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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이븐 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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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료일 : 무기한
사유 : IDC(AS26496)
토론 역사
하산 빈 알리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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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부 바크르, 우마르, 우스만, 알리 등 이 4명만 정통 칼리파로 인정받으나 하산도 잠깐동안 칼리파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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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룻딘 술라이만
제21대
앗 타이브
  • 1.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알리의 이복 동생인 자파르의 손자
  • 2. 무함마드의 사촌 압둘라 이븐 알 압바스의 손자
  • 3. 모로코 이드리시 왕조의 초대 아미르
  • 4. 하산 이븐 알리의 6대손이자 타바리스탄 알라비 왕조의 개창자
  • 5. 대학자 알 카심의 손자이자 예멘 자이디 이맘국의 개창자
비공식 정통 칼리파
하산 이븐 알리
الحسن بن علي
Hagia sophia sym...
이름
하산 이븐 알리
الحسن بن علي
출생
625년
사망
670년 4월 2일 (향년 44세)
재위 기간
정통 칼리파
661년 1월 ~ 661년 8월 (7개월)
전임자
후임자
부모
종교
1. 개요2. 생애3.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제5대 칼리파이자 제2대 이맘. 아버지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뒤를 이어 제5대 정통 칼리파가 된 뒤 무아위야 1세에 대적했으나 중과부적으로 항복하고 직위를 헌납했다.

2. 생애[편집]

625년경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와 예언자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의 아들로 출생했다. 전승에 따르면, 무함마드는 외손자가 태어났을 때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그의 이름을 "알리 하산"으로 지으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무함마드는 손자의 오른쪽 귀에는 '아단', 왼쪽 귀에는 '이카마'를 암송하고 숫양을 자신의 이름으로 제물로 바쳤다. 하산과 동생 후세인 이븐 알리는 외조부인 무함마드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하디스》에는 무함마드가 하산과 이븐을 "천국의 젊은이들의 지도자"라고 칭하고 두 사람이 앉든(평화 협정에 동의하든) 서든(전쟁에 나서든) 이맘이라고 밝혔다고 전한다.

하산 이븐 알리는 아버지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휘하에서 여러 전투에 참여했으며, 예멘에 이슬람을 전파하는 선교사로서 활약했다. 제3대 정통 칼리파 우스만이 마드마 궁전에서 시위대에게 피살당하고 아버지가 칼리파로 선출되었을 때, 하산은 아버지의 최측근으로 다방면에서 활동했다. 먼저 이라크의 쿠파로 가서 아버지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 무슬림들을 토벌했다. 뒤이어 바스라, 시핀, 나흐라완 등 여러 전투에서도 용맹을 떨쳤다. 알리는 그런 아들을 이맘으로 선출해 신도들을 가르치는 역할을 맡겼다.

661년 아버지가 카와리즈파에게 암살당한 뒤, 알리의 지지자들은 장남인 하산을 제5대 정통 칼리파로 선출했다. 알리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무아위야 1세는 시리아, 팔레스타인, 트란스 요르단의 모든 지휘관들을 소집하여 새로운 전쟁을 준비했다. 그러면서 하산 이븐 알리에게 서신을 보내 신변을 보장해주고 이맘으로서 지위를 인정해줄 테니 칼리파를 양도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무아위야 1세는 60,000명의 대군을 이끌고 하산이 있는 이라크 쿠파로 진군했다. 하산 역시 40,000명의 군대를 일으켜 그를 향해 진군했다. 양군은 곧 사바트 인근에서 조우했다.

전투가 임박했을 때, 하산 이븐 알리는 분열을 증오한다고 밝히며, 부하들에게 자신의 명령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무조건 따르라고 호소했다. 일부 병사는 이 말이 하산이 항복할 준비를 한다는 걸로 여기고 격분해 그를 공격했다. 하산은 부상을 입었지만, 그의 충성스러운 병사들은 즉시 그를 호위하고 반란군을 죽였다. 한편 하산의 부관인 우바이드 알라 이븐 아바스는 걸출한 지휘관이었던 알리가 죽고 아군은 자중지란을 일으키는데 무아위야 1세를 당해낼 가망은 없다고 판단하여 무아위야 1세에게 귀순했다.

일설에 따르면, 정체 불명의 남자들이 무아위야 1세와 하산의 소규 분견대간의 충돌 때 하산이 전투를 회피하려 했다가 패배를 초래했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소문을 듣고 격노한 지지자들이 반란을 일으켜 하산의 진영을 약탈했고, 하산은 호스로 궁전으로 피신해야 했다. 그는 이 사건에 큰 충격을 받고 무아위야 1세에게 평화협상을 하자고 제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평화협상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고, 양군은 결말이 나지 않는 교전을 몇 차례 벌였다.

