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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클럽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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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료일 : 무기한
사유 : IDC(AS26496)
토론 역사
원클럽맨에서 넘어옴
분류

1. 개요[편집]

One Club Player

스포츠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오직 한 클럽에서 보낸 사람을 일컫는 말. 원클럽맨(One Club man)이라는 말도 자주 사용되며 특히 한국에서는 '플레이어'라는 말보다 훨씬 자주 사용된다. 팀을 많이 옮겨다니는 경우는 저니맨이라고 한다.

선수라면 돈이나 명성을 따라 팀을 옮기는게 예삿일이 되어버리고 클럽의 부익부 빈익빈 추세가 짙어지는 현대에 와선 이적설도 흔한 뉴스가 되어버린 현 세태와 다르게 오직 한 클럽에게만 충성하여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건 드문 일이다. 선수로서의 충성심과 은퇴까지도 팀에 기여할 수 있는 실력 유지와 더불어 클럽 입장에서도 레전드를 향한 대우 및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안정적인 경영[1] 여러 요소들이 맞물려야만 이룩할 수 있는 경지로서, 선수생활 전체를 통틀어 희귀한 태그나 다름없고 돈과 개인적 명예를 좇는 이적이 난무하는 세태 속에서도 충성과 의리를 지켜낸다는 의미에서 낭만의 영역으로도 불린다.

프랜차이즈 스타와는 개념이 좀 다른데, 한 클럽에서 오랫동안 활약하며 발자취를 남긴 선수라는 점은 비슷하지만, 원클럽맨은 한 번도 이적 없이 데뷔부터 은퇴까지 한 클럽에서만 선수생활을 해야 성립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2. 특징[편집]

원 클럽 플레이어는 한 클럽에서만 오랜 시간을 보내므로 자연히 그 클럽의 상징이 되거나 주장을 맡는 일이 많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선수 항목에서도 보이듯 한 팀에만 머문다고 팬들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다고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2] 프로는 당연히 성적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뛰어난 실력을 기본으로 갖추고 팀에 대한 헌신과 사랑이 엿보일 때 팬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원 클럽 플레이어는 대개 본래 실력에 비해 저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팀이 암흑기에 접어들면 이적해버리는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팀의 암흑기까지 함께하기 때문이다.

축구에서 원 클럽 플레이어는 유스서부터 시작해 프로 은퇴 때까지 모두 한 클럽에서 뛰는 것이 원칙이지만, 전세계의 축구선수들이 몰려오는 유럽 빅리그의 특성상 유스는 다른 클럽에서 뛰더라도 자국 리그의 A팀 데뷔 이후 한 팀에서 쭉 뛴다면 원 클럽 플레이어로 인정해주는 편이며 임대로 잠시 다른 팀 가서 뛴 선수들도 인정해주는 게 보통이다. 은퇴 후 아마추어 팀이나 세미프로에서 뛰는 것도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는 편. 보통 원 클럽 플레이어의 경우 최소 진골 취급은 해준다.[3] 또한 실업 야구나 독립 리그 경력이 있어도 프로에서 한 팀에서 뛰었다면 원 클럽 플레이어로 인정하는 추세이며, 해외 진출 경력이 있어도 국내에서 한 팀에서만 오래 뛰었다면 인정해 준다. 한국에서 축구는 해외진출이 더 출세한 것으로 간주되므로 이런 경우는 드물고 농구는 해외진출 자체가 어려우므로 주로 야구에서 이런 케이스들이 나온다.

선수 커리어의 초년부터 특정 팀에만 머물러야만 하는 조건이기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리버풀 FC, 바이에른 뮌헨 처럼 유스 시스템이 발달한 클럽에 유독 집약되어있는 편이다. 반대로 선수 매매가 활발한 AFC 아약스, FC 포르투셀링 클럽이나 자금력으로 선수 영입에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첼시 FC, 맨체스터 시티 FC, 파리 생제르맹 FC 등의 부자 구단들은 원클럽맨이 비교적 드문 편이다. 다만 현대로 올수록 빅클럽들은 이적시장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며 외부 영입을 가져가고 그만큼 유스 자체 승격 사례가 줄어들어서 팀을 막론하고 장기 근속하는 원 클럽 맨은 쉽사리 보기 힘들어졌다.

