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바누아투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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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유럽에서는 바누아투 섬이 뉴헤브리디스 섬으로 알려졌다. 1860년에는 멜라네시아 섬 전역을 대상으로 인신매매와 노예무역을 하여 뉴칼레도니아의 농장으로 보냈다. 1880년부터 프랑스에서 온 정착민들도 적지 않았으며, 영국과 프랑스는 이 섬의 소유권을 동시에 주장하며 분쟁이 일어나 결국 영국과 프랑스는 바누아투를 공동지배하기로 결정했다.
2차 세계대전 때에는 프랑스 드골을 도와주기도 했었다. 1980년 독립 후 프랑스 대사관을 세 번이나 추방하는 등 갈등들도 적지 않았으나 1990년대에 프랑스가 바누아투를 원조해 그 이후부터 관계가 개선되어 서로 협력하는 편이다.
2차 세계대전 때에는 프랑스 드골을 도와주기도 했었다. 1980년 독립 후 프랑스 대사관을 세 번이나 추방하는 등 갈등들도 적지 않았으나 1990년대에 프랑스가 바누아투를 원조해 그 이후부터 관계가 개선되어 서로 협력하는 편이다.
두 나라들을 잇는 항공 노선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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