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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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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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장관 大韓民國 文化體育觀光部長官 The Minister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of the Republic of Korea | |
현직 | 유인촌 / 제54대 |
취임일 | |
정당 |
문화체육관광부의 장관.
문화 전문 부처 장관이라 장관 중 한직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과거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정확히는 '문화공보부' 시절)은 정부 대변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따라서 정부 차원에서 뭔가를 공식적으로 공표하는 자리에서는 문화부 장관이 나서던 것이 관례였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통신 매체의 발달로 정부의 의견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을 뿐더러 각 기관의 전문성 및 공보 및 홍보 기능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각 기관별로 대변인을 두고 활발하게 대중 및 언론과 소통하는 추세이기는 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해외에 대한민국의 입장을 발표할 때는 외교부 대변인과 외교부장관이 대변인이 되고, 대통령 중심제인 특성인 대한민국 특성상 대통령실 대변인 혹은 홍보 분야 수석비서관, 국무총리 및 국무총리실 대변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언론 접촉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잘 인식하지 못할 수는 있지만 엄연히 대한민국 정부 전체의 대변인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다.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할 일이 있을 때, 즉 공보나 홍보 등에 있어 외교부 대변인 - 외교부 장관보다 더 윗급의, 더 중요한 메시지를 낼 일이 있을 때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대변인이 되는데, 이 급이 나설 사안은 매우 적어 볼 일이 드물 뿐 여전히 정부 전체의 대변인은 문체부 장관이 맡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 당시, 대한민국 정부 대변인으로서 당시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대표하여 외신 등에 서한을 발송한 것이 있다. #당시 정부 대변인 명의의 보도자료 그 이유는 과거부터 이어진 대한민국 정부 전체의 공보 담당 및 총괄 기능을 언론 미디어 분야를 관장하는 문화체육관광부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 전문 부처 장관이라 장관 중 한직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과거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정확히는 '문화공보부' 시절)은 정부 대변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따라서 정부 차원에서 뭔가를 공식적으로 공표하는 자리에서는 문화부 장관이 나서던 것이 관례였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통신 매체의 발달로 정부의 의견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을 뿐더러 각 기관의 전문성 및 공보 및 홍보 기능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각 기관별로 대변인을 두고 활발하게 대중 및 언론과 소통하는 추세이기는 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해외에 대한민국의 입장을 발표할 때는 외교부 대변인과 외교부장관이 대변인이 되고, 대통령 중심제인 특성인 대한민국 특성상 대통령실 대변인 혹은 홍보 분야 수석비서관, 국무총리 및 국무총리실 대변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언론 접촉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잘 인식하지 못할 수는 있지만 엄연히 대한민국 정부 전체의 대변인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다.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할 일이 있을 때, 즉 공보나 홍보 등에 있어 외교부 대변인 - 외교부 장관보다 더 윗급의, 더 중요한 메시지를 낼 일이 있을 때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대변인이 되는데, 이 급이 나설 사안은 매우 적어 볼 일이 드물 뿐 여전히 정부 전체의 대변인은 문체부 장관이 맡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 당시, 대한민국 정부 대변인으로서 당시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대표하여 외신 등에 서한을 발송한 것이 있다. #당시 정부 대변인 명의의 보도자료 그 이유는 과거부터 이어진 대한민국 정부 전체의 공보 담당 및 총괄 기능을 언론 미디어 분야를 관장하는 문화체육관광부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윤선 문체부 장관, 탄핵 이후 국정 운영에 관한 외신 서한 발송
- 총리 권한대행을 중심으로 한 안정적인 국정 운영 의지 전달 -
조윤선 대한민국 정부대변인 겸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장관은 12월 11일(일), 전 세계 언론인 및 국내 상주외신을 대상으로 대통령 탄핵과 관련하여 우리 정부가 신속한 대책을 추진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한국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요청하는 서한을 발송했다.
