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영(1970)
최근 수정 시각:
분류
- 1970년 출생
- 1995년 데뷔
- 2005년 은퇴
- 고흥군 출신 인물
- 대한민국의 남자 축구 선수
- 수비수
- 대한민국의 남자 축구 코치
- 대한민국의 남자 축구 감독
- 고흥중학교 출신
- 금호고등학교 출신
- 동아대학교 출신
- 국민은행 축구단/은퇴, 이적
- 전남 드래곤즈/은퇴, 이적
- 천안 시티 FC/역대 감독
- 대한민국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참가 선수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참가 선수
- 대한민국의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
- 2000 AFC 아시안컵 레바논 참가 선수
-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참가 선수
- 대한민국의 CONCACAF 골드컵 참가 선수
- 2000 CONCACAF 골드컵 참가 선수
- 2002 CONCACAF 골드컵 참가 선수
- 대한민국의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참가 선수
-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 참가 선수
-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 센터백
- 라이트백
- 대한민국의 남성 방송인
- 운동선수 출신 방송인
- 체육훈장 맹호장
김태영의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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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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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의 기타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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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Football Association | ||
이름 | 김태영 金太映 | Kim Tae-Young | |
출생 | ||
국적 | ||
신체 | ||
주발 | 오른발 (양발) | |
직업 | ||
학력 | ||
소속 | 선수 | |
감독 | 관동대학교 (2006~2007 / 코치) 대한민국 U-20 대표팀 (2009 / 코치) 대한민국 U-23 대표팀 (2009~2012 / 수석 코치) 울산 현대 (2013) 대한민국 대표팀 (2013~2014 / 코치) 전남 드래곤즈 (2015 / 수석 코치)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7~2018 / 코치) 천안시 축구단 (2020~2022) | |
행정 | 대한축구협회 (2023~ / 사회공헌위원장) | |
국가대표 | ||
가족 | 아내, 아들, 딸 | |
종교 | ||
서명 |
"다음 게임, 광주에서 스페인 반드시 또 잡겠습니다. 국민들(께서), 성원해주십시오."
동아대학교를 졸업한 후 K리그 드래프트에 반감을 가져 드래프트 참가하지 않았다. 만약 드래프트에 참가했다면 1993년 당시 신생팀인 완산 푸마에 지명될 것이 유력했기 때문에 드래프트에 참가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대학을 졸업한 후 전국실업축구연맹전에 참가하던 국민은행 축구단에 입단했다.
이후 1994년 11월 전남 드래곤즈가 창단 선언을 하자, 당시 이미 국민은행 소속으로 국가대표팀에 선발되던 김태영은 고향 팀의 창단 멤버로 합류하게 됐다. 이미 실업리그에서 2년을 뛰었고, 국가대표에도 선발됐던 김태영은 당시 신생팀이던 전남 수비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였다.
1997 시즌 초반에는 부상으로 경기에 대거 이탈했으나, 복귀하면서 다시 팀 수비를 안정화 시켰고, 팀의 리그 준우승과 대한축구협회 FA컵 우승을 이끌며 팀의 창단 첫 우승에 기여했다. 팀의 첫 번째 전성기의 시작을 연 것이다. 김봉길이 은퇴한 이후에는 팀의 주장 역할을 맡았다. 1997년 FA컵 우승 자격으로 참가한 1998-1999 아시안 컵 위너스컵에서 팀을 결승까지 올려놓는 활약을 했다.
이후 팀이 부진에 빠진데다, 거스 히딩크 전 감독 부임 이후 소속팀을 떠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훈련하는 시간이 잦아지자, 주장 완장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2003년까지 팀 수비의 핵심으로 활약하며 팀을 지켰다. 그러나, 2004 시즌 중반 무릎 부상을 당하며 전력에서 오랜 기간 이탈했고, 이는 2005 시즌 은퇴로 이어졌다. 2005년 11월 6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K리그 광양 홈 경기를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고향 팀인 전남에서만 11년을 뛴, 전남의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K리그에서만 201경기에 나서서 4골 9어시스트를 기록했고, 리그컵 49경기 3도움, FA컵 14경기에 출전했다.