로컬 보이와 더불어 은퇴 이후에 해당 팀의 감독이 되기 쉬운 케이스이기도 하다. 특히 NPB의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선수 생활은 물론, 코칭 스태프 커리어까지도 오로지 요미우리에서만 보낸 선수만을 감독으로 선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4] 대다수의 남성 선수가 상무팀에 입단해 18개월간 병역 의무를 치러야 하는 관계로 순도 100%의 원클럽맨이 나오긴 힘든 환경이다.[5] 때문에 상무팀 이적은 원클럽맨 결격 사유로 치지 않는 것이 보통이며 아래 목록의 원클럽맨 K리거 또한 대개 이런 케이스다.[6]
※ 기준은 10년 이상으로, 한국인의 경우 군복무를 위해 군경팀이나 하부 리그팀에 소속되어 있었던 기간은 비고란에 별도로 기록하도록 하며 원 클럽 기간은 유지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름
클럽
입단
은퇴
비고
1903
1928
커리어 중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5년의 공백이 있음
1908
1928
1군 선수, 감독 모두 CA 페냐롤에서만 활동.
1910
1925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4년 간의 공백기가 있음.
1910
1920
1910
1922
피치치(라파엘 모레노 아란사디)
1911
1922
1912
1923
1912
1931
라 크루스
1916
1933
1916
1933
후안 몬하르딘
1918
1929
1919
1933
1919
1933
1921
1934
1922
1940
1922
1938
펠릭스 케사다
1922
1936
코닝클러크 HFC
1922
1935
나치 부역 혐의로 프랜차이즈 선수 대접은 불가능함.
1923
1939
1923
1937
1923
1950
1923
1940
1923
1939
1923
1946
1924
1936
1924
1936
1924
1936
로열 다링 클럽 몰런베이크
1924
1942
IK 슬레이프네르
1924
1940
1925
1938
1925
1940
1925
1938
1925
1941
1925
1939
1925
1949
GAIS
1926
1937
AKS 호주프
1926?
1947
1군팀 데뷔 연도에 관한 정확한 기록이 없다.
1926
1937
1926
1942
1926
1939
1926
1944
DHC
1926
1938
1926
1936
1927
1946
1927
1938
1927
1940
1927
1940
1927
1941
1928
1947
아인트라흐트 뒤스부르크 1848
1928
1948
1928
1940
1928
1940
RC 루베
1928
1938
TSV 롱가 틸뷔르흐
1928
1946
1929
1939
1929
1947
1929
1939
1929
1939
1929
1946
1929
1948
1930
1943
1930
1952
1930
1940
1930
1942
1930
1948
1930
1944
1930
1940
1930
1949
1930
1941
1930
1953
1930
1949
1931
1951
1931
1947
1931
1947
1932
1948
1932
1949
1933
1946
1933
1945
1934
1953
1934
1945
1934
1950
베 카위크 1887
1934
1949
1935
1955
1935
1947
1935
1956
1937
1955
1937
1949
1937
1955
1937
1949
1937
1959
KFC
1937
1954
1938
1956
1938
1960
1938
1955
1939
1954
1939
1954
1939
1959
1939
1960
1939
1954
1940
1955
1942
1952
1943
1960
1943
1954
1943
1962
1944
1956
1944
1960
1944
1956
냇 로프트하우스
1946
1960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이상 가는 이 분야의 끝판왕이자 알파이자 오메가 출생부터 유소년 선수, 1군 선수, 코치, 감독, 스카우트, 회장 등 생애와 경력 모두 볼턴에서만 활동.
1946
1958
1946
1958
1946
1958
1946
1958
1946
1961
은퇴 직후부터 구단 프런트직을 맡았으며 1971년부터 1990년까지 유벤투스의 회장직을 역임함. 사망시까지 명예회장 역임.
1946
1965
1947
1962
1948
1964
1948
1961
1950
1970
1952
1968
은퇴하기 2년 전(1966년)부터 플레잉 코치를 겸했으며, 은퇴 후에도 1998년까지 계속 리버풀 코치로 재직함.
