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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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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료일 : 무기한
사유 : IDC(AS26496)
토론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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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선포 이후 현재까지 폐지된 대한민국 행정구역
북: 이북 5도에 명목상 존속
부: 부군면 통폐합으로 인한 폐지
95: 1995년 도농통합으로 인한 폐지

승: 특별시/광역시/특별자치시/특별자치도 승격으로 인한 폐지
간성군 · 강원도 · 금성군 · 김화군 · 명주군95 · 삼척군95 · 원주군95 · 춘천군95 · 평강군 · 평해군
결성군 · 공주군95 · 노성군 · 대덕군 · 대전시 · 대천시95 · 덕산군 · 면천군 · 목천군 · 보령군95 · 비인군 · 서산군95 · 아산군95 · 연기군 · 연산군 · 온양군 · 온양시95 · 은진군 · 정산군 · 직산군 · 천안군95 · 한산군 · 해미군 · 홍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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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산군 휘장(광주편입...
광산군의 휘장
광주직할시 편입 이후에도 광산구 휘장으로 한동안 사용되었다.
전라남도 폐지된 행정구역
광산군 CI
광산군
光山郡
Kwangsan County[1]
군청 소재지
송정읍 송정리 833-8 -> 송정시 중앙동 833-8[2]
광역자치단체
하위 행정구역
면적
252.81㎢[3]
285.54㎢[4]
인구
136,584명[5]
인구밀도
478.34명/㎢[6]
현재 인구
497,049명[7]
398,116명[8]
지역전화
062
존속기간

1. 개요2. 역사
2.1. 1988년 광주광역시 편입 이후
3. 인식4. 인구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1895년 광주군이라는 명칭으로 설치되어 1935년 광산군으로 개칭한 뒤 1988년 광주직할시송정시와 함께 편입되어 사라진 전라남도의 폐지된 행정구역.

2. 역사[편집]

광산군은 1935년 10월 1일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읍이 광주부로 승격되면서, 광주군의 잔여지역이 광주의 조선시대 별호인 '광산(光山)'을 따 광산군으로 개칭되면서 출범하였다. 당시의 광산군은 극락면·대촌면·동곡면·비아면·서방면·서창면·석곡면·송정면·임곡면·지산면·하남면·효지면 등으로 구성되었다. 1949년 8월 14일에는 나주군에서 평동면·삼도면·본량면을 편입하였으며, 이때 군청이 송정읍 송정리로 옮겨졌다. 1955년까지는 충청북도 청원군[9]처럼 구 광주시를 100% 둘러싸는 도넛 형태의 행정구역이었다. 여담으로 군청 자리에 현재 광산구청이 그대로 위치해 있다.

1955년 7월 광산군 극락면, 서방면, 석곡면[10], 효지면이, 1957년 11월 지산면, 서창면[11], 대촌면이 광주시에 편입되어 시역(市域)이 대폭 확장되었다. 1963년 대촌면·서창면이 도로 광산군으로 환원된 이후, 송정시가 출범하는 1986년까지 유지되었다.

1986년 11월 1일, 광주시가 직할시로 승격됨과 동시에 광산군 송정읍도 인구 50,000명을 넘기면서 송정시로 승격되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송정시와 광산군은 경산시, 양산시와 비슷하게 광주직할시 외부의 위성도시 역할을 할 예정이었으며, 광주로의 편입은 장기적으로 계획되고 있었다.[12] 한편 당시 송정시청사는 옛 송정읍사무소를 그대로 이용했고 지금의 광산문화예술회관 자리에 있었으며, 송정광산교육지원청[13]은 지금 구청 앞에 있는 2층 규모의 흰색 떡갈비집 건물이었다.

2.1. 1988년 광주광역시 편입 이후[편집]

하지만 송정시와 분리된 지 1년 2개월만에 1988년에 광산군·송정시광주직할시에 편입되었다. 참고로 송정시의 광주 편입은 지금까지도 도 산하 시가 인접한 특별시광역시에 병합된 유일한 사례다.[14][15][16] 이때 광주로 편입되지 않았더라도 광산군과 송정시는 1995년 전국적인 도농통합의 일환으로 광주광역시에 편입되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다만 1995년 도농통합 때 편입됐다면 지금처럼 舊 광산군 전체가 통째로 광산구가 되는 것이 아닌 송정시를 송정구로 하고 나머지 광산군 지역은 그대로 광산군으로 편입됐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94년 1월99년 10월 두 차례 광산군 환원운동이 있었지만 광산군으로 환원에 대한 방식도 전라남도로의 환원이었으며 광주광역시의 무관심과 소극적인 행동으로 끝내 무산되면서 부산, 대구, 인천, 울산, 세종과 달리 행정구역상 도농복합시가 되지는 못했다.

광산구 출범 이후 광산군의 들은 전부 출장소로 전환되었으며, 1995년에 대촌출장소가 남구, 서창출장소가 서구에 편입되었고, 나머지 출장소는 1997년~1998년에 전부 으로 전환되어 지금에 이른다.

