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간 5건, 특검법 남발…여야 잇속 챙기기 도구로

    10일간 5건, 특검법 남발…여야 잇속 챙기기 도구로

     ━  특검법 도입 25년, 빛과 그림자   22대 국회는 특별검사(특검) 정국으로 시작됐다. 22대 국회 첫날인 지난달 30일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1호 법안은 모두 특검법안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일명 ‘채 상병 특검법안’을 지난 국회에 이어 다시 발의했고, 조국혁신당은 이른바 한동훈 특검법안을 발의했다. 개원 첫날 1호 특검법안들을 시작으로 야권은 ▶이화영 술자리 회유 의혹 특검법안 ▶김건희 여사 종합 특검법안도 내 모두 4건의 발의했다. 이에 맞서 국민의힘에선 윤상현 의원 등이 김정숙 여사 특검법안을 접수했다.   이화영 특검법, 1심 선고 4일 앞 발의 논란   22대 국회 임기 시작 10일 만에 5건 발의는 이례적 속도다. 물론 19대 국회를 제외하곤 14대 국회 이래 특검법안 발의 건수가 늘어오긴 했다. 모두 118건인데 특히 극단적 진영 대결이 벌어진 20대(31건)·21대(27건) 국회에서 급증했다. 이번 국회도 초반 양태만 보면 심하면 심했지만 덜하지 않은 셈이다.〈그래픽 참조〉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여야가 경쟁적으로 특검법안을 발의하나, 국회를 통과해서 실제 특검이 이뤄진 건 13건에 불과하다. 모두 여야 합의로, 수사의 공정성을 기대할 수 없거나 수사가 공정하게 이뤄졌다고 볼 수 없을 때 도입했다. 특검의 공정성을 담보할만한 장치들도 함께 마련됐다. 대부분 대법원장이나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이 추천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특검이나 ‘드루킹 여론조작 특검’은 각각 반대 진영이랄 수 있는 민주당, 자유한국당 등 야3당이 추천권을 갖도록 보장한 경우였다.   하지만 이번 특검법안들은 중립적이거나 공정해 보이려는 모양새도 아니어서 합의 처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검사 출신인 김광삼 변호사는 “이화영 술자리 회유 의혹 특검법안 같은 경우 전형적인 당 대표 사법리스크 방탄 특검”이라며 “기존 수사기관의 수사가 미진한 사안에 한해 적용돼야 할 특검제도가, 최근 정치권의 잇속에 따라 남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일부 특검법안에서는 정당이 사법부, 재판부에도 영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이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성윤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화영 특검법안의 경우 민주당 인사들과 관련된 사안인데도 특검 추천 권한을 민주당이 갖도록 했다. 또 재판부가 해당 사건을 우선 신속하게 진행해 1심에서 공소제기일로부터 6개월 이내, 2·3심에선 전심(前審)의 판결 선고일로부터 3개월 이내 해야 한다고 못 박아 사법부 권한까지 제한했다. 발의 시점도 논란인데 지난 7일 이화영 사건의 1심 징역 9년6월형 선고가 내려지기 불과 4일 앞두고였다. ‘당 대표 방탄 특검’이란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다른 특검법안도 유사한 논란이 있다. 역시 이성윤 의원이 대표발의한 김건희 여사 특검법안은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추천한 특검 후보 2명 중 한 명을 대통령이 임명하게 했다. 재판부에 신속·집중 심리를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특검이 영장 담당 판사를 고를 수 있게 했다. 조국혁신당의 1호 법안인 한동훈 특검법안 역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특검 추천권을 갖는다. 조국 대표와 가족이 한 전 장관의 수사를 받았다는 점에서 ‘보복’이란 비판이 나온다. 윤상현 의원이 대표 발의한 김정숙 여사 특검법안은 김건희 여사 특검법안에 맞대응하는 성격이라 논란을 부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논란이 있는 법안임에도 불구하고 발의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민주당이 헌정 사상 최초로 야권 단독 개원까지 강행할 정도로 밀어붙이기를 하고 있어서다. 국회의장에 이어 법제사법위원장까지 차지하면 언제든 논란이 있는 내용의 특검법안도 통과시킬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사용해 맞서고, 다시 국회에서 재의결하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 21대 때 여러 차례 경험했던 일이다. 이번에 야권에서 발의한 4건의 특검법안 중 2건(김 여사, 채 상병)은 ‘재탕’이기도 하다. 지난 국회에서 야권이 단독처리하자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고 국회 본회의 재의결 과정에서 부결된 것들이다.   박영수, 성공한 특검서 몰락한 특검돼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신민영 형사전문 변호사는 “특검을 계속해서 해야 할 정도로 기존 수사 시스템이 문제이면 그걸 해결하려 노력하는 것이 입법부의 역할”이라며 “10번 양보해 몇몇 사안들이 특검해야 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기존 사법체계에 대한 보완점은 생각하지 않고 계속해서 특검법안만 내는 것은 정치인들의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상병 평론가는 “무리한 방식의 특검 남발은 결국 국민적인 피로도를 몰고 올 것이고 이는 특검에 대한 신뢰 자체도 떨어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특검은 ‘잘 드는 칼’은 아니다. 신민영 변호사는 “특검에 들이는 비용에 비해 그만큼 효능이 있는지 의문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13건의 특검 중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건 3~4건에 불과하다. 2001년 ‘이용호 게이트 특검’이 그중 하나인 데 이용호 G&G그룹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조사해 김대중 전 대통령 측근을 줄줄이 구속하는 성과를 냈다. 당시 검찰은 “뒤져봐야 별것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차정일 특별검사팀은 수사 착수 한 달 만에 현직 검찰총장의 동생을 전격 구속했다.   2003년 대북송금 사건 특검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대북송금 의혹을 어느 정도는 밝혀내 청와대 비서실장 출신의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구속기소 해 징역 3년형을 끌어냈다.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특검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30여 명을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당시 수사를 지휘한 박영수 특검이 이후 ‘가짜 수산업자 금품수수’에 연루돼 논란이 됐고,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해 구속됐다. 가장 성공한 특검에서 가장 몰락한 특검이 된 격이다.   2018년 문재인 정부 때 첫 특검이었던 일명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 특검은 댓글 여론조작 혐의로 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당시 경남도지사를 재판에 넘겨 징역 2년 확정판결을 끌어내 성공적 사례로 분류된다. 김 전 지사와 민주당의 강력한 저항 속에 고전했던 터라, ‘대반전’이기도 했다. 다만 수사를 받던 노회찬 전 의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원동욱 기자 won.dongwook@joongang.co.kr

    2024.06.08 01:02

  • 트럼프 당선 땐 인플레 감축법 폐기, 방위비 분담금 압박…우크라 종전 협상 급물살 가능성도

    트럼프 당선 땐 인플레 감축법 폐기, 방위비 분담금 압박…우크라 종전 협상 급물살 가능성도

     ━  [미국 대선 판세 중간점검] 전문가 기고 - 미 대선 대외 정책 이슈   통상적으로 미국 대선에서 대외 정책이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국제 문제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 이슈가 되기 위해서는 해당 이슈가 누구나 이해 가능한 매우 중요한 것이어야 한다. 또한 공화당과 민주당 두 대선 후보 간에 분명한 입장 차이를 보여야 한다. 한국 전쟁과 매카시즘 와중에 치러졌던 1952년 대선, 미국의 위상 추락이 큰 문제였던 1980년 대선, 9.11 테러 이후 강경한 안보 논리가 득세했던 2004년 대선 정도가 예외에 속한다.   올해 대통령 선거는 어떨까. 사실 높은 물가, 국경 혼란, 낙태 권한, 제3당 후보의 파장 등 예년과 마찬가지로 미국 국내 문제들이 유권자들의 주된 관심사다.   국제 이슈가 미국 선거에서 쟁점으로 등장하게 되는 경우는 소위 미국정치화(Americanization) 과정을 꼽을 수 있다. 대외 관계가 국제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미국 내의 이념, 경제, 제도, 문화 등에 연결되어 미국 국민들 사이에 이해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예컨대 1차 대전 이후의 윌슨 대통령이 추진했던 다자주의 리더십은 미국정치화 결여로 인해 실패한 사례였다. 반대로 2차 대전 이후의 루스벨트와 트루먼이 도입한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는 반공주의 이념이라는 특수한 미국정치화를 통해 성공한 대표적 경우다. 우크라이나 지원과 관련하여 찬성과 반대로 양분된 공화당 유권자들이나 이스라엘 지원과 관련하여 가자지구 휴전을 촉구하는 민주당의 소수 인종 및 청년층 유권자들이 이번 대선에서 외교 정책의 미국정치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양극화 상황에 상대당 후보를 찍는 일은 없다. 자기당 후보에 실망하여 투표를 기권하는 선택은 충분히 할 수 있다. 이는 박빙의 승부를 한 쪽으로 기울게 할 것이 분명하다.   관련기사 대선 5개월 앞…트럼프 45.5%, 바이든 45.0%, 7개 경합주선 트럼프 다소 유리 트럼프, ‘제3후보’ 케네디 주니어에 독설 왜 역시 우리의 관심사는 만일 트럼프가 당선되는 경우 급격하게 달라질 미국 외교 정책 입장들이다. 상대적으로 공약을 잘 지켰던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전례를 떠올려 볼 때 우선 트럼프가 유세 기간 중 쏟아내는 자신의 관심사들을 눈여겨 살펴보아야 한다. 현재까지 트럼프가 지지 집회나 인터뷰 등을 통해 강조한 사안들로는 수입품에 대한 일괄 관세 부과와 60% 규모의 대중국 관세 정책,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대한 방위비 분담금 압박, 우크라이나 휴전 협상 추진, 연방 관료제의 자기 중심적 재편, 강경한 이민 정책, 전기차 보조금 폐지를 비롯한 인플레이션 감축법 폐기 등이 있다. 선거에 승리한다면 취임 첫 해의 주된 의제는 중국과의 통상, 이민 정책 변화, 연방 정부 개혁 등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모두 행정 명령에 의존하는 방식이 될 전망이다. 이는 입법을 통한 미국 정치의 개혁 방식과는 거리가 멀지만 4년이라는 주어진 시간 동안 지지층 중심의 정치에만 몰두할 트럼프 셈법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을 위한 협상도 푸틴과의 친밀도를 고려해 보면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충분하다.   사실 트럼프라는 정치인 특유의 예측불가능성은 단기적 전망을 불가능 혹은 불필요하게 만든다. 오히려 미국 정치와 외교의 역사적 맥락 가운데 트럼프를 위치시키고 긴 호흡과 큰 변화에 대해 분석해 보는 편이 낫다. 무엇보다 극심한 양극화 시대에 지지층 위주의 반쪽 짜리 정치와 외교를 일삼는 트럼프 정책들이 미국 변화를 온전히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주로 적극 투표층이 주도하는 후보 경선 시기에 막강한 권세를 과시하는 트럼프로 인한 착시 현상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간단히 말해 트럼프는 미국 공화당을 변모시켰다기 보다는 복원하였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전후 세계 질서 구축 과정에서 공화당 안에는 비개입주의, 일방주의, 보수적 국제주의라는 세 갈래 그룹의 대응이 생겨났다. 레이건 대통령이 이끈 냉전 승리가 확인되면서 비로소 동맹 중심과 자유무역을 상징되는 보수적 국제주의가 공화당의 통합된 입장이 되었다. 그런데 아들 조지 부시 대통령 시기의 이라크 전쟁 실패와 금융 위기는 잠복해 있던 공화당 내 비개입주의와 일방주의를 끄집어 냈다. 오바마 시대에 공화당으로 이탈한 백인 노동자 계층까지 끌어들인 것이 결국 2016년 트럼프의 등장과 당선이었다.   즉, 완전히 고립주의도 아니고 완전히 개입주의도 아닌 하이브리드 외교 정책 정당이 현재의 공화당이다. 실제로 공화당 의원들의 최근 의회 표결은 복잡한 당내 사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난 2월의 우크라이나 지원 법안에 대해 공화당 상원 의원들 중 22명이 찬성, 27명이 반대하였다. 4월의 우크라이나 지원 법안에 대해서는 하원 공화당 의원들 101명이 지지하였고 112명이 거부하였다. 바이든 대통령 시기에 완전히 양분된 입장을 보이는 공화당 내부 사정이 만일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돌아오는 경우 어떤 단합된 변화를 선택할 것인가가 최대 관건이다. 트럼프 측근이나 1기 행정부 각료들, 그리고 공화당 의원들이 최근 들어 입이라도 맞춘 것처럼 한반도 내 북한 핵위협에 대해 의견을 쏟아내고 있는 것 역시 미국 내 공화당과 보수 진영 내의 다양한 시각들 중 일부다. 한국의 자체 핵무장이나 전술핵 재배치, 주한미군 축소 가능성 등 우리로서는 중대한 미국의 입장 변화에 관한 주장들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사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선 트럼프가 당선되어야 하고, 이후에 트럼프가 대외 정책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 다음에는 더 나아가 한반도에 대한 트럼프의 숙고와 실천이 이어져야 한다. 결국 예측불허 상황이 겹치고 겹쳐있는 현재 미국의 외교 정책 변화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트럼프든 바이든이든 미국 우선주의라는 큰 흐름은 새로운 변화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스스로 결정해야 할 가능한 실천들을 찾아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4.06.08 01:01

  • 대선 5개월 앞…트럼프 45.5%, 바이든 45.0%, 7개 경합주선 트럼프 다소 유리

    대선 5개월 앞…트럼프 45.5%, 바이든 45.0%, 7개 경합주선 트럼프 다소 유리

     ━  미국 대선 판세 중간점검   조 바이든(左), 도널드 트럼프(右) 미국 대선 판세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초박빙이다. 지난 7일 기준 미국의 선거분석 전문매체인 리얼클리어폴리틱스(RCP)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45.5%를 기록했고, 조 바이든 대통령은 45.0%였다. 두 후보 간 격차는 불과 0.5%포인트였다. 11월 5일 대선까지 채 5개월이 남지 않는 상황에서 치열한 경쟁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이후 두 후보의 지지율이 역전된 것은 모두 세 번이다. 지난해 3월까지는 바이든이 트럼프를 3%포인트 이내로 앞섰다. 이후 트럼프가 역전에 성공해 7월까지 리드했는데 이 기간에 지지율 격차도 2.5%포인트 정도에 불과했다. 이후 9월까지 다시 바이든이 2%포인트 이내로 앞섰다. 지난해 10월 이후 현재까지는 트럼프가 앞서고 있다.   1년 새 세 번 엎치락뒤치락 초박빙   지난달 29일 필라델피아에서 바이든 지지자들이 피켓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AP통신 등은 “지난해 말 이후 트럼프가 바이든에 다소 격차를 두고 앞선 것은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를 앞두고 트럼프의 재등장이 확실해져 지지자들이 강하게 결집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이후 트럼프의 문제점들이 부각되면서 지지율 격차가 줄었다”고 분석했다.   관련기사 트럼프 당선 땐 인플레 감축법 폐기, 방위비 분담금 압박…우크라 종전 협상 급물살 가능성도 트럼프, ‘제3후보’ 케네디 주니어에 독설 왜 실질적으로 대선의 승패를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7개 경합주의 경우 트럼프가 다소 유리한 입장이다. 애리조나, 조지아, 네바다, 미시간, 위스콘신, 노스캐롤라이나 주 등 6곳에서 트럼프는 올 들어 리드를 빼앗기지 않고 있다. 펜실베이니아에서만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하지만 앞선 지역에서도 근소한 지지율 격차를 보이고 있어 언제든지 뒤집힐 가능성이 있다. 특히 지난 7일 기준 위스콘신주와 미시간주에서의 지지율 격차는 각각 0.1%포인트와 0.3%포인트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현재 대선 판세와 관련해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사건은 트럼프의 형사재판이다. 그 결과에 따라 언제든지 지지율이 뒤집힐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트럼프는 ‘성추문 입막음’ 돈 제공 혐의에 대해 유죄 평결을 받았다. 오는 7월 11일 형량 선고가 예정돼 있는데, 트럼프는 1심에서 최고 징역 4년형까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대선 후보 자격에는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법률상 유죄와 대선 후보 자격은 무관하다. 입후보 자격을 ‘미국 출생으로 후보 등록 직전 14년을 미국에 거주한 35세 이상 시민’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판이 대법원까지 갈 경우 최종 결과가 대선 전에 나오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트럼프가 아무런 제약 없이 대선 레이스를 완주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하지만 트럼프 캠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 지지자 중 4~6%가 “트럼프가 유죄를 받을 경우 지지를 철회하겠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유죄평결 후 모닝컨설트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무당층 응답자의 49%가 “트럼프가 후보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답했다. 유죄평결이 “트럼프에게 정치적 타격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응답은 43%였다. 무당층 공략이 이번 대선의 최대 승부처로 판단하고 있는 트럼프에게 악재인 것만은 틀림없다.     일각에선 트럼프의 형사재판이 대선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미 트럼프의 추문은 미국인들에게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만큼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있다”고 설명했다.   CNN “부동층 잡기에 승패 갈릴 것”   지난 6일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번 대선의 또 다른 변수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촉발된 반전 시위다. 이는 트럼프 보다 두터운 젊은 지지층을 가진 바이든에게 악재다. 이들이 이탈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뉴욕 컬럼비아대 등 전국 곳곳의 대학에서는 바이든의 이스라엘 지원을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나 2500명 이상이 체포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반전 시위대는 지난 1968년 민주당의 시카고 전당대회 때 대규모 베트남전 반대 시위를 벌였던 것처럼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를 벼르고 있다. 바이든이 공식적으로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는 날에 행사장 밖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겠다고 예고해 둔 상태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이번 대선에서 눈에 띄는 이슈 중 하나는 낙태다. 지난 2022년 6월 미 연방 대법원이 낙태를 합법화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한 뒤 낙태권 존폐를 각 주로 넘겼기 때문이다. 이후 지역별로 낙태 찬반 논쟁이 뜨겁게 벌어지고 있다.   여성 표심을 잡기 위한 관건 중 하나인 낙태 문제와 관련해선 트럼프 진영이 수세에 몰린 형국이다. 트럼프와 공화당이 낙태 반대에 적극 찬성해왔기 때문이다. 트럼프에 대한 여성의 지지율은 지난 대선 때와 비교해 하락했다. 퓨 리서치센터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에 대한 여성 지지율은 44%였다. 100명의 여성 중 44명이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얘기다. 이는 2016년보다 5%포인트 오른 수치다. 하지만 올 1월 조사에선 여성 응답자 중 36%만 트럼프를 지지했다. 반면 바이든은 58%나 됐다. 이로 인해 AP통신 등은 “대선의 주요 이슈 중 하나로 등장한 낙태권 논쟁이나 성 추문 등이 접전을 벌이는 트럼프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사실 일반 유권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먹고 사는 문제인 경제다. 미국인들은 여전히 불안한 물가(인플레이션)로 인해 바이드노믹스(바이든의 경제정책)에 대해 부정적이다. 지난달 파이낸셜타임스(FT)와 미시간대 경영대학원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1%가 현재의 미국 경제 상황을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불법 이민 이슈도 트럼프에겐 호재다. 트럼프는 “바이든이 불법 입국자를 우선시한다면 나는 미국을 우선시하고 있다”며 흑인과 히스패닉계 등 소수 인종 유권자들을 공략하고 있다. 이들의 일자리를 불법 입국자들이 빼앗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다.   CNN 등 현지 언론들은 “이미 양극화된 대선 표심이 팽팽하게 맞서는 상황이기에 승리의 관건은 부동층을 잡는 것”이라며 “남은 기간 동안 상대 후보에게 불리한 이슈를 어떻게 정치 쟁점으로 부각시키느냐가 중요하다”라고 전망했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2024.06.08 00:58