1953
1972
분데스리가 첫 득점왕.
1954
1971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에서 우승을 차지한 잉글랜드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한명.
1956
1970
1956
1973
1958
1974
1960
1978
1961
1974
1961
1977
1961
1977
1962
1977
1962
1979
라몬 그로소
1964
1976
1965
1979
1966
1981
1969
1987
1971
1985
1972
1991
1972
1985
1984-85시즌은 2군 소속
1974
1989
1975
1985
1975
1986
1976~1979 기간은 상무 축구단 소속
1976
1991
1977
1998
2022년 기준 사우디 축구 국가대표팀 최다 득점자
1977
1997
은퇴 직후 브랜드 앰배서더로 활동하고 있으며 6년간 유스 팀 감독을 역임함.
1977
1995
1979
1999
1980
1992
1981
1991
1981
1998
로컬 보이 출신으로 주장이 되자마자 24년만의 DFB-포칼 우승을 구단에게 안겨주었고, 첫 분데스리가 우승과 2연패를 견인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수 생활 말년에 UEFA 챔피언스 리그까지 우승을 거두면서 구단의 최전성기를 함께하였다. 은퇴 직후부터 선수단 단장 역임 하여 암흑기를 함께하다가 위르겐 클롭과 함께 다시 구단을 분데스리가 제패에 성공하였고 16년만에 구단이 챔스 결승에 진출하면서 다시 유럽의 강자로 도약하는데 공을 세운다.
1982
1999
1982
1998
1983
1996
1983
1989
1983
1991
1983
1992
1983
2001
1983
2002
1984
1991
1984
1992[10]
1984
2009
소속 팀 영구결번,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스포츠전략개발 디렉터 역임.[11]
에리크 시코라
1985
2004
유스 시절을 포함하면 12세였던 1980년부터 3년의 공백기를 제외한 현재까지 약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팀을 위해 헌신해온 인물이다. 현재 랭스 U19 감독.
1986
1991
1986
1995
1987
1998
1988
2001
1988
1995
1988
2000
은퇴 후 선수단장 역임중
1989
2002
1989
1994
1990
2015
1990
1999
1990
1999
1990
2000
선수생활과 코치,감독생활을 오직 한국철도에서 한 한국철도의 레전드
1990
2014
1990
2001
은퇴 후 코치, 수석코치를 거쳐 감독 역임중
1991
2000[15]
1991
2001
1991
2008
1992
2006
1992
2011
1992
2011
1992
2017
은퇴 직후 2019년까지 팀 디렉터 역임.
1993
2016
1993
1998
1994
2013
1994
2013
1996
2007
1996
2007
1997
2018
은퇴 후 골키퍼 코치 역임중
1998
2016
은퇴 후 현재 아탈란타의 U17 팀 코치를 맡고 있다
1999
2014
1998
2012
1999
2012
1999
2014
2000
2016
2002
2016
2003
2020
2003
2021
리저브 팀 소속 기간 포함 시 2001년 입단
2003
현역
2003
2014
2008~2009 상주 상무 소속.
2003
2018
2003
2019
2003
2020
2004
2017
은퇴 직후 2018년부터 포항 스틸러스의 코치로 부임해 현재까지도 포항 소속이다.
2004
2023
은퇴 후 서울의 U-18 팀인 오산고등학교 축구부의 코치로 부임하며 여전히 서울과 동행하고 있으며, 구단 역사상 최초의 영구결번 선수로도 선정되었다.[17]
2004
현역
2004
2022
5대 리그[18] 최장 기간 원 클럽 플레이어
2005
2018
2005
2016
2006
2020
2006
2018
2006
현역
군 복무를 위한 상주 상무 시절만 제외
2007
2024
2008
2021
2008
2022
2008
현역
2008
현역
2009
현역
2009
현역
2009
현역
2009
현역
2010
현역
2010
현역
2011
현역
2012
현역
군복무를 위한 아산 무궁화 시절만 제외
2012
현역
2013
현역
2013
현역
2014
2024
음주운전으로 인한 방출
2014
현역
2014
현역
2014
현역
군복무를 위한 아산 무궁화 시절만 제외