국가대표로는 A매치 105경기에 나서서 3골을 기록했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5번째 센추리 클럽 가입자이며,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 주전 수비수로 출전했다.
동아대 4학년인던 1992년 10월 21일, 아랍에미리트와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했다. 이후 실업 리그 국민은행 소속으로 1993년 3월 9일, 캐나다와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 첫 골을 넣었다. 이후 미국 월드컵 1차 예선,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까지 김호호에서 활약했지만 이후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다.
이후 한동안 대표팀에서 멀어졌다가 전남에서의 맹활약으로 인해 1996년 3월에 비쇼베츠호에 다시 선발되었으나 또 다시 대표팀에서 멀어졌다.
1997년 1월, 차범근호 1기부터 꾸준하게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이후 거의 모든 경기에 나서는 등 홍명보, 이민성과 함께 수비진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고,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최종 명단에 승선하여 조별리그 3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1999년부터 허정무호에서도 중용되며 2000 CONCACAF 골드컵, 2000 AFC 아시안컵에도 참가했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등번호 7번을 달고 출전했다.
히딩크호에서 2001년 중반 홍명보가 부상으로 대표팀에 약 8개월 간 뽑히지 못하자, 그를 대신해 임시 주장 역할을 했다.
동아대 4학년인던 1992년 10월 21일, 아랍에미리트와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했다. 이후 실업 리그 국민은행 소속으로 1993년 3월 9일, 캐나다와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 첫 골을 넣었다. 이후 미국 월드컵 1차 예선,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까지 김호호에서 활약했지만 이후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다.
이후 한동안 대표팀에서 멀어졌다가 전남에서의 맹활약으로 인해 1996년 3월에 비쇼베츠호에 다시 선발되었으나 또 다시 대표팀에서 멀어졌다.
1997년 1월, 차범근호 1기부터 꾸준하게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이후 거의 모든 경기에 나서는 등 홍명보, 이민성과 함께 수비진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고,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최종 명단에 승선하여 조별리그 3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1999년부터 허정무호에서도 중용되며 2000 CONCACAF 골드컵, 2000 AFC 아시안컵에도 참가했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등번호 7번을 달고 출전했다.
히딩크호에서 2001년 중반 홍명보가 부상으로 대표팀에 약 8개월 간 뽑히지 못하자, 그를 대신해 임시 주장 역할을 했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당시 홍명보, 최진철과 함께 3백을 형성해 한국 대표팀의 4강 신화에 일조했다.
16강 이탈리아전에서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에도 불구하고[7] 이탈리아전 당시에는 코칭스태프들이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까봐 골절 사실을 숨기고 단순 타박상이라고 알려줘서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고 한다.[8]
결국 보호대를 착용해 다음 경기에 나섰고, 이러한 모습이 인상을 남기며 마스크맨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현재까지도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많은 축구팬들이 기억하고 있다.[9][10]
16강 이탈리아전에서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에도 불구하고[7] 이탈리아전 당시에는 코칭스태프들이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까봐 골절 사실을 숨기고 단순 타박상이라고 알려줘서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고 한다.[8]
결국 보호대를 착용해 다음 경기에 나섰고, 이러한 모습이 인상을 남기며 마스크맨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현재까지도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많은 축구팬들이 기억하고 있다.[9][10]
김태영의 마스크 |
미야모토 츠네야스의 마스크 |
이 당시에 제작한 타이거 마스크는 은퇴 후 김태영 선수의 아내가 액자를 짜 왔고 그 액자에 보관한 상태로 여전히 가지고 있다고 한다.[11]
8강 스페인전에서도 선발 출장했고 전반전에 페르난도 모리엔테스에게 카드감이었던 백태클을 당하는 등 스페인 선수들의 거친 플레이에 고생했지만 마지막까지 투혼을 보여주며 대한민국의 4강 진출을 이끌었다. 특히 후반전에 루이스 엔리케를 끝까지 쫓아가 마크하던 장면은 많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그러나 4강 독일전에서 결승골 실점의 빌미가 된 패스 미스를 범한 흑역사도 있다.[12][13]
여담으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당시 룸살롱 마담들을 대상으로 한 인기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유는 단 하나, 남성적인 매력이 있다는 것이었다.[14] 하지만, 설문조사가 진행된 2002년 당시 김태영 선수가 거의 30대 중반이었던만큼, 그 연령대의 선수를 냉정한 외국인 사령탑이 눈도장 찍을 정도면, 어머니, 부인 등 가족들의 철저한 내조가 뒷받침되었다고 보는게 옳다.
