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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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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료일 : 무기한
사유 : IDC(AS26496)
토론 역사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
[ 여성 독립 운동가 ]
강원신
강혜원
공백순
김경화
김덕세
김도연
김순애
김자혜
김점순
김정숙
김향화
김효숙
동풍신
박계남
박원희
박현숙
방원희
신마실라
신순호
신의경
심영신
안경신
양방매
연미당
오건해
오광심
오희영
유순희
윤용자
이신애
이의순
이희경
장매성
장선희
전수산
정정화
조순옥
조신성
조화벽
지복영
차경신
차보석
최선화
최용신
최정숙
홍애시덕
황마리아
윤희순
출생
사망
1935년 8월 1일 (향년 75세)
만주 해성현 묘관둔
묘소
강원도 춘천시 남면 관천리 선영
본관
해주 윤씨
가족
아버지 윤익상, 어머니
배우자 유제원
자녀 유돈상, 유민상, 유교상
서훈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1. 개요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독립운동가, 의병장. 199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구한말 독립운동가로 최초의 여성 의병장이자, 춘천의병장인 유홍석의 며느리이며 동시에 팔도창의대장인 의암 류인석의 조카며느리이기도 하다. 경기도 양주군 구지면[1] 출신으로, 유학자의 딸로 태어나 시아버지의 영향으로 1895년 을미사변 이후 의병운동에 투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최초의 여성 의병장이 되어 최초의 한글 의병가를 짓고, 대한제국군이 해체되자 군자금을 모아 화약 제조소를 운영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전투에 직접 참가하지는 못했으나 주로 후방에서 독립군을 지원했으며, 일본 제국의 탄압을 피해 만주로 옮겨가 중국인들과 손잡고 독립운동을 지속했으나 아들 유돈상이 고문사를 당하고 식음을 전폐한 지 11일 만에 1935년 8월 1일에 혜성현 묘관둔에서 75세의 환갑을 넘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90년 건군훈장 애족장이 추서됐고, 그의 무덤은 그의 친손자인 유연익이 중국에서 흔적만 남긴 무덤이 발견되고, 1994년 그의 유해는 국내 봉환해서 지금은 춘천 애국지사 묘에 아들 유돈상이랑 시아버지 유홍석이랑 같이 묻혀있다.

[1] 현재의 경기도 구리시 대부분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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