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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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충청남도 덕산군 복당리(현 예산군 덕산면 복당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에 3.1 운동이 발발하자 그는 홍성군 홍성면 읍내에서 3.1 운동에 참여하다가 조선총독부 경찰에 체포되어 홍성경찰서에서 조사 후 석방되었다.
이후 1925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졸업 뒤 공주군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를 시작하였다. 1934년에는 충청남도청에서 학무 행정을 담당하였고, 그 뒤 서산 권업과장 논산 산업과장 등을 지냈다.
광복 후 충청남도 산업과장과 상정과장을 거쳐 내무국장을 지냈으며, 1954년 9월부터 1956년 9월까지 1961년 1월부터 1961년 5월까지 두 번 충청남도지사를 역임하였다. 1956년 9월부터 1959년 5월까지 전라남도지사를 역임하였다. 4.19 혁명 후인 1960년 5월에 전라북도지사로 발령을 받았으나 다음 달인 6월 사임하고 1960년 지방선거에 출마하여 충남지사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이렇게 4번의 도지사직을 지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자 도지사 직을 잃었으며, 이후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1970년 5윌 아들 이종성이 충남방적 사장에 취임하자 그는 회장을 역임하면서 사업에 뒤늦게 몸담았다. 1970년대 통일주체국민회의 운영위원을 지냈다. 이후 대전에 거주하다가 1990년 사망하였다. 향년 88세.
손녀사위가 정진석 제21대 국회부의장이다.
이후 1925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졸업 뒤 공주군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를 시작하였다. 1934년에는 충청남도청에서 학무 행정을 담당하였고, 그 뒤 서산 권업과장 논산 산업과장 등을 지냈다.
광복 후 충청남도 산업과장과 상정과장을 거쳐 내무국장을 지냈으며, 1954년 9월부터 1956년 9월까지 1961년 1월부터 1961년 5월까지 두 번 충청남도지사를 역임하였다. 1956년 9월부터 1959년 5월까지 전라남도지사를 역임하였다. 4.19 혁명 후인 1960년 5월에 전라북도지사로 발령을 받았으나 다음 달인 6월 사임하고 1960년 지방선거에 출마하여 충남지사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이렇게 4번의 도지사직을 지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자 도지사 직을 잃었으며, 이후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1970년 5윌 아들 이종성이 충남방적 사장에 취임하자 그는 회장을 역임하면서 사업에 뒤늦게 몸담았다. 1970년대 통일주체국민회의 운영위원을 지냈다. 이후 대전에 거주하다가 1990년 사망하였다. 향년 88세.
손녀사위가 정진석 제21대 국회부의장이다.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60 | 243,504 (55.40%) | 당선 (1위) | 초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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