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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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좌의정(左議政)은 조선시대 의정부의 관직으로 품계는 정1품이고 관원의 자급(資級)은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이며 정원은 1인이다. 영경연사(領經筵事)와 감춘추관사(監春秋館事)를 겸한다. 좌상(左相)이라고도 하며 영의정, 우의정과 더불어 삼정승의 하나이다. 삼정승의 품계는 동일하지만 특배(特拜)가 아닐 경우 우의정 → 좌의정 → 영의정 순으로 승진한다.
유래는 고려 후기 원 간섭기에 문하시중이 둘로 나뉘어 변형된 첨의좌중찬(僉議左中贊)으로부터 조선 초기의 문하좌시중(門下左侍中), 좌정승(左政丞)에 이르는 일련의 관직들이다. 조선 초기에는 사실상 수상으로서 고려시대에 수상이 하던 역할을 그대로 이어받아 판이조사를 겸해 문관의 인사권을 담당하는 이조를 감독했다.
일반적으로 가장 서열이 높은 영의정의 권력이 제일 막강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명예직에서 유래한 영의정보다 고려시대의 시중에서 유래한 좌의정을 실질적인 실세로 여기기도 했다. 가령 정조가 좌의정 심환지한테 보낸 밀서를 보면 겉봉에 단규개탁(端揆開坼), 즉 단규가 열어보라라고 썼는데 여기서 단규는 뭇 조정 신하들을 관리하고 단속하는 자리, 즉 실권을 가진 좌의정을 뜻한다. 수상으로서의 영의정의 위상은 세종 연간(1418 ~ 1450)을 거치며 아주 천천히 형성된 것이며 그 이전까지만 해도 좌우 의정이 수상이었으며, 이는 태종 시기 최고 권신인 하륜이 좌정승으로서 수문전대제학(修文殿大提學)을 겸한 것이나 좌우 의정이 영집현전사(領集賢殿事)를 겸한 것, 삼정승의 품계가 모두 동일한 것에서 알 수 있다.
굳이 따지자면 영의정과 좌의정의 관계는 고려 말 잠깐 나타났던 문하시중과 문하수시중의 관계와 그나마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다. 판이조사라 하지만 육조의 이조, 호조, 예조의 관리를 감독한다. 그러나 좌의정 역시 병조, 형조, 공조의 관리에 영향을 행사하는 경우도 많았다. 오늘날로 보자면 백관이라는 국회의원급 관료들을 통솔하고 장관 총리급 인사청문회를 주도하고 직권상정하는 국회의장이면서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1]과 비슷하면서도 대통령제 국가에선 하원 의장, 이원집정부제의 내각 총리 겸 내무부 장관, 의원내각제에서는 제1 부총리 기재부 장관과 비슷하다. 또한 국회 행안위원장은 좌참찬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2]
유래는 고려 후기 원 간섭기에 문하시중이 둘로 나뉘어 변형된 첨의좌중찬(僉議左中贊)으로부터 조선 초기의 문하좌시중(門下左侍中), 좌정승(左政丞)에 이르는 일련의 관직들이다. 조선 초기에는 사실상 수상으로서 고려시대에 수상이 하던 역할을 그대로 이어받아 판이조사를 겸해 문관의 인사권을 담당하는 이조를 감독했다.
일반적으로 가장 서열이 높은 영의정의 권력이 제일 막강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명예직에서 유래한 영의정보다 고려시대의 시중에서 유래한 좌의정을 실질적인 실세로 여기기도 했다. 가령 정조가 좌의정 심환지한테 보낸 밀서를 보면 겉봉에 단규개탁(端揆開坼), 즉 단규가 열어보라라고 썼는데 여기서 단규는 뭇 조정 신하들을 관리하고 단속하는 자리, 즉 실권을 가진 좌의정을 뜻한다. 수상으로서의 영의정의 위상은 세종 연간(1418 ~ 1450)을 거치며 아주 천천히 형성된 것이며 그 이전까지만 해도 좌우 의정이 수상이었으며, 이는 태종 시기 최고 권신인 하륜이 좌정승으로서 수문전대제학(修文殿大提學)을 겸한 것이나 좌우 의정이 영집현전사(領集賢殿事)를 겸한 것, 삼정승의 품계가 모두 동일한 것에서 알 수 있다.
굳이 따지자면 영의정과 좌의정의 관계는 고려 말 잠깐 나타났던 문하시중과 문하수시중의 관계와 그나마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다. 판이조사라 하지만 육조의 이조, 호조, 예조의 관리를 감독한다. 그러나 좌의정 역시 병조, 형조, 공조의 관리에 영향을 행사하는 경우도 많았다. 오늘날로 보자면 백관이라는 국회의원급 관료들을 통솔하고 장관 총리급 인사청문회를 주도하고 직권상정하는 국회의장이면서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1]과 비슷하면서도 대통령제 국가에선 하원 의장, 이원집정부제의 내각 총리 겸 내무부 장관, 의원내각제에서는 제1 부총리 기재부 장관과 비슷하다. 또한 국회 행안위원장은 좌참찬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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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윤덕: 4군을 개척함, 무관으로 최정상에 오른 케이스.