2003년 코엘류호 출범 이후에도 유상철, 최진철과 함께 수비 라인을 형성하며 유상철이 부상으로 대표팀에 뽑히지 못할 때는 직접 주장 완장을 달고 출전하기도 했다.
2004년 본프레레호 출범 이후 2004 AFC 아시안컵 중국에도 선발되어 7월 19일 요르단과의 조별리그 첫 경기를 끝으로 대표팀에서 제외되었다.[15][16] 김태영은 독일 월드컵 출전도 내심 노렸으나 많은 나이로 인한 노쇠화와 2004년부터 잦은 부상을 겪기 시작해 회복 이후에도 후유증에 시달리며 은퇴를 심각하게 고려해왔다. 결국 국가대표에 대한 미련을 접고 2004년 12월 대표팀에서 은퇴하기로 결정했다. #
현역 시절 아파치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거친 수비로 유명했다.[17]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역 내내 퇴장 기록은 없고, 경고 또한 33번에 불과할 정도로 깨끗한 수비를 선보인 선수. 정작 파이터 이미지는 없던 최진철이 K리그 경고 2위를 마크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의외의 결과다. 축구화에 일부러 쇠로 된 징을 박아, 경기장 입장할 때부터 상대 선수에게 쇳소리를 들려주며 위압감을 심어줬다고 고백한 적도 있다.
양발을 자유자재로 쓰는 수비수로 유명했다. 원래 왼발을 못 썼지만 파울로 말디니처럼 죽어라 연습해서 왼발을 잘 쓸 수 있게 된 것을 보면 노력이 어마어마했음을 알 수 있다.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이 자서전에서, 평소에는 오른발을 주로 쓰는데 페널티킥과 같은 중요한 순간에는 왼발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며 유럽에도 드문 케이스라고 회고한 기록이 있다. 이 덕분에 월드컵 당시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끌었고, 실제 오퍼도 몇 건 있었다고 한다. 당시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에서 관심을 보였는데, 뉴캐슬 측이 나이가 너무 많다며 턱없이 낮은 이적료를 부르는 바람에 딜이 무산되었다고 한다.[18]
180cm라는 센터백으로서는 작은 키[19]를 지녔지만, 김태영은 대인마크 능력과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자신의 작은 키를 커버했다. 당시 크리스티안 비에리라는 월드클래스 스트라이커에게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음에도 경기를 뛰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의 투지와 끈질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또한 김태영은 수비수로서 스피드가 빠른 편이고 수비집중력이 높아서 대인마크 능력이 뛰어났다. 그래서 최진철과 홍명보의 스피드라는 약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 그래서 본 포지션은 센터백이지만 윙백으로도 일가견이 많아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윙백으로 출전했다.[20]
스페인 전에 라인이 뚫려 침투하던 루이스 엔리케를 끝까지 쫓아가 마크하는 장면은 김태영의 플레이의 백미. 작은 키지만 운동능력이 뛰어나 제공권이 제법 뛰어난 편이었고, 상술한대로 속도와 집중력이 좋은 편이라 그야말로 한국의 '칸나바로'와 같은 스타일이라 볼수 있다.
