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순(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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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
사망 | |
문헌(文獻) | |
원칠(元七) | |
심암(心菴) | |
부모 |
1816년(순조 16년)에 진사(進士)가 되고 1826년(순조 26년)에 황감제시(黃柑製試)[3]에 장원 급제했다. 이어 같은 해 4월에 열린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규장각대교로 선발되었다.
1849년에 예문관 대제학이 되어 헌종실록 편찬을 주관했다. 1850년 철종의 생부인 전계대원군의 신도비문을 지었으며, 병조판서가 되었다. 1851년 동문휘고(同文彙考)[4] 편찬을 담당했다.
고종이 즉위하고 초반에 흥선대원군이 실권을 잡자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그리하여 흥선대원군의 복고적 개혁 정치의 일환인 경복궁 중건, 삼군부 설치, 대전회통 편찬 등을 담당했다. 1866년에 은퇴하고 기로소에 들어갔다. 1870년에 사망했고, 문헌(文獻)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1849년에 예문관 대제학이 되어 헌종실록 편찬을 주관했다. 1850년 철종의 생부인 전계대원군의 신도비문을 지었으며, 병조판서가 되었다. 1851년 동문휘고(同文彙考)[4] 편찬을 담당했다.
고종이 즉위하고 초반에 흥선대원군이 실권을 잡자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그리하여 흥선대원군의 복고적 개혁 정치의 일환인 경복궁 중건, 삼군부 설치, 대전회통 편찬 등을 담당했다. 1866년에 은퇴하고 기로소에 들어갔다. 1870년에 사망했고, 문헌(文獻)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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