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신기오로 호오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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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9년 홍타이지와 우라나라(오랍나랍)씨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무용이 뛰어나 몽골족 및 명나라와의 전쟁에서 부친인 홍타이지를 따라 출정하여 종종 무공을 세웠다. 청 숭덕 원년(1636년)에는 숙친왕(肅親王)에 봉해졌다.
1643년 홍타이지가 급사한 후, 황위를 계승할 유력한 후보로 정황기, 양황기, 정홍기, 양홍기 등 4기의 지지를 받았으나 다른 유력 후보이며 그의 숙부인 도르곤을 옹립하려는 세력과 대립했다. 당시 종친의 수장이자 홍타이지의 이복형이었던 예친왕 아이신기오로 다이샨은 호오거와 도르곤 양쪽 모두 황위에 올리지 않고 대신 호오거의 이복동생인 6세의 풀린을 순치제로 즉위시켰다.[1] 호오거는 도르곤과 함께 순치제의 후견인 중의 한 명이 되었다. 그러나 순치제의 시대에 섭정왕으로서 권세를 가진 도르곤은, 정적인 호오거를 실각시키기 위해 무고를 했고 결국 호오거의 작위를 박탈한 후, 유금했다. 호오거는 순치 5년(1648년) 옥중에서 사망했다.
순치제는 도르곤의 사후, 형 호오거의 원죄를 풀어 명예를 회복시켰고, 1651년 아들인 부수에게 숙친왕을 잇게 하는 한편 도르곤의 작위를 박탈했다.[2] 시호는 '무'(武)로 정식 칭호는 숙무친왕(肅武親王)이다. 순치제의 친정 이후에 작위가 복권되었다.
1643년 홍타이지가 급사한 후, 황위를 계승할 유력한 후보로 정황기, 양황기, 정홍기, 양홍기 등 4기의 지지를 받았으나 다른 유력 후보이며 그의 숙부인 도르곤을 옹립하려는 세력과 대립했다. 당시 종친의 수장이자 홍타이지의 이복형이었던 예친왕 아이신기오로 다이샨은 호오거와 도르곤 양쪽 모두 황위에 올리지 않고 대신 호오거의 이복동생인 6세의 풀린을 순치제로 즉위시켰다.[1] 호오거는 도르곤과 함께 순치제의 후견인 중의 한 명이 되었다. 그러나 순치제의 시대에 섭정왕으로서 권세를 가진 도르곤은, 정적인 호오거를 실각시키기 위해 무고를 했고 결국 호오거의 작위를 박탈한 후, 유금했다. 호오거는 순치 5년(1648년) 옥중에서 사망했다.
순치제는 도르곤의 사후, 형 호오거의 원죄를 풀어 명예를 회복시켰고, 1651년 아들인 부수에게 숙친왕을 잇게 하는 한편 도르곤의 작위를 박탈했다.[2] 시호는 '무'(武)로 정식 칭호는 숙무친왕(肅武親王)이다. 순치제의 친정 이후에 작위가 복권되었다.