  • 트럼프, ‘제3후보’ 케네디 주니어에 독설 왜

    트럼프, ‘제3후보’ 케네디 주니어에 독설 왜

     ━  미국 대선 판세 중간점검   “사기꾼 조 바이든을 돕기 위해 민주당이 심은 극좌 진보주의자다.”   무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한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사진)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평가다. 그러면서 그는 “케네디 주니어를 지지하는 표는 버리는 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이처럼 케네디 주니어 후보에 대해 독설을 퍼부은 것은 최근 여론 조사 분석 결과 자신의 지지층을 잠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난 4월 말 퀴니액대학 여론조사에 따르면 다자대결에서 트럼프와 바이든 둘 다 37%의 지지율을 기록했고, 케네디 주니어는 16%를 차지했다. 당연히 양대 후보에 크게 뒤졌지만, 문제는 케네디 주니어가 누구 표를 잠식했느냐다. 케네디 가문이 민주당 계열이어서 당연히 바이든 표를 많이 깎아 먹을 것이란 예상이 많았지만, 실제는 달랐다. 공화당 유권자의 44%가 케네디 주니어를 우호적으로 평가한 반면, 민주당 유권자의 경우 11%에 불과했다. 또 케네디 주니어가 사퇴할 경우 그의 지지층 중 47%는 트럼프에게 가고, 29%만이 바이든에 옮겨갈 것이란 답변이 나왔다. 또 다른 여론조사 업체인 마리스트 조사에서도 케네디 주니어의 지지자는 민주당원 중 8%, 공화당원 중 10%, 무당파 중 27%였다.   관련기사 대선 5개월 앞…트럼프 45.5%, 바이든 45.0%, 7개 경합주선 트럼프 다소 유리 트럼프 당선 땐 인플레 감축법 폐기, 방위비 분담금 압박…우크라 종전 협상 급물살 가능성도 특히 바이든과 트럼프 후보가 박빙의 경쟁을 벌이고 있는 7개 경합주에서의 케네디 주니어의 존재감은 작지 않다. 그의 대선 레이스 완주 또는 중도 사퇴가 경합주에서의 양대 후보의 승패를 좌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로버트 케네디 전 법무장관을 배출한 정치 명문가인 케네디 가문은 이번 대선에서 케네디 주니어가 아닌 바이든 지지를 밝혔다.   이에 불구 케네디 주니어는 현재까지 대선 완주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그의 러닝 메이트(부통령 후보)인 니콜 섀너핸이 800만 달러(약 108억원)을 추가 기부했다. 구글 공동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의 전 부인인 섀너핸의 기부 총액은 1500만 달러에 달한다.   올해 70세인 케네디 주니어에겐 건강 문제에 관한 논란도 있다. 과거 수은 중독과 뇌 기생충 진단을 받아 인지 장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케네디 주니어 측은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여행하다가 기생충에 감염됐다. 이미 10년 전에 해결된 문제”라고 말했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2024.06.08 00:51

  • “붉은 옷 입고 면접 가래요” 미래 불안감에 점 보는 청춘들

    “붉은 옷 입고 면접 가래요” 미래 불안감에 점 보는 청춘들

     ━  점술에 빠진 MZ세대   서울 광진구의 한 타로 카페에서 2030 젊은이들이 운세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신수민 기자 “사주에 물(水)이 너무 많네. 불(火)이 있으면 좋거든. 면접 볼 때 붉은 계열의 옷을 입고 가봐요.”   취준생 김우석(26)씨는 채용 면접을 앞둔 하루 전날 점집을 찾았다. 김씨는 “정말 어렵게 서류 통과를 거쳐 면접까지 왔다”며 “너무 합격이 간절해 점집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취업은 했어도 이직이 늘 고민인 정지은(28)씨도 최근 용하다는 신점집을 찾아갔다가 혼만 났다. “당신 조상이 이 일을 꼭 해야 된대. 이젠 딴생각하지도 말고 일에 집중 좀 해봐.” 정씨는 “불안한 미래에 고민만 하기보다는 뭔가 해결책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분기마다 점을 보고 있다”고 했다.   사주·운세·타로 등 점술에 빠져드는 1030세대가 크게 늘고 있다. 모바일앱 분석 업체인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사용량 상위 5개 운세앱의 1030세대 사용자는 꾸준히 증가 추세다. 2021년 104만9000명에서 올해 4월엔 119만1000명으로 3년 새 14%나 늘었다. 운세앱 포스텔러의 경우 MZ세대가 가입자의 83%를 차지할 정도다. 이들은 운세앱뿐 아니라 유튜브 운세 해설 영상도 즐겨 찾고 있다. 유튜브 데이터 분석 서비스 플랫폼인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현재 운세와 관련한 유튜브 채널만 1900개에 달한다.   10대는 교우 관계, 20대는 취업 등 관심   특히 10~20대인 Z세대를 중심으로 운세와 점술을 접하는 빈도가 급격히 늘고 있는 것도 눈에 띄는 현상 중 하나다. 포스텔러 관계자는 “최근 가입자 중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비중이 2019년 18%에서 36%로 2배나 급증했다”고 전했다. 온라인은 물론 오프라인 점집에도 MZ세대의 왕래가 잦아지고 있다. 10년간 타로 상담가로 활동 중인 김보운(40)씨는 “직접 방문에 상담 전화까지 포함하면 고등학생부터 20대 초반의 상담자가 최근 3배가량 늘었다”며 “10대는 교우 관계 어려움이나 연애, 20대는 취업과 이직 고민이 주된 상담 분야”라고 소개했다.   이에 대해 이병훈 중앙대 교수는 “1020세대의 경우 마주한 사회 현실이나 주변 여건이 워낙 불확실하다 보니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불안한 마음이 큰 상황”이라며 “이들이 점술에 관심을 갖는 건 그만큼 젊은 세대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진단했다. 1030세대가 점술에 관심을 갖는 게 사회·경제적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다.   취업난이 대표적이다. 통계청이 지난달 22일 발표한 지난해 4분기 임금 근로 일자리 현황에서도 전 연령대 중 유독 20대 이하만 전 분기 대비 일자리 수가 줄었다. 5분기 연속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연령별 인구수 대비 일자리 비중도 20대 이하만 감소했다.   1030세대 운세 앱 사용자 수 대학내일20대연구소 조사에서도 1020세대가 운세와 점술에 관심을 갖는 이유로 재미·흥미(68.4%)에 이어 정신·심리적 안정(48.1%)과 현재 고민·문제 해결(44.4%)이 2, 3위를 차지했다. 특히 ‘내 성향·성격 파악’(42.9%)이 4위에 올랐는데 이는 다른 연령대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현상이다. 이재흔 대학내일20대연구소 파트장은 “MBTI 검사처럼 자신의 성격과 성향을 좀 더 자세히 알고자 하는 Z세대의 니즈가 반영된 것”이라며 “특히 이들 세대는 운세를 보며 ‘나는 왜 안 될까’라고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이를 통해 뭔가 해결책을 찾아 나가려는 적극적인 모습을 함께 보인다는 점에서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임명호 단국대 교수도 “‘중꺾마’ ‘갓생’ ‘미라클 모닝’ 등에 관심이 많은 MZ세대 특성상 단지 운세나 점술 결과에 휘둘리기보다는 이를 바탕으로 미래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고민하는 경우가 적잖다는 점에서 이들이 점술에 관심을 갖는 현상을 비판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어려운 현실 극복 ‘중꺾마’ 노력일 수도   이렇다 보니 최근엔 자신의 운세를 알아보기 위해 직접 점술을 배우려는 MZ세대도 늘고 있다. 지난달 하순 서울 광진구의 한 타로 카페. 평일임에도 이른 아침부터 스터디 모임이 열렸다. “자. ‘컵 7번’ 카드는 노력 없이 결과만 바라는 경우예요. 취업이 고민인 분이 이 카드를 뽑으면 행동은 안 하고 고민만 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들에겐 우선 이력서부터 써보라고 하죠.”   상담사 강의에 정선아(28)씨의 필기 속도가 빨라졌다. 정씨는 “1년간 독학하며 심심풀이로 친구들 점을 봐줬는데 좀 더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 찾게 됐다”며 “제 적성에도 맞는 것 같아 부업으로 해볼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김동현(36)씨도 “20대 초반부터 진로 고민으로 서울·대구·부산 등 전국의 유명한 점집이란 점집은 다 찾아다녔는데, 관심이 점점 늘면서 직접 배워보기로 마음먹게 됐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점술을 배우려는 MZ세대가 늘면서 점술 상담 업체의 채용 기준이 한층 높아졌다는 얘기도 나돈다. 운세앱 관계자는 “요즘은 20대 중반의 점술가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경제 불황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 데 따른 불안감을 달래려는 목적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들 나름대로 희망을 갖고 미래에 대비하려는 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다”며 “다만 사주나 점술이 미래를 결코 책임져 주진 않는 만큼 운세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신수민 기자 shin.sumin@joongang.co.kr

    2024.06.08 00:01

  • 폭등 전야 전세시장

    폭등 전야 전세시장

     ━  임대차법 4년, 전셋값 급등 부메랑으로   “집주인이 전셋값을 터무니없이 올려 받으려 하는 줄 알았는데, 요즘 시세가 그렇게 올랐더군요. (재계약을 하려면) 신용대출이랑 마이너스통장까지 끌어 써야 합니다.” 전세 재계약을 앞둔 전우영(가명·서울 관악구)씨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전씨는 4년 전 관악구 봉천동 e편한세상서울대입구2차 84㎡(이하 전용면적)를 전세 5억원대에 계약했다. 그런데 지금 전세 시세는 7억5000만원으로 4년 전보다 2억원 넘게 올랐다.   ‘전세대란’의 공포가 재연될 분위기다. 한국부동산원 등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10개월 연속, 서울은 11개월 연속 오름세다. 여기에 주택임대차보호법(임대차법) 4주년(2020년 7월 26일 시행)이 다가오면서 그동안 억제됐던 상승 폭까지 한꺼번에 터질 기세다. 예고됐던 전세대란의 시계바늘이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전셋값이 많게는 5억원 넘게 오른 아파트 단지도 있다. 서울 성동구 행당동 서울숲리버뷰자이 128㎡는 올해 2월 10억원에서 4월 15억5000만원으로 5억5000만원 올랐다.   관련기사 집주인 “4년치 손해 본 만큼 올려받겠다” 세입자 “1년새 5억 뛰어, 영끌해도 막막” 전세대책 못 내놓는 정부…전문가들 “보증금 상한제, 아파트 임대사업자 부활 검토를” 고개드는 갭투자…“3000만원에 산다” “지금이 타이밍” 2년 전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이후 2년 만의 재계약을 앞두고 전셋값을 감당 못해 낮은 평수의 집이나, 다른 동네로 이사를 고민 중인 세입자도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임대차법 시행으로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고 지적한다. 이는 지난 정부 때 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 도입으로 주택임대차기간을 2년 연장하고 전셋값 상승률은 4년간 5% 제한, 세입자 보호를 도모하기 위한 입법이었다. 하지만 시장을 자극하면서 집값과 전셋값이 나란히 급등했고,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물가까지 치솟았다. 그러자 집주인들이 지난 4년간 상승한 전셋값을 한 번에 올려 받는 데 나선 것이다.   김규성 한국투자증권 자산관리승계연구소장은 “올 7월 말 이후 임대차 2법 시행 무렵의 전세 계약이 대거 만기를 맞으면서 전셋값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며 “공사비 급등과 각지의 재건축·재개발 사업 지연 등에 따른 주택 공급 부족까지 겹쳐 전셋값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해 36만5963가구였던 전국 아파트 입주 물량은 올해 33만1729가구, 내년 24만1785가구로 쪼그라들 전망이다.   전세 제도가 국민 다수의 ‘주거 사다리’로 자리 잡은 국내에서 전셋값 상승은 국민 삶과 주택시장에 켜진 경고등을 의미한다. 세입자의 주거비 부담이 가중될뿐더러, 집값까지 밀어 올리는 효과가 있어서다. 실제로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지난달 넷째 주 0.06% 올라 3월 셋째 주 이후 10주 연속 오르면서 상승 폭도 커지고 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공공임대 확대와 함께 전세 보증금 상한제를 도입하고, 임대인에게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식의 전세시장 안정화 대책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균·배현정 기자 smilee@joongang.co.kr

    2024.06.01 01:26

  • 전세대책 못 내놓는 정부…전문가들 "보증금 상한제, 아파트 임대사업자 부활 검토를"

    전세대책 못 내놓는 정부…전문가들 "보증금 상한제, 아파트 임대사업자 부활 검토를"

     ━  임대차법 4년, 전셋값 급등 부메랑으로   치솟는 전셋값과 주택 공급을 위해 ‘주택·토지 분야 규제 합리화 조치’ 발표를 앞뒀던 정부가 지난달 돌연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국토교통부는 발표 예정일이었던 지난달 24일을 사흘 앞두고 관계부처와의 협의를 이유로 대책 발표를 잠정 연기했다. 임대차시장에 경고음이 울리고 있는 만큼 시장 안정화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현재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전세 안정화 대책은 크게 3가지다.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 폐지, 전세보증제도 개선, 기업형 장기임대주택 도입 등이다. 이를 통해 규제 완화, 세입자 수요 분산, 주택 공급 확대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국토부는 우선 임대차 2법 대수술을 고민하고 있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지난달 “임대차 2법은 원상복구 하는 것이 저 개인과 국토부의 공식 입장”이라고 밝혔다. 전셋값 4년 치를 한꺼번에 올린다든지, 전세 신규 물량이 시장에 나오지 않는 등의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임대차 2법의 폐지를 통한 전세난 해소 가능성에 대해 전문가들은 선을 그었다. 이는 서민 주거 안정을 명분으로 임대차 2법 도입을 강행한 야당과의 합의가 어려워 현실화 가능성이 낮은 데다 시기적으로도 적절치 않기 때문이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임대차 2법 시행 후 4년이 지나 정착 단계에 들어선 제도에 변화를 준다면 시장에 더 큰 혼란이 올 수 있다”며 “특히 전세 수요가 몰리는 시기에 임대차 2법을 풀어 임대료를 시장에 맡긴다는 것은 전체 시장의 상승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비(非)아파트 전세 기피 현상 해소도 화두다. 정부는 지난해 전세반환보증이 전세사기에 악용됐다는 지적에 따라 보증 가입요건을 대폭 강화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보증에서 탈락하는 물건이 대거 생겨나면서 전세 물량이 확 줄어 버렸다. 이에 국토부는 공시가 126% 이하 보증보험 가입 기준은 그대로 유지하되, 후순위로 밀린 감정평가 방식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공시가 대신 감정평가 방식을 활용하는 방식은 계약 전 주택의 가치 평가를 받을 수 있고, 만약의 경우에는 감정평가기관에 책임을 물을 수 있어 세입자에게는 안전장치를 추가하는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관련기사 폭등 전야 전세시장 집주인 “4년치 손해 본 만큼 올려받겠다” 세입자 “1년새 5억 뛰어, 영끌해도 막막” 고개드는 갭투자…“3000만원에 산다” “지금이 타이밍” 다만 전세사기의 온상이라는 비아파트의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선 보다 다양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전문위원은 “정보 사각지대에 있는 비아파트부터 안심거래제도를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계약 시 선순위 세입자와 보증금액, 대출금액을 계약서에 첨부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다.   전·월세 보증금 상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4월 기준 서울지역 연립·다세대의 전세가율은 평균 72%다. 강서구(80.2%), 구로구(79%), 관악구(77.8%) 등은 이른바 ‘깡통전세’의 위험 수위까지 차올랐다. 김진유 교수는 “임대사업자에게 집값의 70% 이내까지만 보증금을 받도록 하고 나머지는 월세로 받게 한다면 전세사기의 원인이 된 갭투자를 방지하고 깡통전세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전세 보증금 상한선을 권고하고, 이를 지키는 임대사업자에게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방안 등이 제안된다.   그러나 전세난의 핵심은 결국 전세 물건 부족이다. 정부는 든든전세주택과 같은 임대주택 추진을 예고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아파트 민간 주택임대사업자의 부활 등 적극적인 공급 정책까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정부는 2020년 아파트 민간 주택임대사업자 제도를 폐지했다. 또 민간 주택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 등도 대거 축소했다. 이로 인해 2020년 160만 가구에 달하던 민간 임대주택은 지난해 90만 가구 수준으로 급감했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주임교수는 “임대 물건을 단기간에 확보하기 위해서는 아파트 다주택자 주택임대사업자 제도 부활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 제도가 주택 투기에 활용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배현정 기자 bae.hyunjung@joongang.co.kr

    2024.06.01 01:12

  • 고개드는 갭투자…"3000만원에 산다" "지금이 타이밍"