- 한확: 수양대군의 사돈이자 인수대비의 아버지.
- 이사철: 세조 때의 공신.
- 권람: 세조에게 한명회를 추천하고 계유정난을 모의.
- 정창손: 단종이 죽을 때 강력하게 사약을 주청함.
- 한치형: 무오사화 때 좌의정으로서 사화를 주관.
- 이극균: 갑자사화 때 연산군의 주요 타깃이 됨.
- 허침: 연산군에게 충언을 함.
- 정괄: 공신 정창손의 아들.
- 김응기: 중종반정 이후 요직을 거쳐서 좌의정에 오름.
- 김안로: 조선사 최강의 권신 중 하나.
- 성세창: 명종 초반기 공신 자제이자 대윤 계열 대신.
- 유홍: 임진왜란의 혼란을 수습하는 데 공을 세운 인물임.
- 김응남: 임진왜란의 혼란을 수습하는 데 공을 세웠지만, 이순신을 모함하기도 했음.
- 정탁: 임진왜란의 혼란을 수습하는 데 일등공신이며, 누명을 쓴 이순신을 구명한 정승임.
- 이헌국: 임진왜란의 혼란을 수습하는 데 일등공신임.
- 류영경: 좌의정 시절에 영의정 윤승훈을 탄핵했음.
- 허욱: 임진왜란 때 전쟁영웅이며, 선조의 고명대신임.
- 기자헌: 좌의정으로 있을 때 광해군을 강력하게 지지했음.
- 정인홍: 대북 핵심으로 좌의정일 때 정국을 주도함.
- 한효순: 광해군 때 폐모론을 주장함.
- 민몽룡: 역시 광해군 때 폐모론을 주장함.
- 박승종: 광해군 때 3창 중 하나로 허균의 처형을 주도함.
- 박홍구: 북인의 거물이자 영수이며 광해군 때의 마지막 좌의정이었음. 이괄의 난 때 사사됨.
- 심기원: 인조반정 공신으로 좌의정 겸 수어사가 되어 권력을 누리다가 김자점의 모함으로 역모죄로 몰려 죽음.
- 김상헌: 척화파의 대표주자.
- 김자점: 인조 말기 민회빈 강씨의 사사를 강력히 주청할 당시 좌의정.
- 구인후: 인조반정 공신으로 무관 출신.
- 허적: 서인이 영의정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 한 때 좌의정에 있었다.
- 송시열: 서인의 영수.
- 정지화: 서인 계열.
- 정치화: 서인 계열. 영의정 정태화의 동생.
- 권대운: 남인 1차집권기에 좌의정으로 권력실세였고, 상평통보를 주조하는 데 공을 세움.
- 목내선: 남인 계열. 탁남으로 기사환국(己巳換局)때 좌의정에 있었다.
- 민정중: 숙종의 처숙부이자 인현왕후의 숙부.
- 이단하: 송시열의 수제자로, 강력하게 노론의 입장을 대변했음.
- 박종훈: 본관은 반남으로 서예와 시문에 뛰어났다고 한다.
- 박회수: 본관은 반남이며 기회 있을 때마다 무능한 관리를 제거하고 임금의 향락을 경계하였다.
- 서종태: 노론 대신이며, 당색이 옅지만 소론이 영의정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 좌의정에 있었다.
- 김창집: 노론 4대신이며 소론인 최석정이 영의정에 있을 때 좌의정 자리에 있었다.
- 이이명: 노론 4대신.
- 이건명: 노론 4대신.
- 최석항: 경종 때 소론의 거두.
- 이관명: 노론 선봉.
- 홍치중: 탕평책을 주선함.
- 이태좌: 소론 선봉.
- 정휘량: 화완옹주의 인척이다.
- 홍봉한: 좌의정일 때 정국을 주도함.
- 홍인한: 홍봉한의 동생.
- 채제공: 좌의정으로 있을 때 독상 체제로 정조를 보필하며 정국을 주도함.
- 유언호: 정조 때의 노론 계열.
- 김이소: 안동 김씨 세도 정치의 시초.
우의정(右議政)은 조선시대 의정부의 관직으로 품계는 정1품이고 관원의 자급은 대광보국숭록대부이며 정원은 1인이다. 영경연사와 감춘추관사를 겸한다. 우상(右相)이라고도 하며 삼정승 중 세 번째에 해당한다.
