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클럽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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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클럽맨에서 넘어옴
분류
One Club Player
스포츠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오직 한 클럽에서 보낸 사람을 일컫는 말. 원클럽맨(One Club man)이라는 말도 자주 사용되며 특히 한국에서는 '플레이어'라는 말보다 훨씬 자주 사용된다. 팀을 많이 옮겨다니는 경우는 저니맨이라고 한다.
선수라면 돈이나 명성을 따라 팀을 옮기는게 예삿일이 되어버리고 클럽의 부익부 빈익빈 추세가 짙어지는 현대에 와선 이적설도 흔한 뉴스가 되어버린 현 세태와 다르게 오직 한 클럽에게만 충성하여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건 드문 일이다. 선수로서의 충성심과 은퇴까지도 팀에 기여할 수 있는 실력 유지와 더불어 클럽 입장에서도 레전드를 향한 대우 및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안정적인 경영[1] 여러 요소들이 맞물려야만 이룩할 수 있는 경지로서, 선수생활 전체를 통틀어 희귀한 태그나 다름없고 돈과 개인적 명예를 좇는 이적이 난무하는 세태 속에서도 충성과 의리를 지켜낸다는 의미에서 낭만의 영역으로도 불린다.
프랜차이즈 스타와는 개념이 좀 다른데, 한 클럽에서 오랫동안 활약하며 발자취를 남긴 선수라는 점은 비슷하지만, 원클럽맨은 한 번도 이적 없이 데뷔부터 은퇴까지 한 클럽에서만 선수생활을 해야 성립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스포츠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오직 한 클럽에서 보낸 사람을 일컫는 말. 원클럽맨(One Club man)이라는 말도 자주 사용되며 특히 한국에서는 '플레이어'라는 말보다 훨씬 자주 사용된다. 팀을 많이 옮겨다니는 경우는 저니맨이라고 한다.
선수라면 돈이나 명성을 따라 팀을 옮기는게 예삿일이 되어버리고 클럽의 부익부 빈익빈 추세가 짙어지는 현대에 와선 이적설도 흔한 뉴스가 되어버린 현 세태와 다르게 오직 한 클럽에게만 충성하여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건 드문 일이다. 선수로서의 충성심과 은퇴까지도 팀에 기여할 수 있는 실력 유지와 더불어 클럽 입장에서도 레전드를 향한 대우 및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안정적인 경영[1] 여러 요소들이 맞물려야만 이룩할 수 있는 경지로서, 선수생활 전체를 통틀어 희귀한 태그나 다름없고 돈과 개인적 명예를 좇는 이적이 난무하는 세태 속에서도 충성과 의리를 지켜낸다는 의미에서 낭만의 영역으로도 불린다.
프랜차이즈 스타와는 개념이 좀 다른데, 한 클럽에서 오랫동안 활약하며 발자취를 남긴 선수라는 점은 비슷하지만, 원클럽맨은 한 번도 이적 없이 데뷔부터 은퇴까지 한 클럽에서만 선수생활을 해야 성립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원 클럽 플레이어는 한 클럽에서만 오랜 시간을 보내므로 자연히 그 클럽의 상징이 되거나 주장을 맡는 일이 많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선수 항목에서도 보이듯 한 팀에만 머문다고 팬들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다고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2] 프로는 당연히 성적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뛰어난 실력을 기본으로 갖추고 팀에 대한 헌신과 사랑이 엿보일 때 팬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원 클럽 플레이어는 대개 본래 실력에 비해 저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팀이 암흑기에 접어들면 이적해버리는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팀의 암흑기까지 함께하기 때문이다.
축구에서 원 클럽 플레이어는 유스서부터 시작해 프로 은퇴 때까지 모두 한 클럽에서 뛰는 것이 원칙이지만, 전세계의 축구선수들이 몰려오는 유럽 빅리그의 특성상 유스는 다른 클럽에서 뛰더라도 자국 리그의 A팀 데뷔 이후 한 팀에서 쭉 뛴다면 원 클럽 플레이어로 인정해주는 편이며 임대로 잠시 다른 팀 가서 뛴 선수들도 인정해주는 게 보통이다. 은퇴 후 아마추어 팀이나 세미프로에서 뛰는 것도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는 편. 보통 원 클럽 플레이어의 경우 최소 진골 취급은 해준다.[3] 또한 실업 야구나 독립 리그 경력이 있어도 프로에서 한 팀에서 뛰었다면 원 클럽 플레이어로 인정하는 추세이며, 해외 진출 경력이 있어도 국내에서 한 팀에서만 오래 뛰었다면 인정해 준다. 한국에서 축구는 해외진출이 더 출세한 것으로 간주되므로 이런 경우는 드물고 농구는 해외진출 자체가 어려우므로 주로 야구에서 이런 케이스들이 나온다.
선수 커리어의 초년부터 특정 팀에만 머물러야만 하는 조건이기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리버풀 FC, 바이에른 뮌헨 처럼 유스 시스템이 발달한 클럽에 유독 집약되어있는 편이다. 반대로 선수 매매가 활발한 AFC 아약스, FC 포르투 등 셀링 클럽이나 자금력으로 선수 영입에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첼시 FC, 맨체스터 시티 FC, 파리 생제르맹 FC 등의 부자 구단들은 원클럽맨이 비교적 드문 편이다. 다만 현대로 올수록 빅클럽들은 이적시장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며 외부 영입을 가져가고 그만큼 유스 자체 승격 사례가 줄어들어서 팀을 막론하고 장기 근속하는 원 클럽 맨은 쉽사리 보기 힘들어졌다.
로컬 보이와 더불어 은퇴 이후에 해당 팀의 감독이 되기 쉬운 케이스이기도 하다. 특히 NPB의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선수 생활은 물론, 코칭 스태프 커리어까지도 오로지 요미우리에서만 보낸 선수만을 감독으로 선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4] 대다수의 남성 선수가 상무팀에 입단해 18개월간 병역 의무를 치러야 하는 관계로 순도 100%의 원클럽맨이 나오긴 힘든 환경이다.[5] 때문에 상무팀 이적은 원클럽맨 결격 사유로 치지 않는 것이 보통이며 아래 목록의 원클럽맨 K리거 또한 대개 이런 케이스다.[6]
원 클럽 플레이어는 대개 본래 실력에 비해 저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팀이 암흑기에 접어들면 이적해버리는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팀의 암흑기까지 함께하기 때문이다.
