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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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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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외교부장관 大韓民國 外交部長官 The Minister of Foreign Affairs of the Republic of Korea | |
현직 | 조태열 / 제41대 |
취임일 | |
정당 | |
관사 |
대한민국 외교부의 수장이다.
외교부장관은 대부분 외교관 시험에 합격해서 외교부에 입부한 외교관료 출신이 임명되기 때문에[1] 정파나 지역색이 옅어 국무총리 후보로 자주 오르내린다. 다만 외교관료 출신으로 외교부장관을 거쳐 실제로 국무총리에 임명된 사례는 제5공화국의 노신영 전 총리가 마지막이다.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한다.
외교부장관 출신으로 가장 높은 직위에 올라간 인물은 국내에서는 국무총리를 거쳐 대한민국 대통령까지 된 최규하가 있고, 국외에서는 유엔 사무총장이 된 반기문이 있다.
외교부 장관의 임기는 평균적으로 1년 반을 조금 넘는 수준으로 짧은 편이다. 기본적으로 5년을 넘는 주변국[2]에 비해 많이 짧다며, 타국 외교 수장과의 친분을 쌓기 위해서라도 자주 바뀌는 것은 좋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이런 점들 때문에, 2010년대 이후 외교부장관은 임기를 보장해주려 하고 있는데 박근혜 정부 내내 장관 직을 수행했던 임기 4년을 넘긴 윤병세 전 장관은 말할 것도 없고, 3년 8개월 가까이 장관직을 수행한 강경화 전 장관이 대표적. 그리고 그 후임인 정의용 전 외교장관 역시 문재인 정부 출범부터 강경화 장관과 함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 재임한 직후 후임 장관으로 임명된 케이스[3]라, 국가안보실장으로서 강 장관과 함께 대미 및 주변국 외교 일선에 서서 지속적으로 활동해오고 있었단 점을 감안해보면 한국도 점차 외교 수장 자리에 있어서의 연속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역대 최장수 장관은 제4공화국의 박동진으로 약 4년 9개월 가량 재임했다. 1987년 개헌 이후 최장수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의 윤병세로, 4년 3개월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재임기간 동안 '오병세'라고 불리며 박근혜와 함께 5년간 재임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졌으나, 탄핵 사태로 인해 이뤄지지 못했다. 오히려 임명권자보다 더 오래 자리를 지켰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며 외교부 장관직에 강경화가 임명되며 첫 여성 외교부장관이 탄생하게 된다.
외교부 장관에게는 재임 기간 동안 거처할 수 있는 공관이 제공된다. 이를 외교부 장관 공관이라고 하며 별칭은 "외교부 공관"이라고 부른다. 위치는 국회의장, 대법원장, 국방부 장관등의 공관과 함께 한남동 공관촌인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 관저가 한남동 구 외교부장관 공관으로 이전함에 따라, 외교부장관 공관이 삼청동의 옛 대통령비서실장 공관으로 이전했다.
외교부장관은 대부분 외교관 시험에 합격해서 외교부에 입부한 외교관료 출신이 임명되기 때문에[1] 정파나 지역색이 옅어 국무총리 후보로 자주 오르내린다. 다만 외교관료 출신으로 외교부장관을 거쳐 실제로 국무총리에 임명된 사례는 제5공화국의 노신영 전 총리가 마지막이다.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한다.
외교부장관 출신으로 가장 높은 직위에 올라간 인물은 국내에서는 국무총리를 거쳐 대한민국 대통령까지 된 최규하가 있고, 국외에서는 유엔 사무총장이 된 반기문이 있다.