유래는 고려 후기 원 간섭기에 문하시중이 둘로 나뉘어 변형된 첨의우중찬(僉議右中贊)으로부터 조선 초기의 문하우시중(門下右侍中), 우정승(右政丞)에 이르는 일련의 관직들이다. 조선 초기에는 고려시대에 수상 다음의 아상(亞相)이 하던 역할을 이어받아 판병조사로서 무관 인사와 병권을 담당한 병조 업무에 개입했다 판병조사라 하지만 병조, 형조, 공조의 업무에 대해 관리하고 감독한다. 다만 우의정 역시 이조, 호조, 예조의 업무에 대해 관리하고 감독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날로 보자면 대법원장의 위상을 가지고 헌법재판소장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의 위상도 가지면서 국회 내 국방위원회의 위원장을 겸직한거라 볼 수 있으면서 이원집정부제 국가에선 총리 겸 국방부 장관 또는 법무부 장관을 겸직한거라 볼 수 있다.
왜 대법원장으로 보냐면 삼정승은 정1품 총리급이다. 우리나라로 보자면 대표적인 총리급은 국무총리, 국회의장, 대법원장으로 볼 수 있는데 우의정은 판병조사를 겸직하고 있어 의금부나 포도청이나 형조가 죄인을 추국하거나 체포하거나 전옥서의 감독 할 때 병조의 군사를 써야 하고 관리와 감독을 받아야한다. 이것을 현대로 보면 검찰이나 경찰과 대한민국 법무부나 국정원이 영장 발행이나 구속기간 연장등 피의자의 신변을 다룰때 사법부의 발부요건에 따라야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며 병력 역시 교정기관병력이나 경찰병력이나 군병력을 써야 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판병조사는 국회의 국방위원회와 비슷하다 하였는데 병조인 국방부를 감독하고 감시하는 역할과 고위 무관의 인사추천권과 장성급 인사청문회 주최와 보고 작성 검토와 질의를 보자면 국회의 국방위원회 위원장과 비슷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의정이 겸한 판병조사는 위에 같고 비변사 제조는 국가안보실장이라 할 수 있고 병조판서는 대한민국 국방부장관과 위상이 비슷하다 할 수 있다. 또한 국회 국방위원장은 우참찬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실제로 보면 우참찬은 국무조정실장 겸 정무위원회 위원장과 비슷하기도 하다.
유래는 고려 후기 원 간섭기에 문하시중이 둘로 나뉘어 변형된 첨의우중찬(僉議右中贊)으로부터 조선 초기의 문하우시중(門下右侍中), 우정승(右政丞)에 이르는 일련의 관직들이다. 조선 초기에는 고려시대에 수상 다음의 아상(亞相)이 하던 역할을 이어받아 판병조사로서 무관 인사와 병권을 담당한 병조 업무에 개입했다 판병조사라 하지만 병조, 형조, 공조의 업무에 대해 관리하고 감독한다. 다만 우의정 역시 이조, 호조, 예조의 업무에 대해 관리하고 감독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날로 보자면 대법원장의 위상을 가지고 헌법재판소장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의 위상도 가지면서 국회 내 국방위원회의 위원장을 겸직한거라 볼 수 있으면서 이원집정부제 국가에선 총리 겸 국방부 장관 또는 법무부 장관을 겸직한거라 볼 수 있다.
왜 대법원장으로 보냐면 삼정승은 정1품 총리급이다. 우리나라로 보자면 대표적인 총리급은 국무총리, 국회의장, 대법원장으로 볼 수 있는데 우의정은 판병조사를 겸직하고 있어 의금부나 포도청이나 형조가 죄인을 추국하거나 체포하거나 전옥서의 감독 할 때 병조의 군사를 써야 하고 관리와 감독을 받아야한다. 이것을 현대로 보면 검찰이나 경찰과 대한민국 법무부나 국정원이 영장 발행이나 구속기간 연장등 피의자의 신변을 다룰때 사법부의 발부요건에 따라야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며 병력 역시 교정기관병력이나 경찰병력이나 군병력을 써야 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판병조사는 국회의 국방위원회와 비슷하다 하였는데 병조인 국방부를 감독하고 감시하는 역할과 고위 무관의 인사추천권과 장성급 인사청문회 주최와 보고 작성 검토와 질의를 보자면 국회의 국방위원회 위원장과 비슷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의정이 겸한 판병조사는 위에 같고 비변사 제조는 국가안보실장이라 할 수 있고 병조판서는 대한민국 국방부장관과 위상이 비슷하다 할 수 있다. 또한 국회 국방위원장은 우참찬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실제로 보면 우참찬은 국무조정실장 겸 정무위원회 위원장과 비슷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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