- 적복진 합달나랍씨(哈達那拉氏 ?~1636): 해서여진 하다부(합달부)의 오이고대(吳爾古代)와 망고제격격(莽古濟格格)의 딸이었다.[3]
- 계복진 과이심 박이제길특씨(科爾沁 博爾濟吉特氏): 이름 두륵마(杜勒瑪) / 이이사제동곽륵공(依爾社齊董郭勒公)의 딸[4]
- 측복진 납라씨(納喇氏): 태길 혁례(赫禮)의 딸
- 측복진 석륭무씨(碩隆武氏): 덕이혁례 타포낭(德爾赫禮 他布囊)의 딸
- 측복진 길이악대씨(吉爾岳岱氏): 태길 포목호(布穆祜)의 딸
- 측복진 태사나백기복진(苔絲娜伯奇福晉): 성씨 미상 / 별칭 백기복진(伯奇福晉)[5]
- 측복진 과이심 박이제길특씨(科爾沁 博爾濟吉特氏): 몽골 코르친부(과이심부)의 혁례태길 길상이채(吉桑爾寨)의 딸/화석예친왕 도르곤의 적복진 박이제길특씨와 자매
- 측복진 모씨(某氏): 이름 서호례(舒呼禮) / 호격 사후에 순장됨
- 서복진 영고탑씨(寧古塔氏): 좌령 타극도(他克圖)의 딸
- 서복진 서림각라씨(西林覺羅氏): 남작 영이납(寧爾納)의 딸
- 서복진 서림각라씨(西林覺羅氏): 좌령 태이강(泰爾康)의 딸
- 섭고진 황씨(黃氏): 조선 황업심(黃鄴沁)의 딸 / 호경 사후 순장됨
- 첩 과이가씨(瓜爾佳氏): 엽이혁납(葉爾赫納)의 딸
- 첩 우씨(牛氏): 저이밀(褚爾密)의 딸
- 첩 납라씨(納喇氏): 특목(特穆)의 딸
- 첩 이이근각라씨(伊爾根覺羅氏): 항소(杭素)의 딸
- 첩 왕씨(王氏): 왕명(王明)의 딸
- 1남 제정액(齊正額 1634~1677): 첩 납라씨 生
- 2남 보국장군 고태(輔國將軍 固泰 1638~1701): 서복진 황씨 生
- 3남 보국장군 악혁납(輔國將軍 握赫納 1639~1662): 서복진 황씨 生
- 4남 화석현의친왕 부수(和碩顯懿親王 富綬 1643~1669): 적복진 박이제길특씨 生
- 5남 다라온량군왕 맹아(多羅溫良郡王 猛峨 1643~1674): 측복진 석륭무씨 生
- 6남 두등시위 성보(星保 1643~1686): 서복진 영고탑씨 生
- 7남 서서(舒書 1645~1685): 첩 이이근각라씨 生
- 1녀: 조가 달세현(達世賢)에게 출가
- 2녀 군주(郡主): 측복진 석륭무씨 生 / 몽골 코르친부(과이심부) 박이제길특 낙이포(科爾沁 博爾濟吉特 諾爾布)에게 출가
- 3녀
- 4녀: 마가 영석포(英錫布)에게 출가
- 5녀 군주(郡主): 과이가 호선(瓜爾佳 豪善)에게 출가
- 6녀: 마가 손저(孫褚)에게 출가
- 7녀 군주(郡主): 경정충(耿精忠 ?~1682)에게 출가
- 8녀: 납라 아합포(納喇 阿哈布)에게 출가
- 9녀: 혁사리 박뢰(赫舍里 博磊)에게 출가
- 10녀: 이이근각라 찰벽(伊爾根覺羅 察璧)에게 출가
- 11녀: 장문정(張問政)에게 출가
호오거의 아들 중 작위를 받은 것은 아들 부수로 현친왕이었으며, 다섯째 아들인 맹권(猛瓘)은 온량군왕(温良郡王)의 작위를 받았다.
호오거로부터 시작된 숙친왕 작위은 영구 세습이 가능한 철모자왕 중 하나로 제11대 헌장(憲章)까지 이어졌다. 헌장은 제10대 숙친왕 선기(善耆)의 장자로 카와시마 요시코로 잘 알려진 셴위(顯玗)의 이복오빠다.
호오거로부터 시작된 숙친왕 작위은 영구 세습이 가능한 철모자왕 중 하나로 제11대 헌장(憲章)까지 이어졌다. 헌장은 제10대 숙친왕 선기(善耆)의 장자로 카와시마 요시코로 잘 알려진 셴위(顯玗)의 이복오빠다.
[1] 나이는 호오거가 훨씬 많았지만 적출로서 계승권은 어머니의 신분이 우세한 풀린이 더 우세했다. 사실상 호오거는 서자였으나 풀린은 적복진 소생의 적자였다.[2] 그 뒤 아들 부수의 작위는 숙친왕에서 현친왕(顯親王)으로 변경되었다.[3] 태조 천명제 누르하치의 외손녀였으나 숭덕 원년에 망고이태와 망고제격격이 죄를 지어 죽임을 당하자, 그녀 역시 호오거(호격)의 손에 의해 살해되었다.[4] 몽골 코르친부(호르친부, 과이심부) 명안 패륵의 손녀이며 효단문황후에겐 당질녀, 효장문황후와는 당자매지간이다.[5] 몽골 차하르부(찰합이부) 링단 칸(임단한)의 부인이었으나, 후금에 투항하여 호격의 부인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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