외교부 장관의 임기는 평균적으로 1년 반을 조금 넘는 수준으로 짧은 편이다. 기본적으로 5년을 넘는 주변국[2]에 비해 많이 짧다며, 타국 외교 수장과의 친분을 쌓기 위해서라도 자주 바뀌는 것은 좋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이런 점들 때문에, 2010년대 이후 외교부장관은 임기를 보장해주려 하고 있는데 박근혜 정부 내내 장관 직을 수행했던 임기 4년을 넘긴 윤병세 전 장관은 말할 것도 없고, 3년 8개월 가까이 장관직을 수행한 강경화 전 장관이 대표적. 그리고 그 후임인 정의용 전 외교장관 역시 문재인 정부 출범부터 강경화 장관과 함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 재임한 직후 후임 장관으로 임명된 케이스[3]라, 국가안보실장으로서 강 장관과 함께 대미 및 주변국 외교 일선에 서서 지속적으로 활동해오고 있었단 점을 감안해보면 한국도 점차 외교 수장 자리에 있어서의 연속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역대 최장수 장관은 제4공화국의 박동진으로 약 4년 9개월 가량 재임했다. 1987년 개헌 이후 최장수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의 윤병세로, 4년 3개월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재임기간 동안 '오병세'라고 불리며 박근혜와 함께 5년간 재임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졌으나, 탄핵 사태로 인해 이뤄지지 못했다. 오히려 임명권자보다 더 오래 자리를 지켰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며 외교부 장관직에 강경화가 임명되며 첫 여성 외교부장관이 탄생하게 된다.
외교부 장관에게는 재임 기간 동안 거처할 수 있는 공관이 제공된다. 이를 외교부 장관 공관이라고 하며 별칭은 "외교부 공관"이라고 부른다. 위치는 국회의장, 대법원장, 국방부 장관등의 공관과 함께 한남동 공관촌인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 관저가 한남동 구 외교부장관 공관으로 이전함에 따라, 외교부장관 공관이 삼청동의 옛 대통령비서실장 공관으로 이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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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무부 (194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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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통상부 (199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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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2013.3.) |
정부 | 대수 | 이름 | 임기 |
초대 | 장택상(張澤相) | 1948년 8월 15일 ~ 1948년 12월 24일 | |
2대 | 임병직(林炳稷) | 1948년 12월 25일 ~ 1951년 4월 15일 | |
3대 | 변영태(卞榮泰) | 1951년 4월 16일 ~ 1955년 7월 28일 | |
4대 | 조정환(曺正煥) | 1956년 12월 31일 ~ 1959년 12월 21일 | |
5대 | 허정(許政) | 1960년 4월 25일 ~ 1960년 8월 19일 | |
6대 | 정일형(鄭一亨) | 1960년 8월 23일 ~ 1961년 5월 20일 | |
7대 | 김홍일(金弘壹) | 1961년 5월 21일 ~ 1961년 7월 21일 | |
8대 | 송요찬(宋堯讚) | 1961년 7월 22일 ~ 1961년 10월 10일 | |
9대 | 최덕신(崔德新) | 1961년 10월 11일 ~ 1963년 3월 15일 | |
10대 | 김용식(金溶植) | 1963년 3월 16일 ~ 1963년 12월 16일 | |
11대 | 정일권(丁一權) | 1963년 12월 17일 ~ 1964년 7월 24일 | |
12대 | 이동원(李東元) | 1964년 7월 25일 ~ 1966년 12월 26일 | |
13대 | 정일권(丁一權) | 1966년 12월 27일 ~ 1967년 6월 29일 | |
14대 | 최규하(崔圭夏) | 1967년 6월 30일 ~ 1971년 6월 3일 | |
15대 | 김용식(金溶植) | 1971년 6월 4일 ~ 1973년 12월 3일 | |
박정희 정부(제4공화국) | |||
16대 | 김동조(金東祚) | 1973년 12월 4일 ~ 1975년 12월 18일 | |
17대 | 박동진(朴東鎭) | 1975년 12월 19일 ~ 1980년 9월 1일 | |
18대 | 노신영(盧信永) | 1980년 9월 2일 ~ 1982년 6월 1일 | |
19대 | 이범석(李範錫) | 1982년 6월 2일 ~ 1983년 10월 9일 | |
20대 | 이원경(李源京) | 1983년 10월 15일 ~ 1986년 8월 26일 | |
21대 | 최광수(崔侊洙) | 1986년 8월 27일 ~ 1988년 12월 5일 | |
22대 | 최호중(崔浩中) | 1988년 12월 5일 ~ 1990년 12월 27일 | |
23대 | 이상옥(李相玉) | 1990년 12월 27일 ~ 1993년 2월 26일 | |
24대 | 한승주(韓昇洲) | 1993년 2월 26일 ~ 1994년 12월 24일 | |
25대 | 공로명(孔魯明) | 1994년 12월 24일 ~ 1996년 11월 7일 | |
26대 | 유종하(柳宗夏) | 1996년 11월 7일 ~ 1998년 3월 3일 |
변영태와 조정환 사이의 공백은 조정환이 서리로서 대행했다. 조정환과 허정 사이의 공백은 최규하가 외무부차관으로서 대행했다.