서한에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시작된 황교안 국무총리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및 주요 국무위원 간담회 개최를 통해 빈틈없이 국정을 운영해 나가고 있으며, 특히 국무총리는 탄핵안 가결 직후 ‘군 경계 태세 강화’를 긴급 지시하는 등 북한의 핵실험과 도발이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국가의 안위를 지키는 것을 최우선시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하략)
위와 같이 대한민국의 정치 및 사회에 중대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에는 정부를 대표하여 외교부 장관이 아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대변인이 된다. 이는 2008년 국정홍보처가 폐지되면서 정부 대변인 자리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자리로 넘어온 것에 기인하며, 실질적으로는 문체부 제 2차관이 해당 업무를 담당하나 대한민국과 관계된 중대한 사항에 있어서는 장관이 대변인을 맡는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가 특정 사안에 있어 국가 전체의 입장을 낼 때, 급을 높여서 상황의 엄중함을 표현할 때도 외교부 장관이 아닌 문체부 장관이 담화를 발표한다. 대표적으로는 2013년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가 직접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을 당시, 외교부 대변인이나 장관이 아닌 문체부 장관이 담화를 발표한 것이 그 예다.# 아베 총리의 참배 당시 정부대변인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성명
이승만이나 박정희, 전두환 등이 집권하던 독재정권기에는 물론이고, 민주화 이후에도 언론이 정부와 사이가 안 좋으면 국정 운영 자체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마냥 쉬운 보직이 아니다. 이전의 방송위원회와 2008년 방송통신위원회[1]가 본격화하면서 방송 쪽 상당 부분은 영향력이 줄어들었지만 뉴스통신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립된 뉴스통신진흥회를 통해 국가 기간 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 쪽을 꽉 잡고 있다.[2]
신문 쪽의 주무 기관인 점 외에도, 아리랑TV나 국악방송, 국민방송(한국정책방송원) 등을 통해 방송에 관여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
관광 쪽은 한국관광공사라는 전문 공기업이 있기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크게 신경쓰진 않는 듯하다.[3] 괜히 관 주도로 문화 산업 육성하려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같은 역효과가 날 수 있기도 하다.
장관의 경우 보통은 집권당의 국회의원(정치인)이 임명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부처의 특성상 김명곤, 이창동, 유인촌, 도종환[4] 등 문화계 인사들이 장관을 맡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역대 장관 중 내부 관료 출신 장관은 박근혜 정부 때 유진룡 장관, 문재인 정부 때 박양우 장관 등 2명 뿐이다.
역대 총 세 명의 여성 장관이 임명되었다. 이승만 정부의 김활란[5], 김대중 정부의 신낙균, 박근혜 정부의 조윤선이 그 주인공이다. 김활란 전 공보처장을 뺀 두 장관은 모두 비례대표(내지는 전국구) 국회의원을 지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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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 대수 | 이름 | 임기 |
17대 | 홍종철(洪種哲) | 1968년 7월 24일 ~ 1969년 4월 10일 | |
18대 | 신범식(申範植) | 1969년 4월 11일 ~ 1971년 6월 3일 | |
19대 | 윤주영(尹胄榮) | 1971년 6월 4일 ~ 1974년 9월 17일 | |
20대 | 이원경(李源京) | 1974년 9월 18일 ~ 1975년 12월 18일 | |
21대 | 김성진(金聖鎭) | 1975년 12월 19일 ~ 1979년 12월 13일 | |
22대 | 이규현(李揆現) | 1979년 12월 14일 ~ 1980년 5월 21일 | |
23대 | 이광표(李光杓) | 1980년 5월 22일 ~ 1982년 5월 20일 | |
24대 | 이진희(李振羲) | 1982년 5월 21일 ~ 1985년 2월 18일 | |
25대 | 이원홍(李元洪) | 1985년 2월 19일 ~ 1986년 8월 26일 | |
26대 | 이웅희(李雄熙) | 1986년 8월 27일 ~ 1988년 2월 24일 | |
27대 | 정한모(鄭漢模) | 1988년 2월 25일 ~ 1988년 12월 4일 | |
28대 | 최병렬(崔秉烈) | 1988년 12월 5일 ~ 1989년 12월 27일 |
정부 | 대수 | 이름 | 임기 |