축구에서 원 클럽 플레이어는 유스서부터 시작해 프로 은퇴 때까지 모두 한 클럽에서 뛰는 것이 원칙이지만, 전세계의 축구선수들이 몰려오는 유럽 빅리그의 특성상 유스는 다른 클럽에서 뛰더라도 자국 리그의 A팀 데뷔 이후 한 팀에서 쭉 뛴다면 원 클럽 플레이어로 인정해주는 편이며 임대로 잠시 다른 팀 가서 뛴 선수들도 인정해주는 게 보통이다. 은퇴 후 아마추어 팀이나 세미프로에서 뛰는 것도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는 편. 보통 원 클럽 플레이어의 경우 최소 진골 취급은 해준다.[3] 또한 실업 야구나 독립 리그 경력이 있어도 프로에서 한 팀에서 뛰었다면 원 클럽 플레이어로 인정하는 추세이며, 해외 진출 경력이 있어도 국내에서 한 팀에서만 오래 뛰었다면 인정해 준다. 한국에서 축구는 해외진출이 더 출세한 것으로 간주되므로 이런 경우는 드물고 농구는 해외진출 자체가 어려우므로 주로 야구에서 이런 케이스들이 나온다.
선수 커리어의 초년부터 특정 팀에만 머물러야만 하는 조건이기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리버풀 FC, 바이에른 뮌헨 처럼 유스 시스템이 발달한 클럽에 유독 집약되어있는 편이다. 반대로 선수 매매가 활발한 AFC 아약스, FC 포르투 등 셀링 클럽이나 자금력으로 선수 영입에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첼시 FC, 맨체스터 시티 FC, 파리 생제르맹 FC 등의 부자 구단들은 원클럽맨이 비교적 드문 편이다. 다만 현대로 올수록 빅클럽들은 이적시장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며 외부 영입을 가져가고 그만큼 유스 자체 승격 사례가 줄어들어서 팀을 막론하고 장기 근속하는 원 클럽 맨은 쉽사리 보기 힘들어졌다.
로컬 보이와 더불어 은퇴 이후에 해당 팀의 감독이 되기 쉬운 케이스이기도 하다. 특히 NPB의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선수 생활은 물론, 코칭 스태프 커리어까지도 오로지 요미우리에서만 보낸 선수만을 감독으로 선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4] 대다수의 남성 선수가 상무팀에 입단해 18개월간 병역 의무를 치러야 하는 관계로 순도 100%의 원클럽맨이 나오긴 힘든 환경이다.[5] 때문에 상무팀 이적은 원클럽맨 결격 사유로 치지 않는 것이 보통이며 아래 목록의 원클럽맨 K리거 또한 대개 이런 케이스다.[6]
※ 기준은 10년 이상으로, 한국인의 경우 군복무를 위해 군경팀이나 하부 리그팀에 소속되어 있었던 기간은 비고란에 별도로 기록하도록 하며 원 클럽 기간은 유지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름 | 클럽 | 입단 | 은퇴 | 비고 |
1903 | 1928 | 커리어 중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5년의 공백이 있음 | ||
1908 | 1928 | 1군 선수, 감독 모두 CA 페냐롤에서만 활동. | ||
1910 | 1925 |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4년 간의 공백기가 있음. | ||
1910 | 1920 | |||
1910 | 1922 | |||
피치치(라파엘 모레노 아란사디) | 1911 | 1922 | ||
1912 | 1923 | |||
1912 | 1931 | |||
라 크루스 | 1916 | 1933 | ||
1916 | 1933 | |||
후안 몬하르딘 | 1918 | 1929 | ||
1919 | 1933 | |||
1919 | 1933 | |||
1921 | 1934 | |||
1922 | 1940 | |||
1922 | 1938 | |||
펠릭스 케사다 | 1922 | 1936 | ||
코닝클러크 HFC | 1922 | 1935 | 나치 부역 혐의로 프랜차이즈 선수 대접은 불가능함. | |
1923 | 1939 | |||
1923 | 1937 | |||
1923 | 1950 | |||
1923 | 1940 | |||
1923 | 1939 | |||
1923 | 1946 | |||
1924 | 1936 | |||
1924 | 1936 | |||
1924 | 1936 | |||
로열 다링 클럽 몰런베이크 | 1924 | 1942 | ||
IK 슬레이프네르 | 1924 | 1940 | ||
1925 | 1938 | |||
1925 | 1940 | |||
1925 | 1938 | |||
1925 | 1941 | |||
1925 | 1939 | |||
1925 | 1949 | |||
GAIS | 1926 | 1937 | ||
AKS 호주프 | 1926? | 1947 | 1군팀 데뷔 연도에 관한 정확한 기록이 없다. | |
1926 | 1937 | |||
1926 | 1942 | |||
1926 | 1939 | |||
1926 | 1944 | |||
DHC | 1926 | 1938 | ||
1926 | 1936 | |||
1927 | 1946 | |||
1927 | 1938 | |||
1927 | 1940 | |||
1927 | 1940 | |||
1927 | 1941 | |||
1928 | 1947 | |||
아인트라흐트 뒤스부르크 1848 | 1928 | 1948 | ||
1928 | 1940 | |||
1928 | 1940 | |||
RC 루베 | 1928 | 1938 | ||
TSV 롱가 틸뷔르흐 | 1928 | 1946 | ||
1929 | 1939 | |||
1929 | 1947 | |||
1929 | 1939 | |||
1929 | 1939 | |||
1929 | 1946 | |||
1929 | 1948 | |||
1930 | 1943 | |||
1930 | 1952 | |||
1930 | 1940 | |||
1930 | 1942 | |||
1930 | 1948 | |||
1930 | 1944 | |||
1930 | 1940 | |||
1930 | 1949 | |||
1930 | 1941 | |||
1930 | 1953 | |||
1930 | 1949 | |||
1931 | 1951 | |||
1931 | 1947 | |||
1931 | 1947 | |||
1932 | 1948 | |||
1932 | 1949 | |||
1933 | 1946 | |||
1933 | 1945 | |||
1934 | 1953 | |||
1934 | 1945 | |||
1934 | 1950 | |||
베 카위크 1887 | 1934 | 1949 | ||
1935 | 1955 | |||
1935 | 1947 | |||
1935 | 1956 | |||
1937 | 1955 | |||
1937 | 1949 | |||
1937 | 1955 | |||
1937 | 1949 | |||
1937 | 1959 | |||
KFC | 1937 | 1954 | ||
1938 | 1956 | |||
1938 | 1960 | |||
1938 | 1955 | |||
1939 | 1954 | |||
1939 | 1954 | |||
1939 | 1959 | |||
1939 | 1960 | |||
1939 | 1954 | |||
1940 | 1955 | |||
1942 | 1952 | |||
1943 | 1960 | |||
1943 | 1954 | |||
