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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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신의 아버지는 상가희는 조선 가도에 수군을 주둔하고 있던 명나라 장수 모문룡의 부하로, 모문룡이 원숭환에게 처형당하자 경중명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반란군이 후금으로 귀순할 때 원숭환에게 반감을 갖던 상가희 역시 동참하였다.
상가희는 청태종의 극진한 환대를 받고 병자호란과 북경 공략에 종군했고, 이후에는 광주 지역 공략에 전념하여 평남왕(平南王)에 봉해지고 광주의 번왕이 되었다.
이후 1673년 평남왕 상가희가 아들 상지신에게 번왕의 자리를 세습해줄 것을 강희제에게 청하였지만 강희제는 이를 거절하며 철번을 결정했고 상가희가 이를 수용하였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던 오삼계와 경정충은 위기감을 느껴 손을 잡고 반란을 일으켜 삼번의 난이 시작되었다.
상가희는 난에 가담하지 않고 강희제를 따르기로 했으나 후계를 자신이 아닌 차남 상지효에게 주려한 것에 앙심을 품은 장남 상지신이 반란을 일으켜 상가희를 유폐시키고 자신이 광동을 장악하였다.
하지만 상지신은 반란군 편도 청나라 편도 들지 않으면서 상황을 관망하다 경정충이 항복하자 자신의 지위 보전과 철번 철폐를 조건으로 1677년 5월에 항복하였다.
이후 북경으로 압송되었으나 스스로 항복한 것이 참작되어 능지형 대신 자결로 대신하여 생을 마감하였으며 가족들은 연좌의 죄를 묻지 않고 목숨을 보전받게 되었다.
상가희는 청태종의 극진한 환대를 받고 병자호란과 북경 공략에 종군했고, 이후에는 광주 지역 공략에 전념하여 평남왕(平南王)에 봉해지고 광주의 번왕이 되었다.
이후 1673년 평남왕 상가희가 아들 상지신에게 번왕의 자리를 세습해줄 것을 강희제에게 청하였지만 강희제는 이를 거절하며 철번을 결정했고 상가희가 이를 수용하였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던 오삼계와 경정충은 위기감을 느껴 손을 잡고 반란을 일으켜 삼번의 난이 시작되었다.
상가희는 난에 가담하지 않고 강희제를 따르기로 했으나 후계를 자신이 아닌 차남 상지효에게 주려한 것에 앙심을 품은 장남 상지신이 반란을 일으켜 상가희를 유폐시키고 자신이 광동을 장악하였다.
하지만 상지신은 반란군 편도 청나라 편도 들지 않으면서 상황을 관망하다 경정충이 항복하자 자신의 지위 보전과 철번 철폐를 조건으로 1677년 5월에 항복하였다.
이후 북경으로 압송되었으나 스스로 항복한 것이 참작되어 능지형 대신 자결로 대신하여 생을 마감하였으며 가족들은 연좌의 죄를 묻지 않고 목숨을 보전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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