초대 | 노태우(盧泰愚) | 1982년 3월 20일 ~ 1982년 4월 28일 | |
2대 | 이원경(李源京) | 1982년 4월 28일 ~ 1983년 10월 15일 | |
3대 | 이영호(李永鎬) | 1983년 10월 15일 ~ 1986년 1월 8일 | |
4대 | 박세직(朴世直) | 1986년 1월 8일 ~ 1986년 8월 27일 | |
5대 | 이세기(李世基) | 1986년 8월 27일 ~ 1987년 7월 14일 | |
6대 | 조상호(曺相鎬) | 1987년 7월 14일 ~ 1988년 12월 4일 | |
7대 | 김집(金潗) | 1988년 12월 5일 ~ 1990년 3월 18일 | |
8대 | 정동성(鄭東星) | 1990년 3월 19일 ~ 1990년 12월 26일 |
정부 | 대수 | 이름 | 임기 |
35대 | 신낙균(申樂均) | 1998년 3월 3일 ~ 1999년 5월 23일 | |
36대 | 박지원(朴智元) | 1999년 5월 23일 ~ 2000년 9월 19일 | |
37대 | 김한길(金한길) | 2000년 9월 20일 ~ 2001년 9월 18일 | |
38대 | 남궁진(南宮鎭) | 2001년 9월 19일 ~ 2002년 7월 10일 | |
39대 | 김성재(金聖在) | 2002년 7월 11일 ~ 2003년 2월 26일 | |
40대 | 이창동(李滄東) | 2003년 2월 27일 ~ 2004년 6월 30일 | |
41대 | 정동채(鄭東采) | 2004년 7월 1일 ~ 2006년 3월 6일 | |
42대 | 김명곤(金明坤) | 2006년 3월 27일 ~ 2007년 5월 7일 | |
43대 | 김종민(金鍾民) | 2007년 5월 8일 ~ 2008년 2월 28일 |
정부 | 대수 | 이름 | 임기 |
44대 | 유인촌(柳仁村) | 2008년 2월 29일 ~ 2011년 1월 26일 | |
45대 | 정병국(鄭柄國) | 2011년 1월 27일 ~ 2011년 9월 16일 | |
46대 | 최광식(崔光植) | 2011년 9월 17일 ~ 2013년 3월 10일 | |
47대 | 유진룡(劉震龍) | 2013년 3월 11일 ~ 2014년 7월 16일 | |
48대 | 김종덕(金鐘德) | 2014년 8월 20일 ~ 2016년 9월 4일 | |
49대 | 조윤선(趙允旋) | 2016년 9월 5일 ~ 2017년 1월 20일 | |
50대 | 도종환(都鐘煥) | 2017년 6월 16일 ~ 2019년 4월 2일 | |
51대 | 박양우(朴良雨) | 2019년 4월 3일 ~ 2021년 2월 10일 | |
52대 | 황희(黃熙) | 2021년 2월 11일 ~ 2022년 5월 13일 | |
53대 | 박보균(朴普均) | 2022년 5월 13일 ~ 2023년 10월 7일 | |
54대 | 유인촌(柳仁村) | 2023년 10월 7일 ~ 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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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법정법인으로 방송통신진흥회가 있는데, 이 기관이 문화방송(MBC)의 대주주이다. 문화방송이라는 이름에서 과거 문화부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다.[2] '뉴스통신 진흥에 관한 법률 14조 ②대표이사는 진흥회의 추천을 받아 연합뉴스사의 이사회의 의결로 선임된다.'라는 규정이 있는데 뉴스통신진흥회가 문체부 소관인 이상 입김이 안 들어갈 수가 없는 구조다. 뉴스통신진흥회 임원은 뉴스통신 진흥에 관한 법률 제26조에 따라 이사장 1명 포함 이사 7명과 감사 1명으로 구성되는데, 모든 이사를 대통령이 임명하되, 그 중 3명은 국회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 의원과 협의하여 추천한 사람을 임명하고, 2명은 일간신문 발행인을 대표하는 전국 조직과 지상파 방송 사업자를 대표하는 전국 조직에서 각각 추천한 사람을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신문업계는 한국신문협회장 등이 될 듯하고, 방송업계는 한국방송협회장 등이 추천권을 행사하는 구조인 듯하다. 현실적으로 7명의 이사 중 대통령 몫 2명에 교섭단체 중 의원 수가 많은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이 각 1명씩 국회 몫으로 추천하고, 나머지는 신문업계와 방송업계 몫인 셈인데 여권은 기본적으로 대통령과 여당이 7명 중 3명을 확보하고, 야당 중 한 곳과 딜을 하거나 신문협회장을 정부 영향력이 미치기 쉬운 연합뉴스나 서울신문 쪽에서 배출, 혹은 방송협회장을 역시 정부 입김이 미칠 수 있는 MBC, KBS, EBS 등에서 배출하면 과반을 달성할 수 있다.[3] 다른 나라의 경우, 일본 관광청, 필리핀 관광청, 캐나다 관광청, 오스트리아 관광청, 독일 관광청 등처럼 공기업이 아닌 관광 전담 행정 관청 형태로 있는 곳도 있다.[4] 다만 도종환은 장관 임명 당시 집권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의 재선 국회의원을 역임하는 중이었다.[5] 당시 공보처장[6] 공보부가 문화공보부로 확대되면서 문교부의 문화업무가 문화공보부로 이관되고, 문예체육국이 폐지됨에 따라 설치된 사회교육국에 체육과를 두었다.[7] 1994년 건설부와 교통부가 통합하면서 구 교통부 관광국이 문화체육부에 흡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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