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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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이완(李浣)이다.
1529년에 태어났으며 이름은 이구(李耉)이다. 한자로는 '寧平君'으로 쓴다.
덕흥대원군의 손자 진양군 이담령의 차남이다. 1636년에 태어났으며 이름은 이사(李泗)이다. 한자로는 '寧平君'으로 쓴다.
자세한 내용은 영평군(1828)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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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포천과 통합, 분리를 반복해 왔다.
고구려 때 양골현(梁骨縣)이었다.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에 동음현(洞陰縣)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원종 때에 영흥현(永興縣), 조선 태조 때에 영평현(永平縣)이 되었다. 1618년에 포천현과 합하여 영평도호부가 되었으나 인조 때 다시 분할되었다.
효명세자의 태실이 영평현에 있었는데 1835년에 익종으로 추존된 뒤 태실을 가봉하면서 1836년에는 영평군으로 승격되었다.# 1895년에 포천현과 합하여 포천군이 되었으나 이듬해인 1896년에 재분할되었다.
1914년에 일제가 실시한 부군면 통폐합으로 포천군에 폐합되었다. 영평이라는 지명은 영중면 영평리로 남아 있다.
고구려 때 양골현(梁骨縣)이었다.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에 동음현(洞陰縣)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원종 때에 영흥현(永興縣), 조선 태조 때에 영평현(永平縣)이 되었다. 1618년에 포천현과 합하여 영평도호부가 되었으나 인조 때 다시 분할되었다.
효명세자의 태실이 영평현에 있었는데 1835년에 익종으로 추존된 뒤 태실을 가봉하면서 1836년에는 영평군으로 승격되었다.# 1895년에 포천현과 합하여 포천군이 되었으나 이듬해인 1896년에 재분할되었다.
1914년에 일제가 실시한 부군면 통폐합으로 포천군에 폐합되었다. 영평이라는 지명은 영중면 영평리로 남아 있다.
1945년 광복 이후 남북분단이 되면서 삼팔선 이북 지역이 북한(당시 소련군정)으로 넘어가며 포천이 두 동강났다. 38선 이북 지역인 영중면·일동면·이동면·창수면·청산면 각 일부와 영북면 전역은 소련군정하의 북한에서 영평군(永平郡)으로 이름 붙이고 경기도에 소속시키면서 과거의 지명 영평이 잠시 부활했다. 이듬해인 1946년 9월에 강원도로 소속이 변경되었고, 1946년 12월, 북한정권의 전신인 김일성의 북조선인민위원회가 청산면·창수면은 당시 북한령 강원도 연천군(두음법칙이 미적용된 후에는 련천군)에, 영북면·영중면·이동면(일동면의 38선 이북 지역을 포함)은 당시 북한령 강원도 철원군에 폐합하면서 영평군이라는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여담으로 길 영(永)자는 두음법칙에 해당되지 않는다. 북한의 문화어로도 령평군이 아니라, 영평군이 표준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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