     ━  임대차법 4년, 전셋값 급등 부메랑으로    “서울 ○○아파트 갭투자 어떤가요?” 약 205만 명이 가입한 네이버 카페 ‘부동산스터디’엔 최근 하루 10건이 넘는 갭투자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이번에 갭투자를 해보려고 하고, 가용 현금은 ○억원인데 전망과 주의할 점 등에 대한 조언을 부탁한다”는 한 회원의 글에 다른 회원들은 “그 지역은 대지지분이 작아서 이점이 없다”거나, “비싼 지역의 대규모 뉴타운보다는 다른 소규모 재개발 지역이 좋을 것 같다”는 등의 답변을 남겼다. “지금이 (갭투자에) 들어갈 타이밍인 것 같다”는 회원 글엔 동의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아파트 전셋값이 급등하자 전세를 끼고 매수해 시세차익을 노리는 갭투자 수요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서울 노원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갭투자 문의가 거의 없었는데 올해 들어 급증했다”며 “지난달엔 하루에 서너 명씩 갭투자를 문의했다”고 전했다. 아파트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그사이 눌린 매매가격과 별 차이가 없어지자 갭투자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 때문이다. 특히 수도권 일부 지역에선 매매가격과 전셋값이 동일한 아파트도 나오고 있다. 인천 서구 연희동 우성 아파트 84㎡(이하 전용면적)는 올해 3월 매매가격과 전세 실거래가가 2억5000만원으로 동일했다.   관련기사 폭등 전야 전세시장 집주인 “4년치 손해 본 만큼 올려받겠다” 세입자 “1년새 5억 뛰어, 영끌해도 막막” 전세대책 못 내놓는 정부…전문가들 “보증금 상한제, 아파트 임대사업자 부활 검토를” 경기도 수원과 화성에서도 3000만원가량만 있으면 갭투자를 할 수 있는 아파트가 등장하고 있다. 수원 영통구 매탄동 성일 아파트 49㎡는 매매 2억1400만원, 전세 1억8000만원으로 3400만원 차이다. 화성 병점동 느치미마을주공2단지 59㎡는 매매 2억9800만원, 전세 2억6820만원에 시세가 형성됐다. 서울 핵심지의 갭투자 여건도 조성되고 있다. 마포구 망원동 스카이캐슬 50㎡는 매매 5억원, 전세 3억8000만원으로 1억2000만원 차이다.   전문가들은 전셋값 상승이 이어지면서 갭투자 수요 증가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갭투자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재차 나온다. 김광석 리얼하우스 대표는 “다주택자 규제가 여전한 상황이라 과거처럼 갭투자로 큰 돈을 벌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무리한 갭투자로 ‘쪽박’을 차거나 세입자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2024.06.01 01:08

  • 로또 당첨금 들고 튄 직장동료…국토종주 자전거길로 추격하다

    로또 당첨금 들고 튄 직장동료…국토종주 자전거길로 추격하다

     ━  국내 최초 ‘자전거 로드무비 소설’ 쓴 정진영 작가   국토종주 자전거길인 전북 진안군 모래재를 달리는 사람들. [사진 한국관광공사 오정식] 중소기업 회식자리에서 사장이 호기롭게 뿌린 로또가 1등에 당첨된다. 당첨금을 들고 사라진 과장을 잡아오면 연봉 1000만원을 올려 주겠다는 사장의 약속에 직원들은 SNS 속 단서를 찾아 때 아닌 자전거 국토종주에 나선다.   국내 최초 ‘자전거 로드무비 소설’이 나왔다. 직장인에게 느닷없이 주어진 5박 6일간의 일상탈출을 그린 정진영 작가(일러스트)의 신간 『왓 어 원더풀 월드』(북레시피). 자전거여행이라는 낭만적인 테마에 고용문제 등 사회적 소재, 로또당첨이라는 판타지에 미스터리 추격전과 반전의 휴먼드라마까지, 한편의 영화가 그려진다. 팔당역에서 능내역, 비내섬, 탄금대, 이화령고개를 넘어 낙동강하굿둑에 이르는 국토종주 자전거길 홍보영화로 딱이다. 추격자들의 이동경로를 따라 펼쳐지는 풍광과 맛집 등 ‘하드웨어’는 모두 실존하니, 국토종주 도전자를 위한 가이드북도 된다.   황정민·윤아 주연 드라마 ‘허쉬’ 원작자   정진영 작가 일간지 기자 출신 정진영 작가는 실제 자전거 마니아로, 고용노동부를 출입하며 수집한 중소기업 직장인들의 애환과 본인의 국토종주 경험을 버무려 소설을 썼다. “2016년 부장과 대판 싸우고 무작정 떠났거든요. 돈 안드는 여행이란 생각만 했지 아무 개념도 없는 상태로 저렴한 미니벨로 한 대만 사서 ‘개고생’을 했습니다. 1주일 만에 간신히 도착한 낙동강엔 별것 없었어요. 근데 집에 돌아오니 자꾸 생각이 나는 거죠. 4~5년간 전국의 인증된 자전거길은 모조리 달렸습니다.”   2011년 『도화촌 기행』으로 등단한 정 작가는 황정민·윤아 주연 드라마 ‘허쉬’(2020)의 원작자다. 앉아서 상상하기보다 발로 뛰어 취재한 현실밀착형 소설을 쓰는 게 모토인 소위 ‘사회파 작가’인데, 비교적 말랑한 신간이 “가장 어렵게 쓴 장편”이란다. “지금까지 쓰던 심각한 소설과 결이 달라요. 자전거길에서 풀내음 섞인 바람을 온몸으로 맞던 그 좋은 기분을 전하느라 힘들었죠. 그렇다고 한가한 힐링소설이 아니라 현실에 발을 붙여야 하니까요. 회사일이 바빠 엄두를 못내다가, 2020년 전업작가가 돼서 두 번째 국토종주를 한 다음 본격적으로 쓸 수 있었습니다.”   로또 당첨자를 추격한다는 설정만 허구일 뿐, 거의 실제상황이다. 고라니 울음소리와 뱀 출현에 기겁하고, 오밤중에 멧돼지와 대치하는 에피소드도 다 경험담이다. “앉은뱅이소설을 제일 싫어해요. 지금 벌어지는 우리 이야기를 쓰고 싶죠. 등장인물들도 아무 경험없이 국토종주에 나선 셈이라 제 경험들을 살려봤어요. 그렇다고 다큐와는 달라요. 다큐는 한발 떨어져 보게 되지만, 소설은 그 안에 몰입해서 간접경험을 하게 되잖아요.”   정진영 작가의 소설 『왓 어 원더풀 월드』. [사진 북레시피] 회식자리에서 뿌린 로또 당첨금을 회수하려는 사장의 찌질함도 사실적이다. 그 역시 2006년부터 한주도 빠짐없이 로또를 사고 있다는데, 거기서 추격전의 아이디어도 싹텄다. “누구나 일확천금의 꿈이 있고, 제 모습도 투영돼 있죠. 저는 매주 같은 번호를 사다보니 한 주라도 안 사면 불안해요. 그사이 그 번호가 당첨될까봐요.(웃음) 소설 속 ‘1, 2, 3, 43, 44, 45’ 라는 번호도 영 황당하진 않아요. 몇주 전 ‘11, 13, 14, 15, 16, 45’가 나왔잖아요. 현실이 소설보다 더한 셈이죠.”   그는 두번의 국토종주가 “생애 가장 잘한 일”이라고 했다. 길마다 나타나는 다채로운 풍경을 만나며 인생을 절로 긍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강 따라 달리다보면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못보고 살았나 싶고, 우리나라 살 만하네 느끼게 돼요. 물론 그런다고 인생이 바뀌는 건 아니죠. 그냥 마음가짐이 달라져요. 주인공도 계속 다니던 회사를 다니지만 훨씬 긍정적인 사람으로 진화하잖아요.”   국토종주 자전거길에 선 정진영 작가. 그는 자전거길 예찬론자다. “이렇게 살찐 내가 미니벨로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간다는 게 자전거길이 없었다면 엄청 위험한 일”이란 것이다. 초심자에게도 안전한 자전거길이 애초부터 있었던 건 아니다. 2009년부터 4대강 정비사업과 함께 전 국토를 일주할 수 있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닦였다. 이후 방치되어 오다 이번 정권 들어 정비사업을 재개해 올해까지 총 2237㎞의 국토종주 자전거길이 완성될 예정이다.   “최고의 코스는 한강 자전거길 양평구간”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같은 지역이라도 자전거길은 차로 가거나 걷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차로 하는 건 여행도 아니”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풍경을 보고 지나가도 하나도 기억이 안나니까요. 서울서 대전까지 3박 4일 걸어도 봤는데, 하루종일 풍경이 똑같아요. 자전거는 딱 그중간이죠. 모든 풍경을 보면서 속도도 적당해요. 이런 인프라가 세계적으로도 드문데, 그래서 자전거타는 사람들이 MB 안 미워해요.(웃음) 주요 길목에 있는 인증센터도 중요하죠. 여권처럼 스탬프를 찍게 돼있는데, 사실 그것 때문에 달릴 수 있어요. 힘들다가도 인증센터가 얼마 안남았다는 걸 알면 동기부여가 되거든요.”   자전거 여행이 마냥 안전하진 않다. 밤길을 달린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멧돼지와 대치한 순간은 생애 가장 큰 공포였어요. 밤에 혼자 산길을 힘겹게 내려온 순간 거대한 멧돼지와 마주친 거죠. 10분 넘게 대치했는데, 결국 멧돼지가 논두렁을 점프해 사라지길래 허벅지가 터져라 페달을 밟았죠. 사실 밤이 아니면 뱀이나 고라니를 만나도 안 위험해요. 야생동물은 사람을 보면 다 도망가거든요. 심지어 개구리를 삼키고 있는 뱀을 만난 적도 있는데, 개구리를 뱉어놓고 도망가더라구요.(웃음)”   그의 말처럼 자전거 여행이 다 드라마는 아니다. 다만 “능동적으로 뭔가를 성취해 본 경험의 영향력”을 전하고 싶단다. “요즘엔 신입사원 부모가 회사에 전화를 한다죠. MZ들에게 가장 부족한 게 뭔가 스스로 성취해본 경험이거든요. 주인공은 끝까지 완주를 해본 거고, 한번 해보면 다른 일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어요. 저부터 국토종주를 하고 나니 뭐든 하겠다 싶더군요. 그래서 퇴사하고 쓴 게 드라마 ‘허쉬’ 원작인 『침묵주의보』였죠. 작게나마 성취한 경험이 얼마나 삶에 영향을 주는가를 그리고 싶었어요.”   전국의 모든 자전거길을 섭렵한 뒤 꼽는 최고의 코스는 어디일까. 그는 ‘한강 자전거길 양평구간’을 강추했다. “초심자가 자전거길 매력을 느끼고 싶다면 양평이죠. 경의선이 지나가서 접근성도 좋고, 길도 편하고 풍경도 아름답거든요. 가장 아름다운 곳은 섬진강이고요. 제일 여행다운 맛은 제주도죠. 자전거 대여도 잘되고 숙소와 음식점, 편의점이 다 훌륭하니까요. 동해안은 숙소가 없고, 낙동강엔 아무것도 없어요.(웃음)”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2024.06.01 00:35

  • 집주인 "4년치 손해 본 만큼 올려받겠다" 세입자 "1년새 5억 뛰어, 영끌해도 막막"

    집주인 "4년치 손해 본 만큼 올려받겠다" 세입자 "1년새 5억 뛰어, 영끌해도 막막"

     ━  임대차법 4년, 전셋값 급등 부메랑으로   최근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게시된 ‘임차인이 전·월세를 애타게 찾는다’는 문구. 전세 수급 불균형에 전셋값이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 #1 “아파트 전셋값이 1년 사이 5억원 넘게 올랐어요. 오는 10월에 재계약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금액을 맞춰야 할지 막막합니다. 모은 돈과 대출을 ‘영끌’해도 무리입니다.” 서울 동작구 주민 김진화(43·가명)씨는 기자와 대화하는 내내 ‘막막하다’는 표현을 수차례 썼다. 김씨가 전세로 거주하는 흑석동 아크로리버하임 84㎡(이하 전용면적)는 최근 13억3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이뤄졌다. 1년 전 7억8000만원보다 정확히 5억5000만원이 올랐다. 김씨는 4년 전 전세 계약 때 7억원대의 전셋값을 냈고, 2년 전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면서 5%를 추가로 냈다. 김씨는 “아직 임대인과 얘기하지 않았지만 현재 시세와 비슷한 금액을 원할 가능성이 크다”며 “결국 (전셋값에 맞게)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관련기사 폭등 전야 전세시장 전세대책 못 내놓는 정부…전문가들 “보증금 상한제, 아파트 임대사업자 부활 검토를” 고개드는 갭투자…“3000만원에 산다” “지금이 타이밍” #2 경기도 판교에 아파트 한 채를 보유한 임대인 조모(66)씨는 올 가을 전셋값을 크게 올려 받을 계획을 하고 있다. 4년 전 지금의 세입자에게 집을 내준 조씨는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물가가 껑충 오른 데다, 전셋값도 많이 올랐는데 4년간 임대차법에 손발이 묶여 사실상 손해를 보고 있지 않았느냐”며 “손해 본 만큼 (전셋값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씨가 보유한 백현동 판교푸르지오그랑블 105㎡의 전셋값은 4년 전 9억4500만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3억8000만원 오른 13억2500만원 선이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임대차법 시행 4주년을 앞두고 전셋값에 대한 임대인과 임차인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며 “임대인들이 한꺼번에 3억, 4억원씩 올린다고 하니 당혹감을 보이는 임차인이 적잖다”고 전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2020년 7월 26일, 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를 도입해 주택임대차기간을 2년 연장하고 전셋값 상승률을 4년간 5%로 제한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임대차법)이 시행됐다. 다음 달이면 4주년으로, 임대차시장은 전세 계약 만기를 앞두고 재계약을 고민 중인 세입자들의 공포와 혼란으로 어수선한 분위기다. 새 임대차법 시행 당시 급등했던 전셋값이 2021년 고점을 찍고 하락세를 보였지만, 지난해부터 전셋값이 다시 눈에 띄게 반등하면서 웬만해선 금액을 맞추기 힘든 상황까지 다다라서다. 지난 정부가 세입자 보호를 명분으로 마련한 2+2년 임대차법의 주택시장 불안정 유발 부메랑이 4년을 돌고 돌아 여전히 세입자들을 옥죄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전세 물량까지 급감하면서 혼란이 커지고 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의 주간 전셋값은 지난해 5월 넷째 주부터 지난달 넷째 주까지 54주째 상승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부동산원이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12년 이후 세 번째로 긴 상승 기간이다. 2017~18년의 54주 상승 기록과 공동 3위(최장 기록은 2014~17년의 135주)다. 올해 1월 첫째 주 0.07%였던 주간 상승률이 지난달 셋째 주와 넷째 주 0.1%까지 치솟은 것도 주목할 만하다. 올 들어 가장 높은 주간 상승률이다. 임대차법 시행 4주년이 가까울수록 시장도 한층 들썩이고 있다는 의미다. KB부동산 등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지난달 27일 기준 6억58만원으로, 1년 전인 지난해 5월(5억2322만원)보다 14.8% 올랐다.   전셋값이 수억원 오른 단지도 속출하고 있다. 서울 성동구 행당동 서울숲리버뷰자이 128㎡ 전셋값은 올해 4월 15억5000만원을 찍었다. 2월만 해도 10억원이었다. 불과 두 달 사이 5억5000만원이 오른 것이다. 4년 전과 비교해도 대표적 부촌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나, 서울 집값의 마지노선으로 인식되는 이른바 ‘노도강(노원·도봉·강북)’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전셋값이 급등했다. 강남구 대치동 대치아이파크 84㎡ 전셋값은 최근 15억원으로 4년 전(12억6500만원) 대비 2억3500만원 올랐다. 도봉구 창동 동아청솔 84㎡는 현재 5억원으로 4년 전(1억9000만)보다 3억1000만원 올랐다.   내년 전국 신규 입주 물량 최저 전망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84㎡(10억원→12억원), 강북구 미아동 래미안트리베라1차 84㎡(3억5000만원→5억3000만원) 등도 4년간 전셋값이 가파르게 올랐다. 서울뿐만이 아니다. 수도권과 지방 주요 도시도 경기 수원시 영통동 영통e편한세상 84㎡(3억원→4억원), 대전 유성구 도룡동 스마트시티2단지 134㎡(6억5000만원→9억8000만원), 부산 해운대구 우동 해운대아이파크 111㎡(4억2500만→6억7000만) 등으로 비슷한 상황이다. 부산의 한 아파트에 사는 세입자 이우정(40)씨는 “전세살이 안 해본 지인들이 눈높이를 낮추라면서 내 예산과 시장 상황에 맞게 평수를 낮춰 집을 옮기라는 말을 한다”며 “하지만 자녀 학교 문제도 있고 직장도 마음대로 옮길 수 없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가”라고 반문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최근 전셋값이 상승하는 가장 큰 요인은 2+2년의 임대차계약이 처음 만료되면서 임대인이 지난 4년간 오른 전셋값을 한꺼번에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2년을 추가로 살았기 때문에 임대인은 현재 세입자와 재계약을 하든, 새로운 세입자와 계약을 하든 시세만큼 전셋값을 올릴 수 있다. 전셋값 자체도 많이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코로나19 엔데믹 직후 고금리로 주택시장이 침체하면서 주택 매매 수요가 전세로 눌러앉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셋째 주 서울의 전세수급지수는 101.4포인트로 3주 연속 100을 넘겼다. 100보다 높으면 전세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다는 뜻인데, 100을 돌파한 것은 2021년 11월 넷째 주(100.5) 이후 2년 5개월 만이었다.   실제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지난달 27일 기준 2만8482건으로, 1년 전인 지난해 5월(3만7801건)보다 24.7% 감소했다. 경기도 동탄신도시의 한 공인중개사는 “집값 폭등으로 내 집 마련의 꿈을 뒤로 미룬 세입자 수요는 꾸준한 반면, 전세 물건은 적어 전셋값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세 수요가 꾸준히 매매로 돌아서야 전세시장이 안정될 수 있는데, 이런 구조가 깨지면서 상승세가 가팔라진 것이다. 이 같은 상승세가 2+2년 임대차법에 가려 보이지 보이지 않다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아파트 신규 입주 물량 감소가 기름을 붓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신규 입주 물량은 지난해 36만5963가구였다. 그런데 올해 입주 물량은 33만1729가구로 전년 대비 9% 감소가 예상된다. 심지어 내년엔 24만1785가구로 2013년(19만9633가구) 이후 최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서울 아파트 신규 입주 물량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올해 2만3786가구로 지난해(3만2759가구)보다 27%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엔 2만3000가구, 2026년엔 3200가구로 더 줄어든다. 제한된 땅덩이에서 아파트 신규 공급의 최대 해법인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공사비 급등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어서다.   주거환경연구원에 따르면 전국 도시정비사업 평균 공사비는 2020년 3.3㎡당 480만3000원에서 지난해 687만5000원으로 급등했다. 3년 사이 43% 오른 것이다. 팬데믹 이후 폭등한 원자잿값과 인건비가 공사비 급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렇게 공사비 부담이 급증하면 조합원들의 분담금이 급증하는 등 채산성이 낮아져 재건축·재개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겸임교수는 “전세 물건은 기본적으로 주택 공급이 꾸준히 이뤄져야 늘어나는 건데 공사비 급등, 주택시장 침체 등으로 수년간 그게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진단했다.   전국 평균 공사비 3년새 43% 폭등   문제는 전셋값 상승세가 더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2021년 고점을 기준으로 봤을 때 전셋값 상승 여력이 여전히 많이 남아 보인다”며 “2026년까지 주택 공급량이 부족한 것까지 고려하면 2~3년간 전셋값 상승이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전세 시장 안정화 대책 강화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임대주택 공급 확대로 전세 수요를 분산시키는 등 정부가 아파트 전세 수급 불균형 완화에 초점을 맞춘 대책을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2024.06.01 00:01