3.1. 원 클럽 플레이어에 준하는 선수[편집]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원 클럽 플레이어/야구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 기준은 10년 이상으로, 한국인의 경우 군복무를 위해 군경팀이나 하부 리그팀에 소속되어 있었던 기간은 비고란에 별도로 기록하도록 하며 원 클럽 기간은 유지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자유계약과 트레이드가 활성화된 리그이며, 축구처럼 선수가 이적을 거부할 권리가 없는 탓에 76년의 역사를 가졌음에도 원 클럽 플레이어의 수가 적다. 타 리그에서 뛴 경력은 원 클럽 플레이어의 기준에서 고려하지 않는다.
이름
클럽
입단
은퇴
비고
1948
1964
-
1949
1959
-
1950, 1954
1952, 1962
NBA 한정
1954
1965
-
1955
1966
-
1956
1966
-
1956
1966
NBA 한정
1956
1969
-
1957
1969
-
1958
1971
-
1958
1973
-
1960
1971
-
1960
1973
-
1960
1974
-
1962
1978
-
1964
1974
-
1967
1977
-
1968
1978
-
1968
1981
-
1970
1981
-
1970
1983
-
1971
1984
-
1975
1988
-
1976
1987
NBA 한정
1978
1990
NBA 한정
1979
1989
NBA 한정
1979
1992
-
1979, 1996
1991, 1996
NBA 한정
1980
1991
-
1980
1993
-
1981
1994
-
1982
1993
-
1982
1994
-
1984
2003
-
1985
1999
-
1986
1998
-
1987
2005
-
1988
2000
-
1989
2003
-
1996
2016
-
1997
2016
-
1998
2019
NBA 한정
1999
2012
-
2002
2018
NBA 한정
2003
2018
-
2003
2023
NBA 한정
2009
현역
-
2012
현역
-

