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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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민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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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No.82 | |
출생 | |
국적 | |
학력 | |
포지션 | |
투타 | |
프로 입단 | |
소속팀 | |
지도자 | 롯데 자이언츠 2군 수비·주루코치 (2020)[2] 롯데 자이언츠 1군 수비·주루코치 (2021) 롯데 자이언츠 1군 타격보조·외야수비코치 (2022) 롯데 자이언츠 2군 주루·외야코치 (2023)[3] 롯데 자이언츠 1군 주루코치 (2023)[4] 롯데 자이언츠 잔류군 타격코치 (2024~) |
병역 | 사회복무요원 (2013~2015) |
SNS | |
나경민의 선수 경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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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플레잉 코치로 전환되면서 2군 수비/주루 코치를 맡았다.
2021년부터 1군 외야수비 코치를 맡게 되었다. 현역 생활은 어깨 부상으로 2020년 5월부터 포기했다고 한다. 기사
1루 코치를 맡는 동안 허구한날 팬들에게 꼴무원 소리를 듣는 등 평가가 좋지 않았었는데 9월 초 잠시 백신접종으로 말소되고 김동한이 임시로 1루 코치를 맡자마자 선수들의 주루 플레이가 엉망진창으로 역변하면서 나경민의 능력이 재평가받는 광경이 벌어졌다.
2022년 시즌을 앞두고 김평호 주루코치가 합류함에 따라 타격, 외야수비 보조 코치를 맡게 되었다. 그리고 주루 코치는 맡지 않을 거라고 예상됐지만 기존 주루 코치였던 문규현 코치가 수석코치가 되면서 주루 코치를 2022년에도 맡을 것으로 보인다.
2023년에는 2군 주루코치로 보직을 변경했다가, 6월 23일부로 김평호 코치와 보직을 맞바꿔 1군 주루코치로 올라왔다.
시즌 후 성민규 단장을 비롯해 이종운, 라이언 롱, 김동한, 전준호 등이 계약 해지되는 대대적인 물갈이가 있었지면 문규현과 함께 또 살아남았다.
2021년부터 1군 외야수비 코치를 맡게 되었다. 현역 생활은 어깨 부상으로 2020년 5월부터 포기했다고 한다. 기사
1루 코치를 맡는 동안 허구한날 팬들에게 꼴무원 소리를 듣는 등 평가가 좋지 않았었는데 9월 초 잠시 백신접종으로 말소되고 김동한이 임시로 1루 코치를 맡자마자 선수들의 주루 플레이가 엉망진창으로 역변하면서 나경민의 능력이 재평가받는 광경이 벌어졌다.
2022년 시즌을 앞두고 김평호 주루코치가 합류함에 따라 타격, 외야수비 보조 코치를 맡게 되었다. 그리고 주루 코치는 맡지 않을 거라고 예상됐지만 기존 주루 코치였던 문규현 코치가 수석코치가 되면서 주루 코치를 2022년에도 맡을 것으로 보인다.
2023년에는 2군 주루코치로 보직을 변경했다가, 6월 23일부로 김평호 코치와 보직을 맞바꿔 1군 주루코치로 올라왔다.
시즌 후 성민규 단장을 비롯해 이종운, 라이언 롱, 김동한, 전준호 등이 계약 해지되는 대대적인 물갈이가 있었지면 문규현과 함께 또 살아남았다.
투수를 상대할 때 끈질긴 승부를 가져간다. 출루를 하게 되면 빠른 발로 배터리의 집중력을 분산시킨 뒤 도루를 시도하는 등의 전략으로 배터리를 흔든다. 다만 2016-17년 2시즌동안 볼넷 15개/삼진 55개를 기록하여 선구안이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다. 이를 개선하여 전준호, 손아섭 등의 뒤를 이을 차세대 리드 오프로 거듭날지 아니면 빠른 발과 주루센스를 살려서 강명구, 유재신 같은 전문 대주자로 남을지 주목되었지만 결국 후자에도 못 미치는 선수였다.
그러나 발만 빠르지 주루센스가 최악이라는 것이 시즌을 치를수록 드러났다. 결국 주루센스 개선에 실패하며 대주자로서의 쓰임새도 애매한 무툴 선수로 남고 말았다.