  • 30조원 체코 원전…한국 수주전 총력

    30조원 체코 원전…한국 수주전 총력

     ━  한국 원전 유럽 교두보를 확보하라   박정원(左), 백정완(右) 지난 3월, 한국과 체코 원전 건설 사업을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돌연 체코를 방문했다.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대통령이 직접 세일즈에 나선 것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수력원자력을 필두로 한 한국의 원전 수출팀 ‘팀코리아’도 바빠졌다. 팀코리아의 일원인 두산그룹의 박정원 회장도 직접 나섰다. 박 회장은 체코로 날아가 13일(현지시간) 프라하 조핀 궁전에서 ‘두산 파트너십 데이’를 진행했다.   체코 정부 관계자와 현지 기업 100여 곳이 참여한 자리에서 박 회장은 한국이 수주하면 원전의 핵심 부품인 터빈을 155년 전통의 체코 국민기업 두산스코다파워에서 생산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회사의 터빈 관련 현지 협력업체만 30여 곳에 이른다. 원전 건설을 한국에 맡기면 개발 이익이 결국 체코 기업·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27일에는 또 다른 팀코리아 일원인 대우건설 백정완 사장이 체코로 날아가 수주 영업전 배턴을 이어받는다. 백 사장은 현지에서 ‘한·체코 원전 건설포럼’을 주관하고, 현지 건설사 등을 상대로 한국 원전의 안전·우수성을 알릴 예정이다. 백 사장 역시 현지에서 건설기자재를 조달하는 등 체코 업체와의 협력을 약속할 계획이다.   관련기사 “재생에너지만으론 탈탄소 역부족”…원전으로 ‘유럽의 유턴’ 체코의 ‘두코바니 원전 건설 공사’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민간 기업을 중심으로 수주 총력전이 펼쳐지고 있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출 이후 15년 만에 한국형 원전 수출 도전이다. 이 사업은 체코 두코바니·테믈린 지역에 원전 총 4기를 새로 건설하는 것으로, 국내 원전업계 추정 사업비만 30조원에 이른다. 후속 사업 등을 고려하면 실제 사업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업계는 내다본다.   기술력과 경제성 면에서는 한국이 앞선다는 평가다. 현지 언론들은 특히 가격 면에서 한국이 프랑스를 압도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안보동맹이나 금융지원 등에서 한국보다 유리하다. 팀코리아가 막판까지 총력전에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원전 안전성은 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에 수주 가능성은 반반”이라며 “체코 원전 수주에 성공한다면 한국형 원전의 유럽 진출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전업계의 한 관계자는 “원전 수출은 사실상 국가와 국가 간 계약이므로 국가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수주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  K원전, 가격·납기 경쟁력…“대통령 외교 지원 필요한 시점”     두산그룹은 13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 조핀 궁전에서 ‘두산 파트너십 데이’를 개최하고, 체코 원전 수주시 현지 업체와의 협력을 강조했다. 특히 원전의 핵심 부품인 터빈은 체코의 국민기업 두산스코다파워에 맡길 계획이다. [사진 두산에너빌리티] 체코는 당초 수도 프라하 남부 두코바니에 1200㎿(메가와트) 이하 원전 1기를 추가 건설키로 하고 한국의 한국수력원자력과 프랑스의 프랑스전력공사(EDF), 미국 웨스팅하우스로부터 입찰서를 받았다. 하지만 경제성을 고려할 때 1기보단 4기가 유리하다고 보고 체코는 지난해 2월 두코바니에 2기, 테믈린에 2기 등 총 4기의 원전을 추가 건설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한 뒤 올해 4월 수정 입찰서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웨스팅하우스가 법적 구속력이 있는 입찰서를 제시하지 못해 배제되면서 체코 원전 수주전은 한수원과 EDF의 양자 대결로 압축됐다. 4월 말 수정 입찰서를 제출한 한수원은 한국형 원자로 ‘APR 1400’을 바탕으로 체코 측의 요구에 따라 용량을 낮춘 ‘APR 1000’ 공급을 제안했다. APR 1000은 지난해 3월 유럽사업자협회로부터 ‘설계 인증(EUR Certificate)’을 취득, 원전 설계 안전성과 경제성을 객관적으로 입증받은 바 있다.   사업비, 한국 30조원 프랑스 70조원설   7월께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현지에서는 한국이 원전 수주에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무엇보다 가격 경쟁에서 프랑스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체코 언론 ‘경제저널(Ekonomicky Denik)’은 16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한수원이 덤핑에 가까운 가격으로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며 한국의 수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국내 원전업계에서는 총사업비로 한국은 30조원대를 제시했지만 프랑스는 70조원대를 제시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실제로 한국형 원전의 ‘가성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형 원전의 건설 단가는 1㎾당 3571달러로, 프랑스(7931달러)의 절반도 안 된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한국형 원전은 원자로·터빈과 같은 주기기나 주요 부품의 공급망이 안정화돼 있고, 건설 현장 관리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며 “여기에 국내·외에서 다수의 원전을 건설하면서 건설 효율성까지 높여 단가를 낮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의 또 다른 강점은 이른바 ‘온 타임 온 버짓(On time On budget·정해진 예산으로 예정대로 준공)’이다. 프랑스는 세계 2위 원전 가동국(56기)이지만, 납기 준수 경쟁력은 객관적으로 한국이 앞선다. 한국은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을 일정대로 건설한 반면 프랑스가 핀란드에 지은 올킬루오토 3호기는 예정보다 14년 늦게 준공했다. EDF가 건설 중인 영국 힌클리포인트C 원전도 준공 시점이 당초 2023년에서 2028년으로 늦춰졌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프랑스는 사업비나 공사 기간이 계속 불어나지만, 우리는 UAE에서 기간 안에 끝낸 경험이 있다”며 체코 원전 수주를 자신했다.   그렇다고 프랑스를 만만히 볼 수는 없다. 프랑스는 유럽의 맹주로 유럽 원전시장이란 안방을 지키기 위해 체코 원전 수주에 국력을 올인하고 있다. 3월에는 유럽연합(EU) 내 원전 확대 진영 12국과 공동 성명을 내고 ‘이웃 사이 원전 동맹’을 강조하기도 했는데, 체코도 여기에 참여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체코를 찾아 수주전을 지원했다. 프랑스는 체코 인접국인 데다 육로로 이동할 수 있어 정치적인 면에서는 한국보다 유리하다는 평가다. 특히 체코는 수십조원대 개발 사업을 위해서는 EU로부터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도 프랑스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 같은 지리적·정치적 논리는 원전 수주에 있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2022년 폴란드 1단계 원전 수주에서 한국이 미국에 밀린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폴란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을 공격하는 것을 보며 원전 파트너로 미국을 택했다. 경제성 면에서는 한국이 월등히 앞섰지만, 한국은 잠재적인 러시아 공격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시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X(트위터)를 통해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제니퍼 그랜홈 에너지장관과도 이야기를 나눴다”며 “폴란드·미국의 강력한 동맹은 우리 계획의 성공을 보장한다”고 적었다. 정치적 판단이 사업자 선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다.   2022년 폴란드 원전 수주전 땐 미국에 밀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체코 두산스코다파워를 방문해 증기터빈 생산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두산에너빌리티] 이처럼 원전 수출은 기술이나 경제성보다는 양국 정부 간 거래인 예가 많아 국내 민간 업체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승재 두산에너지빌리티 상무는 “13일 체코 현지에서 33개 언론과 간담회를 가졌는데, 한국이 유리하다고 보는 매체가 적지 않았다”며 “하지만 결과를 쉽사리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수주에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로서도 체코 원전 수주는 국내 원전 생태계 복원을 위해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는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수출하겠다는 계획인데, 체코 원전이 향후 판세를 가르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9월 한덕수 국무총리를 시작으로 지난달 안덕근 장관이 체코를 찾아 수주전에 나섰다. UAE 바라카 원전 수주 역시 마지막까지 국가 차원에서 총력을 다한 영향이 컸다. 2009년 12월 이명박 전 대통령은 원전 수출을 담판 짓기 위해 UAE로 날아가기도 했다. 이와 관련 당시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르 피가로는 “한국은 한국전력 건물에 전시상황실(war room)을 설치하고 이 대통령이 직접 수주전을 지휘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정범진 교수는 “체코 원전 수주와 관련해 한수원이나 민간 기업, 산업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본다”며 “한국이 핵심 승부처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도록 대통령의 외교적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2024.05.25 01:21

  • "숫자로 밀어붙이는 게 트렌드" "헌법재판소가 더 바빠질 것"

    "숫자로 밀어붙이는 게 트렌드" "헌법재판소가 더 바빠질 것"

     ━  29일 막 내리는 21대 국회   국회의원 뒤엔 그를 움직이는 보좌진이 있다. 의원들은 오가도 이들 다수는 남는다. 역대 국회의 기억은 이들을 통해 전승될 수 있다. 격전장이었던 국회 법제사법위 경험을 가진 보좌진 5명을 2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났다. 익명을 전제로 21대 국회에 대한 소회와 22대 국회에 대한 전망을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더 힘들어질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더 바빠질 것이다.”   방점은 ‘더’에 있는 듯했다. 먼저 역대 국회 최대 수준(24일 기준 2만5846건)인 법안 발의부터 물었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발의부터 엄청나게 늘었다. A(더불어민주당 의원실)=“지금은 법제실이나 도서관·언론 등 입안할 인프라가 풍부해지긴 했다. 공천 과정에 (법안 발의가) 정량평가로 들어가니 의원들이 욕심을 낸다. 수적으로 정말 늘었다.” B(국민의힘 의원실)=“우리 당은 안 보는데, 시민단체·언론·소비자가 평가하고 그걸 유권자가 보니 안 할 수가 없다. 우리 의원도 ‘법이 너무 변화하면 안 된다’였는데 추세를 따라가게 되더라.”   관련기사 ‘외화내빈’ 21대 국회, 민생법안 줄폐기 위기 ‘4년간 법안 발의’ 영국은 650명이 545건, 우린 2명이 608건…단어 바꾸기 꼼수 덕 “협의·합의보다 응징이 우선…입법부 정신세계는 처벌부” A·B가 속한 의원실은 각각 150, 160여 건의 법안을 발의했다고 한다. 율사 출신 의원실에 있는 C(국민의힘 의원실)·D(민주당 의원실)는 “법은 어느 정도 완비돼 있다” “바로바로 바꾸는 게 정부 시행령이나 협치 부분의 여지를 없앤다”는 의원들의 소신에 따라 덜 발의했다는데 75건, 90건 정도라고 했다.   의원들이 자신이 낸 법안을 다 아나. D=“대표발의는 웬만하면 아는데 공동발의까지 알지 모르겠다. 중대재해처벌법의 경우 발의하고 홍보한 의원 중에 정작 법사위 소위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제시하지 못한 일도 있다.” C=“본회의장에서 본인이 발의한 법안에 반대표를 누른 사람이 있다지 않나. 대안 형태로 반영돼 그럴 순 있지만.”   본회의장에서 법안 내용을 알고 투표하는 건 불가능하겠다. C·D=“(설명을) 모니터로 볼 순 있는데, 방망이 두드리는 속도가 더 빠르다.” A=“본회의에 올라왔다는 건 사실상 여야 합의로 법사위에서 통과된 것으로 생각해, 당에서 특별하게 메시지를 주지 않는 한 찬성을 누른다.”   외부에서 법안을 만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정부의 청부입법이 널리 알려졌지만 다른 기관도 있을 듯한데. B=“협회 등에서 오는데, 해당 상임위와 의견이 맞으면 법사위로 넘어온다. 법사위에서 컷오프되는데, 해당 협회 입장만 있고, 다른 데의 반대 입장은 반영되지 않아서다. 상임위에서 이해관계를 조율 안 하고 ‘법사위에 가면 알아서 정리할 거야’ 이런 경우도 있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17대 국회에서부터 있었던 A는 “20대부터 좀 거칠어졌다”면서도 “전체회의에선 카메라 앞에서 이슈로 싸웠지만, 소위는 달랐다. 해당 법안에 대해 부처 차관 등이 엄청난 지식으로 무장한 상태로 오고 의원들과 토론하는 걸 보면 진짜 대단했다”고 전했다. 2020년 연말과 2021년 연초 처리한 상법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을 예로 들며 종일 하는 소위를 너덧 번 이상했다고도 했다. 그는 “22대에선 이런 사례가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왜 그렇다고 보나 A=“숫자로 밀어붙이는 게 트렌드가 됐다. 한 번 뚫리면 쉬운 길을 계속 선택할 수밖에 없다. 지지층 눈치도 보고. 일방통행 이런 건 20·21대 때부터 발생한 거니 그냥 갈 거다. 그보다 의원들이 깊게 고민하고 논의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즉자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성이 생기는 게 외려 더 걱정이다.” B=“대통령이든, 이재명 대표든 서로 각자 한발 물러나줘야 그 밑에서 움직이는 의원들의 룸이 생기는데 그냥 오더를 하니, 원내대표든 수석이든 협상할 여지가 없다.”   이들에게도 22대 국회와 같은 극명한 여소야대는 초유의 경험이다. A는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원 구성할 수도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현재 상임위에서 느끼는 건 정부여당이 별 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거다. 여소야대의 구조적 문제를 떠나, 100개의 법안을 처리하면 야당이 전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건 아니다. 특별한 몇 개를 강행하는 거고 80~90개는 정부여당이 하고 싶은 법이 충분히 있는데 그걸 풀어내는 의지나 방향성은 잘 모르겠다. 22대 국회에선 어쨌든 집권세력이니 그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당(민주당)이 일방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큰데, 정부여당이 힘들더라도 (입법으로) 어느 정도 맞서야지, 그렇지 않으면 진짜 국민이 불행해진다”(D), “민주당이 어떻게 할 거라고 전해도 당에선 ‘일단 알겠는데 잠깐’이라며 만다. 부처도 무기력하게 용산만 본다”(E, 국민의힘 의원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자 C가 이렇게 말했다.   “22대 국회 절망적으로 본다. 민주당은 더 강공일 텐데…. 영남 중진 의원들이 너무 많아졌다. 체면치레만 하고 상임위장에서 싸우지 않을 것이다.”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2024.05.25 01:04

  • “협의·합의보다 응징이 우선…입법부 정신세계는 처벌부”

    “협의·합의보다 응징이 우선…입법부 정신세계는 처벌부”

     ━  29일 막 내리는 21대 국회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시절 본지와 인터뷰 중인 박상훈 박사. 임현동 기자 정치학자 박상훈은 정치 현장 가까이에서 민주정치에 대해 꾸준히 강의하고 글을 써왔다. 문재인 정부 때의 『청와대 정부』, 최근 팬덤 정치현상을 다룬 『혐오하는 민주주의』가 결실의 일부다.   얼마 전까지 최근 5년간 국회(미래연구원) 안에서 일종의 내부자의 시선으로 여의도를 관찰했다. 20대 국회 마지막 1년과 21대 4년이다. ‘더 많은 입법이 우리 국회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만들어진 당원:우리는 어떻게 1000만 당원을 가진 나라가 되었나’ ‘‘국가’와 ‘국민’을 줄여 써야 할 국회’ 등의 보고서를 냈다. 23일 그와 통화했다. 의회민주주의자이기도 한 그는 현 국회에 대한 우려가 컸다. 다음은 그의 진단을 요약한 글이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기능하는 방법은 완전히 다르다. 행정부는 수직적인 위계구조고, 사법부는 합의부도 있긴 하지만 전문가주의다. 입법부는 서로 갈등하는 시민대표 집단들 간에 계속 경쟁하고 협의하고 경합하면서 간헐적으로 평화협정을 맺어서 일하는 곳이다.   관련기사 ‘외화내빈’ 21대 국회, 민생법안 줄폐기 위기 ‘4년간 법안 발의’ 영국은 650명이 545건, 우린 2명이 608건…단어 바꾸기 꼼수 덕 “숫자로 밀어붙이는 게 트렌드” “헌법재판소가 더 바빠질 것” 1987년 체제 아래에서 그간 평화협정을 이끌어냈던 방법이 있다. 큰 갈등이 있다 하더라도 당의 지도부와 중진, 의회 내 의장을 비롯한 수장들이 지혜를 발휘해 막혔던 정국을 풀어가는 걸 반복하는 것이다. 국회의 불문율·선례·용례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20대 국회 전반기까지 이게 작동했지만, 후반기부터 달라졌다. 촛불집회 후다. 밖에선 국회를 해산하더라도 새로 뽑힌 대통령의 개혁 의지가 실현돼야 한다는 요구가 쏟아졌다. 30년 유지되던 불문율과 선례·용례가 엄청 깨졌다. 앞에선 다툼하더라도 결국엔 협의주의, 합의주의에 가깝게 운영했던 게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으로 바뀌었다.   상임위에서 전례 없이 기립 표결을 하기 시작했다. 법안소위에선 여야와 이해당사자, 정부 부처가 완전하게 합의하지 않으면 잘 진행되지 않았는데 여기에서도 수의 힘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여야 중진과 지도부의 역할이 줄었다. 상임위원장도, 여야 간사도 선수(選數)가 낮아졌다. 의회의 지혜를 배우기도 전의 초심자들이 밀어붙이는 데 익숙해지면서 사실상 필리버스터(소수파에 의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마저도 의미 없어졌다.   20대 후반기와 21대 국회에서 다수 일방주의로 전환하는 걸 지켜보면서 입법자들이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원래 입법자들은 지금 있는 법으론 부족하니 교섭을 통해 미래를 조금씩 개선해나가는 일을 해야 한다. 최근엔 모든 기준을 ‘과거 너희들이 잘못했는지 따지고 응징해주겠다’고 하는 듯하다. 입법부의 정신세계가 처벌부 비슷하게 됐다.   말하는 방법도 과거엔 점잖았다. 특히 국민의힘은 품위 있었다는 데 그렇지 않게 되고, 민주당은 더 예의 없게 됐다고 한다. 말투만 아니라 행태나 문화도 바뀌었다. 이전엔 국정감사가 끝나면 여야 모두 동료로 어울렸는데, 이젠 어울리지도 않는다는 것 아닌가.   국회라는 건 총선에서 다수당, 소수당이 갈리더라도 다수당에 일방적으로 국정운영을 맡기는 게 아니라 여야 협의를 통해서 야당 시민들도 새로운 법이나 새로운 정책을 수용하게 만드는 정당성을 형성하는 과정인데, 이게 약해지면 사회는 어떻게 되겠는가. 분열·적대다. 지지하는 정당이 다르면 대화해볼 대상이 아닌 걸 넘어, 있어선 안 될 사람이 되고 있다. 입법부의 잘못된 행태가 사회·문화로까지 스필오버되고 있다. 시민사회와 언론도 파당성이 심해졌다. 민변·참여연대나 환경운동 등 내부엔 의원 되겠다는 사람들이 늘어서 걱정하는 분위기도 만들어진다고 하지 않나.   최근 국회의 전체적 변화는 한국 민주주의와 관련된 시민적 덕성이나 마음 상태에 아주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22대 국회에서 더 나빠질까. 일단 더불어민주당에서 추미애 당선인 대신 덜 당파적인 우원식 의원이 국회의장 후보가 된 건 좀 낫다고 본다. “당심을 받들겠다”고 한 건 선거 때의 얘기일 것이다. 말한 대로 한다면 국회가 더 나빠질 것이다.   민주당의 재난지원금 예산안 우선 처리 입장과 관련해선, 예산안 작성 과정에서 의회의 권한이 커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긴 하다. 하지만 행정부와 입법부가 합의해나가는 게 아닌, 파국을 지향하는 것이라 걱정이다. 사회를 위한 최선의 예산 집행이 아닌, 향후 최고권력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법의 지배가 아니라 법에 의한 지배, 예산과 법을 도구로 삼는 것이다.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2024.05.25 00:56

