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랑구청장
최근 수정 시각:
총 7명[1]이 구청장직을 거쳐갔으며 민선 1·2·7기는 민주당에서, 3-6기는 보수정당에서 구청장직을 가져갔다. 민선 2기 정진택 전 구청장을 제외하면 모두 서울시 관료 출신으로, 민선 6기 나진구, 7·8기 류경기 구청장은 각 소속 정당에 소속된 서울시장 재임 시절 행정1부시장(차관급)까지 맡았다.
한나라당, 새누리당이 서울에서 각각 패배한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보수 정당 소속 구청장이 나왔으며, 특히 5회 지선 당시 구청장이었던 문병권 전 구청장이 '일을 잘했기 때문'에 뽑은 유권자들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여담으로, 문병권 전 구청장을 제외하고는 재선 도전 시 낙선한다는 징크스가 있는데[2], 이 징크스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 번 더 깨졌다.
여담으로 류경기 구청장은 오세훈 시장의 비서실장을 지내다가 오세훈 시장이 실각한 이후 박원순 전 시장에게 바로 넘어가 주요 요직을 거쳤기 때문에 철새 정치인으로 낙인찍혀 있다. 심지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하면서 박원순 전 시장의 사람으로 발탁을 할 때 논란[3]이 많았다.
한나라당, 새누리당이 서울에서 각각 패배한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보수 정당 소속 구청장이 나왔으며, 특히 5회 지선 당시 구청장이었던 문병권 전 구청장이 '일을 잘했기 때문'에 뽑은 유권자들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여담으로, 문병권 전 구청장을 제외하고는 재선 도전 시 낙선한다는 징크스가 있는데[2], 이 징크스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 번 더 깨졌다.
여담으로 류경기 구청장은 오세훈 시장의 비서실장을 지내다가 오세훈 시장이 실각한 이후 박원순 전 시장에게 바로 넘어가 주요 요직을 거쳤기 때문에 철새 정치인으로 낙인찍혀 있다. 심지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하면서 박원순 전 시장의 사람으로 발탁을 할 때 논란[3]이 많았다.
1988년 이전 현 중랑구 지역을 관리했던 사람에 대한 내용은 동대문구청 문서 참고하십시오.
- 국회의원, 시·도지사, 차관급 이상의 직을 역임한 구청장에게는 볼드체 표시함.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조동만 | 49,194 | 2위 |
24.66% | 낙선 | ||
2 | 90,675 | 1위 | |
45.46% | 당선 | ||
3 | 강병진 | 33,497 | 3위 |
16.79% | 낙선 | ||
4 | 김장수 | 6,675 | 5위 |
3.34% | 낙선 | ||
5 | 양재철 | 19,391 | 4위 |
9.72%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313,096 | 투표율 65.32% |
투표 수 | 204,539 | ||
무효표 수 | 5,107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62,691 | 2위 | |
47.47% | 낙선 | ||
2 | 69,693 | 1위 | |
52.52% | 당선 | ||
계 | 선거인 수 | 330,357 | 투표율 45.02% |
투표 수 | 148,759 | ||
무효표 수 | 16,075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69,291 | 1위 | |
49.68% | 당선 | ||
2 | 정진택 | 57,829 | 2위 |
41.46% | 낙선 | ||
3 | 강병진 | 12,354 | 3위 |
8.85%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328,660 | 투표율 43.04% |
투표 수 | 141,476 | ||
무효표 수 | 2,002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35,685 | 2위 | |
23.23% | 낙선 | ||
2 | 98,111 | 1위 | |
63.88% | 당선 | ||
3 | 19,773 | 3위 | |
12.87%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332,783 | 투표율 46.78% |
투표 수 | 155,681 | ||
무효표 수 | 2,112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82,611 | 1위 | |
50.15% | 당선 | ||
2 | 82,098 | 2위 | |
49.84%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343,810 | 투표율 50.10% |
투표 수 | 172,267 | ||
무효표 수 | 7,558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나진구(羅鎭求) | 88,990 | 1위 |
48.62% | 당선 | ||
2 | 85,221 | 2위 | |
46.56% | 낙선 | ||
4 | 박종수 | 8,802 | 3위 |
4.8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351,965 | 투표율 53.84% |
투표 수 | 189,516 | ||
무효표 수 | 6,503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류경기(柳炅基) | 93,147 | 1위 |
53.03% | 당선 | ||
2 | 나진구(羅鎭求) | 82,516 | 2위 |
46.97%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348,762 | 투표율 50.95% |
투표 수 | 177,697 | ||
무효표 수 | 2,034 |
중랑구는 민주당세가 다소 강한 지역이지만 중랑구청장만큼은 보수 정당 출신을 밀어줬던 지역이다. 실제로 문병권 전 중랑구청장이 한나라당 간판으로 3선을 지냈고, 나진구 후보를 새누리당 간판으로 민선 6기에 당선시켜줬다. 이는 둘 모두 구정 평가가 좋은 게 한몫했다.
