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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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2월 14일 경상남도 동래군 동래읍(현 부산광역시 동래구)에서 독립유공자 추규영 선생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남고등학교(8회)와 성균관대학교 법정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59년 재무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지방국세청장과 국세청 차장을 거쳐 1991년 12월 21일부터 1995년 12월 20일까지 4년간 제8·9대 국세청장으로 재직했고, 1995년 12월 21일부터 1997년 3월 5일까지 제2대 건설교통부장관으로 재직했다. 이 기간 인천국제공항과 경부고속철도 건설에 매진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녹조근정훈장과 황조근정훈장을 서훈받았고 자랑스런 성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장관직 퇴임 이후에는 추계 추씨 대종회 회장을 지냈다.
자신이 받은 독립유공자 유족 보상금을 모아 1995년부터 20여 년간 독립유공자 후손 228명에게 1억1000만원의 성금을 전달해왔다.
선친 추규영 선생은 3.1 운동 때 부산 동래고보 학생으로 만세운동을 주도했고 독립선언서 500여 장과 태극기를 만들어 돌리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1년 간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에는 전라남도지사와 한국조폐공사 사장을 역임하였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서울지방국세청장과 국세청 차장을 거쳐 1991년 12월 21일부터 1995년 12월 20일까지 4년간 제8·9대 국세청장으로 재직했고, 1995년 12월 21일부터 1997년 3월 5일까지 제2대 건설교통부장관으로 재직했다. 이 기간 인천국제공항과 경부고속철도 건설에 매진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녹조근정훈장과 황조근정훈장을 서훈받았고 자랑스런 성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장관직 퇴임 이후에는 추계 추씨 대종회 회장을 지냈다.
자신이 받은 독립유공자 유족 보상금을 모아 1995년부터 20여 년간 독립유공자 후손 228명에게 1억1000만원의 성금을 전달해왔다.
선친 추규영 선생은 3.1 운동 때 부산 동래고보 학생으로 만세운동을 주도했고 독립선언서 500여 장과 태극기를 만들어 돌리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1년 간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에는 전라남도지사와 한국조폐공사 사장을 역임하였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부인 정수자 여사와의 사이에서 1남 3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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