  • "재생에너지만으론 탈탄소 역부족"…원전으로 '유럽의 유턴'

    원전업계와 정부는 체코 두코나비 원전 수주에 성공하면 체코를 교두보로 유럽 원전 시장에 본격 진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으로 확산하던 탈(脫)원전 기조가 점차 폐기되면서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올해 3월 유럽연합(EU) 의장국인 벨기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공동으로 ‘원자력 정상회의’를 개최했는데, 이 자리에 참여한 38개국은 선언문을 통해 “원전의 잠재력을 완전히 개방하고 원자로 수명 연장 지원을 위한 금융 조건을 완화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원전으로의 ‘유턴’을 선언한 것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당시 “원전은 청정 에너지원을 대규모로 확보하기 위한 가장 저렴한 방법이자 탄소중립(탄소 배출량 0)을 향한 비용 대비 효과도 좋다”고 강조했다. 유럽이 원전 유턴을 선언한 데는 재생에너지만으로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현실이 바탕이 됐다. 유럽은 지난 10여 년간 원전 비중을 줄이는 대신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해 왔지만 발전 비용 상승 문제에 시달려왔다.   관련기사 30조원 체코 원전…한국 수주전 총력 여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전쟁으로 에너지 안보가 위협받으면서 에너지 대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원전 건설을 추진 중이다. 프랑스는 2050년까지 신규 원전 14기를 건설한다는 계획이고, 영국도 8기를 새로 짓기로 했다. 현재 원전 1기를 운영 중인 네덜란드는 2035년까지 원전 1기를 추가 건설한다는 목표다.   유럽뿐 아니라 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등지도 원전 확대를 검토 중이다. 남아공은 2032~2033년 가동을 목표로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 중이고, 중국은 40여 기를 추가 건설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같은 원전으로의 유턴 움직임은 더 확대될 전망이다. 지난달 주요 7개국(G7)이 2035년께 석탄 화력발전소 운영을 전면 금지키로 했는데, 석탄 발전의 빈자리는 신재생에너지와 원전이 채울 전망이다.   한동안 멈췄던 국내 기업들의 원전 건설 공사 수주도 이어지고 있다. 현대건설은 올해 초 미국 업체와 함께 불가리아 신규 원전 건설 공사를 따냈다. 한국형 원전 수출은 아니지만, 글로벌 원전시장이 다시 열리면서 끊겼던 일감이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원전 건설 사업은 주기기(원자로·스팀발생기·터빈) 부문과 건설 부문으로 나뉘는데, 건설 부문이 통상 50~60% 정도를 차지한다.   산업통상자원부 측은 “정부는 원전 생태계 복원을 넘어 원전 최강국 도약을 위해 수출 포트폴리오를 대형 원전, 원전 설비, 서비스로 다각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2024.05.25 00:51

  • 적은 인구라도 모여 사는 압축도시, 지방 소멸 해법이다

    적은 인구라도 모여 사는 압축도시, 지방 소멸 해법이다

     ━  게임이론으로 본 세상   처음 인터넷이 도입되었을 때 한국은 빠르게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었던 나라 중 하나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분명한 한 가지 요소는 한국인이 아파트에 오밀조밀 모여 살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넓은 들판에 드문드문 농가가 있는 지역에 인터넷을 설치한다고 하면 그 비용이 어떠할까? 일단 인터넷 케이블을 깔아야 하는데 평균적으로 농가 사이의 거리가 100m라고 한다면 한 가정에 인터넷을 설치하기 위해서 100m의 인터넷 케이블을 설치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인구 밀집한 아파트가 IT 강국 비결   도야마시는 노면전차등 공공교통망을 활성화하고 그 주변으로 도시 기능을 모으는 압축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사진 도야마시] 농가까지 아니더라도 단독 주택지역에 인터넷을 설치한다고 생각해 보자. 역시 단독주택 사이의 거리가 최소한 10m라고 하면 한 가정에 인터넷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10m의 인터넷 케이블을 설치해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20층 건물에 80가구가 모여 사는 아파트라면 세대 간의 거리가 불과 수십㎝ 벽 하나일 것이고, 이런 아파트 80가구에 인터넷을 설치하는 비용은 들판의 농가 한 곳에 인터넷을 설치하는 비용보다 적을 수 있다. 즉, 인터넷을 설치하는 비용이 아파트의 경우 현저히 낮아지기 때문에 통신회사는 큰 부담 없이 인터넷 케이블을 설치할 것이며, 아파트 주민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경제학 원리이지만, 여전히 어떤 첨단 경제 이론보다 강력한 설명력을 현재에도 발휘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다.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할수록 그 생산 원가가 내려간다는 경제학의 원칙이다. 예컨대 자동차 공장에서 자동차 10대를 만들 때 한 대당 생산 비용이 1억원이라고 가정해보자. 이 차를 1만 대 생산하면 한 대당 생산 비용은 1000만원으로 떨어질 수 있는데 바로 이것이 규모의 경제다. 달리 말하자면 자동차를 살 소비자가 10명뿐이라면 자동차 가격이 1억원이 넘어야 하지만, 자동차를 살 소비자가 1만 명이라면 1000만원에도 자동차를 판매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째서 자신의 고향을 떠나서 자꾸 서울이 있는 수도권으로 모여들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사람들이 많이 빽빽이 모여 사는 수도권이 더 좋은 서비스를 더 싼 가격에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좁은 곳에 아주 많은 인구가 거주하면 어떤 상품을 생산하여 판매하든지 구매자가 많으므로 판매량이 늘어나서 강력한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게 된다. 도시에는 많은 사람이 빽빽하게 모여 살고 있으니 인터넷을 설치하든, 전기를 공급하든, 가스나 수돗물을 공급하든 한 번에 수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 그 비용이 현저하게 낮아진다. 더구나 도시의 주민들이 단독주택도 아니고 성냥갑처럼 층층이 쌓인 형태로 사는 아파트의 경우에는 이런 규모의 경제가 더욱 극대화되어 모든 비용이 더욱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아파트에 거주하면 층간 소음으로 불편을 겪게 되고, 자녀들이 뛰어놀 수 있는 개인 정원도 없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과 부합하는 주거 형태가 아닐 수 있다. 그런데도 단독주택에 비해서 아파트의 가격이 높은 이유도 이런 각종 편리한 서비스가 규모의 경제 원리에 의해서 낮은 가격에 제공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단독주택이 도난을 방지하려면 독자적으로 방범 서비스를 구매해야 하는데 그 비용은 만만치 않지만 아파트에서는 100가구 당 CCTV 한 대를 설치하고, 200가구 당 경비원 한 명 고용하면 완전한 안전이 보장되는데 이 또한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기 때문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CCTV 한 대와 경비원 한 명이 수백 가구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성냥갑 같은 아파트의 좁은 공간에 수많은 사람이 몰려 살기 때문이다. 단독주택이라면 엄청난 재산가 정도 돼야 CCTV와 경비원의 고용이 가능하겠지만 아파트에서는 일반 서민도 이런 고급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도시와 아파트로 사람들이 몰려든다는 사실이 규모의 경제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다. 비수도권 지방이 소멸해 가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큰 문제다. 규모의 경제라는 큰 장점을 지닌 서울과 수도권을 비수도권 지역이 이기기는 어렵기에 지방 소멸의 해법은 많지 않다. 하지만 지역 발전의 열쇠 또한 규모의 경제에서 찾을 수 있다. 주변 10㎞ 이내에 아무도 살지 않는 외진 농촌 마을에 주민 10여 명이 사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비록 주민의 숫자가 10명에 불과하지만 이 마을에는 전기, 수돗물, 전화, 인터넷이 당연히 공급돼야 한다. 또 이 마을을 담당할 경찰이 필요하고 소방관이 필요하며, 우체국도 필요하고 구급차가 단시간에 도달할 수 있도록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이 마을에 아이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인근 학교까지 스쿨버스를 운행해야 할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을까지 진입할 수 있는 도로와 다리 그리고 대중교통 수단인 버스 서비스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 모든 것이 최소한 10㎞ 이상의 거리를 넘어서 제공돼야 할 것이니 경제학적으로 그 비용은 엄청나다. 현재 젊은 인구가 줄어들고 있고 재정 부담이 늘어만 가는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10명 미만의 수많은 마을에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언제까지 가능할지 생각해 볼 문제다. 설사 제공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이에 투입되는 정부의 비용은 고스란히 국가의 부채로 남게 되기 쉽다.   1㎞ 도로 주변 20만명 살게 해 성공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면 외진 지역에 있는 작은 마을의 주민을 조금이라도 도시 지역으로 모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지방 도시의 발전에도 유리한 전략이다. 일본의 도야마시에서 시작해 큰 성과를 낸 ‘압축도시(compact city) 전략’이 있다. 도야마시는 서울시의 2배 면적을 가졌지만 인구는 40만 명에 불과하다. 솔직히 도시라고는 하지만 인구밀도가 아주 낮은 것이다. 그래서 도야마시에서는 40만 인구를 도심 수㎞ 이내의 지역으로 모으려는 정책을 폈다. 즉, 도야마시 전체가 도쿄처럼 번화가가 될 수는 없지만, 도야마시 인구의 태반을 하나의 거리 주변에 빽빽하게 모여 살게 함으로써 도쿄와 같은 거리 하나는 만들 수 있다는 논리였다.   왜 이것이 필요할까? 길이가 1㎞ 정도인 도로 주변에 20만 명의 인구가 모여 살더라도 동경 못지않은 번화가를 이룰 수 있다. 상당히 맛 좋은 식당과 세련된 옷 가게가 들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맛있는 요리를 하는 식당이 들어서더라도 40만의 인구가 서울 면적의 2배가 되는 곳에 흩어져 있다면 시민들이 이 식당을 방문하기 힘들겠지만, 작은 거리 주변에 20만이 모여 산다면 그 20만의 인구가 10분 정도 걸어서 맛난 지역 식당을 매주 방문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에 의해서 좋은 식당이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멋진 옷 가게도 20만의 인구가 밀집해 있는 거리라면 지방 도시라도 문을 열 것이고 말이다.   빽빽이 모여 있는 20만 명의 사람들이 있는 지역이라면 작은 병원도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고, 좋은 학교와 교통 통신 시설도 낮은 가격에 제공이 가능해질 것이다. 모두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내 주변에 자신의 고향 지역의 경제를 활성화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그 노력은 대부분 자신의 고향 지역에 수도권의 기업을 이주시키고자 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잘 알다시피 기업의 경영진이 각종 혜택을 노리고 지방으로 이주하고자 하더라도 직원들이 모두 수도권의 편리함을 버리고 지방으로 가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기업의 지방 이전은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기업들이 지방으로 이전하면 그에 따른 규모의 경제가 생겨서 지방이 발전하겠지만 이는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하는 논쟁과 같다. 지방도시가 먼저 작지만 번화한 지역을 만들어서 좋은 식당, 가게, 학교, 병원이 생겨야 기업이 직원들을 설득해서 이주가 가능해지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지방 도시 중에는 도야마시의 압축도시 전략이 성공한 것을 보고 이 정책을 시작하는 곳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고 한다.   저 먼 서울과 수도권의 사람들이 자신의 지방 도시로 오게 하기 위해서는 일단 지방의 도시들이 남은 인구를 모두 작은 지역으로 집중시켜서 스스로 규모의 경제를 발생시키는 것이 먼저이지 않을까? 수도권의 사람들이 수백㎞ 이주해서 자신의 지방도시로 오기를 바라면서 지방 도시의 사람들이 수㎞를 이주해서 도심지역에 이는 것은 거부한다면 이 또한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역균형 발전은 대한민국 미래의 큰 과제이다. 하지만 이런 지역균형 발전이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으로 사람들을 흩어 놓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규모의 경제에 반하는 행동이 될 것이며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비수도권 지역으로 인구를 분산시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지방에 남은 인구를 좁은 지역으로 모아서 각종 비용도 절감시키고 번화한 거리를 하나라도 만들어서 젊은 인구에게 매력적인 각종 편의 시설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돼야 할 것이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11991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게임이론의 권위자로 『그들은 왜 최후의 승자가 되지 못했나』『당신의 경제 IQ를 높여라 』등의 저서가 있다.     

    2024.05.25 00:01

  • '4년간 법안 발의' 영국은 650명이 545건, 우린 2명이 608건…단어 바꾸기 꼼수 덕

    '4년간 법안 발의' 영국은 650명이 545건, 우린 2명이 608건…단어 바꾸기 꼼수 덕

     ━  29일 막 내리는 21대 국회   지난해 11월 ‘위성정당방지법’ 발의 기자회견. 오른쪽 둘째가 민형배 민주당 의원. [뉴시스] 의회민주주의 발상지인 영국 하원에선 2019년까지 4년간 545건의 법안이 발의됐다. 재적의원 650명의 총합이다. 대한민국 국회에선 의원 두 명이면 족할 일이다. 더불어민주당 민형배(325건)·윤준병(283건) 의원인데 21대 국회에서 대표발의 법안 건수 1, 2위다.   민 의원은 평일 기준으로 3일에 한 건 발의한 셈이다. 이 중엔 신용협동조합법(채무변제를 이유로 부득이하게 취득한 비업무용 부동산에 관한 처분 의무와 방법·절차 등에 규정) 개정안처럼 원안 가결된 것도 있지만(1건), 268건은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된다. 최다 발의면서 최다 미처리 의원이기도 하다.   민 의원이 법안 발의 숫자를 늘린 데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우선 단 몇 글자 바꿔 개정하는 것이다. ‘서면으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서면으로’, ‘지방’을 ‘지역’으로 바꾼 것도 포함해서다. 민 의원이 댄 이유는 “지방이 위계적인 표현”이란 건데 개정안만 6건이었다.   관련기사 ‘외화내빈’ 21대 국회, 민생법안 줄폐기 위기 “숫자로 밀어붙이는 게 트렌드” “헌법재판소가 더 바빠질 것” “협의·합의보다 응징이 우선…입법부 정신세계는 처벌부” 발의했다가 철회하고 한 단어만 바꾸고 다시 발의한 것도 있었다. 철회된 것도 발의 숫자에 들어가니 이중계산된다. 5·18 민주화운동의 정의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의 법안이 그 예다. 지난 2020년 12월 1일 4개 법안을 발의했다가 철회하고 제안 이유 중 ‘국민’이라는 단어만 ‘시민’으로 바꾼 후 똑같은 내용의 법안 4개를 2020년 12월 8일 재발의했다. 일반 시민인 이용후(32·수원시)씨가 “이런 식이면 나도 법을 10개는 만들겠다”며 “말이 좀 더 친절해지면 개정안인 거냐”라고 의문을 가질 법하다.   폐회 엿새 앞두고도 법안 발의   속칭 ‘여의도 래커’ 입법도 보인다. 이슈가 되면 줄줄이 관련 법안이 발의되는 걸 말한다. 2022년 12월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로 인명피해가 발생한 후 민 의원은 이듬해 2월 관련 규제를 강화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윤두현 의원(2023년 1월 18일), 최춘식 의원(2023년 2월 3일)이 같은 취지의 개정안을 이미 발의한 상태였다. 문재인 정부의 통계조작 논란이 일자, 통계청장을 3년 임기제로 하고 국회 인사청문 대상에 포함하자는 내용으로 국가공무원법 등 4건의 법안을 내기도 했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민 의원이 최다 발의자라 길게 예로 들었지만 다른 의원들에게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윤준병 의원의 경우 ‘지득(知得)하다’ ‘채록(採錄)하다’ ‘체납처분’을 ‘알게 되다’ ‘정리·기록하다’ ‘강제징수’로 바꾸는 법안 6건, ‘구거(溝渠)’를 ‘도랑’으로 개정하는 법안 10여 건, ‘속행’을 ‘계속 진행’으로 바꾸는 법안도 다수 냈다.   국민의힘에서 대표발의 건수 1위인 이종성 의원(211건)은 ‘심신장애’라는 표현이 장애인 차별적이니 다른 표현으로 바꾸라는 내용의 법안 14개를 같은 날 발의했다. 법 위반 행위가 적발된 영업장이 처벌을 피하려고 해온 폐업 신고를 마음대로 하지 못 하게 한 유사한 법안 8개도 같은 날 발의했다. 같은 당 김성원 의원도 ‘보철구(補綴具)’라는 단어를 ‘보조기구’로 바꾸는 내용의 법안을 지난 2021년 하루에 7건 발의했다.   지난 국회에서 임기만료와 함께 폐기됐던 법안을 다시 내는 것도 발의 건수를 늘리는 방식이다. 재선인 정춘숙 민주당 의원은 초선 때인 20대 국회에서 발의했다가 폐기된 법안 81개 중의 75개를 유사하게 다시 발의했다.   2만5846건. 임기 종료가 4일 앞으로 다가온 21대 국회에 발의된 총 법안 수다. 이 중 의원발의는 2만3649건이다. 역대 최고였다는 지난 국회 수치(2만1594건)를 또 넘어섰다.   의원입법이 잠시도 멈추지 않은 덕인데, 최근에도 총선일까지 9일간만 발의된 법안이 없을 정도였다. 며칠 후면 국회를 떠날 이탄희 민주당 의원이 23일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장혜영 녹색정의당 의원도 24일 국세기본법 등 3건의 개정안을 냈다. 21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될 법안들이다.   입법이 국회의원 본연의 업무란 측면에서 법안 발의 증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도 있다. 회사원 정연주(44·용인)씨는 “사소한 단어가 바뀌는 것 자체로 국민이 한 번 더 그 법에 관심을 가질 수 있지 않나”라며 “그래도 뭔가를 하려는 것 같아 긍정적이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국회에서 법안 하나를 개정하려면 나무 수백 그루를 베어야 만들 수 있는 분량의 복사지가 필요하다”(손낙구)란 비유에서 드러나듯, 입법엔 엄청난 자원이 투입된다는 점에서 비판적 시각이 우세하다. 상임위 전문위원이나 법제실 등 입법 지원 기관의 역량을 늘리지 않은 채 법안 발의만 급증하다 보니 법안의 질과 검토 의견의 수준에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현출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엄청난 재원을 들여 단어 바꾸기 등의 법안들을 내는 행태는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이런 것들을 들어내야 입법의 질이 올라간다”고 말했다.   “발의만 해놓고 홍보·실적용으로 이용”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법안의 질적 측면이나 법의 안정성 측면에서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법이 시도 때도 없이 바뀐다면 시민들은 어떤 법을 따라야 할지, 지금의 법이 어떤 상태일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법조계 일각에선 해병대 채 상병 수사 주체 논란의 원인이, 2021년 성추행 피해자였던 공군 이예람 중사의 비극적인 사망 사건이 발생한 이후 국회에서는 정밀한 논의 없이 법을 개정하면서 군사법원법이 불명확해졌기 때문이란 지적도 나온다(송광석 율촌 변호사). 변사사건의 경우 해병대 수사단에 아예 수사권이 없다는 해석도 나와서다.   의원발의 양태가 어느 정도 이례적 수준인지 주요 민주주의 국가와 비교하면 확연하다. 의원내각제 국가의 경우 내각이 입법을 주도하기 때문에 발의 자체가 적다. 영국이 4년 평균 572건, 독일 847건, 일본 947건 정도다. 대통령제 국가인 프랑스도 4년 평균 2043건이 발의됐는데 의원당 3.5건에 해당한다. 미국 정도가 의원입법이 활발한 편인데, 2019년 기준으로 접수 법안이 2만1737건이다. 일견 우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보이나 선출 의원 수가 535명이나 된다. 1인당 발의 건수는 우리의 절반에 못 미치는 셈이다. 이현출 교수는 “미국은 상임위에서 폐기되는 법률이 85% 정도 된다”며 “상임위와 소위원회의 기능을 강화해 폐기할 법안은 폐기해야 무분별한 발의를 제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동료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라고 유보하는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바탕에는 김영삼 정부 이후 시민사회의 의정감시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법률안 발의 건수로 입법활동의 성실성을 평가하던 게 관행이 됐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천 잣대로 이용한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발의만 해놓고 홍보용, 실적용으로만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치학자 박상훈 박사는 “‘더 많은 입법’이 아니라 ‘더 중요한 입법’이 우리 국회가 나아가야 할 미래여야 한다”며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법안을 사전 검토를 통해 선별 발의하고, 충분한 심사와 토론, 조정을 거쳐 법률로 만드는 ‘입법의 민주적 권위’를 구축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어 “시민단체들도 법안 발의 건수와 같은 양적 지표를 과용해 줄세우기식 의원 평가를 반복하기보단 입법부가 제 역할을 하고 권한을 키워갈 수 있도록 하는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자체적으로 입법영향분석을 시행, 관련 보고서를 발간하고 세미나·간담회 등을 열고 있지만 흐름을 바꾸기엔 역부족이다. 입법심사 부실 등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입법영향분석 제도’ 도입을 논의하고 있지만 관련된 계류 법안 6건 중 3건은 발의된 지 3년이 지났다. 원동욱 기자 won.dongwook@joongang.co.kr