1943 | 1962 | |||
1944 | 1956 | |||
1944 | 1960 | |||
1944 | 1956 | |||
냇 로프트하우스 | 1946 | 1960 |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이상 가는 이 분야의 끝판왕이자 알파이자 오메가 출생부터 유소년 선수, 1군 선수, 코치, 감독, 스카우트, 회장 등 생애와 경력 모두 볼턴에서만 활동. | |
1946 | 1958 | |||
1946 | 1958 | |||
1946 | 1958 | |||
1946 | 1958 | |||
1946 | 1961 | 은퇴 직후부터 구단 프런트직을 맡았으며 1971년부터 1990년까지 유벤투스의 회장직을 역임함. 사망시까지 명예회장 역임. | ||
1946 | 1965 | |||
1947 | 1962 | |||
1948 | 1964 | |||
1948 | 1961 | |||
1950 | 1970 | |||
1952 | 1968 | 은퇴하기 2년 전(1966년)부터 플레잉 코치를 겸했으며, 은퇴 후에도 1998년까지 계속 리버풀 코치로 재직함. | ||
1953 | 1972 | 분데스리가 첫 득점왕. | ||
1954 | 1971 |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에서 우승을 차지한 잉글랜드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한명. | ||
1956 | 1970 | |||
1956 | 1973 | |||
1958 | 1974 | |||
1960 | 1978 | |||
1961 | 1974 | |||
1961 | 1977 | |||
1961 | 1977 | |||
1962 | 1977 | |||
1962 | 1979 | |||
라몬 그로소 | 1964 | 1976 | ||
1965 | 1979 | |||
1966 | 1981 | |||
1969 | 1987 | |||
1971 | 1985 | |||
1972 | 1991 | |||
1972 | 1985 | 1984-85시즌은 2군 소속 | ||
1974 | 1989 | |||
1975 | 1985 | |||
1975 | 1986 | 1976~1979 기간은 상무 축구단 소속 | ||
1976 | 1991 | |||
1977 | 1998 | 2022년 기준 사우디 축구 국가대표팀 최다 득점자 | ||
1977 | 1997 | 은퇴 직후 브랜드 앰배서더로 활동하고 있으며 6년간 유스 팀 감독을 역임함. | ||
1977 | 1995 | |||
1979 | 1999 | |||
1980 | 1992 | |||
1981 | 1991 | |||
1981 | 1998 | 로컬 보이 출신으로 주장이 되자마자 24년만의 DFB-포칼 우승을 구단에게 안겨주었고, 첫 분데스리가 우승과 2연패를 견인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수 생활 말년에 UEFA 챔피언스 리그까지 우승을 거두면서 구단의 최전성기를 함께하였다. 은퇴 직후부터 선수단 단장 역임 하여 암흑기를 함께하다가 위르겐 클롭과 함께 다시 구단을 분데스리가 제패에 성공하였고 16년만에 구단이 챔스 결승에 진출하면서 다시 유럽의 강자로 도약하는데 공을 세운다. | ||
1982 | 1999 | |||
1982 | 1998 | |||
1983 | 1996 | |||
1983 | 1989 | |||
1983 | 1991 | |||
1983 | 1992 | |||
1983 | 2001 | |||
1983 | 2002 | |||
1984 | 1991 | |||
1984 | 1992[10] | |||
1984 | 2009 | 소속 팀 영구결번,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스포츠전략개발 디렉터 역임.[11] | ||
에리크 시코라 | 1985 | 2004 | 유스 시절을 포함하면 12세였던 1980년부터 3년의 공백기를 제외한 현재까지 약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팀을 위해 헌신해온 인물이다. 현재 랭스 U19 감독. | |
1986 | 1991 | |||
1986 | 1995 | |||
1987 | 1998 | |||
1988 | 2001 | |||
1988 | 1995 | |||
1988 | 2000 | 은퇴 후 선수단장 역임중 | ||
1989 | 2002 | |||
1989 | 1994 | |||
1990 | 2015 | |||
1990 | 1999 | |||
1990 | 1999 | |||
1990 | 2000 | 선수생활과 코치,감독생활을 오직 한국철도에서 한 한국철도의 레전드 | ||
1990 | 2014 | |||
1990 | 2001 | 은퇴 후 코치, 수석코치를 거쳐 감독 역임중 | ||
1991 | 2000[15] | |||
1991 | 2001 | |||
1991 | 2008 | |||
1992 | 2006 | |||
1992 | 2011 | |||
1992 | 2011 | |||
1992 | 2017 | 은퇴 직후 2019년까지 팀 디렉터 역임. | ||
1993 | 2016 | |||
1993 | 1998 | |||
1994 | 2013 | |||
1994 | 2013 | |||
1996 | 2007 | |||
1996 | 2007 | |||
1997 | 2018 | 은퇴 후 골키퍼 코치 역임중 | ||
1998 | 2016 | 은퇴 후 현재 아탈란타의 U17 팀 코치를 맡고 있다 | ||
1999 | 2014 | |||
1998 | 2012 | |||
1999 | 2012 | |||
1999 | 2014 | |||
2000 | 2016 | |||
2002 | 2016 | |||
2003 | 2020 | |||
2003 | 2021 | 리저브 팀 소속 기간 포함 시 2001년 입단 | ||
2003 | 현역 | |||
2003 | 2014 | 2008~2009 상주 상무 소속. | ||
2003 | 2018 | |||
2003 | 2019 | |||
2003 | 2020 | |||
2004 | 2017 | |||
2004 | 2023 | |||
2004 | 현역 | |||
2004 | 2022 | 5대 리그[18] 최장 기간 원 클럽 플레이어 | ||
2005 | 2018 | |||
2005 | 2016 | |||
2006 | 2020 | |||
2006 | 2018 | |||
2006 | 현역 | 군 복무를 위한 상주 상무 시절만 제외 | ||
2007 | 2024 | |||
2008 | 2021 | |||
2008 | 2022 | |||
2008 | 현역 | |||
2008 | 현역 | |||
2009 | 현역 | |||
2009 | 현역 | |||
2009 | 현역 | |||
2009 | 현역 | |||
2010 | 현역 | |||
2010 | 현역 | |||
2011 | 현역 | |||
2012 | 현역 | 군복무를 위한 아산 무궁화 시절만 제외 | ||
2012 | 현역 | |||
2013 | 현역 | |||
2013 | 현역 | |||
2014 | 2024 | 음주운전으로 인한 방출 | ||
2014 | 현역 | |||
2014 | 현역 | |||
2014 | 현역 | 군복무를 위한 아산 무궁화 시절만 제외 |
- 가비노 소사 - 잠시 군대 문제를 제외하면 모든 커리어를 센트랄 코르도바에서 보냈다. 지금까지도 유일한 센트랄 코르도바의 국대급 선수이다.
