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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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법조인 및 관료. 헌법을 주로 연구하였다.
1920년 경북 의성군 비안면에서 태어났다. 1937년 대구고등보통학교[1]를 졸업하로 경성제국대학 예과(제14회, 문과갑류)에 입학하였다. 1940년 예과를 수료하고 법문학부로 진학하여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 제2류[2]를 졸업하고 법학사를 취득하였다. 1942년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 해방 당시 전남 함평군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해방 이후에는 관직에서 물러나 법학자로 전업하였다. 1947년 대구대학 조교수로 취임하였으며, 1949년에는 모교인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 조교수로 자리를 옮겨 헌법학을 강의하였다.
그러나 6.25 전쟁 이후, 다시 강단에서 물러나 법제처 소속 관료의 길을 걸었으며, 법제실 제1국장을 거쳐, 5.16 군사정변 이후에는 1961년 제4대 법제처장, 1962년 제12대 문교부장관으로 재직하였다.
이후 다시 학계로 돌아와 경희대학교 법대에서 헌법을 담당하였다. 유신 이후, 오늘날 헌법재판소의 전신이자 실제로는 유명무실한 헌법위원회 위원을 담당하기도 하였으며, 1980년 신군부가 설립한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원을 맡아, 헌법개정심의회에서 심의위원으로 개헌에 관여하였다.
이후 명지대학의 제2대 학장을 역임하였고, 1983년 명지대학교가 종합대학으로 승격된 이후 초대 명지대학교 총장을 역임(1984. 01. 01 - 1987. 02. 28)하였다.
1988년 학계에서 은퇴 후 변호사로 개업하였다.[3]
법제처 제1국장 재직 당시, 발췌 개헌과 사사오입 개헌, 그리고 법제처장 재직 당시 제3공화국 헌법 제개정, 끝으로 국보위 헌법개정심의회 심의위원으로서 대한민국 제5공화국 헌법 제개정 등 한국 헌정사의 굵직한 시점마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직위에 있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해방 이후에는 관직에서 물러나 법학자로 전업하였다. 1947년 대구대학 조교수로 취임하였으며, 1949년에는 모교인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 조교수로 자리를 옮겨 헌법학을 강의하였다.
그러나 6.25 전쟁 이후, 다시 강단에서 물러나 법제처 소속 관료의 길을 걸었으며, 법제실 제1국장을 거쳐, 5.16 군사정변 이후에는 1961년 제4대 법제처장, 1962년 제12대 문교부장관으로 재직하였다.
이후 다시 학계로 돌아와 경희대학교 법대에서 헌법을 담당하였다. 유신 이후, 오늘날 헌법재판소의 전신이자 실제로는 유명무실한 헌법위원회 위원을 담당하기도 하였으며, 1980년 신군부가 설립한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원을 맡아, 헌법개정심의회에서 심의위원으로 개헌에 관여하였다.
이후 명지대학의 제2대 학장을 역임하였고, 1983년 명지대학교가 종합대학으로 승격된 이후 초대 명지대학교 총장을 역임(1984. 01. 01 - 1987. 02. 28)하였다.
1988년 학계에서 은퇴 후 변호사로 개업하였다.[3]
법제처 제1국장 재직 당시, 발췌 개헌과 사사오입 개헌, 그리고 법제처장 재직 당시 제3공화국 헌법 제개정, 끝으로 국보위 헌법개정심의회 심의위원으로서 대한민국 제5공화국 헌법 제개정 등 한국 헌정사의 굵직한 시점마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직위에 있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오늘날에는 소수설인 법실증주의에 기반한 헌법 이해를 강조하였다. 그러다 보니 헌법 문언 그대로의 엄격한 해석을 취하여 외국인의 기본권 인정 등에 대해서도 보수적인 태도를 보였다.[4]
헌법이 새로 바뀔 때마다 책을 하나씩 냈고, 자잘한 변경이 있을 때에도 제목을 바꿔 책을 냈다. 그 밖에도 1950년대에 들어서는 정치학에 관한 책도 여럿 출간하였다.
- 헌법 (1952)
- 헌법 (1955)
- 신헌법학입문 (1955)
- 민주정치강화 (1955)
- 법학요론 (1956)
- 현대비교정부론 (1957)
- 소6법 (1957, 공저)
- 현대비교정치론 (1957)
- 헌법강의 (1959)
- 신정 헌법요론 (1920)
- 신헌법 (1960)
- 신헌법 대의 (1961)
- 신헌법요론 (1961)
- 혁명정부와 헌법 (1961)
- 헌법요강 (1962)
- 신헌법 (1963, 공저)
- 새 헌법 (1963)
- 신헌법 대의 (1963)
- 헌법 (1964, 공저)
- 신헌법 보정판 (1965)
- 신고 헌법 (1971)
- 유신헌법 (1972)
- 제5공화국 헌법 (1980)
- 법학개론 (1983, 공저)
- 신헌법학원론 (1986)
- 제6공화국 신헌법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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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북고 20회 졸업생이다.[2] 일본 본토의 도쿄제국대학 및 교토제국대학과 달리, 경성제국대학은 법학부와 문학부, 경제학부가 분리되지 않은 법문학부 체제였으며, 법학과 내에 3개의 류를 나누어, 각각 본토 도쿄제대와 교토제대의 법학부 법학과, 법학부 정치학과, 경제학부에 해당하도록 운영하였다. 따라서 제2류는 현재의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부 정치학전공에 해당한다.[3] 사실 고등문관시험 사법과가 아닌 행정과에 합격했기 때문에 합격 당시에는 변호사 자격이 없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이시윤의 회고에 따르면 변호사 자격증이 나오는 고등문관시험 사법과보다 훨씬 더 어려운 행정과에 합격했는데 변호사 자격이 안 나온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항의로 인해 1949년 변호사법 제정 시 부칙에 "본법 시행전 고등시험에 합격한 자는 수습변호사와 동등이상의 자격인 자로 간주"한다고 하여 고문 행정과 합격자 및 만주고문 합격자에게도 과를 불문하고 변호사 자격이 발급되었다. 그 결과, 해방 이후 상당한 기간 동안 행정소송에 대해서는 모르는 변호사도 왕왕 나왔다고 한다.[4] 헌법 문언상 기본권의 주체는 "국민"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다수설은 국민이 아닌 외국인의 경우라도 '사람'으로서의 기본권은 당연히 인정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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