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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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양헌왕의 왕자 고려 의종, 명종, 신종의 장인 고려의 제왕 강릉공 왕온 | 江陵公 王溫 | |
츨생 | 연대 미상 |
사망 | |
본관 | |
휘 | 온(溫) |
부모 | |
형제자매 | |
배우자 | |
자녀 | |
지위 | 제왕(諸王) |
작위 | 강릉후(江陵侯) 강릉공(江陵公) |
의종의 제1비 장경왕후, 명종의 왕비 의정왕후, 신종의 왕비 선정태후의 아버지로, 의종, 명종, 신종은 문종의 증손자이면서 동시에 증손녀 사위가 된다.
사위 4명이 모두 인종의 아들들[7]이다. 심지어 며느리인 승경궁주도 인종의 딸이다. 따라서 인종과 무려 5겹사돈(...)이라는 관계를 맺게 되었다. 참고로 왕온은 문종의 손자이고 인종은 문종의 증손자이므로 7촌간의 혼인이기도 하다. 족내혼이 심했던 고려 왕실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종실에 시집간 딸들은 모두 어머니의 김씨 성을 따랐다. 개성 왕씨 출신 왕후들이 모계 성씨를 따른 선례를 따라 모두 어머니 명주 김씨의 성을 따랐다. 강릉공의 아들 공화후 왕영는 인종의 딸 승경궁주와, 손자 광릉공 왕면은 의종의 딸 화순궁주[8]와 결혼해 후손 2대가 왕의 부마가 된다.
사위 4명이 모두 인종의 아들들[7]이다. 심지어 며느리인 승경궁주도 인종의 딸이다. 따라서 인종과 무려 5겹사돈(...)이라는 관계를 맺게 되었다. 참고로 왕온은 문종의 손자이고 인종은 문종의 증손자이므로 7촌간의 혼인이기도 하다. 족내혼이 심했던 고려 왕실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종실에 시집간 딸들은 모두 어머니의 김씨 성을 따랐다. 개성 왕씨 출신 왕후들이 모계 성씨를 따른 선례를 따라 모두 어머니 명주 김씨의 성을 따랐다. 강릉공의 아들 공화후 왕영는 인종의 딸 승경궁주와, 손자 광릉공 왕면은 의종의 딸 화순궁주[8]와 결혼해 후손 2대가 왕의 부마가 된다.
- 부: 양헌왕 왕도(王燾)
[A] 1.1 1.2 현재는 인천 이씨. 이자연의 장남 이정의 딸이다. 조선국양헌왕 생전엔 조선공비(朝鮮公妃)로 양헌왕 사후엔 조선국왕비(朝鮮國王妃)로 불렸을 것으로 추정된다.[2] 평장사(平章事) 안경공(安敬公) 김고(金沽, ?~1123, 명주 김씨(溟州 金氏))와 경원군부인(慶源郡夫人) 경원 이씨(慶源 李氏)의 딸로 추정[3] 인종의 장남 의종의 제1왕후[4] 인종의 차남 대령후 왕경의 부인[5] 인종의 3남 명종의 왕후[6] 인종의 5남 신종의 왕후[7] 출가한 4남 원경국사(元敬國師)를 제외한 인종의 모든 아들들이기도 하다.[8] 《고려사》 공주열전엔 화순궁주로 《고려사》세가 의종편엔 순화궁주로 기록되어 있다.[10] 평장사(平章事) 안경공(安敬公) 김고(金沽, ?~1123, 명주 김씨(溟州 金氏))와 경원군부인(慶源郡夫人) 경원 이씨(慶源 李氏)의 딸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명문가인 경원 이씨와 명주 김씨의 통혼으로 왕족인 강릉공과 혼인할 수 있었던 명문가 김씨의 딸 중 가장 유력하기 때문이다. 경원군부인(慶源郡夫人) 이씨는 다른 기록을 참고했을 때 김고(金沽)의 후처(後妻)로 보인다. 이후 설명될 강릉공의 아들딸들이 두 항렬이 내려간 취급을 받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인지 강릉공의 아들인 공화후 왕영의 묘지명에서도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없어, 어머니의 출자에 대해 의도적으로 언급을 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11] 인종의 차남[12] 인종의 장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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