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로프 팔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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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정치인. 제26대 총리, 전 사회민주노동자당 대표.
20세기 후반 두 번에 걸쳐 11년간 총리로 재임하는 동안 현대 복지국가의 모범으로 꼽히는 스웨덴식 보편 복지 체계를 완성했으며, 중립국으로서 독자적 외교 노선을 표방해 국제 외교 정가의 주목을 받았다. 타게 엘란데르 총리에 이어 오늘날의 스웨덴을 설계한 정치인으로 호평받는 인물.
그러나 1986년 노상에서 누군가가 쏜 총에 저격당해 사망하여 스웨덴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며 떠나고 말았다. 심지어 사건이 30년 넘는 장기 수사에도 불구하고 저격범의 정체를 밝히지 못한 채 미제로 종결되면서 스웨덴 정치의 가장 안타까운 비운의 인물로 기록되었다. 전국적인 추모와 그리움의 분위기와 함께 생전 재임기의 높은 인기에 힘입어 오늘날 스웨덴에서 가장 존경과 사랑을 받는 정치인 중 한 명이 되었다.
20세기 후반 두 번에 걸쳐 11년간 총리로 재임하는 동안 현대 복지국가의 모범으로 꼽히는 스웨덴식 보편 복지 체계를 완성했으며, 중립국으로서 독자적 외교 노선을 표방해 국제 외교 정가의 주목을 받았다. 타게 엘란데르 총리에 이어 오늘날의 스웨덴을 설계한 정치인으로 호평받는 인물.
그러나 1986년 노상에서 누군가가 쏜 총에 저격당해 사망하여 스웨덴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며 떠나고 말았다. 심지어 사건이 30년 넘는 장기 수사에도 불구하고 저격범의 정체를 밝히지 못한 채 미제로 종결되면서 스웨덴 정치의 가장 안타까운 비운의 인물로 기록되었다. 전국적인 추모와 그리움의 분위기와 함께 생전 재임기의 높은 인기에 힘입어 오늘날 스웨덴에서 가장 존경과 사랑을 받는 정치인 중 한 명이 되었다.
- 1950.2. 스웨덴 학생회연맹 국제분과위원회 위원장
- 1952.3. 스웨덴 학생회연맹 의장
- 1955. 스웨덴 사회민주청년연맹 이사
- 1957. 상원의원 (옌셰핑 / 스웨덴 사회민주노동자당)
- 1963. 무임소장관
- 1965. 교통통신부 장관
- 1967. 교육부 장관
- 1969. 5. 제26대 스웨덴 총리
자세한 내용은 올로프 팔메/생애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올로프 팔메 총리 암살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한동안의 야당 시절을 거쳐 1982년 다시 총리로 재직하기 시작했지만, 재집권 4년차인 1986년 2월 28일 저녁에 아내와 단둘이 스톡홀름 시내의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한 다음 지하철을 타러 역으로 걸어가던 중 누군가가 쏜 총탄에 저격당해 쓰러졌고 끝내 숨지고 말았다. 향년 59세. 이전에 아무런 위기 징후나 암살 위협도 없었던, 말 그대로 벼락같이 찾아온 비극이었던 터라 스웨덴 정치권은 물론 전국민이 속보를 전달받고 큰 충격에 빠졌다.
진보 성향의 정치인들이 으레 그렇듯 격식과 권위주의를 탈피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이 때문에 국왕 다음 가는 의전서열 대상자였음에도 경호원 없이 돌아다녔다고 한다. 저격당한 그날에도 경호원을 대동하지 않은 채 시내를 걷던 중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결국 암살을 막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물론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닐 정도면 경호원이 있어도 완벽한 경호가 어려웠을 수 있으나, 적어도 주변의 거동수상자를 조기에 발견해 경계하거나 저격 직후 범인을 빠르게 찾아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둘 모두 당일 사건 현장에서는 불가능했다.
결국 이 사건은 한 나라의 정부 수반인 현직 총리가 노상에서 암살당한 중대 사건임에도 끝내 범인을 밝혀내지 못한 채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저격 당시 주위에 목격자가 별로 없었다 한들, 국가기관을 동원해 30년 넘게 샅샅이 수사했는데도 범인의 정체 하나 알아내지 못했다는 점이 의외. 시간이 흐르면서 증거 발견 가능성도 희박해져가자 스웨덴 검찰은 수사 34년차인 2020년 이 사건 수사를 미제 상태로 종결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던 52세의 남성 스티그 엥스트룀이 이 해에 향년 86세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엥스트룀 말고도 용의자일 가능성이 제기된 이들이 몇 명 더 있었지만, 사건 종결이 선언되면서 진상 규명은 불가능해졌다. 이로써 그의 죽음은 가장 선진적인 스웨덴 정치에 가장 의문스럽고도 충격적인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진보 성향의 정치인들이 으레 그렇듯 격식과 권위주의를 탈피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이 때문에 국왕 다음 가는 의전서열 대상자였음에도 경호원 없이 돌아다녔다고 한다. 저격당한 그날에도 경호원을 대동하지 않은 채 시내를 걷던 중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결국 암살을 막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물론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닐 정도면 경호원이 있어도 완벽한 경호가 어려웠을 수 있으나, 적어도 주변의 거동수상자를 조기에 발견해 경계하거나 저격 직후 범인을 빠르게 찾아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둘 모두 당일 사건 현장에서는 불가능했다.
결국 이 사건은 한 나라의 정부 수반인 현직 총리가 노상에서 암살당한 중대 사건임에도 끝내 범인을 밝혀내지 못한 채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저격 당시 주위에 목격자가 별로 없었다 한들, 국가기관을 동원해 30년 넘게 샅샅이 수사했는데도 범인의 정체 하나 알아내지 못했다는 점이 의외. 시간이 흐르면서 증거 발견 가능성도 희박해져가자 스웨덴 검찰은 수사 34년차인 2020년 이 사건 수사를 미제 상태로 종결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던 52세의 남성 스티그 엥스트룀이 이 해에 향년 86세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엥스트룀 말고도 용의자일 가능성이 제기된 이들이 몇 명 더 있었지만, 사건 종결이 선언되면서 진상 규명은 불가능해졌다. 이로써 그의 죽음은 가장 선진적인 스웨덴 정치에 가장 의문스럽고도 충격적인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 종종 존 F. 케네디나 로버트 F. 케네디와 비교되곤 한다. 서방국가의 지도자로 인기가 많았고,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진보 정당에서 활동하며, 비교적 젊은 나이에 수장에 취임해 임기 도중 비극적으로 암살되었다는 점까지 닮았기 때문이다.
- 노무현 전 대통령도 팔메 총리를 언급한 바 있다.#
- 열렬한 여행자이기도 했는데, 방학을 할 때면 유럽과 미주 전역의 여러 나라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러한 경험들은 그를 다른 문화와 삶의 방식에 노출시켰고 세상에 대한 그의 관점을 넓히는 데 도움을 주었다.
- 팔메와 칼손 두 사람은 사회적 배경이 달랐는데도 정치를 지적이고 전술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줄 아는 능력을 공유했다. 칼손은 팔메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특히 1980년 스웨덴 원자력 발전소 국민투표에 관한 투표 직전 당내 논의에서 '특급 해결사'가 되어주었다.
- 배우 셜리 맥클레인에 따르면 한때 내연 관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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