- 게르트 뮐러 - FC 바이에른 뮌헨, TSV 1861 뇌르들링겐으로 데뷔한 뒤 1964년부터 1979년까지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었다. 1979년에 포트로더레일 스트라이커즈로 이적했다.
- 곽희주 -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3년 입단 후, 11년간 수원에서 뛰고 FC도쿄와 알 와크라 SC에서 2년간 선수 생활을 한 뒤, 2015년 다시 수원으로 복귀, 이후 2016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 김오규 - 11시즌에 강원에 입단하고 10시즌 반을 지냈다가 20시즌 여름에 제주로 떠났다.
- 다리요 스르나 - FC 샤흐타르 도네츠크,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에서 데뷔 후 2003년부터 2018년까지 샤흐타르 도네츠크에서 뛰었다가 칼리아리 칼초로 이적했다.
- 다니엘레 데 로시 - AS 로마. 2001년부터 2019년까지, 18년간 AS 로마에서 뛰었고 CA 보카 주니어스로 이적후 반시즌을 보낸뒤 은퇴했다. 신태용처럼 데 로시도 구단으로 인해 이적한거라 사실상 원 클럽 플레이어. 전성기의 데 로시는 레알 마드리드 등 유수의 명문 클럽들이 노릴 정도의 선수였다.
-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 AC 밀란, 선수생활 말년의 3시즌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SS 라치오, 아탈란타 BC, FC 바르셀로나 4팀에서 뛴뒤 은퇴했지만 그전까지는 AC 밀란의 유소년출신으로 1990-91시즌 1시즌간 파도바 칼치오로의 임대생활을 제외하면 AC 밀란의 간판 미드필더였다.
- 도메니코 베라르디 - 2012년 데뷔 이후 US 사수올로 칼초의 유니폼만 입었으나 사실 13/14, 14/15 두 시즌 간은 유벤투스 소속이었다. 그 두 시즌마저도 사수올로에서 임대 신분으로 사수올로 유니폼을 입고 뛰었고, 그 후에는 공동소유계약 제도 폐지로 온전한 사수올로 선수로서 뛰고있다.
- 로베르토 이라녜타 - 힘나시아 에스그리마, 9년간 활약하였다.
- 로베르토 체로 - CA 보카 주니어스. 커리어 초기의 2년을 제외하면 모든 커리어를 보카에서 보냈고, 역대 보카 주니어스 득점 랭킹 2위에까지 올랐다.
- 마르코 로이스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유소년 시절 자신을 버린 클럽에 다시 들어와 2012년부터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으며, 현재는 주장 완장까지 차고 있다.
- 바비 무어 -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 1958년 웨스트햄 유스를 시작으로 1974년까지 웨스트햄과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장으로 자국에서 열린 1966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1974년 풀럼 FC로 이적한 뒤 1978년 시애틀 사운더스 FC, FC 미트윌란을 거쳐 은퇴했고 바비 무어의 6번은 웨스트햄의 영구결번이 되었다.
- 백기태 - 포항 스틸러스. 1990년 포항 스틸러스 산하 유소년 팀인 포항제철동초등학교에 입단한 이후 포철중-포철공고를 거쳐 1999년 포항 스틸러스에 정식 입단한다. 하지만 2000년, 2시즌 만에 비교적 이른 나이에 은퇴하고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은퇴 직후 2001년 부터 자신의 모교인 포항 스틸러스 산하 유소년 팀인 포철동초 코치를 시작으로 포철중 코치, 포철공고 코치, 포철동초 감독을 거쳐, 현재 포항제철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을 역임하고 있다. 1990년 부터 축구인으로서 본인의 모든 커리어를 포항 스틸러스 소속으로 보내고 있는 셈이다.
- 베르나르트 포르호프 - 리르서 SK, 1927년부터 1948년까지 무려 21년을 리르서 SK에서 보냈으며 말년의 3부 리그 활약을 빼면 모든 커리어를 한 팀에서 보냈다. 역대 리르서 SK 팀 내 최다 출전, 최다 득점 기록도 그의 몫이다.
- 빅토르 모랄레스 - 콜로콜로, 초기 선수생활 2년을 제외하면 11년을 콜로콜로에서 활약하였다.