    2024.05.25 00:01

  • "눈 대신 기억과 상상력으로 봐…훈련하면 뇌세포에 한계 없어"

    "눈 대신 기억과 상상력으로 봐…훈련하면 뇌세포에 한계 없어"

     ━  [비욘드 스테이지] 빵터지는 코미디로 돌아온 송승환   중요한 회의를 할때 삼성전자의 시각장애인용 안경을 쓴다는 송승환은 제품 업그레이드에 피드백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는 “떨림현상과 선명도가 좀더 개선되어야 한다. 일반 안경처럼 가볍게 쓰게 될 날도 곧 올 것 같다”고 기대했다. 최기웅 기자 뛰어난 연기력과 타고난 말빨을 갖춘 만능 엔터테이너. 공연사에 길이 남을 글로벌 히트작을 만들어 세계를 누비고 올림픽 개폐막식까지 총지휘한 최고의 프로듀서. 그런데 정상에 올랐을 때 눈앞이 흐려졌다. 한국의 ‘위대한 쇼맨’ 송승환 얘기다.   쇼는 비극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송승환은 ‘쇼 머스트 고 온(Show must go on)’을 외치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비극을 희극으로 바꿔가고 있다. 심지어 희극의 대명사 ‘웃음의 대학’ 무대에 올랐다. 전쟁 중에도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연극에 사활을 건 작가와 연극 따윈 필요 없다는 검열관이 벌이는 100분간의 해프닝이다. 최고의 공연제작자인 그가 검열관이 되어 시침 뚝 떼고 공연을 방해하는 아이러니에 객석은 빵빵 터진다. “대본을 보고 제작사에 먼저 연락을 했어요. 억지로 웃기지 않고 내 역할만 충실히 하면 관객이 웃을 수밖에 없는, 정말 잘 쓴 작품이라 탐이 나더군요.”   오직 두 사람의 대화만으로 객석을 들썩여야 하는, 호흡이 핵심인 무대다. 전방 30㎝ 안쪽의 사물만 보인다는 그가 상대 배우와 어떻게 호흡을 맞출까. “기억력과 상상력으로 봅니다. 실루엣만 보여도 내가 기억하는 사람들은 알아보는 것처럼, 훈련하면 돼요. 중요한 지점에선 리허설 때 상대 배우를 촬영해서 그 표정을 기억해 두고, 무대에선 그걸 상상하며 연기하는 거죠. 인간 뇌세포의 능력이 무한하다 싶어요.”   대본 보고 제작사에 연락해 출연 자청   사실 믿기 힘들었다. 테이블 너머로 마주 앉아 기자의 눈을 보며 대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의 눈을 보는 것도 일종의 연기였다. “눈코입은 안 보여요. 꼭 보려면 아이패드를 렌즈 삼아 보죠. 리허설도 아이패드로 줌인해서 보면서 했는데, 암전 때 등퇴장이 제일 어려워요. 내려올 때 떨어질 뻔한 일도 있어서 상대 배우의 도움을 받아야 하죠. 몇 발자국 가면 계단이란 걸 세어 놓지만, 그래도 위험하거든요. 나보다 먼저 퇴장한 작가 역 배우가 암전 후 다시 뛰어들어와 나를 부축해서 들어가죠. 깜깜한 속에서 사실 그게 더 코미디일텐데.(웃음)”   “이 없으니 잇몸으로 산다”는 그에겐 도구가 많았다. 아이패드를 몸에 다는 웨어러블과 손전등이 달린 지팡이는 직접 만들었고, 공연을 보거나 중요한 회의를 할 땐 삼성전자가 개발한 시각장애인용 안경을 오페라글라스처럼 쓴단다. “처음엔 셀프로 확대경을 만들어 썼는데, 삼성전자에서 시각장애인용 안경을 개발한다고 연락이 와서 내가 마루타가 됐어요. 아직 좀 어지럽고 무거워서 업그레이드를 계속해야 하거든요. 이런 걸 개발해 주는 것만 해도 감사하고, 보통 안경처럼 작고 가벼워질 날이 곧 올 것 같아요. 불편한 건 적극 해결책을 찾고 있어요. TV를 볼 때 자막을 읽어주는 서비스도 제가 건의해서 삼성에서 이번에 나왔고, 전자책은 AI가 읽어주니 스탠드 켤 필요도 없어서 좋죠. 휴대폰 문자메시지가 안 보이는 게 가장 답답했는데, 읽어 주는 기능이 있더군요. 이런 것들을 아무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으니 찾느라고 시간이 걸렸어요. 하지만 나름 발견의 기쁨이 있고, 세상에 없던 걸 만드는 재미도 있더군요.”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직후 황반변성과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각장애 4급 판정을 받은 그는 초기엔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했단다. 용하다는 한·중·일 의사를 모두 찾아가 치료를 받아도 효과는 없었다. “마지막에 미국의 망막전문 안과에서 누가 병을 고쳤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정말 큰 기대를 품고 갔어요. 거기서도 방법이 없다는 얘길 듣고 그날 밤새 혼자 펑펑 울었습니다. 근데 좌절감은 그렇게 털어냈어요. 다음날 아침 파란 하늘을 보는데 감사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더군요. 형체는 안 보여도 하늘이 보이는 게 어딘가요. 치료에 대한 희망은 접고, 이대로 살아갈 방법을 찾기로 했죠. 다행히 진행이 느려서 죽을 때까지 실명은 안 올거라네요.”   청춘스타로 누리던 최고 인기를 뒤로 하고 새로움을 찾아 뉴욕으로 떠날 만큼 천성이 진취적인 그다. 시각장애라는 위기도 송승환 답게 ‘도전’이라는 프레임으로 전환시켜 버렸다. “살다 보면 도전을 하게 되잖아요. 내게 첫 번째 도전은 ‘난타’였죠. 공연을 해외에 가져가 전용극장을 만든다는 게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까. 두 번째는 올림픽 개폐막식이라는, 수억 명이 보는 가장 큰 공연을 만드는 거였고, 지금이 세 번째네요. 안 보이는 상황에서 어디까지 연기할 수 있을까 하는 거죠. 때마침 코로나까지 터져서 극장문도 닫고 사업적인 위기까지 겹쳤지만, 시간적 여유가 생기니 유튜브에도 도전하게 됐어요. 원로배우들 인터뷰 아카이브인데, 구독자가 26만이에요. 어려서부터 그분들과 촬영장에서 잡담하며 들은 재미난 얘기들이 많거든요. 1번이었던 오현경 선생이 얼마 전 돌아가셨는데, 기록이라도 남겨놔서 그나마 다행이었어요.”   그의 대학로 사무실에는 68년 연극 데뷔작 ‘학마을 사람들’로 받은 동아연극상 트로피와 82년 ‘에쿠우스’로 받은 백상예술상 트로피도 진열돼 있었다. 그런데 90년대 이후 연기상이 없었다. ‘난타’ 이후 제작에 몰두했고, 연극 출연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2020년 ‘더 드레서’가 9년 만의 연극 복귀작이었으니, 시각장애가 그를 다시 무대로 불러온 셈이다. “이 눈으로 그나마 잘할 수 있는 일이 연기니까요. 그 중에서도 무대가 제일 좋아요. 집이나 사무실보다 무대라는 공간이 편하죠. 그 위에 있는 2시간만큼은 세상만사 다 잊는 선(禪)의 경지와 비슷하거든요. 고도로 집중해 몰입의 경지에 도달했을 때의 카타르시스는 길어야 2~3분씩 집중하는 매체 연기와 비교할 수 없어요. 그래서 돈도 안 되는 연극을 하는 거죠.”   앞만 보며 달려오다 앞이 잘 보이지 않게 되니 뒤도 돌아보게 됐다. ‘용서’와 ‘감사’라는, 전에 없던 감성코드도 생겼단다. “‘더 드레서’에서 내가 맡은 늙은 배우가 ‘나한테 필요한 건 망각 뿐이야’라는 말을 하거든요. 자기 과오를 후회한다는 뜻인데, 나도 인생을 돌이켜 보게 되니 남들에게 잘못한 게 많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런 기억을 잊고 싶고, 용서를 빌고 싶어요. 내가 이렇게 일해온 게 다 주변 사람들이 도와줘서 가능했던 거예요. 공연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하는 일이니까. 지금도 눈 나쁜 배우를 뭐 하러 캐스팅하냐고 하면 끝이고, 동료들도 나 때문에 성가실 텐데 기꺼이 도와주고 있잖아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하는 습관 들여   연극 ‘웃음의 대학’은 20주년을 맞은 연극열전의 대표작이다. [사진 연극열전] 일본의 국민작가 미타니 고키의 대표작인 ‘웃음의 대학’은 평생 크게 웃어본 적 없는 무뚝뚝한 사람이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연극을 꿈꾸며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이야기다. 과연 있을 법한 일이냐 물으니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다. “올림픽 같은 행사에서 공무원들과 일하다 보면 처음엔 그 위치에서 할 말만 하거든요. 근데 같이 몇 달 작업하고 나면 전혀 공무원답지 않은 언어로 오히려 아이디어를 내기도 하는 걸 봤어요. 극중에 검열관이 이렇게 재밌는 세상이 있는 줄 몰랐다고 고백을 하면서, 징집되는 작가에게 ‘꼭 살아 돌아와서 연극을 만들어달라’고 하잖아요. 공권력의 끝자락에서 국가주의를 외치던 사람이 희극을 통해 인간성을 회복한 건데, 그게 바로 연극의 힘인 것 같아요. 이런 주제를 어떻게 이렇게 코믹하게 풀었을까요.”   1965년 라디오 드라마 ‘은방울과 차돌이’로 데뷔한 그는 올해로 60년차 배우다. 하지만 공연제작자로 더 큰 업적을 남긴 게 사실이다. “‘난타’로 보관문화훈장, ‘평창’으로 체육훈장 맹호장, 진보와 보수에서 다 훈장 받은 사람”이라며 웃는다. ‘K팝’이라는 말도 없던 시절 사물놀이를 재해석해 해외시장을 개척할 엄두를 어떻게 낸 걸까. “80년대 뉴욕에서 3년 살면서 많은 경험을 했거든요. 내가 가던 해에 뮤지컬 ‘캣츠’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이 다 오픈했는데, 한국에선 뮤지컬이 아예 없을 때니 높은 벽을 실감했죠. 근데 3년쯤 되니까 내가 만들어도 이거보단 잘 만들겠다 싶은 것까지 보이더군요. 아래도 보이고 허점도 보이니 뉴욕이 두렵지 않게 된 거죠.”   10년 전만 해도 배우로, 연출로, 프로듀서로 종횡무진하며 “하루를 3일처럼 살기에 많은 일을 할수 있다”던 그가 이제 “하루를 하루로 살면 된다. 서두르지 않고 뭐든지 천천히 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고 말하니 어딘지 쓸쓸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많은 일을 한다. 밤에 ‘웃음의 대학’ 공연을 하면서 낮에는 어린이뮤지컬 ‘정글북’ 제작에 돌입했고, 7월엔 올림픽 개폐막식 해설을 하러 파리로 간다. 9월엔 ‘한국의 에든버러 페스티벌’을 꿈꾸며 파주페어 북앤컬처 총감독으로 다시 나선다. “3년간 야심차게 준비한 축제예요. 재작년에 파주출판도시가 출판을 넘어 문화예술이 함께 하는 도시로 업그레이드하고 싶다고 내게 강의를 부탁하더군요. 가서 에든버러 페스티벌 얘기를 했죠. 당장 에든버러에 가자더군요. 다녀와서 1년 넘게 축제 마스터플랜을 짰어요. 사실 ‘난타’가 97년에 한국 공연사상 최초로 에든버러에 가서 생각지도 못한 좋은 기회를 많이 얻었는데, 그 뒤로 별다른 히트작이 없었잖아요. 후배들을 돕고 싶어서 프린지 부문을 만들었어요. 두 편을 선정해 에든버러 출전을 지원할 겁니다. 이 눈으로 힘들지 않냐구요? 배우만 하기에는 조금 심심하잖아요.(웃음)”   송승환은 천상 ‘위대한 쇼맨’이었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2024.05.25 00:01

  • "3D 모션 데이터 확보 가능, 이젠 안무저작권 현실화 나설 때"

    "3D 모션 데이터 확보 가능, 이젠 안무저작권 현실화 나설 때"

    리아킴 지난달 24일 출범을 알린 안무저작권협회는 원밀리언 스튜디오의 리아킴(사진) 대표가 주축이 됐다. 원밀리언은 유튜브 구독자 2630만명을 거느리고 K팝 댄스의 글로벌 장르화를 이끈 세계 최대 댄스 스튜디오다. 실제로 오프라인 수강생 중 외국인 비중이 70% 이상으로, 원밀리언에 다니기 위해 한국에 장기체류하는 외국인도 많다. 지난 2일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파리 올림픽을 계기로 6개월간 한국문화를 집중홍보하는 ‘코리아시즌’의 개막공연을 장식한 것도 원밀리언이었다.   리아킴은 “음악저작권협회, 작가협회 등 창작자들의 협회가 많은데 문화산업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K팝 댄스 분야에 협회가 없는 게 아이러니였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안무의 저작권이 안무가에게 있다는 것에 심정적으로는 동의하지만, 안무저작권의 구체적인 기준이나 저작권료 분배 구조 등 시스템이 미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안무저작권협회를 만든 배경은. “안무저작권 보호 체계 마련은 우리 안무가들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그동안 기록 및 저장이 어려운 안무의 특성상 현실화되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영상만 있으면 3D 모션 데이터 확보가 가능할 정도로 기술이 발달했다. 또 세계적으로 K팝이 각광받고, 댄스 예능이 인기를 얻으면서 안무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기술과 인식 모두 성숙하고 발달해 이제 안무저작권 현실화를 추진할 때가 됐다고 봤다. 무엇보다 국가적 차원의 관심과 지원도 확대되고 있다.”   관련기사 춤에도 DNA 새긴다…K팝 안무가들, 세계 최초 안무저작권 수익 배분 추진 AI로 만든 영화도 저작권 인정 현행 저작권법에서 안무저작물을 어떻게 보호하고 있나. “안무에 대한 저작권 등록은 지금도 할 수 있다. 다만, 별도의 분류 없이 연극저작물의 하위 개념으로 인정될 뿐이며 저작권료 분배 구조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효용이 크지 않다.”   저작권을 등록하더라도 수익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뜻인가. “그렇다. 안무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다 해도, 지금 법제로는 안무 제작 시안비 외에 추가적인 수익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안무저작권 현실화는 직업인으로서 댄서의 권익은 물론 창작자로서 긍정적 동기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협회에선 아일릿의 뉴진스 안무 카피 의혹에 대해선 어떻게 보고 있나. “개별 사안에 대한 표절 여부를 판단하는 건 협회장의 몫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협회는 위와 같은 분쟁 사례가 있을 때 안무의 유사성에 대해 합리적으로 판단할 기준을 제공할 수 있다.”   표절에 대한 기준도 명확히 해야 할 것 같다. “이전부터 안무 카피 논란은 종종 발생해 왔다. 춤은 보편적으로 자주 사용되는 기술과 테크닉이 많기 때문에 단편적인 동작만으로 표절 시비를 가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래서 안무저작권 인정 기준과 그 방식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계속 주장해 온 것이다.”   해외의 움직임은 어떤가. “미국은 유튜브 춤 영상에 안무가를 표시한다. 국제협약(베른협약·로마협약·세계저작권협약 등)에 가입한 국가들은 안무저작권을 인정하고 있지만 음악저작권 수준의 실질적인 보호와 수익분배 시스템을 갖춘 나라는 없다. 우리나라도 안무저작물의 창조성 인정 여부에 대한 어떤 기준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라 갈 길이 멀다.”   안무가들의 권리 주장에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저항감은 없나. “그들의 것을 나눠 가진다는 개념이 아니라 같이 성장하는 개념이라 생각해 주면 좋겠다. 음원도 창작자 권리를 존중해  줬기에 발전한 것처럼, 댄스씬도 창작환경이 좋아져야 퍼포먼스 퀄리티가 좋아질 거다. K팝 산업이 있기에 우리가 일할 수 있다는 걸 알고, 대립이 아니라 상생구조를 찾으려고 한다.”     황지영 기자 hwang.jeeyoung@joongang.co.kr