5.1.1. 원 클럽 플레이어에 준하는 선수[편집]

이 선수들은 원 클럽 플레이어는 아니지만 한 팀에서 오래 활약하며 뚜렷한 족적을 남겨 해당 선수 얘기가 나오면 바로 그 팀이 연상될 정도로 다른 팀에서 활약한 시기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 웬만한 원 클럽 플레이어 이상의 위상을 지닌 선수들이다. 물론 전원이 해당 팀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이름
클럽
입단
은퇴
비고
1997
2009
  • 프로 생활 도중 상무 입단으로 잠시 팀을 떠난 선수도 포함된다.
이름
클럽
입단
은퇴
비고
1983
1995
1986
1996
-
1987
2000
1989
2000
-
1996
2011
1997
2012
2000
2013
-
2000
2013
-
2002
2018
2004
2020
2006
2017
-
2007
2017
-
2007
2018
-
2007
2020
-
2007
2022
-
2007
2023
-
2007
현역
-
2008
2019
KBL 한정
2008
2021
-
2008
2023
-
2009
2020
-
2009
2024
-
2011
현역
-
2011
2024
-
2012
현역
-
2012
현역
-
2012
2023
-
※ 기준은 10년 이상으로, 한국인의 경우 군복무를 위해 군경팀이나 하부 리그팀에 소속되어 있었던 기간은 비고란에 별도로 기록하도록 하며 원 클럽 기간은 유지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6.1.1. 남자부[편집]

이름
클럽
입단
은퇴
비고
1983
1994
-
1992
2000
-
1992
2003
-
1993
2002
-
1993
2005
-
1994
2004
-
1995
2006
-
1995
2013
-
1996
2007[46]
-
1996
2007
-
1999
2009
-
1999
2013
-
2000
2015
-
2000
2016
-
2001
2011[47]
프로팀 한정[48]
2002
2015
-
2003
2016
-
2005
2018
-
2008
2019
2007
현역
-
2010
현역
국내팀 한정[50]
2010
현역
-
2011
현역
-
2011
현역
-
2011
2023
-
2012
2023
-
2013
현역
창단멤버
2013
현역
창단멤버
2013
현역
-
2013
현역
-