-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 레알 마드리드 CF, 1909년부터 1978년까지 레알 마드리드에서 유소년, 프로, 감독, 이사, 부회장, 회장, 명예 회장을 모두 역임했으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1년 임대되었다.
- 세르히오 라모스 - 고향팀인 세비야에서 데뷔하고 1시즌 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여 역사를 쓰고 2021년 여름에 파리로 이적했다. 그리고 2시즌 후 고향팀인 세비야로 다시 돌아왔다.
- 세르히오 부스케츠 - 바르사의 레전드로 15시즌동안 살다 계약만료 후 미국으로 떠났다.
- 쉬츠 죄르지 - 위페슈트 FC, 평생 단 한 클럽에서 뛰었지만 뛴 시즌이 10시즌이 못 된다.
- 슈타니슬라우스 코비에르스키 -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데뷔 시절의 1년과 2차 대전을 제외하면 20년의 세월을 포르투나와 함께했다.
- 신화용 - 포항 스틸러스, 포항 출신에 포철동초-포철중-포철공고로 이어지는 유스 시스템을 모두 거치고, 군 면제로 인해 상주나 경찰청에서도 뛴 적 없는 진정한 의미의 원 클럽 플레이어이자 포항의 전설 그 자체였다. 2004년부터 2016년까지 13시즌간 원 클럽 플레이어였으나, 2016시즌 종료 후 구단에서 선수 본인과 감독도 모르게 멋대로 이적을 시도한 것이 밝혀져 끝내 2017시즌, 포항 스틸러스에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했다.[21]
- 아메리코 테소리에레 - 1921년의 단 2경기를 제외하면 모든 커리어를 CA 보카 주니어스에서 보냈다.
- 알레산드로 델피에로 - 유벤투스 FC, 유소년 시절 칼치오 파도바에서 데뷔 후 1993년부터 2012년까지 유벤투스에서 뛰다가 시드니 FC, 델리 다이모스 FC로 이적 후 은퇴했다.
-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 - AC 밀란, 1986-87시즌에 AC 몬차로 1시즌간 임대를 다녀온 것을 제외하면 유소년 시절 부터 2007년에 은퇴하기에 이르기까지의 27년을 AC 밀란을 위해 헌신하였다.
- 야코프 벤더 -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1950년의 키싱언 05에서의 선수 겸 감독 생활을 제외하면 모든 커리어를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에서 보냈다.
- 에른스트 알브레흐트 -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말년의 선수 겸 감독 생활을 제외하면 모든 커리어를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에서 보냈다.
- 에른스트 후프슈미트 - FC 바젤, 1938-39 시즌에 잠시 FC 빌비엔에서 보낸 것을 제외하면 21년의 선수 생활 모두를 바젤에서 보냈다.
-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 유소년 선수 시절부터 레알 마드리드 CF에서만 뛰다가 말년에 멕시코의 클루브 셀라야에서 3년간 활동하고 은퇴했다.
- 에티엔 마틀레르 - FC 소쇼몽벨리아르, 고향팀 벨포르와 트르와에서 뛰다가 1929년부터 1946년까지 소쇼의 주장으로 활약하였다.
- 위르겐 클롭 - 1.FSV 마인츠 05, 5개 팀을 옮겨다니다가 1990년부터 2001년까지 마인츠에서 뛰었다.
- 이케르 카시야스 - 레알 마드리드 CF, 1990년 유스 팀에 입단하여 레알 마드리드 C,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CF를 거쳐 1군까지 총 26년을 뛰고 2015년에 FC 포르투로 이적했다.
- 크리스티안 아비아티 - AC 밀란, 2개의 팀에서 뛰다가 1998년 AC 밀란에 입단한 이후 2008년까지 유벤투스, 토리노 FC,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에서 임대 생활을 했고 2016년까지 AC 밀란에서 뛰다가 은퇴했다.
-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 - 유벤투스 FC, 유소년 선수 시절인 1993년부터 2018년까지 고향팀 유벤투스에서만 뛰다가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적하여 1년간 뛴 후 은퇴했다.
- 팀 보로프스키 - SV 베르더 브레멘에서 10년 넘게 뛰며, 중흥기를 이끌었으나,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08~09 한 시즌을 뛴 경험이 있다. 서로에게 루즈-루즈 한 결과였던 만큼 베르더 브레멘에 남았다면 원 클럽 플레이어가 될 수 있었다.
- 프랑크 벨스 - GVV 유니타스,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에서의 1년을 제외하면 1926년부터 1951년까지 유니타스에서만 커리어를 보냈다.
- 하비에르 사네티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타예레스, CA 반필드에서 뛰다가 1995년부터 2014년까지 인테르에서 뛰었다.
- 헤수스 나바스 - 세비야 FC, 2000년 세비야 FC의 유소년 팀에 입단했으며 2003년 1군 데뷔 후 2013년 까지 뛰다가 맨체스터 시티 FC로 이적했지만 2017년 다시 세비야 FC로 이적하였다.
- 호르헤 사르미엔토- 알리안사 리마. 페루 축구 역사 초기의 스타로 알리안사 리마에서 대부분의 커리어를 보냈다.
- 에르네스트 파버르 - PSV 에인트호번, 14시즌간 에인트호번 소속으로 있으면서 3시즌간 임대를 다님
- 안토니오 발렌시아 - 위건 애슬레틱 FC 에서 200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으로 이적 하여 10년동안 커리어를 보낸뒤 2019년 에콰도르 리그 소속 팀인 LDU 키토 이적이 확정되어 고국에 귀국한다.
- 마리오 가스파르 - 모든 커리어를 비야레알에 보냈지만, 2022년 7월 29일 계약해지로 팀을 떠나게 되었다.
- 요나스 헥토어 - 데뷔 초반 1년만 6부리그 팀에서 보냈고 2010년 쾰른 B팀에 입단 이후 2023년 은퇴까지 쾰른의 주전으로 뛰었다.
- 슈테판 라두 - 2008년 라치오에 입단한 이후 2023년 은퇴할때까지 425경기에 출전하며 사실상 원클럽맨으로 활약했다.
- 알렉스 베르간티뇨스 - 2002년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유소년팀에 입단한 이후로 4번의 임대 이적을 제외하면 15년을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와 함께했다.