또 한가지 문제는 최악의 외야 수비. 비슷한 롤이었던 이우민은 수비력이 걸출했기에 대주자로 출장하면 높은 확률로 중견수 수비를 들어갔지만, 나경민은 처참한 수비력 때문에 대주자로 쓰더라도 그 다음 수비수로 넣기 힘들다. 결국 엔트리 낭비가 심해지고 빡빡한 1군 로스터에서 자리를 주기 애매해진다. 최준석 문서에 서술되어 있는 것과 유사한 문제인데, 그래도 전성기 최준석은 타격이 리그 상위권이었기에 주전으로 쓸만했지만 나경민은 어느 한 분야에서도 제대로 보여준 게 없는 것이 문제다. 발은 빨라서 범위는 나름 넓지만 이를 제외한 전반적인 수비력은 매우 좋지 않다.
타격에서 장타력의 부재도 심각했다. 실제로 KBO 1군 데뷔 홈런이 초등학교 이후 첫 홈런이었을 정도이다.
그러나 발만 빠르지 주루센스가 최악이라는 것이 시즌을 치를수록 드러났다. 결국 주루센스 개선에 실패하며 대주자로서의 쓰임새도 애매한 무툴 선수로 남고 말았다.
또 한가지 문제는 최악의 외야 수비. 비슷한 롤이었던 이우민은 수비력이 걸출했기에 대주자로 출장하면 높은 확률로 중견수 수비를 들어갔지만, 나경민은 처참한 수비력 때문에 대주자로 쓰더라도 그 다음 수비수로 넣기 힘들다. 결국 엔트리 낭비가 심해지고 빡빡한 1군 로스터에서 자리를 주기 애매해진다. 최준석 문서에 서술되어 있는 것과 유사한 문제인데, 그래도 전성기 최준석은 타격이 리그 상위권이었기에 주전으로 쓸만했지만 나경민은 어느 한 분야에서도 제대로 보여준 게 없는 것이 문제다. 발은 빨라서 범위는 나름 넓지만 이를 제외한 전반적인 수비력은 매우 좋지 않다.
타격에서 장타력의 부재도 심각했다. 실제로 KBO 1군 데뷔 홈런이 초등학교 이후 첫 홈런이었을 정도이다.
- 미친개와 사직마라는 별명이 나오기 전까지는 불리는 별명이 딱히 없었다. 갱민(혹은 나갱)이라고 불렸거나 태국인 용병 정도. 또한, 데뷔 첫 홈런을 친 후에 나경민이 '손맛 지리네'라고 해서 나태공이라고 불릴 때도 아주 가끔 있었다. 하지만 본인이 인터뷰에서 사직의 미친 개가 되어보겠다는 발언 때문에 미친개로 별명이 굳어져버렸다. 뒤늦게 사직마로 불러달라고 정정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 좌투좌타지만 국수를 먹을 때 오른손으로 젓가락질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마 야구만 왼손으로 하는 듯. 4분부터
- 컴투스 프로야구 시리즈에서 라이센스 문제로 인해 나승민으로 가명처리되었다.
[1] 참고로 실제 성은 '라'씨라고 한다. 그래서 원래는 라씨로 하는게 맞지만 우리나라 행정상 공문서에 라씨를 나씨로 기록하던 관례로 학교다닐 때부터 성인된 이후까지 나씨로 계속 등록되어 와서 본인도 그냥 나씨로 살았다고 한다. 2007년 법이 개정되어 대법원이 호적예규 변경을 통해 두음 법칙을 적용하는 성씨(姓)에 예외를 둠에 따라 '라'씨로 정정신청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신청한 사람들이 있지만 실제로 신청할 때 아버지 호적까지 라씨로 바꿔야 하는 규정이 있어 행정상 복잡한 부분도 있고 하기에 대부분의 라씨들이 안 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2] 플레잉 코치.[3] ~6월 22일[4] 6월 23일~[가사1] 나나나 나나나~ 롯데 롯데 나경민~ 나나나 나나나~ 안타 안타 쌔리라~ x4[6] 송대관이 부른 해뜰날의 표절 시비가 붙었던 곡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발매연도 기준으로 해뜰날이 1975년, 이 노래가 1981년이다. 응원가의 톤 자체는 후자 쪽에 더 가깝다.[가사2] 나경민 안타~ 나경민 안타~ 롯데 승리 위하여~ x4[8] 박현승과 박종윤, 이우민, 이병규까지 썼던 유명한 그 응원가이다. 나경민이 잠시 이 응원가를 물려받아 사용했었지만 몇 경기 안쓰고 다시 쓰지 않았다.[9] 1991년생. 여담으로 가장 어린 선수는 역시 투수인 지역 라이벌 팀의 93년생 왕웨이중.[10] 1점차 1사 2, 3루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홈에서 승부를 볼 줄 알고 제대로 안 보고 3루로 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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