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오스터
최근 수정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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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파울 오스터 Hans Paul Oster | |
출생 | |
사망 | |
나치 독일 플로센뷔르크 수용소 | |
복무 | |
최종 계급 | |
주요 참전 |
나치 독일 육군의 장교이자 반나치주의자.
그가 반나치주의자가 된 이후 그의 위치를 이용하여 음모를 많이 꾸몄다. 1938년 오스터는 얄마르 샤흐트과 함께 루트비히 베크 장군과 프란츠 할더 장군에게 쿠데타를 요청하였으나, 만약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킬시 쿠테타를 일으키자고 했다. 하지만 히틀러는 이를 실행하지 않았고, 쿠데타는 실패했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이후 그의 쿠데타에 대한 노력은 다시 생겼다. 하지만, 융커들은 2차 세계 대전이 폴란드에게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한 전쟁이라고 해서 동의하지 않았다. 그리고 1940년부터 1942년까지는 쿠데타의 시도는 없었다. 이후 1943년 유대인의 탈출을 도와준 혐의로 게슈타포에게 잡혔다.
이후 1944년에는 마찬가지로 반나치주의자인 아프베어의 수장, 빌헬름 카나리스 해군 대장을 보좌하는 위치에 있었으며, 이러한 입지를 활용해 카나리스와 함께 여러 차례의 히틀러 암살을 꾀했다. 오스터 음모사건이 그의 작품이다. 1944년의 거사에도 참여하였지만, 히틀러 암살이 실패함에 따라 카나리스 제독 등과 함께 1945년에 플로센뷔르크 수용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후 1944년에는 마찬가지로 반나치주의자인 아프베어의 수장, 빌헬름 카나리스 해군 대장을 보좌하는 위치에 있었으며, 이러한 입지를 활용해 카나리스와 함께 여러 차례의 히틀러 암살을 꾀했다. 오스터 음모사건이 그의 작품이다. 1944년의 거사에도 참여하였지만, 히틀러 암살이 실패함에 따라 카나리스 제독 등과 함께 1945년에 플로센뷔르크 수용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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