    2024.05.18 00:51

  • AI로 만든 영화, 메타버스 속 건축물... 저작권 인정 어디까지

    AI로 만든 영화, 메타버스 속 건축물... 저작권 인정 어디까지

    생성형 AI로 제작한 국내 최초의 ‘편집저작물’로 인정받은 영화 ‘AI수로부인’ 민희진-하이브 사태로 ‘콘셉트 표절’이란 생소한 개념이 인구에 회자됐다. “아일릿이 뉴진스를 모든 영역에서 카피했다”며 내부고발했다가 경영권 탈취 논란을 초래한 민희진 어도어 대표는 콘셉트 포토와 특정 댄스 동작, 긴 생머리 같은 외형적 특징, 프로모션 방식을 포함한 ‘포뮬러’를 따라 한 것이 자신만의 오리지낼리티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콘셉트 저작권’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지만, 아이디어의 영역이라 법적으로 권리 침해를 주장할 수 있는 저작권 개념과는 다르다는 반론도 나왔다. K팝 업계에선 표절이 아니라 관행적인 ‘벤치마킹’으로 보기도 한다. 뉴진스 역시 90년대 일본 걸그룹 스피드의 ‘바디 앤 소울’ 뮤직비디오와 영화 ‘무스탕: 랄리의 여름’을 카피했다는 주장도 있다.   관련기사 춤에도 DNA 새긴다…K팝 안무가들, 세계 최초 안무저작권 수익 배분 추진 “3D 모션 데이터 확보 가능, 이젠 안무저작권 현실화 나설 때” 대중문화 콘텐트 산업이 성장하고 시장이 커지면서 과거에는 관행으로 통했던 일들에 새로운 지적소유권 개념이 등장하고 있다. 방송 프로그램 포맷권이 대표적 사례다. 과거엔 방송 포맷이 저작권법 보호 대상이 아니어서 도의적 비난만 감수하면 무단으로 베껴도 된다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2017년 SBS와 CJENM 간의 소송에서 대법원이 리얼리티 프로그램 ‘짝’의 저작물성을 인정한 이후 포맷 보호에 대한 인식이 생겼다. 2021년 TV조선 ‘미스터트롯’과 MBN ‘보이스트롯’ 간의 소송도 업계의 관심사였다. ‘미스터트롯’ PD가 퇴사하고 MBN과 손잡은 뒤 소 취하가 됐지만, 마구잡이식 포맷 베끼기에 경종을 울렸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이제 방송 포맷은 어엿한 수출 상품이다. 대중문화 개방 이전 일본 방송 프로그램을 단골로 표절하던 한국이 이젠 글로벌 콘텐트 포맷 시장 3위, 점유율 10% 이상을 차지하는 포맷 수출국이 됐다. 미드 ‘굿닥터’가 대표적이다. 20부작 KBS 드라마를 2017년 ABC가 리메이크해 시즌7까지 이어지고 있다. MBC 예능 ‘복면가왕’도 2019년 미국 FOX TV가 리메이크해 시청률 1위를 차지한 이후 전세계 55개국에 수출됐고, CJENM ‘너의 목소리가 보여’ 포맷도 2020년 FOX 리메이크 이후 20여개국에 수출됐다. 인기에 비례해 해외에서 포맷 도용 사례도 빈번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16~2020년 예능 18편이 20차례 표절 및 도용을 당했다.   웹툰 시장에서도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과 함께 예전에 보지 못하던 유형의 저작권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생성형 AI가 그리는 웹툰은 데이터 학습 과정에서 저작권 침해 소지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네이버웹툰 ‘신과 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의 한 회차 모든 컷이 생성형 AI로 제작됐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별점 테러를 당했고, 네이버웹툰은 특정 작가 맞춤형 툴을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광범위한 그림체가 아니라 특정 작가 스타일을 학습시킨 AI를 1인 작가 시스템 안에서 도구화하면, 저작권 이슈에서 자유롭게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생성형 AI로 만든 콘텐트는 현행법상 저작물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지난 1월 AI로 전면 제작한 영화 ‘AI수로부인’이 국내 최초로 ‘편집저작물’로 등록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GPT-4’ ‘클로바X’로 시나리오를 쓴 뒤 ‘미드저니’ ‘스테이블 디퓨전’ 등으로 이미지를 만들고, ‘젠2’ ‘D-ID’ 등 비디오 생성 AI로 영상을 구축, ‘클로바더빙’과 ‘사운드로우’로 소리와 음악을 입히는 등 제작 전 과정에 AI를 활용했지만, 편집과 리터치 등에 영화제작사 나라AI필름의 저작권을 인정받았다. 세계적으로도 AI 저작권 인정사례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다.   지난 연말 문체부가 발표한 ‘생성 AI 창작물 관련 가이드라인’은 AI가 생성한 결과물에 인간이 추가한 창작적 표현에 대해 저작권 인정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AI 산출물을 만들기 위해 입력하는 데이터에도 적절한 보상이 필요하다. 문화평론가로 활동하는 정지우 변호사는 “AI를 활용한 작품에 저작권을 부여한다면 데이터 수집단계에서 기존 창작자의 권리 보호부터 해야 한다”면서 “이런 차원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으면 AI로 인한 작품들이 무한 생성되어 저작권 개념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가상현실에서의 저작권도 주목받고 있다. 실제 건축물과 조경을 그대로 모사해 가상세계를 구축하는 메타버스 플랫폼들이 생겨나면서 최근 스크린골프 업체 골프존과 골프코스 설계회사 등의 저작권 침해소송 같은 건축저작권 분쟁이 생겼다. 게임도 저작권 분쟁의 주무대가 됐다. 2021년 미국음악출판사협회(NMPA)가 메타버스 게임 업체 로블록스에 2억 달러 규모의 저작권 침해 소송을 걸었다. NMPA는 일일 이용자 4천만명이 넘는 로블록스가 이용자들에게 파는 가상 음악 재생장치를 통해 음악이 무단 이용되고 있다고 주장했고, 결국 NMPA 회원들과 로블록스가 개별적인 라이선싱 계약을 맺도록 합의했다. 이 합의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저작권 문제 해결의 본보기가 됐고, 가상 환경 내 음악 라이선싱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가 개척됐다.   저작권 보호와 문화생태계의 발전은 불가분의 관계다. 방향성에 따라 콘텐트 산업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 정지우 변호사는 “창작의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규정했던 저작물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면서 “과거에는 표현과 아이디어의 구분이 중요했지만 콘셉트 아트, 미디어 아트 등 이분법으로 잘라 말할 수 없는 영역이 많아졌다. 기존의 이론을 넘어 창작물을 보호할 법적 근거 마련에 폭넓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2024.05.18 00:49

  • 할머니 돌보는 11살…나홀로 고군분투 '영 케어러' 30만명

    할머니 돌보는 11살…나홀로 고군분투 '영 케어러' 30만명

     ━  사각지대 놓인 가족돌봄청년   “힘들어도 어쩔 수 없죠.”   정우(11·가명)는 철이 일찍 들었다. 그래야만 했다. 할머니와 단둘이 생활하고 있는 정우는 할머니 간호부터 집안일에 생활비와 공과금 관리까지 도맡아 한다. 부모님은 정우가 태어난 지 석 달여 만에 이혼했다. 이후 엄마는 가출했고 아빠는 사업을 하다 1년여 전부터 연락이 두절됐다. 설상가상 여든이 다 되신 할머니는 중풍을 앓은 뒤 반신마비 증세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다. 정우는 “집안일 챙기랴 할머니도 보살피랴 하루하루가 힘겹지만 할머니가 저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걸 아니까 버텨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어린이날에도 정우는 친구들이 그저 부러울 뿐이었다. “학교에서 서로 무슨 선물 받았는지 얘기하는 거 들으면 부럽고 그래요.” 그래도 할머니를 원망하지는 않는단다. “몸이 불편한 게 할머니 잘못은 아니잖아요. 저라도 챙겨드려야죠.”   김소희(24·가명)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10여 년간 나이 드신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홀로 돌보며 살아왔다. 김씨는 “또래 아이들과 확연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어려서부터 체감했다”며 “지금이야 지자체에서 돌봄비 등 일부 도움을 받지만 그땐 누가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김씨는 “어려서부터 가족을 책임지다 보면 정서적 결핍 등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기 쉽다”며 “나 같은 아이들을 위해 정부나 지자체, 민간단체들이 심리 상담 등을 적극 지원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고 전했다.   정우나 김소희씨는 ‘가족돌봄청년’이다. 신체적·정신적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가족 구성원을 돌보며 ‘실질적 가장’ 역할을 맡고 있는 아동·청소년·청년을 아우르는 말이다. 외국에서는 일찍이 이들을 ‘영 케어러(young carer)’로 부르며 정부 차원에서 보호·지원 정책을 확대해 왔다. 반면 우리 사회의 가족돌봄청년들은 여전히 사회적 관심과 정책적 지원의 사각지대에서 나홀로 신음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족돌봄아동 지원법 국회서 ‘낮잠’   당장 공식 통계부터 잡혀 있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는 대략 18만 명 규모로 파악하고 있지만 민간단체들은 최소 30만 명 이상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정부 지원책도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초 가족돌봄청년 지원을 위한 첫 시범사업의 일환으로 연 200만원의 ‘자기 돌봄비’를 지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지원 대상이 960명에 불과해 대다수 가족돌봄청년이 실질적 지원을 체감하기엔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정신적 고충 또한 금전적 어려움 못지않게 시급히 해결돼야 할 문제로 꼽힌다. 2022년 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가족돌봄청년의 주당 평균 돌봄 시간은 21.6시간에 평균 돌봄 기간도 46.1개월로 거의 4년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우울감 증세를 겪는 가족돌봄청년은 61.5%로 일반 청년(8.5%)보다 7배 이상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어린 나이에 늙고 병든 가족을 수년간 홀로 책임지다 보니 절반 이상이 우울감 등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 지원 대상에서 만 13세 미만은 제외돼 있는 것도 논란거리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지난해 가족돌봄청년 실태를 조사한 결과 10명 중 한 명은 만 13세 미만 초등학생인 것으로 나타났다. 재단 관계자는 “5년 넘게 가족을 돌보고 있다는 응답자 중 60% 이상이 중고등학생인 점을 감안할 때 초등학생 때부터 돌봄이란 짐을 떠맡고 있는 경우가 상당수”라고 진단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만 13세 미만 아동은 지원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아동 보호 차원에서 다른 방식의 지원책을 강구하겠다는 것”이란 입장이지만 부처별 정책 조율 과정에서 자칫 소외될 우려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함선유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가족돌봄청년 중에서도 아직 초등학생에 불과한 만 13세 미만 아동을 챙기는 게 무엇보다 시급한 실정”이라며 “어느 부처가 어떤 정책을 내놓든 초등학생들을 돌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게 우선시돼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법적·제도적 정비도 현안 중 하나다. 국회에서도 지난해 가족돌봄아동·청소년·청년 지원법안 2개가 잇따라 발의됐다. 지원센터를 운영하는 등 국가와 지자체의 지원 의무를 명시한 법안이다. 하지만 여전히 보건복지위 문턱을 넘지 못한 채 21대 국회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다. 법안을 발의한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돌봄을 받아야 할 아동과 청소년들이 오히려 돌봄의 주체가 돼 있는 현실을 개선하려면 더 늦기 전에 법적 토대부터 갖춰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해외 사례를 적극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영국은 아동복지법에 영 케어러 발굴·지원 방식을 별도로 규정해 놓은 뒤 교육 훈련 프로그램과 긴급 지원 등에 적극 나서고 있다. 호주도 2010년 영 케어러 지원법을 만들고 1인당 연간 3000 호주 달러(약 270만원)씩 지원하고 있다.   채희옥 초록우산 아동옹호본부 팀장은 “정부 차원에서 가족돌봄청년을 직접 찾아내고 지원책도 꼼꼼히 챙기는 외국과 달리 일부 지자체의 경우 여전히 당사자인 어린아이들이 직접 신청해야만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며 “고령 인구가 갈수록 늘고 있는 가운데 이들을 돌봐야 하는 청소년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원동욱 기자 won.dongwook@joongang.co.kr