※ 기준은 10년 이상으로, 한국인의 경우 군복무를 위해 군경팀이나 하부 리그팀에 소속되어 있었던 기간은 비고란에 별도로 기록하도록 하며 원 클럽 기간은 유지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자유계약과 트레이드가 활성화된 리그이며, 축구처럼 선수가 이적을 거부할 권리가 없는 탓에 76년의 역사를 가졌음에도 원 클럽 플레이어의 수가 적다. 타 리그에서 뛴 경력은 원 클럽 플레이어의 기준에서 고려하지 않는다.
이름 | 클럽 | 입단 | 은퇴 | 비고 |
1948 | 1964 | - | ||
1949 | 1959 | - | ||
1950, 1954 | 1952, 1962 | NBA 한정 | ||
1954 | 1965 | - | ||
1955 | 1966 | - | ||
1956 | 1966 | - | ||
1956 | 1966 | NBA 한정 | ||
1956 | 1969 | - | ||
1957 | 1969 | - | ||
1958 | 1971 | - | ||
1958 | 1973 | - | ||
1960 | 1971 | - | ||
1960 | 1973 | - | ||
1960 | 1974 | - | ||
1962 | 1978 | - | ||
1964 | 1974 | - | ||
1967 | 1977 | - | ||
1968 | 1978 | - | ||
1968 | 1981 | - | ||
1970 | 1981 | - | ||
1970 | 1983 | - | ||
1971 | 1984 | - | ||
1975 | 1988 | - | ||
1976 | 1987 | NBA 한정 | ||
1978 | 1990 | NBA 한정 | ||
1979 | 1989 | NBA 한정 | ||
1979 | 1992 | - | ||
1979, 1996 | 1991, 1996 | NBA 한정 | ||
1980 | 1991 | - | ||
1980 | 1993 | - | ||
1981 | 1994 | - | ||
1982 | 1993 | - | ||
1982 | 1994 | - | ||
1984 | 2003 | - | ||
1985 | 1999 | - | ||
1986 | 1998 | - | ||
1987 | 2005 | - | ||
1988 | 2000 | - | ||
1989 | 2003 | - | ||
1996 | 2016 | - | ||
1997 | 2016 | - | ||
1998 | 2019 | NBA 한정 | ||
1999 | 2012 | - | ||
2002 | 2018 | NBA 한정 | ||
2003 | 2018 | - | ||
2003 | 2023 | NBA 한정 | ||
2009 | 현역 | - | ||
2012 | 현역 | - |
이 선수들은 원 클럽 플레이어는 아니지만 한 팀에서 오래 활약하며 뚜렷한 족적을 남겨 해당 선수 얘기가 나오면 바로 그 팀이 연상될 정도로 다른 팀에서 활약한 시기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 웬만한 원 클럽 플레이어 이상의 위상을 지닌 선수들이다. 물론 전원이 해당 팀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 드웨인 웨이드 - 마이애미 히트에서 데뷔해 2003년부터 2016년까지 13시즌을 뛰었고, 연봉 협상의 이견으로 시카고 불스로 이적한 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거쳐 2018년 시즌 도중 다시 친정팀 마이애미로 되돌아와 2019년까지 한 시즌 반을 활약하고 은퇴했다.
- 스카티 피펜 - 시카고 불스에서 데뷔해 1987년부터 1998년까지 11시즌을 뛴 후 휴스턴 로키츠와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를 거치며 총 5시즌을 뛰었다. 그리고 커리어 마지막 시즌이 된 2003년 친정팀 불스에 다시 복귀해서 불스 선수로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 앨런 아이버슨 -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서 데뷔해 1996년부터 2006년까지 10시즌을 뛰었고, 이후 3시즌 동안 덴버 너기츠와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를 거쳤다. 커리어 마지막 시즌인 2009년 멤피스 그리즐리스에서 겨우 3경기를 뛰고 방출당한 후 극적으로 필라델피아에 돌아와 필라델피아 소속으로 NBA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 크리스 멀린 -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서 데뷔해 1985년부터 1997년까지 12시즌을 뛰었고, 이후 인디애나 페이서스로 이적해 3시즌 동안 뛰었다. 커리어 마지막 시즌에 골든스테이트로 돌아와 은퇴했다.
- 폴 피어스 - 보스턴 셀틱스에서 데뷔해 1998년부터 2013년까지 15시즌을 뛰었고, 이후 4시즌 동안 브루클린 네츠, 워싱턴 위저즈,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를 거쳐가며 뛰었다. 마지막 시즌 후 친정팀 셀틱스와 1일 계약을 맺고 은퇴를 발표해 끝내 셀틱스 소속으로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 클레이 탐슨 -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서 데뷔해 2011년부터 2024년까지 12시즌을 뛰며 현역 원 클럽 플레이어 중 한 명이었으나 24-25시즌 댈러스로 이적하며 원 클럽 플레이어에 준하는 선수가 되어버렸다.
이름 | 클럽 | 입단 | 은퇴 | 비고 |
1997 | 2009 |
- 프로 생활 도중 상무 입단으로 잠시 팀을 떠난 선수도 포함된다.