양발을 자유자재로 쓰는 수비수로 유명했다. 원래 왼발을 못 썼지만 파울로 말디니처럼 죽어라 연습해서 왼발을 잘 쓸 수 있게 된 것을 보면 노력이 어마어마했음을 알 수 있다.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이 자서전에서, 평소에는 오른발을 주로 쓰는데 페널티킥과 같은 중요한 순간에는 왼발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며 유럽에도 드문 케이스라고 회고한 기록이 있다. 이 덕분에 월드컵 당시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끌었고, 실제 오퍼도 몇 건 있었다고 한다. 당시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에서 관심을 보였는데, 뉴캐슬 측이 나이가 너무 많다며 턱없이 낮은 이적료를 부르는 바람에 딜이 무산되었다고 한다.[18]
180cm라는 센터백으로서는 작은 키[19]를 지녔지만, 김태영은 대인마크 능력과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자신의 작은 키를 커버했다. 당시 크리스티안 비에리라는 월드클래스 스트라이커에게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음에도 경기를 뛰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의 투지와 끈질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또한 김태영은 수비수로서 스피드가 빠른 편이고 수비집중력이 높아서 대인마크 능력이 뛰어났다. 그래서 최진철과 홍명보의 스피드라는 약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 그래서 본 포지션은 센터백이지만 윙백으로도 일가견이 많아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윙백으로 출전했다.[20]
스페인 전에 라인이 뚫려 침투하던 루이스 엔리케를 끝까지 쫓아가 마크하는 장면은 김태영의 플레이의 백미. 작은 키지만 운동능력이 뛰어나 제공권이 제법 뛰어난 편이었고, 상술한대로 속도와 집중력이 좋은 편이라 그야말로 한국의 '칸나바로'와 같은 스타일이라 볼수 있다.
-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2003
- FIFA 월드컵 4위: 2002
- AFC 아시안컵 3위: 2000
- K리그 베스트 XI: 2002, 2003
- K리그 대상 공로상: 2005
- K리그 30주년 베스트 XI: 2013
- 자황컵 체육대상 남자 최우수상: 2002
- 푸마-스투 프로축구 베스트 11 특별상: 2005
- 체육훈장 맹호장: 2002
2017년 9월 5일 기준이다.
연령 | 출전 | 골 |
U-17 | 0 | 0 |
U-20 | 0 | 0 |
U-23 | 0 | 0 |
A대표 | 105 | 3 |
종합기록 | 105 | 3 |
2006년 관동대학교 축구부 코치를 거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각급 코치를 역임하면서 홍명보 감독을 보좌하였으며, 2009 U-20 월드컵 8강 6위와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올림픽 이후 울산 현대의 코치로 부임했으나 이후 홍명보의 부름을 받고 A대표팀 코치로 부임했다. 하지만 브라질 월드컵 종료 후 부진한 결과를 책임지고 홍명보가 물러나면서 같이 물러났다.
2014년 12월 15일 노상래 감독의 부름을 받고 친정팀 전남 드래곤즈의 수석코치로 부임하였으나, 2015 시즌 후 성적 부진을 이유로 사임했다. 이후 홍명보를 따라 항저우 뤼청행이 거론되었지만, 홍명보를 따라가지 않고 해설가로 활동하였다. 전남 수석 코치 당시 감독(노상래)-수석코치(김태영)-선수(김병지)가 모두 70년생 동갑내기 친구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2016년 6월 태국 프리미어 리그로 갓 승격한 팀인 파타야 유나이티드 FC의 감독 제안을 받았지만 선수단 구성, 환경적인 문제가 많아 감독 제의를 거절했다고 한다.
2016년 12월 12일 이운재와 함께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코치로 부임하면서 U-20 대표팀 시절 같은 코치였던 서정원 감독과 재회하였고, 2018시즌까지 활동하였다.
올림픽 이후 울산 현대의 코치로 부임했으나 이후 홍명보의 부름을 받고 A대표팀 코치로 부임했다. 하지만 브라질 월드컵 종료 후 부진한 결과를 책임지고 홍명보가 물러나면서 같이 물러났다.
