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봉모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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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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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봉모당 昌德宮 奉謨堂 | ||
소재지 | ||
건축시기 |
봉모당 |
문화재청에서 제작한 3D 영상 |
'봉모(奉謨)' 뜻은 '모훈(謨訓) 자료를 봉안(奉)한다'이다.# 모훈은 ‘후대 임금들에게 귀감을 줄만한 교훈’이다.
정조는 즉위 직후인 1777년(정조 1년)에 창덕궁 후원에다 주합루를 짓고 그곳에 규장각을 두었다. 그리고 부용정 서북쪽에 있는 옛 열무정의 이름을 봉모당으로 바꾸고 선대왕들의 유품을 보관했다. 규장각의 규모가 커져서 1781년(정조 5년)에 옛 오위도총부 자리에 규장각을 옮겼을 때도 봉모당은 자리를 지켰다.
《동궐도》의 봉모당. 열무정 시절의 모습이다. |
《동궐도》에 나온 현재 봉모당 일대. 붉은색 원 안이다. |
봉모당 향나무[6] |
《동궐도》의 봉모당 향나무. 초록색 원 안이다. |
봉모당 마당에 향나무가 있다. 그러나 현재 일반인이 봉모당 마당으로 들어갈 수 없는 관계로, 창덕궁 후원 관람의 마지막 코스로써 볼 수 있다.
수령을 700년 ~ 750년 정도로 추정한다고 한다. 추정이 맞다면 무려 조선 건국 이전부터 살아있는 나무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1968년 3월 4일에 천연기념물 제194호로 지정한 후 보호하고 있다.
나무의 모양이 일반 나무들처럼 곧게 뻗지 않고, 구부러져있다. 높이는 6m, 뿌리부분 둘레는 5.9m, 가슴높이 둘레는 4.3m이다.[7] 가지 역시 위가 아닌 수평으로 뻗어있다. 동서남북으로 1개 씩 뻗었는데, 동서길이 11.5m, 남북길이 5.5m이다. 단, 북쪽 가지는 현재 죽었고 남쪽 가지는 잘렸으며##, 동쪽 가지는 꼬불꼬불하다.
2010년 태풍 곤파스의 영향으로 손상을 입었다. 향나무의 윗부분이 반 정도 꺾이고 가지 일부도 부러졌지만, 다행히 나무 자체는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있다. 부러진 가지는 왕실 제사 때 향피우는 용도로 사용한다고 한다.#
수령을 700년 ~ 750년 정도로 추정한다고 한다. 추정이 맞다면 무려 조선 건국 이전부터 살아있는 나무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1968년 3월 4일에 천연기념물 제194호로 지정한 후 보호하고 있다.
나무의 모양이 일반 나무들처럼 곧게 뻗지 않고, 구부러져있다. 높이는 6m, 뿌리부분 둘레는 5.9m, 가슴높이 둘레는 4.3m이다.[7] 가지 역시 위가 아닌 수평으로 뻗어있다. 동서남북으로 1개 씩 뻗었는데, 동서길이 11.5m, 남북길이 5.5m이다. 단, 북쪽 가지는 현재 죽었고 남쪽 가지는 잘렸으며##, 동쪽 가지는 꼬불꼬불하다.
2010년 태풍 곤파스의 영향으로 손상을 입었다. 향나무의 윗부분이 반 정도 꺾이고 가지 일부도 부러졌지만, 다행히 나무 자체는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있다. 부러진 가지는 왕실 제사 때 향피우는 용도로 사용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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