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숙(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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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무, 진번 등과 함께 삼군(三君)으로 불린 인물로 오경에 정통해 은거하면서 사람들을 가르쳐 수백 명이 모여들였다고 한다. 주군과 5부에서 추천되었지만 관직에 오르지 않고 154년에 환제가 억지로 가마를 태워 수도에 오게 했으며, 조정에 출사해 의랑이 된다.
이후 상서, 시중, 호분중랑장을 거쳤다가 환관들을 등용하지 말라고 상소를 올렸지만 환제는 이를 듣지 않으면서도 종실의 현명한 인물로 공경받았기 때문에 처벌하지 않았으며, 환제가 붕어해 두무가 후사를 세울 일을 논의하자 유굉을 칭찬하면서 추천했다. 영제가 즉위하자 수광록대부를 지내고 있다가 두무가 환관을 일소하려고 시도하면서 계책을 정하자 두무에게서 지절을 받아 좌우 우림군을 이끌고 가서 하간에 이르러 맞이하게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두무의 계획이 발각되면서 역습을 받고 패배하자 유숙은 상서였던 위랑과 함께 두무와 내왕한 것 때문에 투옥되었다가 자살했다.
이후 상서, 시중, 호분중랑장을 거쳤다가 환관들을 등용하지 말라고 상소를 올렸지만 환제는 이를 듣지 않으면서도 종실의 현명한 인물로 공경받았기 때문에 처벌하지 않았으며, 환제가 붕어해 두무가 후사를 세울 일을 논의하자 유굉을 칭찬하면서 추천했다. 영제가 즉위하자 수광록대부를 지내고 있다가 두무가 환관을 일소하려고 시도하면서 계책을 정하자 두무에게서 지절을 받아 좌우 우림군을 이끌고 가서 하간에 이르러 맞이하게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두무의 계획이 발각되면서 역습을 받고 패배하자 유숙은 상서였던 위랑과 함께 두무와 내왕한 것 때문에 투옥되었다가 자살했다.
[1] 劉稱, 사예교위를 지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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