이름 | 클럽 | 입단 | 은퇴 | 비고 |
1983 | 1995 | |||
1986 | 1996 | - | ||
1987 | 2000 | |||
1989 | 2000 | - | ||
1996 | 2011 | |||
1997 | 2012 | |||
2000 | 2013 | - | ||
2000 | 2013 | - | ||
2002 | 2018 | |||
2004 | 2020 | |||
2006 | 2017 | - | ||
2007 | 2017 | - | ||
2007 | 2018 | - | ||
2007 | 2020 | - | ||
2007 | 2022 | - | ||
2007 | 2023 | - | ||
2007 | 현역 | - | ||
2008 | 2019 | KBL 한정 | ||
2008 | 2021 | - | ||
2008 | 2023 | - | ||
2009 | 2020 | - | ||
2009 | 2024 | - | ||
2011 | 현역 | - | ||
2011 | 2024 | - | ||
2012 | 현역 | - | ||
2012 | 현역 | - | ||
2012 | 2023 | - |
이름 | 클럽 | 입단 | 은퇴 | 비고 |
1990 | 2003 | - | ||
1990 | 2011 | |||
1994 | 2013 | |||
1997 | 2016 | |||
2001 | 2013 | - | ||
2003 | 2017 | - | ||
2005 | 2018 | - | ||
2006 | 2016 | - |
※ 기준은 10년 이상으로, 한국인의 경우 군복무를 위해 군경팀이나 하부 리그팀에 소속되어 있었던 기간은 비고란에 별도로 기록하도록 하며 원 클럽 기간은 유지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NFL의 경우, 선수 생명이 상대적으로 짧아서 한 팀에서 오래 뛰는 경우가 많지 않고, 하드 샐러리캡 제도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쿼터백 같은 포지션이 아니면[55], 선수들의 방출, 이적이 활발한 편이다. 따라서 원 클럽 플레이어로 남아있기 어려운 구조이고, 쿼터백이 아닌 경우임에도 원 클럽 플레이어로 남는다면 더더욱 대단한 경우라 볼 수 있다.
2020년 3월에는 영원히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심장으로 남아있을 것만 같았던 톰 브래디가 탬파베이 버커니어스로 이적하면서 원 클럽 플레이어의 대열에서 탈락하는 이변이 발생하였다. 브래디 외에도 필립 리버스, 제이슨 위튼, 애런 로저스 등의 레전드들도 오랫동안 몸담은 팀을 떠나 새출발을 선택하며 원 클럽 플레이어의 대열에서 탈락하였다.
추가기준은 해당 팀에서 10년 이상 뛴 경우로, 볼드체는 현역
2020년 3월에는 영원히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심장으로 남아있을 것만 같았던 톰 브래디가 탬파베이 버커니어스로 이적하면서 원 클럽 플레이어의 대열에서 탈락하는 이변이 발생하였다. 브래디 외에도 필립 리버스, 제이슨 위튼, 애런 로저스 등의 레전드들도 오랫동안 몸담은 팀을 떠나 새출발을 선택하며 원 클럽 플레이어의 대열에서 탈락하였다.
추가기준은 해당 팀에서 10년 이상 뛴 경우로, 볼드체는 현역
- 트로이 폴라말루 - 피츠버그 스틸러스
이름 | 클럽 | 입단 | 은퇴 | 비고 |
전태규(ZeuS) | 2001 | 2009 | 은퇴후 2011년까지 hite와 CJ에서 코치직 역임 | |
서경종(Shark) | 2002 | 2011 | ||
서지수(ToSsGirL) | 2002 | 2012 | ||
서지훈(XellOs) | 2002 | 2011 | 2009-11 공군 ACE에서 군 복무 | |
심소명(SiLvEr) | 2003 | 2008 | ||
안기효(TheROCK) | 2003 | 2012 | 공군 ACE에서 군 복무 도중 팀 해체 | |
최연성(iloveoov) | 2003 | 2009 | 은퇴후 2016년까지 T1 코치, 감독 역임 | |
고인규(Canata) | 2004 | 2013 | ||
박종수(sOo) | 2004 | 2011 | 2009-11 플레잉 코치, 2011-13 코치 역임 | |
변형태(Iris) | 2004 | 2012 | ||
송병구(Stork) | 2004 | 2016 | 2014-16 선수 겸 감독 역임 | |
오영종(AnyTime) | 2004 | 2011 | 2008-10 공군 ACE에서 군 복무 | |
김동현(Saint) | 2005 | 2011 | ||
김윤환(Calm) | 2005 | 2013 | 2012-13 플레잉 코치 역임 | |
윤용태(free) | 2005 | 2013 | ||
권수현(Orion) | 2006 | 2013 | 군 복무 후 2013-16 CJ 코치, 감독 역임 | |
김윤중(Shuttle) | 2006 | 2012 | ||
도재욱(Best) | 2006 | 2013 | ||
신상문(Leta) | 2006 | 2013 | ||
허영무(Jangbi) | 2006 | 2013 | ||
김명운(ZerO) | 2007 | 2013 | ||
김현우(Modesty) | 2007 | 2012 | ||
우정호(Violet) | 2007 | 2012 | 백혈병으로 인해 2012년 사망 | |
이영호(FlaSh) | 2007 | 2015 | ||
김성현(Last) | 2008 | 2013 | ||
장윤철(Snow) | 2008 | 2013 |
후속작인 카트라이더: 드리프트는 반영하지 않는다.