2014년 12월 15일 노상래 감독의 부름을 받고 친정팀 전남 드래곤즈의 수석코치로 부임하였으나, 2015 시즌 후 성적 부진을 이유로 사임했다. 이후 홍명보를 따라 항저우 뤼청행이 거론되었지만, 홍명보를 따라가지 않고 해설가로 활동하였다. 전남 수석 코치 당시 감독(노상래)-수석코치(김태영)-선수(김병지)가 모두 70년생 동갑내기 친구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2016년 6월 태국 프리미어 리그로 갓 승격한 팀인 파타야 유나이티드 FC의 감독 제안을 받았지만 선수단 구성, 환경적인 문제가 많아 감독 제의를 거절했다고 한다.
2016년 12월 12일 이운재와 함께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코치로 부임하면서 U-20 대표팀 시절 같은 코치였던 서정원 감독과 재회하였고, 2018시즌까지 활동하였다.
2020시즌을 앞두고 당성증 전 감독의 후임으로 K3리그 참가팀 천안시 축구단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계약기간은 최소 기간 2년, 최대 3년까지이며 연봉은 역대 천안 감독 중 최고 대우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임 감독 당성증이 구단을 떠난 과정에서 잡음이 있었던 만큼 천안시 축구단 팬들의 인식은 썩 좋지 못했다.
2020년 K3리그에서는 최종순위 11위로 삐걱거렸지만, 2021년 K3리그에서 선두를 놓치지 않으며 지도력을 인정받았고, 2021년 9월에 천안시 축구단과 2023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2021년 K3리그 정규리그에서 승점 54점으로 당시 K3리그 한 시즌 최다 승점 신기록을 세우며 1위로 K3리그 챔피언십에 진출했지만 아쉽게도 마지막 경기에서 극장골을 허용하며 준우승을 거두었다.
2022년 K3리그에서는 시즌 중반까지 2승 8무 6패로 16개팀 중 15위에 그치며 K3리그 강등권을 맴돌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후술할 근무 태만 논란까지 겹치면서 구단 입장에서는 감독을 좋게 볼 수 없었다.
2023년부터는 천안시 축구단이 K리그2에 참가하는 만큼 과연 프로화 이후에도 김태영이 팀을 맡아도 되는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고, 2022년 8월 3일, 경질되었다.[21]
계약기간은 최소 기간 2년, 최대 3년까지이며 연봉은 역대 천안 감독 중 최고 대우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임 감독 당성증이 구단을 떠난 과정에서 잡음이 있었던 만큼 천안시 축구단 팬들의 인식은 썩 좋지 못했다.
2020년 K3리그에서는 최종순위 11위로 삐걱거렸지만, 2021년 K3리그에서 선두를 놓치지 않으며 지도력을 인정받았고, 2021년 9월에 천안시 축구단과 2023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2021년 K3리그 정규리그에서 승점 54점으로 당시 K3리그 한 시즌 최다 승점 신기록을 세우며 1위로 K3리그 챔피언십에 진출했지만 아쉽게도 마지막 경기에서 극장골을 허용하며 준우승을 거두었다.
2022년 K3리그에서는 시즌 중반까지 2승 8무 6패로 16개팀 중 15위에 그치며 K3리그 강등권을 맴돌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후술할 근무 태만 논란까지 겹치면서 구단 입장에서는 감독을 좋게 볼 수 없었다.
2023년부터는 천안시 축구단이 K리그2에 참가하는 만큼 과연 프로화 이후에도 김태영이 팀을 맡아도 되는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고, 2022년 8월 3일, 경질되었다.[21]
2023년 5월 1일, 승부조작범 날치기 사면 파동으로 이사회가 물갈이된 대한축구협회 사회공헌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 당시에는 여성 국제심판인 임은주[22]와 함께 MBC에서 해설자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전남 코치에서 사퇴한 후 2016년에 MBC의 축구 해설위원으로 마이크를 다시 잡았다. 이후 MBC에서는 하차했으며, 2016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SBS에 축구 해설위원으로 합류했다.