6.1.2. 여자부[편집]

NFL의 경우, 선수 생명이 상대적으로 짧아서 한 팀에서 오래 뛰는 경우가 많지 않고, 하드 샐러리캡 제도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쿼터백 같은 포지션이 아니면[55], 선수들의 방출, 이적이 활발한 편이다. 따라서 원 클럽 플레이어로 남아있기 어려운 구조이고, 쿼터백이 아닌 경우임에도 원 클럽 플레이어로 남는다면 더더욱 대단한 경우라 볼 수 있다.

2020년 3월에는 영원히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심장으로 남아있을 것만 같았던 톰 브래디가 탬파베이 버커니어스로 이적하면서 원 클럽 플레이어의 대열에서 탈락하는 이변이 발생하였다. 브래디 외에도 필립 리버스, 제이슨 위튼, 애런 로저스 등의 레전드들도 오랫동안 몸담은 팀을 떠나 새출발을 선택하며 원 클럽 플레이어의 대열에서 탈락하였다.

추가기준은 해당 팀에서 10년 이상 뛴 경우로, 볼드체는 현역

7.1.9. 원 클럽 플레이어에 준하는 선수[편집]


NFL 역대 최고의 쿼터백.

뉴잉글랜드에서만 6번의 우승을 하며 20년을 뛰고 탬파베이 이적 후 첫해 우승을 한 케이스며, 아직 경력에서 패트리어츠 시절이 기간으로는 훨씬 길다.

말년엔 좀 안 좋게 끝났지만, 아직도 패커스 선수로 기억되고 팬들에게 사랑받는다.

팀 선배 쿼터백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이름
클럽
입단
은퇴
비고
전태규(ZeuS)
2001
2009
은퇴후 2011년까지 hite와 CJ에서 코치직 역임
서경종(Shark)
2002
2011
서지수(ToSsGirL)
2002
2012
서지훈(XellOs)
2002
2011
2009-11 공군 ACE에서 군 복무
심소명(SiLvEr)
2003
2008
안기효(TheROCK)
2003
2012
공군 ACE에서 군 복무 도중 팀 해체
최연성(iloveoov)
2003
2009
은퇴후 2016년까지 T1 코치, 감독 역임
고인규(Canata)
2004
2013
2004
2011
2009-11 플레잉 코치, 2011-13 코치 역임
변형태(Iris)
2004
2012
송병구(Stork)
2004
2016
2014-16 선수 겸 감독 역임
오영종(AnyTime)
2004
2011
2008-10 공군 ACE에서 군 복무
김동현(Saint)
2005
2011
김윤환(Calm)
2005
2013
2012-13 플레잉 코치 역임
윤용태(free)
2005
2013
권수현(Orion)
2006
2013
군 복무 후 2013-16 CJ 코치, 감독 역임
김윤중(Shuttle)
2006
2012
도재욱(Best)
2006
2013
신상문(Leta)
2006
2013
허영무(Jangbi)
2006
2013
김명운(ZerO)
2007
2013
김현우(Modesty)
2007
2012
우정호(Violet)
2007
2012
백혈병으로 인해 2012년 사망
이영호(FlaSh)
2007
2015
김성현(Last)
2008
2013
장윤철(Snow)
2008
2013
이름
클럽
입단
은퇴
비고
위징시(Misaya)
2011
2013
-
이현우(CloudTemplar)
2011
2013
-
가오쉐청(WeiXiao)
2011
2014
-
고동빈(Score)
2011
2019
-
장누리(Cain)
2012
2015
-
이재민(Zefa)
2013
2015
-
이상혁(Faker)
2013
현역
2025년까지 계약
허수(ShowMaker)
2017
현역
2026년까지 계약
조재읍(Joker)
2017
2020
-
후속작인 카트라이더: 드리프트는 반영하지 않는다.
이름
클럽
입단
탈퇴
비고
2020-1
군입대
카트라이더 리그 본선 한정 원클럽맨[58]
2021-1
군입대
2020-1 무소속 및 불참, 2020-2 재계약
크레이지레이싱 카트라이더 한정 원클럽맨
이벤트 리그인 듀얼 레이스 XAfreeca Flame 팀으로 참가
2022-S
리그 이후 종목 전향
이벤트 리그인 듀얼 레이스 XAfreeca Flame 팀으로 참가
크레이지레이싱 카트라이더 한정 원클럽맨

