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검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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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서청[1] |
문화재청에서 제작한 3D 영상 |
《동궐도》의 검서청 일대. 붉은색 원 안이 검서청이다. 원래 이름인 대유재(大猷齋)로 적어두었다. |
정조는 즉위 직후인 1777년(정조 1년)에 창덕궁 후원에다 주합루를 짓고 그곳에 규장각을 두었다. 그러나 규장각의 규모가 커져서 주합루에 많은 책과 문서를 보관하기 힘들자, 1781년(정조 5년)에 옛 오위도총부 자리에 규장각 청사를 새로 지어 이전시켰다.
자연스럽게 규장각 검서관들 또한 새 규장각으로 옮겨 근무했다. 이들이 사무보고 당직설 곳이 필요해서 만든 게 대유재이다. 다만, 건물 자체는 정조 시기 이전부터 있었으며#, 기존의 건물을 보수, 개조한 것이다.# 이름은 검서관 유득공이 짓고 현판의 글씨는 정지검이 썼다.
이후 정조가 선원전과 대보단을 참배하기 전날에 여기서 묵었고, 철종 때 연경당에서 보관하던 역대 임금들이 쓴 글들을 이곳으로 옮겨오기도 했다. 순종 시기에 이름을 검서청으로 바꾸었다.
자연스럽게 규장각 검서관들 또한 새 규장각으로 옮겨 근무했다. 이들이 사무보고 당직설 곳이 필요해서 만든 게 대유재이다. 다만, 건물 자체는 정조 시기 이전부터 있었으며#, 기존의 건물을 보수, 개조한 것이다.# 이름은 검서관 유득공이 짓고 현판의 글씨는 정지검이 썼다.
이후 정조가 선원전과 대보단을 참배하기 전날에 여기서 묵었고, 철종 때 연경당에서 보관하던 역대 임금들이 쓴 글들을 이곳으로 옮겨오기도 했다. 순종 시기에 이름을 검서청으로 바꾸었다.
일제강점기 철거 및 개조 후 모습을 담은 엽서[2] |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2》에서 나왔다. 정확히는 검서청 건물이 아니고, 검서청 뒤편 석축 하단부에 있는 수로가 등장했다. 의녀 서비(배두나 분)가 지하 감옥에서 탈출할 때, 이 수로를 통해 밖으로 나갔다.#
[1] 사진 출처 - 문화유산채널: 문화유산 여행, 〈역사의 길 창덕궁 (사적 제122호)〉.[2] 사진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3] 보통 전통 건축에선 단층으로 표현한다.[4] 창방과 직접 만나 보를 받치는, 쇠서(소 혀 모양의 자재)를 두 겹으로 낸 공포.[5] 사진 출처 - 문화포털: 디자인 문양 〈창덕궁 검서청 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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