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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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하천 임진강 臨津江 | Imjin Rive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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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
수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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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원 | |
하구 | |
유입 | |
유출 | |
유로연장 | 273.50㎞ (170 mi) |
유역면적 | 3,185.60㎢ (1,230 sq mi) |
유량 | |
하중도 | |
하천코드 | 1005980 |
림진강 맑은 물은 흘러 흘러 내리고
뭇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가니
림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
강 건너 갈밭에선 갈새만 슬피 울고
메마른 들판에선 풀뿌리를 캐건만
협동벌 이삭 바다 물결 우에 춤추니
림진강 흐름을 가르지는 못하리라[2][3]
임진강(臨津江)은 한반도 중부에 위치한 강이다. 북한의 강원도 법동군 룡포리 두류산[4]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군사분계선을 넘어 연천군을 거쳐서 파주시 교하 지역[5]과 김포시 하성면, 북한의 개성시와 접해있는 하구에서 한강으로 합류한 후(조강), 황해(강화만[6])로 흘러 나간다.
본류인 한강과 거의 바다 직전에서 만나기 때문에 사실상 한강과는 별개의 강이지만, 종점이 파주로 되어 있는 환경부 고시로는 종점이 김포인 한강의 제1지류로 처리한다.[7] 임진강이 합류한 뒤의 김포반도와 개풍군 사이를 흐르는 구간을 조강이라고도 부른다.
북한에서는 두음 법칙을 적용하지 않아 '림진강'이라고 적고 읽는다. 남북한에 걸친 강이라 구글 지도에서도 임진강, 림진강 둘 다 검색이 된다.
유역 동쪽으로 아호비령산맥이 뻗었고, 유역 서쪽으로 지류들이 흐른다. 주요 지류는 강원도 고미탄천(古味呑川: 114km), 경기도 평안천(平安川: 81km)·한탄강(漢灘江: 130km) 등이고, 5km 이상인 지류는 250여 개이다. 환경부 수상교통의 요지로 6.25 전쟁 이전에는 고랑포까지 배가 다녔고 작은 배는 안협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삼국시대는 임진강을 대수[8] 또는 칠중하(七重河)라 하였고, 경기도에 고구려 칠중현(七重縣)의 치소(治所)인 파주 칠중성(城)이 있었다.[9]
임진강은 예부터 자연 경계의 역할을 하였다. 원삼국시대에는 마한 세력과 한사군의 경계선으로 추정 중이며 4세기~5세기 무렵에는 백제와 고구려, 6~7세기에는 신라와 고구려의 대치선이었고 통일신라 시대에도 임진강을 경계로 한주와 패강진을 분리해 전자에는 밀도 높은 직할 통치를 실시한 반면 후자에는 느슨한 통치망만 설치했다. 이후에도 임진왜란이나 6.25 전쟁의 주요 전장이었으며 현재에도 군사분계선이 이 근교에 위치한다.[10]
임진강 일대는 백제의 발원지로 유력시되는데, 2세기 무렵 임진강 일대에서 나타나 3세기에 대방군의 존재로 인해 한강 이남으로 내려간 고구려계 집단을 초기 백제로 추정하고 있다.
이 강의 남북을 잇는 다리는 경의선 임진강철교가 상행과 하행 2개 있었으나 6.25 전쟁 때문에 파괴되었고, 휴전협정 이후 포로교환을 위해 자유의 다리가 임시로 건설되었었다. 현재는 임진강철교의 하행선만 복구되었으며, 통일대교와 전진교 등 다리가 여럿 건설되어 있다. 파주시 일대의 다리들은 서안 혹은 북안이 민통선 내에 속해 있어 이용시 관할 군부대의 검문검색을 거쳐야 한다. 연천군에 위치한 교량들은 연천군이 임진강을 낀 만큼 자유롭게 통행이 가능하다. 대한민국이 관할하는 임진강의 최상류 민통선 이남 교량은 연천군 왕징면에 위치한 북삼교다.
임진각국민관광지에 관광전시물로 활용하기 위해 복원한 자유의 다리가 2개 있으나,[11] 관광전시용일 뿐 실제로 임진강을 건너기 위한 용도는 아니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격전지였던 만큼화이트교(2003년 철거), 리비교 등 전쟁 당시 급하게 지어진 교량들도 있다.
임진각국민관광지에 관광전시물로 활용하기 위해 복원한 자유의 다리가 2개 있으나,[11] 관광전시용일 뿐 실제로 임진강을 건너기 위한 용도는 아니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격전지였던 만큼
- 2005년에는 강변에서 전술 훈련 중이던 JSA 경비대대 부대원들이 급류에 휘말려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포탄 낙하 상황이 주어지자 길 옆으로 몸을 피하다가 병장 한 명이 실족하여 임진강에 빠졌는데, 이를 구하러 중대장, 소대장, 병사 3명[13]까지 총 5명이 들어갔으나 중대장과 이병만 가까스로 살아나오고 나머지 3명과 처음 물에 빠진 병장 1명을 포함한 4명은 그대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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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전에는 함경남도 소속이었다. 따라서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을 인정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이북 5도 체계 하에서는 여전히 함경남도 소속이다. 별거 아닌거 같아보여도 무려 함경도의 물이 파주까지 내려오는 것. 심지어 발원지인 두류산은 산을 기준으로 대동강의 지류인 남강 수계와 분수령을 이루고 있으며, 행정구역 상으로는 평안남도 양덕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한끗차이로 대동강과 한강으로 흘러갈 강물이 나뉘는 것.[2] 모두 2절(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절(연)은 박세영이 고향인 남한을 그리워하는 내용이지만, 서울 성동구 태생의 월북 작가이다. 작가의 실제 심리가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2절은 사회주의 체제인 북한이 남한보다 경제 사정이 우월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사실 1950년대엔 정말로 북한이 더 잘 살았긴 했다. 남한이 북한을 경제적으로(수치상으로) 앞지른 건 1974년부터다.[3] 2절이 너무 노골적인 북한 체제 찬양이기 때문에 남한에서 부를때는 ‘메마른’을 ‘내마음’으로 바꿔 부를때가 많다.[4] 이북 5도 행정구역상으로는 함경남도 문천군 풍상면 용포리[5] 교하(交河)는 임진강과 한강이 해당 지역에서 만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고려시대에 고려 정부가 몽골 제국의 침공에 강화도로 피난하였을 때 강화도 일대와 교하, 일산 일대를 일부 간척한 것 때문에 현재 한강의 유로는 과거의 모습에서 바뀐 것이다.[6] 이 강화만에서 예성강이 합류한다.[7] 북한강에 이어 유로연장과 유역면적 모두 한강의 두번째 제1지류이다.[8] 패수와 대수 할때 그 대수이다. 온조 신화에 등장하는 명칭이기도 하다[9] 파주문화원 칠중성 전투 문서 참고.[10] 군사분계선이 임진강 수로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대한민국도 임진강 이북의 옛 장단군 영역을 일부 보유 중이다.[11] 하나는 2000년에 복원한 자유의다리, 다른 하나는 2016년 12월에 옛 자유의 다리 위치에 복원한 독개다리 스카이라인 내일의 기적소리다.[12] 한강은 김포대교 인근에 신곡수중보가 있어서 바닷물의 역류를 막을 수 있다.[13] 병장, 일병, 이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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