    2024.05.18 00:38

  • 춤에도 DNA 새긴다…K팝 안무가들, 세계 최초 안무저작권 수익 배분 추진

    춤에도 DNA 새긴다…K팝 안무가들, 세계 최초 안무저작권 수익 배분 추진

     ━  K팝 안무가들, 이름을 찾다   안무 표절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걸그룹 뉴진스(위쪽)와 아일릿. “이건 뭐 죄다 ‘복붙’이야.” 지난 13일 ‘뉴진스 안무가’로 알려진 댄서 김은주·블랙큐가 아일릿의 신곡 ‘럭키걸신드롬’ 뮤직비디오를 저격하고 나섰다. 뉴진스의 맥도날드 광고 안무를 그대로 카피했다는 것이다. 지난달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제기한 아일릿의 ‘마이월드’와 ‘마그네틱’이 뉴진스의 ‘어텐션’과 ‘디토’ 안무를 표절했다는 시비가 해당 안무가들에게까지 옮겨붙은 모양새다.   이런 시비가 만일 법정에 간다면, 양측의 안무만으로 저작권 침해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하늘 아래 새로운 동작이란 없기 때문이다. 뉴진스가 기본동작을 응용해 독창적인 안무를 만들어 냈는지부터 살펴야 하고, 그 독특한 포인트를 아일릿이 의도적으로 베꼈는지 여부를 판사가 재량껏 판단한다. 정량적 기준은 없다. 흔히 말하는 음악의 '8마디'도 와전된 것이다. 그런데 안무 표절이 법정에 간 적은 없다. 안무저작권이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소송을 제기할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무저작권이 돈이 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시장이 천문학적으로 커진 K팝에선 안무가 일약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다.   관련기사 “3D 모션 데이터 확보 가능, 이젠 안무저작권 현실화 나설 때” AI로 만든 영화도 저작권 인정 사실 지금까지는 안무가가 누구인지조차 모호하다. 뉴진스의 작곡가는 250(이오공)이라고 명시된 데 비해, 안무가는 비공식적으로 알려졌을 뿐이다. 그동안 안무가들은 안무 창작이라는 용역에 대한 대가만 받아왔을 뿐, 창작에 따른 권리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귀속되는 조건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2012년 세계적으로 히트한 ‘강남스타일’의 말춤을 만든 안무가 이주선도, 2021년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시그니처 안무(‘헤이마마’)를 만든 안무가 노제도 안무저작료 수입은 0원이었다. 플랫폼에서도 소외됐다. 틱톡·릴스·유튜브 등의 현행 시스템상 모든 수익은 음악저작권자에게 돌아간다.   ‘강남스타일’ 말춤 안무가 수입 ‘0’   ‘수익 0원’이라고 화제였던 스우파 노제의 ‘헤이마마’ 안무. 이런 상황에 K팝 안무가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지난달 24일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가 주축이 된 안무저작권협회가 출범을 선언했다. 허니제이·바다·바타·백구영·최영준 등 유명 안무가들이 발기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원밀리언 대표 리아킴이 초대 협회장에 취임했다. 안무저작권 수익 분배 구조를 설계해 K팝 댄스를 산업화하려는 움직임이다.   문체부도 안무저작권 보호를 역점사업으로 삼고 있다. 지난해 12월 유인촌 장관이 ‘저작권 강국 실현, 4대 전략’을 발표하며 음악 방송에서 안무가의 이름을 노출하도록 권고할 계획임을 알렸고, 현재 저작권위원회와 보상체계를 연구하고 있다. 정태경 문체부 저작권정책과장은 “안무저작권 등록을 시스템화하고 수익 분배를 위한 보상 기준을 지표화하기 위해 시장조사와 실태 파악을 하고 있다. 이르면 연내 성명표시를 개선권고하고 표준계약서 제정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18년 멜론뮤직어워드에서 삼고무를 춘 BTS 제이홉. 대중가요의 안무저작권 수익 배분은 세계 최초로 추진되는 일이라 주목받고 있다. 지난 3월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에서 원밀리언 관계자를 제네바에 초청해 현황을 공유하기도 했다.   빌보드 집계 기준을 바꾼 싸이의 말춤. 한국이 앞서가는 이유가 있다. 음악을 동영상 플랫폼에서 소비하는 ‘보는 음악’ 시대를 K팝이 선도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도 ‘마카레나’처럼 전세계를 춤추게 한 댄스곡이 있었지만, 당시는 안무가 음악을 보조하는 수단일 뿐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빌보드의 기준을 바꿔버렸다. 당시 ‘강남스타일’이 유튜브 조회수 신기록을 세우는 엄청난 인기에도 라디오 방송횟수 때문에 빌보드 핫100차트 2위에 머문 것을 계기로, 2013년부터 유튜브 조회수를 집계에 포함시킨 것이다. 그 결과 BTS·블랙핑크  등이 빌보드 차트에 빈번히 올랐으니, 지금의 K팝 신드롬 1등공신이 안무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숏폼 댄스 챌린지 트렌드 때문에 K팝에선 음악보다 안무가 더 중요시된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K팝 안무가의 위상과 보상체계는 큰 변화가 없었다. 윤여욱 원밀리언 공동대표는 “‘스우파’ ‘스맨파’가 큰 인기를 끌었어도 리더들만 떴을 뿐, 팀원들은 유명세 외엔 방송 전이나 똑같다. 노력에 대한 보상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보상 시스템 설계가 쉽진 않다. 현재 K팝 안무는 연예기획사가 여러 안무팀에게 받은 시안에서 필요한 부분만 따서 조합하는 형식의 공동저작물인지라 한 곡에 수십 명이 관여될 수 있고, 기여도도 제각각이다. 시안에 참여할 때 저작권을 포기하는 특약을 요구받고 있기에 표준계약서 제정도 선결조건이다. 리아킴은 “업계의 관행을 깨부숴야 한다”면서 “어떤 회사는 댄서들이 SNS에도 참여 사실을 공개하지 못하게 한다는데, 댄서를 창작자가 아니라 외주용역 개념으로 생각하는 거다. 그래도 안무가는 활동을 이어가야 하니 기획사와 싸우지 않는다. 그게 관행이다. 그래서 협회가 필요하고 표준계약서가 필요하다.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드물게 안무저작권이 등록된 사례인 ‘한글비보이’ 공연.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현행 저작권법으로는 안무저작물은 연극저작물의 하위 개념으로 인정될 뿐 별도로 분류되지 않는다.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따르면 저작권 등록 건수는 2019년 4만여 건에서 2023년 7만여 건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5년간 안무 관련 등록 저작물은 191건으로 전체 저작물 중 0.061%에 불과하다. K팝 댄스의 등록은 전혀 없다. ‘한글비보이’ ‘우리가락 퓨전 난타’ 같은 공연물이나 장검무·장고춤 등 순수무용이 일부 등록돼 있을 뿐이다. 저작권 등록을 위한 가이드라인도 없다.   안무저작권이 이슈가 된 사례가 없진 않다. 2011년 걸그룹 시크릿의 ‘샤이보이’ 안무가가 해당 안무를 교습에 사용하고 영상을 올린 댄스학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받았다. 2018년 BTS 제이홉이 한 시상식에서 삼고무를 춘 이후 민속무용으로 통했던 해당 춤의 저작권 등록 사실이 알려져 분쟁 끝에 창작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해외에선 미국 게임회사 에픽게임즈와 안무가들의 분쟁이 유명하다. 세계 최고 인기 게임인 포트나이트가 기성 안무를 무단 사용한 댄스 아바타 때문에 꾸준히 문제가 됐지만 안무저작권을 보호받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안무가 카일 하나가미가 제기한 소송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2022년 1심은 댄스 스텝이 저작권 보호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지난해 11월 항소법원은 ‘짧은 동작도 창의적인 선택과 배열이 반영되어 있다면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판결했고, 지난 2월 합의에 도달했다. 유명무실했던 안무저작권이 존재감을 얻은 것이다.   문체부도 안무저작권 보호 역점사업으로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법적 문제와 별도로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저항감도 있을 수 있다. 그동안 안무가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가수가 아티스트로서 안무까지 어느 정도 스스로 창작한다는 판타지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홍승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안무가들이 지금껏 묻혀 있었던 건 창작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시장에서의 지위가 낮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해 발족한 안무저작권학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IP 중개플랫폼 위츠의 박진익 대표는 “방송사에서 성명표시권부터 해결해줘야 하는데 해묵은 연예계 서열 탓에 쉽지 않다. 공권력으로라도 빠르게 확산시켜야 인식도 개선될 것”이라며 “엔터업계에서도 누가 먼저 전향적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기대가 된다. 대형 기획사들은 무시하고 내부 안무가를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 안무가들 권익도 신경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 수익배분이 실현되면 안무가들은 일반인들의 댄스 챌린지 영상이나 길거리 플래시몹에도 수익을 요구할까. 안무저작권학회장을 맡고 있는 함석천 대전지법 부장판사는 안무저작권을 ‘수익의 저수지’에 비유하며 “권리가 아닌 산업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물이 고일 수 있게 해서 나눠 써야지, 개별적으로 내 권리니까 쓰지 말라고 하면 결국 손해를 본다. 대중이 널리 사용하게 하고 수익을 나도 모르는 사이 분배받는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변화하는 미디어 세상에서 가장 발전가능성이 많고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 춤이다. 안무저작권이 산업으로 발전하면 미래 세대를 위한 좋은 먹거리가 될 것이다.”     유주현·황지영 기자 yjjoo@joongang.co.kr

    2024.05.18 00:01

  • 4조1300억 K방산 요람…목초지 마을 질롱 '들썩'

    4조1300억 K방산 요람…목초지 마을 질롱 '들썩'

     ━  한국 방산 첫 해외기지 호주 현지 르포   호주 질롱시에 건설 중인 한화 현지 생산공장(H-ACE) 전경. [사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지난달 19일 호주 빅토리아주 멜버른에서 남서쪽으로 60여㎞ 떨어진 질롱시로 향하는 길. 차창 밖 풍경은 끝없이 펼쳐진 목초지가 전부였다. 검은 소떼와 하얀 양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이 한 시간가량 이어졌을 때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호주 생산공장(H-ACE) 건물이 위용을 드러냈다. 15만㎡의 드넓은 부지에 3만2000㎡ 규모로 들어선 생산공장은 한국 방산기업 최초의 해외 생산기지다. 아시아 국가의 방산기업이 호주에 진출한 첫 사례로도 꼽힌다.   질롱시는 원래 포드 자동차 공장이 있던 지역이었지만 2016년 포드가 철수하면서 지역 경제에 한파가 닥쳤다. 한화가 이곳에 진출하기 전까지만 해도 인구 20만 명의 조용한 목초지 마을에 불과했다.   하지만 2021년 12월 한국이 호주와 K-9 자주포와 K-10 탄약운반장갑차 수출 계약을 맺은 데 이어 질롱이 현지 공장 부지로 결정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후 지난해 12월 호주 수출 계약이 성사된 한화 ‘레드백’ 장갑차 129대도 이곳에서 생산하기로 하면서 질롱은 일약 ‘K-방산’의 최전방 해외 생산기지로 거듭나게 됐다. K-9과 K-10, 레드백 수출은 본계약 규모가 4조1300억원에 달한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2022년 4월 공장 건설의 첫 삽을 뜬 지 2년 만에 찾은 질롱 생산공장은 내부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호주형 K-9 자주포인 ‘AS9 헌츠맨’과 호주형 K-10 탄약운반장갑차인 ‘AS10’을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잭슨 도커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호주 사업개발담당 부사장은 “호주형 K-9 자주포와 K-10 생산 공장은 오는 7월 완공될 예정으로, 올해 11월부터는 본격적인 생산 에 돌입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현지 인력 채용이 한창이고, 내부 시설도 5월 중엔 완벽하게 갖춰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호주형 K-9 자주포의 경우 한 작업대에서 10일씩 9단계를 거쳐 생산이 이뤄져 90일이면 한 대가 완성되는 공정”이라며 “한국 기업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가 효율적으로 결합되면서 납기일을 충분히 맞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레드백 장갑차 생산 공장도 조만간 증축 공사에 착수해 2026년 6월부터는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철광석·양모 팔던 호주, 로봇·우주항공 두각 딥테크 강국 탈바꿈 “특허 1000개, 벤처 350개 배출…시카다는 21세기 산업혁명 메카” 한국과 호주의 방산 협력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엔 신원식 국방부 장관과 리처드 말스 호주 국방장관이 함께 질롱 공장을 방문해 공사 마무리 현장과 생산 라인 등을 둘러보기도 했다. 두 장관은 이날 회동에서 한층 심화된 양국의 방산 협력을 한 차원 더 높은 단계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고 국방부는 밝혔다.    ━  레드백 장갑차 129대도 질롱에서 생산…공장 밖엔 ‘자주포·장갑차 테스트용’ 거대한 경사로     질롱 현지 생산공장 밖으로 나오자 너른 공터에 들어선 거대한 경사로가 눈에 띄었다. 현지 공장 관계자는 “K-9 자주포와 레드백 장갑차가 60% 경사로에 오른 뒤 멈춰서 버틸 수 있는지 테스트하는 장비”라며 “국제 표준에 따라 한화 창원 공장과 동일하게 설계됐다”고 전했다.   경사로 오른편에는 물탱크 두 개가 마련돼 있었다. 이 관계자는 “K-9 등 생산이 본격화되면 일정한 수심의 하천을 건널 수 있는지 시험하는 물웅덩이를 만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공장 주변엔 1.5㎞ 길이의 주행 트랙 및 시험장, 도하 성능 시험장, 사격장, 연구개발(R&D) 센터 등 각종 연구·시험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호주 협력업체 공장들도 속속 입주를 앞두고 있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질롱 공장이 입주한 빅토리아주도 ‘K-방산’ 수출 계약에 따른 낙수 효과가 예상보다 훨씬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스콧 아들링턴 빅토리아주정부 국방우주항공 담당자는 “호주 연방정부가 한화와 계약을 체결한 뒤 현지 생산기지를 유치하기 위한 주정부 간의 입찰 경쟁이 매우 뜨거웠다”며 “1970년대 조성된 우주항공단지를 비롯해 방산 관련 산업이 발달했고 호주 국방 R&D 예산의 40%가 우리 주에 투자되고 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유치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유치 경쟁 뒷얘기를 전했다.   그는 “호주형 K-9 자주포 제작에 협력하는 지역 중소기업에 1000만 호주 달러(약 90억원)를 이미 투자했고 레드백 공급과 연계되는 기업에도 유사한 규모의 금융 지원이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빅토리아주정부는 한화 공장 유치가 지역 경제에 미칠 파급효과가 57억 호주 달러(약 5조13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지 생산공장의 본격 가동으로 현지인 채용도 늘면서 향후 12년간 질롱에만 1000개 이상의 일자리가 새로 생겨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역 경제도 한층 활기를 띠는 분위기다. 1300여 명의 직원이 근무 중인 안카(ANCA) 그룹은 멜버른 지역을 기반으로 50여 년 간 사업을 펼쳐왔다. 연삭기계(그라인딩머신)와 동작제어시스템 전문기업으로, 한국 기업과도 30년 넘게 거래해 왔다. 이번 한화 K-방산의 호주 진출 소식을 듣고 ‘코버스 테크놀로지 솔루션스(CTS)’라는 자회사까지 설립하며 방산 협력 강화에 적극 뛰어들었다.   CTS 사무실에서 만난 닉 윌리엄스 본부장은 “레드백 장갑차의 안정적인 주행을 위해 차체 아래 바퀴에 14개의 관련 부품이 들어가는데, 이와 관련해 한화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는 등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며 “연구진이 창원 공장에 가서 관련 기술을 익힌 뒤 이곳에 돌아와 생산을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채우석 한국방위산업학회장은 “우리 기업이 첫 해외 생산기지를 세운 건 K-방산의 달라진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현지화에 성공해 호주 지역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면 앞으로 다른 방산기업들의 해외시장 진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가 국방력을 강화하고 나선 것도 우리 방산기업엔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호주 국방부는 지난달 17일 ‘2024 국가 국방 전략’을 발표하면서 향후 10년간 국방비 지출을 기존 계획보다 500억 호주 달러(약 45조원) 증액하겠다고 밝혔다. 한 해 호주 국방 예산과 맞먹는 규모다. 호주 국방 예산은 2019~20년 390억 호주 달러였던 게 지난해엔 사상 최고치인 526억 호주 달러(약 47조원)로 급증했다.   호주 정부의 이 같은 국방력 강화 전략은 무엇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국제사회의 공통된 분석이다. 호주는 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인 오커스(AUKUS)와 미국·인도·일본·호주 등 4개국 안보 협의체인 쿼드(Quad)의 정식 회원국으로 활동하며 미·중 갈등 국면에서 미국과 보조를 맞춰 왔다.   특히 호주는 해군력 강화에 중점을 두겠다는 방침을 세워둔 상태다. 말라카 해협 무역통상로 확보 등을 둘러싸고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해군력 증강을 통해 경제·군사적 이해를 공고히 하겠다는 심산이다. 이를 위해 2029년까지 차기 호위함 11척을 도입하기로 했다. 한국 기업도 이미 수주전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셰인 터핀 서호주국방과학센터 수석연구관은 “현재 한국을 비롯해 일본·독일·스페인의 설계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호주 워클리재단이 공동 주최한 ‘2024년 한·호주 언론 교류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질롱(호주)=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2024.05.11 01:45

  • 조태열 13~14일 방중, 왕이와 회담

    조태열 13~14일 방중, 왕이와 회담

    조태열(左), 왕이(右)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오는 13~14일 중국을 방문한다. 조 장관은 왕이(王毅)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과 만나 한반도 관련 현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외교부는 10일 “조 장관은 왕 부장의 초청으로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하고, 한·중 관계, 한·일·중 정상회의, 한반도 및 지역·국제 문제 등 상호 관심사에 대한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 장관은 또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기업인들과 간담회를 열고 애로사항을 들을 예정이다. 외교부는 “간담회에서 기업인 지원 방안 등 한·중 경제 교류 활성화 방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장관은 중국 지역 총영사들을 소집해 회담 결과를 공유하고, 지방 차원의 양국 협력 증진 방안 등을 당부할 계획이다.   한국 외교장관이 베이징을 찾는 건 지난 2017년 11월 강경화 장관 이후 처음이다. 이후 한·중 관계가 좀처럼 풀리지 않은 데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고위급 교류가 중단됐고, 물리적 교류가 재개된 뒤에도 한동안은 중국 측이 방역 등을 이유로 베이징에서 ‘손님 맞이’를 꺼려 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2022년 8월 박진 장관이 방중해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했지만, 장소는 산둥성 칭다오였다.   조 장관의 이번 방중은 다른 나라를 들르지 않고 중국과의 외교 협의만을 목적으로 하는 단독 방문이라는 점에서 외교가는 한·중 관계의 흐름이 바뀌는 기회가 될 수 있을지 주목한다. 이달 말에는 한·일·중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데, 이를 계기로 한·중 간 뜸했던 고위급 교류가 재개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이 본격적으로 검토될 수 있다는 기대도 표출된다. 구체적 조율은 아니더라도 이번 외교장관 회담에서 양국이 시 주석의 방한, 또는 윤 대통령의 방중을 통한 정상회담 필요성에 공감을 이룰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2024.05.11 01:27

  • 북, 금강산 지구 내 소방서 철거…정부 자산으론 처음

    북, 금강산 지구 내 소방서 철거…정부 자산으론 처음

     ━  남북교류 상징물 지워가는 북한   북한 금강산 지구 내에 있는 우리 정부 자산인 소방서 건물이 지난달 말 완전히 철거됐다고 통일부가 10일 밝혔다. 이 시설은 2019년 22억원을 들여 건설됐다. [사진 통일부] 북한이 금강산 관광특구 안에 있는 소방서를 지난달 말 완전히 철거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예산 22억원이 투입된 건축물이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10일 성명을 통해 최근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며 “정부는 금강산 지구 내 우리 정부가 설치한 소방서를 북한이 일방적으로 철거한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북한의 일방적 철거 행위는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우리 정부의 재산권 침해 등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 당국이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해배상 소송 등 법적 조치도 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 강원 고성군 온정리 일대에 조성된 금강산 관광지구에는 이산가족면회소와 소방서 건물, 관광 도로 등 한국 정부 자산 3건이 있다. 이 중 소방서 건물은 대지 면적 4900㎡의 지하 1층, 지상 2층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통일부는 지난 2019년 소방서 건축에 22억원을 투자했다고 밝혔다. 이산가족면회소는 550억원, 관광 도로는 26억6000만원을 들여 조성했다.   이 외에 금강산 관광지구에는 온정각과 부두시설, 해금강 호텔, 온천빌리지 등 현대아산이 투자한 시설과 에머슨퍼시픽이 투자한 골프장 등의 위락시설이 있었다. 금강산 관광은 2008년 7월 11일 한국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 이후 전면 중단됐다.   북한은 최근 남북 관계 단절을 상징하는 일련의 조치들을 이어가고 있다. 금강산 관광지구의 시설 철거 역시 사실상 예고된 조치였다는 분석이다. 2019년 10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건축 미학적으로 낙후하고 관리가 되지 않아 남루하기 그지없다”며 “남측 관계 부문과 합의해 남측 시설들을 싹 들어내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이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협의가 중단됐지만, 북한은 올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에서 금강산 국제관광국을 폐지하며 다시 관련 조치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구병삼 대변인은 “소방서 철거와 관련해서 관련된 동향은 인지하고 있었으나 완전 철거는 지난달 말에 확인했다”며 “그 외 해금강호텔 등 관광과 관련된 상당 시설이 철거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북한이 정부 자산에 직접 손을 댄 건 대남 메시지 성격도 있어 보인다. 남측과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끊었다는 측면에서다. 이를 위해 김정은은 스스로 밝힌 “남측 관계 부문과의 합의”조차 생략했다. 통일부는 지난해 12월에도 “북한이 개성공단(2016년 2월 전면 폐쇄)의 기업 30여 개를 무단 가동하는 동시에 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의 철거 작업을 계속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북한은 2020년 6월 연락사무소 청사도 공개적으로 폭파했다. 이후 연락사무소,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 건물 주변에 흩어진 건물 잔해들을 철거·정리하는 활동이 지난해 말 포착됐다. 비슷한 시기 지난 정부의 9·19 군사합의(2018년)에 따라 조성한 비무장지대(DMZ) 화살머리 고지의 전술도로에 지뢰를 매설한 사실도 확인됐다. 〈중앙일보 4월 29일자 1·8면〉   이처럼 북한은 각종 남북 교류의 상징물들을 지워가는 작업에 속도를 내며 내부적으로는 사상 교육 강화를 통한 주민 통제 등에 몰두할 것으로 보인다. 선대의 화해 업적에도 거침없이 손 대는 분위기다.   동시에 북한은 중국, 러시아에 밀착하고 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북한 국영 고려항공은 이달 초 웹사이트를 통해 평양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간 정기 노선을 재개한다고 공지했다. 북·러 간 고려항공 정기 노선이 재개되는 건 4년 3개월 만이다. 고려항공 측은 평양과 베이징 노선도 주 3회 운영될 예정이라고 공지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2024.05.11 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