광주 편입이 확정되면서 장기계획들의 우선순위가 변하였다. 이때 계획된 것들이 하남공단 확장, 광주와의 간선도로[17] 건설 및 확장, 2순환로 건설, 경전선광주역 이설 계획, 지하철 계획 등이 이때 이루어졌다. # 하남공단 확장과 하남대로는 급하게 진행되어서인지 90년대 초에 완료. 경전선 이설은 2000년에 완료. 광주 도시철도 1호선, 무진대로, 광주제2순환도로의 완전개통은 각각 2008년, 2007년, 2009년이다. 그리고 광주역 이설은 아예 나가리났다.

1997년 외환 위기로 인해 미뤄진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첨단산업단지 건설과 상무대 이전계획이 90년대 초에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SOC 계획은 이를 무시한 채 기존 계획을 그대로 들이부은 것이 화근이었다. 게다가 포화상태였던 구시가지를 위해 광주 외곽지역을 개발할때 이를 연계하지 못한 건 실수라고 할 수 있다. 광산구의 인구가 두 배 이상 증가하는 동안 광산구에 2호선을 들여놓겠다고 선언한건 2010년대 들어서였다. 이렇듯 기존의 광주 구시가지와 광산구는 지역적 동질감이 그리 크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3. 인식[편집]

광주의 다른 지역과는 과거에 행정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며 광주 편입 전까지 읍면단위 행정구역이었기 때문에 아직도 지명 등에서 예전 행정구역명을 쓰는 것을 자주 보고 들을 수 있다. 광주 편입 이후에도 송정읍 송정리였던 송정동 일대는 송정리, 비아면 신가리, 신창리, 수완리였던 신가동/신창동/수완동 일대는 신가리로 불리기도 했으며,[18] 첨단지구, 신창지구, 운남지구, 수완지구 등의 신도시 지역을 제외하고는 옛 면 단위, 즉 현재의 행정동(동사무소) 이름으로 불리는 편이다.[19] 태어나면서부터 광산구민, 아니 광주광역시의 대다수 2010년대청소년들 사이에서도 그렇게 불리는 편이다.

다만 오늘날까지 '-리'라고 불리는 곳은 '송정리' 정도이다. "난 송정리 살아"나 "떡갈비는 송정리에...", "송정리역에서 KTX타고..." 등의 용례로 흔히 쓰인다. 광산구 사람이든 타지 사람이든 '송정동'이라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다수가 송정리 라고 한다. 특히 구청 근처의 전통시장 및 인심에서 ‘송정리’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굳이 꼽자면 비아동 지역이 현재까지도 광산군 시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비아리로 불리기도 한다.

광산군+송정시 편입과 동시에 해당 지역에 광산구를 설치하였는데, 이 때문에 현재 출범한 지 2년 만에 도로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송정시라는 지명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농담이 아니라 몇몇 현지 사람들은 송정리가 시인 적이 있었냐고 되묻는 정도다.[20][21]

송정리 이외의 다른 시내 지역들은 시 당국에 의해 계획적으로 개발되었기에 주로 지구 단위로 나뉘어 불린다. 쌍암동과 월계동, 산월동은 한데 묶여 첨단지구로 불리며, 장덕동은 혼자서 따로 동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는 없고 수완동과 묶여 수완지구로 불리워진다. 신가동은 심지어 같은 동이어도 선창초등학교 부근은 신창지구, 선광학교 부근은 신가지구, 임방울대로 부근은 수완지구, 동 중앙부 주택단지는 신가동으로 다르게 불린다(...). 현재는 동 중앙부 주택단지들이 재건축 중으로 동사무소도 본향교회 앞으로 이전된 상태다.

4. 인구[편집]

전라남도 광산군 인구 추이
(1966년~1985년)
1966년 128,740명
1970년 131,825명
1975년 130,206명
1980년 128,896명
1985년 136,584명
인구는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5만 명
통계청 인구총조사
1985년 읍면별 인구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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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읍 60,104명
비아면 14,614명
서창면 14,468명
대촌면 11,072명
평동면 8,876명
삼도면 6,175명
본량면 5,565명
임곡면 5,372명
하남면 5,321명
동곡면 5,017명
1985년 기준 통계청 인구총조사, 그래프 최대 값은 5만 명
1980년 읍면별 인구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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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읍 50,771명
서창면 12,946명
대촌면 12,392명
비아면 10,194명
평동면 10,001명
임곡면 7,316명
삼도면 7,208명
본량면 7,002명
하남면 5,554명
동곡면 5,512명
1980년 기준 통계청 인구총조사, 그래프 최대 값은 4만 명
1975년 읍면별 인구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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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읍 41,827명
대촌면 14,142명
서창면 13,411명
평동면 11,204명
비아면 10,234명
본량면 9,054명
임곡면 8,870명
삼도면 8,752명
하남면 6,627명
동곡면 6,066명
1975년 기준 통계청 인구총조사, 그래프 최대 값은 4만 명
1970년 읍면별 인구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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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읍 37,721명
대촌면 14,901명
서창면 12,688명
평동면 12,058명
비아면 10,706명
삼도면 10,686명
본량면 10,403명
임곡면 8,966명
하남면 7,149명
동곡면 6,527명
1970년 기준 통계청 인구총조사, 그래프 최대 값은 4만 명