정부 | 대수 | 이름 | 임기 |
27대 | 박정수(朴定洙) | 1998년 3월 3일 ~ 1998년 8월 4일 | |
28대 | 홍순영(洪淳瑛) | 1998년 8월 4일 ~ 2000년 1월 14일 | |
29대 | 이정빈(李廷彬) | 2000년 1월 14일 ~ 2001년 3월 26일 | |
30대 | 한승수(韓昇洙) | 2001년 3월 26일 ~ 2002년 2월 4일 | |
31대 | 최성홍(崔成泓) | 2002년 2월 4일 ~ 2003년 2월 27일 | |
32대 | 윤영관(尹永寬) | 2003년 2월 27일 ~ 2004년 1월 16일 | |
33대 | 반기문(潘基文) | 2004년 1월 17일 ~ 2006년 11월 9일 | |
34대 | 송민순(宋旻淳) | 2006년 12월 1일 ~ 2008년 2월 29일 | |
35대 | 유명환(柳明桓) | 2008년 2월 29일 ~ 2010년 9월 7일 | |
36대 | 김성환(金星煥) | 2010년 10월 8일 ~ 2013년 2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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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7년 민주화 이후로 노태우 정부부터 윤석열 정부까지의 총 21명의 외교부장관 중에 외교관 출신이 아닌 외교부장관은 문민정부의 한승주 전 장관(학자 출신), 국민의 정부의 박정수 전 장관(정치인 출신-보수 인사 영입), 한승수 전 장관(정치인 출신-민주국민당과의 연립정부), 참여정부의 윤영관 전 장관(학자 출신), 문재인 정부의 강경화 전 장관이 있다. 이 다섯 사람을 제외한 16명 전원 외교관 시험 합격 후 외교부에 입부한 직업 외교관 출신이다. 민주화 이후 보수정당 정부에서는 문민정부의 한승주 전 장관을 제외하고는 전부 외교관 출신을 외교부장관에 임명했다. 민주당계 정당 정부에서는 외교관 출신이 아닌 외교부장관이 각 정부에 적어도 한 명 이상은 있었지만 전술한 네 사람을 제외하고는 전부 외교관 출신을 외교부장관에 임명했다.[2] 다만, 이는 한국 주변 국가들의 국가 체제 및 사정에도 기인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공산국가인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은 외교를 관장하는 국무장관이 거의 행정부의 2인자 취급을 받을 만큼 권력의 핵심이고 보통 일반적으로 대통령의 4년 임기를 같이하기에, 교체되는 경우는 보통 대통령이 재선되어 새 행정부를 구성할 때 이루이진다. 그리고 러시아 역시 권위주의 독재국가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반면 일본의 경우 의원내각제 특성상 나름 유력 정치인이 외무대신을 맡지만, 각료 자체는 자주 바뀌어서 2년 정도 지나면 외무대신이 바뀐다. 외무대신으로 4년 8개월을 재임한 기시다 후미오가 상당히 특이한 경우.[3] 사실 강경화 전 외교장관은 사퇴 의사를 여러 차례 내비친 바 있으나 문재인 전 대통령이 만류하여 4년 가까이 재직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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