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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고대 로마의 저명한 파트리키 가문인 세르빌리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기원전 253년 집정관 그나이우스 세르벨리우스 카이피오가 그의 조부로 추정된다. 기원전 213년 사망한 가이우스 파피리우스 마소를 대신해 폰티펙스에 선임되었고, 기원전 207년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와 함께 수석 조영관을 맡았으며, 기원전 205년 도시 법무관을 맡아 로마 시의 법정을 주관했다.

기원전 203년 친척인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 게미누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당시 한니발 바르카는 카르타고 당국의 귀환 명령에 따라 카르타고로 돌아갔다. 이에 원로원은 브루티움에 잔존한 한니발 지지 세력을 섬멸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발레리우스 안티아스에 따르면, 세르빌리우스는 한니발이 이탈리아를 떠나기 전에 공격해 5,000명을 사살했다고 한다. 그러나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는 안티아스가 뻔뻔하게 꾸며낸 이야기라고 간주했다.

카이피오는 아우푸구스, 아아르장탕, 베시디아, 베르기 등 브루티움의 많은 도시들을 모조리 복종시켰다. 이후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아프리카 원정을 떠나서 무공을 세워 민중의 지지를 얻는 것에 질투심을 품고 자신 역시 카르타고로 원정하고자 원로원의 동의 없이 시칠리아로 건너갔지만, 원로원이 뒤늦게 그의 행보를 전해듣고 이탈리아를 떠나는 것을 금지하자 어쩔 수 없이 원정을 취소했다.

기원전 195년,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퀸투스 테렌티우스 쿠리오와 함께 카르타고로 가서 셀레우코스 제국안티오코스 3세와 힘을 합쳐 로마를 도모하려 한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한니발을 로마로 넘기라고 요구했다. 카르타고 정부는 이를 받아들였지만, 한니발이 동방으로 망명했기 때문에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기원전 192년 안티오코스 3세와의 전쟁이 벌어지기 직전에 그리스 도시 국가들에게 로마와의 동맹을 유지하도록 설득하는 임무를 맡은 사절단의 일원이 되었다. 이 사절단에는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 푸블리우스 빌리우스 타풀루스도 있었다. 기원전 174년 전염병에 걸려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아들 그나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는 아버지가 사망한 해에 법무관에 선임되었고, 기원전 169년 집정관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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