이름 | 클럽 | 입단 | 탈퇴 | 비고 |
이벤트 리그인 듀얼 레이스 X는 Afreeca Flame 팀으로 참가 | ||||
[1] 일례로 리오넬 메시는 충성심과 실력 개인으로서 갖출 수 있는 FC 바르셀로나의 원클럽맨 자질을 전부 갖췄지만, 구단의 재정 악화로 메시의 봉급을 챙길 수 없는 형편이 되자 작별을 택해야만 했던 사례도 있었다. 단순히 메시 측에서 봉급을 양보해 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던 게, 메시 정도 되는 선수의 주급을 너무 내려치다간 이적 시장에서 주급 체계가 문란해질 위험성까지 있었기에 넉넉치 못한 구단 재정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다 바르토메우 때문이다[2] 세르지는 FC 바르셀로나 유스부터 밟고 온 성골이지만 형편없는 실력으로 인해 현지 꾸레들로부터 엄청난 비난과 질타를 받고 있다. 이재원은 입단 당시 류현진을 거르고 뽑혔을 만큼 지역 성골로 평가받았는데 입단 10년이 지나 그나마 괜찮은 성적도 올렸지만 4년 69억 무옵션 FA 계약 이후 리그 최악의 타격 및 수비, 워크에씩, 이른바 "초상집" 발언 등으로 SK~SSG 팬들에게는 사실상 없는 선수 취급이다. 다만 세르지는 2년 사이에 어머니, 할머니, 반려견이 잇따라 세상을 떠나면서 정신적으로 무너진 영향도 컸다.[3] 코치를 다른 팀에서 하면 진골, 선수로 뛰었던 데에서만 하면 성골. 또한 그 구단의 연고 도시에서 출생해 원 클럽 플레이어로 선수 생활을 보내면 이 또한 성골이라 부른다.[4] 메달리스트가 되어 예술체육요원으로 편입하거나, 병역판정검사 5급을 받는 등 병역 면제를 받으면 상무에 입단할 필요 없이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다.[5] 고요한, 김진현, 페이커 등이 이러한 희귀한 경우에 해당된다.[6] 해외파 선수도 마찬가지로 대다수가 상무팀에 입단해야 하는데, 상무팀은 K리그 클럽 멤버만 입단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에 상무를 가고 싶다면 K리그 팀으로의 완전 이적이 불가피하다. 한국영, 권창훈, 구성윤이 이렇게 해외 활동을 접고 국내로 복귀해야만 했던 케이스.[예외] 7.1 7.2 7.3 7.4 7.5 7.6 7.7 예전에는 선수생활이 짧기도 했고, 특히 당시 국내에서는 대학 졸업 후 입단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프로 경력이 길지 않다. 때문에 10시즌 기준에 부합하지 않지만 상무나 경찰청도 거치지 않은 명백한 원 클럽 플레이어이기 때문에 기록한다.[10] 은퇴 후 영국으로 유학을 가 있는 동안 세미프로인 7부 리그 예딩 FC에서 조기축구하는 정도로 축구를 했으나, 공식적인 프로경력은 포항 뿐이다.[11] 23-24시즌이 시작되기 전인 2023년 7월~8월 이적시장 도중, 구단의 인색한 지원을 비판하며 선수 영입을 위한 지원을 요구했다가 구단주에 의해 경질되었다. 이로 인해 구단주는 많은 팬들의 질타를 받았다.[15] 2001년, 성남 일화로 이적하였으나 한 경기에도 나서지 못하고 부상으로 은퇴하였다.[17] 영구결번된 등번호는 현역 시절 가장 오래 사용했던 13번이다.[18] 프리미어 리그, 라리가, 분데스리가, 세리에 A, 리그 1[19] 알비렉스 니가타, 호펜하임, 전북, 알 나스르[20] 보통 원클럽맨이나 이에 준하는 선수들은 이적이 덜 활발했던 과거의 선수이거나, FC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 유벤투스처럼 더 올라갈 필요가 없는 빅클럽에서 뛴 경우이거나, 애매한 클럽에서 애매한 활약을 해서 이적 시장에서 별 관심을 못 받은 경우가 흔한데, 마렉 함식은 세리에 A 베스트 일레븐에 세 번, 도움왕을 두 번 차지할 정도라 많은 빅클럽의 관심을 받았음에도 나폴리에 남았다. 구체적으로는 첼시 FC에서 두 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두 번, 리버풀 FC, 맨시티, 아스날 FC에서 각각 한 번씩 관심을 표명한 적이 있다.[21] 신화용은 몇 시즌간 재계약에서 포항만을 선택했으며, 2017시즌에는 연봉을 억 단위로 삭감하면서도 남으려 했다. 최순호 감독도 이후에서야 이적 사건의 전말을 알고 급히 재계약 협상을 요청했으나, 프런트의 막장으로 인해 팀의 레전드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22] 울산, 요코하마, 카시와[23] 안양 LG 치타스가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FC 서울로 구단명이 바뀌었기 때문이다.[A] 24.1 24.2 24.3 24.4 24.5 24.6 24.7 24.8 24.9 24.10 24.11 클럽의 연고 이전.[34] NBA 역사상 최장 기간 활동한 원 클럽 플레이어(21시즌).[36] 1999년 사망 후 등번호 10번은 영구결번 되었다.[37] 은퇴 후 등번호 14번 영구결번[38] 은퇴 후 등번호 10번 영구결번. 다만 이 결번은 본인이 현역으로 활동한적 없는 고양시로 연고이전 후 지정되었고, 2022년 오리온스가 해체하면서 신규 창단된 고양 캐롯 점퍼스로 바뀌면서 결번은 해제됐다.[39] 은퇴 후 등번호 4번 영구결번[40] 은퇴 후 등번호 32번 영구결번[41] 은퇴 후 등번호 6번 영구결번[42] KBL 역사상 최장 기간 활동한 원 클럽 플레이어(17시즌).[43] 은퇴 후 등번호 0번 영구결번[44] 은퇴 후 등번호 11번 영구결번[45] 은퇴 후 등번호 5번 영구결번[46] 원년시즌 이후 은퇴하고 트레이너로 있다가 2006-07시즌에 복귀하여 리베로로 뛰었다.[47] 이후 실업팀에서 뛰었기 때문에 은퇴가 아니라 퇴단이다.[48] 퇴단 후 실업팀인 화성시청에서 뛰었다.[49] 지명은 LIG에서 했지만 얼마 안 되어 우리캐피탈로 이적했기에 사실상 원 클럽 플레이어이다.[50] 입단전에 독일 프로팀에서 뛰었다.[51] 2001년 은퇴 후 2011년 잠시 선수로 복귀했다가 재차 은퇴했다.[52] 개명 전 김혜진[53] 개명 전 하준임[54] 2016년 은퇴 후 2021년 복귀, 2022년 방출.[55] 쿼터백의 경우도 몸값이 너무 오르면 오히려 팀차원에서 재계약이 어려운 경우가 생긴다. 몸값을 깎으면 자신의 가치도 하락한다는 미국의 사고방식에 따라 이런경우의 이적은 팬들도 쉽게 납득하는 편이다.[56] NFL 한정.[57] 정확히는 스타테일과 kt는 별개의 팀이나 kt가 스타테일 LoL 팀 해체 직후 소속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시드권이 계승되었기에 한 팀에 계속 있었던 것으로 보는 편이다.[58] 전역 후 2022-2에 복귀해 아마추어팀으로 참여하려 했으나(원래는 Team GP에 입단했지만 팀에 논란이 터져 이틀 만에 해체) 개인전만 진출하고 팀전은 예선 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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