의 기습으로 전군이 궤멸되는 와중에 전사했다.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