9. 기타 종목[편집]

10. 관련 문서[편집]

[1] 일례로 리오넬 메시는 충성심과 실력 개인으로서 갖출 수 있는 FC 바르셀로나의 원클럽맨 자질을 전부 갖췄지만, 구단의 재정 악화로 메시의 봉급을 챙길 수 없는 형편이 되자 작별을 택해야만 했던 사례도 있었다. 단순히 메시 측에서 봉급을 양보해 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던 게, 메시 정도 되는 선수의 주급을 너무 내려치다간 이적 시장에서 주급 체계가 문란해질 위험성까지 있었기에 넉넉치 못한 구단 재정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다 바르토메우 때문이다[2] 세르지는 FC 바르셀로나 유스부터 밟고 온 성골이지만 형편없는 실력으로 인해 현지 꾸레들로부터 엄청난 비난과 질타를 받고 있다. 이재원은 입단 당시 류현진을 거르고 뽑혔을 만큼 지역 성골로 평가받았는데 입단 10년이 지나 그나마 괜찮은 성적도 올렸지만 4년 69억 무옵션 FA 계약 이후 리그 최악의 타격 및 수비, 워크에씩, 이른바 "초상집" 발언 등으로 SK~SSG 팬들에게는 사실상 없는 선수 취급이다. 다만 세르지는 2년 사이에 어머니, 할머니, 반려견이 잇따라 세상을 떠나면서 정신적으로 무너진 영향도 컸다.[3] 코치를 다른 팀에서 하면 진골, 선수로 뛰었던 데에서만 하면 성골. 또한 그 구단의 연고 도시에서 출생해 원 클럽 플레이어로 선수 생활을 보내면 이 또한 성골이라 부른다.[4] 메달리스트가 되어 예술체육요원으로 편입하거나, 병역판정검사 5급을 받는 등 병역 면제를 받으면 상무에 입단할 필요 없이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다.[5] 고요한, 김진현, 페이커 등이 이러한 희귀한 경우에 해당된다.[6] 해외파 선수도 마찬가지로 대다수가 상무팀에 입단해야 하는데, 상무팀은 K리그 클럽 멤버만 입단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에 상무를 가고 싶다면 K리그 팀으로의 완전 이적이 불가피하다. 한국영, 권창훈, 구성윤이 이렇게 해외 활동을 접고 국내로 복귀해야만 했던 케이스.[예외] 7.1 7.2 7.3 7.4 7.5 7.6 7.7 예전에는 선수생활이 짧기도 했고, 특히 당시 국내에서는 대학 졸업 후 입단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프로 경력이 길지 않다. 때문에 10시즌 기준에 부합하지 않지만 상무나 경찰청도 거치지 않은 명백한 원 클럽 플레이어이기 때문에 기록한다.[10] 은퇴 후 영국으로 유학을 가 있는 동안 세미프로인 7부 리그 예딩 FC에서 조기축구하는 정도로 축구를 했으나, 공식적인 프로경력은 포항 뿐이다.[11] 23-24시즌이 시작되기 전인 2023년 7월~8월 이적시장 도중, 구단의 인색한 지원을 비판하며 선수 영입을 위한 지원을 요구했다가 구단주에 의해 경질되었다. 이로 인해 구단주는 많은 팬들의 질타를 받았다.[15] 2001년, 성남 일화로 이적하였으나 한 경기에도 나서지 못하고 부상으로 은퇴하였다.[17] 영구결번된 등번호는 현역 시절 가장 오래 사용했던 13번이다.[18] 프리미어 리그, 라리가, 분데스리가, 세리에 A, 리그 1[19] 알비렉스 니가타, 호펜하임, 전북, 알 나스르[20] 보통 원클럽맨이나 이에 준하는 선수들은 이적이 덜 활발했던 과거의 선수이거나, FC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 유벤투스처럼 더 올라갈 필요가 없는 빅클럽에서 뛴 경우이거나, 애매한 클럽에서 애매한 활약을 해서 이적 시장에서 별 관심을 못 받은 경우가 흔한데, 마렉 함식은 세리에 A 베스트 일레븐에 세 번, 도움왕을 두 번 차지할 정도라 많은 빅클럽의 관심을 받았음에도 나폴리에 남았다. 구체적으로는 첼시 FC에서 두 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두 번, 리버풀 FC, 맨시티, 아스날 FC에서 각각 한 번씩 관심을 표명한 적이 있다.[21] 신화용은 몇 시즌간 재계약에서 포항만을 선택했으며, 2017시즌에는 연봉을 억 단위로 삭감하면서도 남으려 했다. 최순호 감독도 이후에서야 이적 사건의 전말을 알고 급히 재계약 협상을 요청했으나, 프런트의 막장으로 인해 팀의 레전드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22] 울산, 요코하마, 카시와[23] 안양 LG 치타스가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FC 서울로 구단명이 바뀌었기 때문이다.[A] 24.1 24.2 24.3 24.4 24.5 24.6 24.7 24.8 24.9 24.10 24.11 클럽의 연고 이전.[34] NBA 역사상 최장 기간 활동한 원 클럽 플레이어(21시즌).[36] 1999년 사망 후 등번호 10번은 영구결번 되었다.[37] 은퇴 후 등번호 14번 영구결번[38] 은퇴 후 등번호 10번 영구결번. 다만 이 결번은 본인이 현역으로 활동한적 없는 고양시로 연고이전 후 지정되었고, 2022년 오리온스가 해체하면서 신규 창단된 고양 캐롯 점퍼스로 바뀌면서 결번은 해제됐다.[39] 은퇴 후 등번호 4번 영구결번[40] 은퇴 후 등번호 32번 영구결번[41] 은퇴 후 등번호 6번 영구결번[42] KBL 역사상 최장 기간 활동한 원 클럽 플레이어(17시즌).[43] 은퇴 후 등번호 0번 영구결번[44] 은퇴 후 등번호 11번 영구결번[45] 은퇴 후 등번호 5번 영구결번[46] 원년시즌 이후 은퇴하고 트레이너로 있다가 2006-07시즌에 복귀하여 리베로로 뛰었다.[47] 이후 실업팀에서 뛰었기 때문에 은퇴가 아니라 퇴단이다.[48] 퇴단 후 실업팀인 화성시청에서 뛰었다.[49] 지명은 LIG에서 했지만 얼마 안 되어 우리캐피탈로 이적했기에 사실상 원 클럽 플레이어이다.[50] 입단전에 독일 프로팀에서 뛰었다.[51] 2001년 은퇴 후 2011년 잠시 선수로 복귀했다가 재차 은퇴했다.[52] 개명 전 김혜진[53] 개명 전 하준임[54] 2016년 은퇴 후 2021년 복귀, 2022년 방출.[55] 쿼터백의 경우도 몸값이 너무 오르면 오히려 팀차원에서 재계약이 어려운 경우가 생긴다. 몸값을 깎으면 자신의 가치도 하락한다는 미국의 사고방식에 따라 이런경우의 이적은 팬들도 쉽게 납득하는 편이다.[56] NFL 한정.[57] 정확히는 스타테일과 kt는 별개의 팀이나 kt가 스타테일 LoL 팀 해체 직후 소속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시드권이 계승되었기에 한 팀에 계속 있었던 것으로 보는 편이다.[58] 전역 후 2022-2에 복귀해 아마추어팀으로 참여하려 했으나(원래는 Team GP에 입단했지만 팀에 논란이 터져 이틀 만에 해체) 개인전만 진출하고 팀전은 예선 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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