5. 관련 문서[편집]

[1] 폐지 당시 표기법인 매큔-라이샤워 표기법 기준[2] 현 광산구청.[3] 1987년[4] 1985년[5] 1985년[6] 1985년[7] 2023년 1월, 광주광역시 광산구남구 대촌동, 서구 서창동, 금호동, 풍암동의 인구를 합친 것.[8]송정시 지역의 현재 인구를 제한 것.[9] 2014년 청주시와 통합[10] 덕의리, 충효리, 금곡리는 담양군 남면(현 가사문학면) 소재지와 가깝다는 이유로 따로 그쪽에 편입되었다가, 2년 후인 1957년 11월 다시 광주시에 편입되었다.[11] 단, 송대리는 광주시에 편입되지 않고 동곡면으로 편입되었다.[12] 반면에 비슷한 시기인 1981년에 시 승격한 경기도 광명시(당시 시흥군 광명출장소)는 원래는 잠정적인 서울 편입 예정지로서 서울시 도시계획에 따라 주거지로 개발되어 서울 편입이 검토되었으나, 사실상 서울 편입 배제 차원에서 광명시로의 시 승격이 이루어진 케이스다.[13] 현재 상무지구에 있는 광주광역시 서부교육지원청의 전신이다.[14] 광산군 편입을 대전시대덕군 편입과 같이 보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보기에는 광주와 광산의 동질감은 매우 작았다. 대덕군의 경우 대전직할시 승격과 동시에 편입되었고, 대덕군보다 먼저 대전에 편입된 유성회덕의 경우 이미 대전 생활권에 깊숙히 편입되었던 상태였다. 반면에 광산군은 광주시가 먼저 직할시가 되고, 그 이후에 편입된 경우로 생활권이 별로 겹쳐치지 않았다. 당시 광주시는 현재의 무등경기장 지역이 시 외곽일 정도로 시세가 작았으며, 광주시와 광산군은 영산강을 경계로 동서로 나눠져 있었다. 그리고 광산군 지역은 송정리를 중심으로 뭉쳐있는 형상이라, 충청북도 구 청주시 외곽을 빙 둘러쌌던 청원군과 비슷하게 대전시 외곽을 빙 둘러싸다시피 해서 군의 중심을 할만한 곳이 없는 대덕군과는 상황이 달랐다. 이외에도 송정시와 광주직할시 승격은 같은 날(1986.11.1)에 이루어졌는데, 이는 당시에 외부에서 보기에도 두 지역의 동질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는 증거다. 물론 광산군 자체가 일제강점기1935년 광주군 광주읍이 광주부로 승격되면서 광주군의 잔여지역이 개칭된 것이므로 광주시와 광산군이 역사적으로 같은 동네인 것은 사실이나, 현재처럼 통학, 통근 등 각종 생활권이 하나로 묶이기 시작한 것은 광주시가 확장되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부터다.[15] 광주의 송정시, 광산군 편입은 대전의 대덕군 편입보단 대구달성군 편입, 울산울주군 통합과 더 유사하다. 달성군도 현풍권(구 현풍군 지역)을 제외하고 대구와 역사성을 공유하지만 대구와의 동질감은 대구와 직접적으로 접한 화원, 다사, 가창 등을 제외하면 그렇게 크지 않았고, 울주군 역시 언양읍 중심 서부권은 울산과의 동질감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16] 1995년 행정구역 대개편 때에는 경산시인접한 광역시에 병합된 두 번째 도시가 될 뻔했다. 김포시시흥시도 이 시기에 인천으로 편입될 뻔했으나, 당시의 김포시는 김포이었다.[17] 하남대로, 무진대로[18] 다만 이것도 2010년대를 지나면서 송정리 정도를 빼면 사라졌다.[19] 비아, 하남, 본량, 임곡, 동곡, 삼도, 평동[20] 이 때문에 송정시와 광산군의 6자리 우편번호 또한 흑역사가 되었다. 1986년 체신부(현재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우편번호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1988년 2월 1일부로 시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511, 512로 시작했던 6자리 우편번호가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두 지역이 1988년 1월 1일에 편입돼버렸고 그걸 모른채 우편번호부까지 인쇄 완료. 결국 다음날 관보에 정정된 우편번호가 실리면서 지금처럼 506으로 시작하는 우편번호를 사용하게 되었다.[21] 한편 송정시와는 달리 송정리는 아래에서도 보듯 흔히 사용된다. 원동성당의 '원동'은 송정1동의 송정시 시절 명칭이다.one동 신동사거리 뒷편의 호남동은 송정3동(인구감소로 송정2동에 흡수)의 옛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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