하지만 나진구 후보가 중랑구청장 재임 시기 중랑코엑스를 필두로 상봉터미널 부지에 백화점을 짓겠다는 공약을 지키지 못했고 한철 장미축제만 본인의 구정 성과로 내세웠을 뿐더러, 같은 오세훈 서울시장 비서실장을 지낸 류경기 후보가 16년 만에 탈환해 민선 7기 더불어민주당 중랑구청장으로 일하면서 SH공사 신내동 유치에 성공하자 한번 더 밀어주자는 표심도 작동했다.
특히 나진구 후보가 지난 선거에서 낙선 후 중랑구를 떠나 이사를 간 점이 토론회에서 부각되며 공격 받게 되었고,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압승 흐름에서도 교차 투표로 류경기 후보가 민선 8기 중랑구청장에 당선됨으로써 재선에 성공했다. 이로써 류경기 후보는 나진구 후보와의 2번의 매치에서 2승으로 앞서게 되었다.
하지만 나진구 후보가 중랑구청장 재임 시기 중랑코엑스를 필두로 상봉터미널 부지에 백화점을 짓겠다는 공약을 지키지 못했고 한철 장미축제만 본인의 구정 성과로 내세웠을 뿐더러, 같은 오세훈 서울시장 비서실장을 지낸 류경기 후보가 16년 만에 탈환해 민선 7기 더불어민주당 중랑구청장으로 일하면서 SH공사 신내동 유치에 성공하자 한번 더 밀어주자는 표심도 작동했다.
특히 나진구 후보가 지난 선거에서 낙선 후 중랑구를 떠나 이사를 간 점이 토론회에서 부각되며 공격 받게 되었고,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압승 흐름에서도 교차 투표로 류경기 후보가 민선 8기 중랑구청장에 당선됨으로써 재선에 성공했다. 이로써 류경기 후보는 나진구 후보와의 2번의 매치에서 2승으로 앞서게 되었다.
[1] 관선 3명, 민선 5명. 관선과 민선을 모두 역임한 구청장 1명.[2] 이문재 전 구청장은 당적을 바꿔 출마했다가 낙선, 정진택 전 구청장은 국민의 정부 심판론으로 낙선, 나진구 전 구청장은 자유한국당의 실책과 '문풍'으로 인한 낙선.[3] 뷰앤뷰 2011년 기사(#)[4] 관선의 경우 임명 정부명 기재, 민선의 경우 당선 시 기준. 당적 변동 사항은 각주로 기재.[2~3급] 5.1 5.2 지방이사관(2급) 또는 지방부이사관(3급). 서울특별시 본청 국장급.[6] 국민의 정부.[15대] 경기 시흥시, 1999년 3월 재보궐선거, 새정치국민회의 연합 공천,
1995.9.
1998.5. 공천 불복으로 탈당,
1998.5. 입당.[14] 2000.1.20.
.[8] 이외에도 조순 시정 당시 서울특별시 행정1부시장을 역임했다.[9] 관선의 경우 임명 정부명 기재, 민선의 경우 당선 시 기준. 당적 변동 사항은 각주로 기재.[11] 민선 2·3기. .[2급] 지방이사관(2급) 상당 대우.[13] 1995.9. 신당 합류를 위한 탈당으로
무소속
1995.9.
입당
1998.5. 공천 불복으로 탈당,
무소속
1998.5. 입당.[14] 2000.1.20.
으로 흡수 합당.[15] 민선 1기. →
무소속
→[16] 2012.2.13.
으로 당명 변경.[17] 2017.2.13.
으로 당명 변경.[18] 오세훈 시정 1기.[19] 박원순 시정.[20] 임기는 2026.6.30.까지. 최대 2030.6.30.까지 연임 가능.[21] 2002 한일 월드컵 기간이었다.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