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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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회숙, 유회신 형제의 모친은 조씨(趙氏)로 무제 유유의 모친인 효목황후 조안종의 일족이며, 유회신은 유유의 이종사촌이 된다.
유회신은 처음에 진군장군 유유의 참군사를 맡았고 진위장군, 팽성 내사를 역임하였다. 선비를 정벌할 때 종군하여 선두에 섰고 석두에서 노순을 격파하여 보국장군이 더해졌다.
412년, 감북서주제군사를 맡고 팽성에 주둔했으며, 이윽고 서주 자사가 더해졌다. 413년, 망명한 왕령수(王靈秀)가 반란을 일으키자, 유회신은 왕령수를 토벌해 평정하였다. 415년에는 북중랑장으로 승진하고 남성현남(南城縣男)으로 책봉되었다.
417년, 유유가 후진을 정벌할 때 중령군(中領軍), 정로장군(征虜將軍)으로 임명되어 수도를 방어하였다. 뒤에 내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으로 인해 면직되었다. 이후 오병상서(五兵尙書)로 임명되고 독강북회남제군사(督江北淮南諸軍事), 전장군(前將軍), 남청주(南靑州) 자사로 임명되었다. 뒤이어 탁지상서(度支尙書), 산기상시(散騎常侍)가 더해졌다. 유회신은 독북서연청회북제군사(督北徐兗靑淮北諸軍事), 중군장군(中軍將軍), 서주 자사를 맡았다가 망명한 이들을 광릉성으로 들인 것으로 인해 정로장군(征虜將軍)으로 강등되었다.
420년, 작위가 후로 올라가고 평북장군(平北將軍)으로 승진하였다. 뒤이어 오병상서로 임명되고 산기상시, 광록대부(光祿大夫)가 더해졌으며, 423년에는 호군장군이 되었고 424년에 사망하여 무군장군으로 추증되었다.
유회신은 처음에 진군장군 유유의 참군사를 맡았고 진위장군, 팽성 내사를 역임하였다. 선비를 정벌할 때 종군하여 선두에 섰고 석두에서 노순을 격파하여 보국장군이 더해졌다.
412년, 감북서주제군사를 맡고 팽성에 주둔했으며, 이윽고 서주 자사가 더해졌다. 413년, 망명한 왕령수(王靈秀)가 반란을 일으키자, 유회신은 왕령수를 토벌해 평정하였다. 415년에는 북중랑장으로 승진하고 남성현남(南城縣男)으로 책봉되었다.
417년, 유유가 후진을 정벌할 때 중령군(中領軍), 정로장군(征虜將軍)으로 임명되어 수도를 방어하였다. 뒤에 내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으로 인해 면직되었다. 이후 오병상서(五兵尙書)로 임명되고 독강북회남제군사(督江北淮南諸軍事), 전장군(前將軍), 남청주(南靑州) 자사로 임명되었다. 뒤이어 탁지상서(度支尙書), 산기상시(散騎常侍)가 더해졌다. 유회신은 독북서연청회북제군사(督北徐兗靑淮北諸軍事), 중군장군(中軍將軍), 서주 자사를 맡았다가 망명한 이들을 광릉성으로 들인 것으로 인해 정로장군(征虜將軍)으로 강등되었다.
420년, 작위가 후로 올라가고 평북장군(平北將軍)으로 승진하였다. 뒤이어 오병상서로 임명되고 산기상시, 광록대부(光祿大夫)가 더해졌으며, 423년에는 호군장군이 되었고 424년에 사망하여 무군장군으로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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