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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덕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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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료일 : 무기한
사유 : IDC(AS26496)
토론 역사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
[ 여성 독립 운동가 ]
강원신
강혜원
공백순
김경화
김덕세
김도연
김순애
김자혜
김점순
김정숙
김향화
김효숙
동풍신
박계남
박원희
박현숙
방원희
신마실라
신순호
신의경
심영신
안경신
양방매
연미당
오건해
오광심
오희영
유순희
윤용자
이신애
이의순
이희경
장매성
장선희
전수산
정정화
조순옥
조신성
조화벽
지복영
차경신
차보석
최선화
최용신
최정숙
홍애시덕
황마리아
본관
출생
전라남도 제주군 구좌면 하도리
(現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2] 1700번지)
사망
1939년[3] 10월 4일 (향년 27세)
묘소
상훈
건국포장 추서

1. 개요2. 생애

1. 개요[편집]

하도강습소 제1회 졸업기념 사...
하도강습소 제1회 졸업기념 사진. 두 번째 줄 오른쪽으로 두 번째가 부덕량.

대한민국독립유공자, 해녀.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1911년 11월 5일 전라남도 제주군 구좌면 하도리(現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1700번지)에서 아버지 부계준(夫啓俊, 1860 ~ 1935. 2. 23)과 어머니 평택 임씨(1861 ~ 1921. 4. 18)[4] 사이의 장녀로 태어났다.

그녀는 해녀로서 생계를 유지했는데, 당시 제주에는 관제조합인 해녀어업조합의 부정으로 해녀들이 극심한 피해를 보고 있었다. 이에 그녀를 비롯한 제주도 해녀들은 자생적으로 해녀회를 조직하고 부당한 해녀어업조합에 맞서 나갔는데, 이는 곧 시위투쟁으로 발전하였고 특히 구좌면에서 가장 활발하게 일어났다.

1932년 1월 7일 및 12일 구좌면 세화리 장터에서는 부덕량의 주도 하에 1천여 명의 해녀들이 세화주재소의 저지를 뚫고 호미와 비창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시위가 끝난 후 같은 달 24일경, 그녀는 일본 경찰이 제주도 출신 민족운동가들을 체포하려는 것을 몸으로 맞서 저지하려다가 체포되었고, 제주도경찰서 유치장에 투옥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32년 6월 17일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출옥했으나, 그 뒤 고문 후유증으로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졌고 이는 폐병으로 이어졌다. 결국 1939년 10월 4일 별세했다. 향년 27세.

200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1] 열공계(悅公系) 18세. 제주부씨족보 권2 204쪽~206쪽에는 누락되어 있다.[2] 인근의 상도리·세화리·평대리와 함께 제주 부씨 집성촌이며, 부좌현 전 국회의원과 독립유공자 부승림·부춘화도 이 마을 출신이다.[3] 독립유공자 공적조서 참조. 제주해녀박물관 앞에 있는 부덕량의 동상에는 1937년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4] 임행신(林行信)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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