무아위야 1세는 이대로 전투가 지속된다면 자신이 이길 확률이 높지만, 무력으로 칼리파를 찬탈했다는 악명을 살 것을 우려했다. 그는 하산 및 그 추종자들과 화평을 어떻게든 이루기로 마음먹고, 바누 쿠라이시에서 2명의 사절을 보냈다. 마침 하산 역시 많은 무슬림이 내전으로 희생되는 것에 괴로워하던 차여서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수니파 학자들에 따르면, 하산은 무아위야 1세가 《코란》과 순나를 따라야 하며, 그가 칼리파를 잇는 걸 받아들이겠지만 알리 추종자들에 대한 어떠한 복수도 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무아위야 1세는 이를 받아들였고, 뒤이어 제시된 다음 조건들을 모두 받아들였다고 한다.
1. 아와즈 지방에서 징수하는 모든 세금은 하산 이븐 알리에게 지급되어야 한다.

2. 연간 200만 디르함이 하산 이븐 알리에게 지급되어야 한다.

3. 전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면을 선포해야 한다.

시아파 학자들에 따르면, 하산은 무아위야 1세가 죽은 후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면 칼리파를 자신에게 돌려줘야 하며, 만약 자신이 무아위야 1세보다 먼저 죽는다면 칼리파직을 동생인 후세인 이븐 알리에게 넘겨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무아위야 1세는 이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 후 무아위야 1세는 쿠파로 가서 그곳의 무슬림들에게 충성을 맹세하라고 요구했고, 하산에게 카와리즈파 토벌에 힘을 보태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하산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나는 모두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내 권리가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당신과의 싸움을 포기했다. 그런 내가 당신과 함께 싸울 생각이 있겠는가?"

하산은 칼리파에서 물러난 뒤 메디나로 은퇴했다. 그러나 아버지 알리에 대적하다가 이제 메디나 총독이 된 마르완 1세의 핍박에 시달려야 했고, 최대의 적인 무아위야 1세에게 칼리파를 양도한 것에 분노한 지지자들의 비난을 견뎌야 했다. 그렇게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하산 이븐 알리는 670년에 최후를 맞이했다. 시아파 전승에 따르면, 무아위야 1세는 자신의 아들 야지드 1세에게 칼리파 직위를 물려주고 싶었고, 전임 칼리파 하산 이븐 알리를 세습 계획의 걸림돌이라고 여겼다. 무아위야 1세는 비밀리에 하산의 아내 자다 빈트 알 아샤트 이븐 카이스와 접촉하여 남편을 독살하면 막대한 돈을 주고, 야지드 1세와 결혼시켜주겠다고 제안했다. 자다는 잇따른 권고에 넘어가 남편에게 꿀을 섞은 독약을 먹였다. 결국 하산 이븐 알리는 끔찍한 고통을 겪다가 사망했다. 남편을 죽인 자다는 다마스쿠스의 무아위야 1세 궁정으로 서둘러 가서 보상을 받으려 했지만, 무아위야 1세는 약속을 어기고 그녀를 다른 남자와 결혼시켰다. 반면 수니파 측은 하산 이븐 알리가 자연사했다고 주장한다.

하산은 생전에 자신이 죽으면 외할아버지 무함마드 옆에 묻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마르완 총독은 이를 막아서면서, 무함마드의 세 번째 아내 아이샤 빈트 아비 바크르에게 하산이 그곳에 묻히는 게 허락된다면 자신의 친척인 우스만 이븐 아판도 무함마드 옆에 묻히는 걸 허락해달라고 요구했다. 아이샤는 배신을 일삼는 마르완을 개인적으로 좋게 여기지 않았기에 받아들이지 않았고, 더 나아가
"예언자 옆에 누구도 묻힐 수 없다."
고 선언했다. 하산 이븐 알리의 가족은 어쩔 수 없이 예언자의 모스크인 마스지드 알 나바위 건너편에 있는 알 바키 묘지에 하산의 시신을 안장했다.

하산의 아들인 카심(가셈)[1]은 680년(이슬람력 60년~61년)에 카르발라에서 숙부인 후세인 이븐 알리지키다가 죽었다. 카심 외에도 압둘라, 비시르, 탈하 등 하산의 아들 대부분이 카르발라에서 죽었으며, 자이드와 하산만이 살아남아 후손을 남겼다.

3. 둘러보기[편집]

[1] '가셈'은 페르시아어 발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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