2022년 김현회 기자가 김태영의 감독직 외의 잦은 예능 프로 출연 등에 대해 근무 태만이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우려를 기사를 통해 드러냈는데, 2022년 기준 김태영은 천안시 축구단 감독을 비롯해서 무려 3개의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는데 이 중 2개는 ‘지금 굳이 맡아야 하나’라는 의문이 표했다.[23]
2022년 7월 기준 천안시 축구단은 K3리그 16개 팀 중 15위에 머물러 있는 K3리그 강등권이었는데, 그런 심각한 상황 속에 팀의 감독은 각 군부대를 돌아다니며 예능 프로그램을 찍고 있고, 여성 연예인들의 팀을 지도하고 있다는 것이 부적절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입장이었다.
심지어, 한창 시즌 중에 본인 고향인 고흥군수 선거 유세에도 참석해 송귀근 후보 지원 유세에 참여하기도 하며 팬들로부터도 근무 태도에 대한 지적을 받게 되었다.[24] #
물론 김태영 감독 역시 민주주의 사회에서 예능 프로에 출연하거나 정치 활동 등을 할 수는 있으나 본업은 어디까지나 K3리그 천안시 축구단 선수들 지도인 만큼 이는 자칫 근무 태만으로도 보일 수도 있으며, 특히 당시 천안시 축구단이 2023시즌부터 K리그2에 입성한다는 점인데, 당장 내년 봄부터 프로 팀 전환이라는 중대한 상황 속에서 이 팀의 수장은 너무 팀을 자주 비우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책임감이 없는 행동이었다.
당장 당시 K리그에서 성적이 부진해 깊은 시름에 빠졌던 경남FC 설기현 전 감독과 성남FC 김남일 전 감독이 쏟아지는 예능 프로그램 섭외를 거절하고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20주년 행사 참석도 최소한으로 줄인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이영표는 강원 FC 대표이사 재직 단시 부진한 상황 속에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잦다는 비난이 있었는데, 이에 이영표는 팀 홍보 차원이라 반론한 바 있으며,[25]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FC 액셔니스타 감독과 선수로 인연을 맺은 최여진이 집사부일체에 출연해 "이영표 감독님은 구단 업무 때문에 바쁠 때면 거의 훈련에 나오지 않으시고 선수들에게 자율훈련을 지시하셨다"고 증언할 정도로 예능은 부업이고, CEO가 본업이라는 본분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김태영의 경우 이영표 처럼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팀의 홍보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 섭외도 ‘천안시 축구단 감독’보다는 ‘2002년 레전드’에 맞춰져 있다.
김태영 감독은 지금 천안시 축구단에 집중해 성적을 내야 할 때다. 지금 이 모습은 천안시 축구단의 팬들과 축구인들에게 상처만 주는 행동이다. 만일 K리그1의 인기 상위권 구단이 팀 성적이 바닥을 기는데 팀 운영에 집중을 안하고 감독이 예능 프로그램 축구팀 두 개의 감독을 맡아 고정 출연하고 있다면 이건 당장 경질 당해도 할 말 없는 일이며, 경질뿐 아니라 팬들과 언론의 거센 비판을 받을 만한 심각한 일이다.
한국프로축구에서 관습처럼 내려오는 온정주의에 따라 성적을 내지 못하는 감독은 상호합의 또는 자진 사퇴로 계약을 종료하여 소위 아름다운 이별의 형식으로 팀을 떠나지만 김태영 감독은 결국 이례적으로 경질되었다.
2022년 7월 기준 천안시 축구단은 K3리그 16개 팀 중 15위에 머물러 있는 K3리그 강등권이었는데, 그런 심각한 상황 속에 팀의 감독은 각 군부대를 돌아다니며 예능 프로그램을 찍고 있고, 여성 연예인들의 팀을 지도하고 있다는 것이 부적절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입장이었다.
심지어, 한창 시즌 중에 본인 고향인 고흥군수 선거 유세에도 참석해 송귀근 후보 지원 유세에 참여하기도 하며 팬들로부터도 근무 태도에 대한 지적을 받게 되었다.[24] #
물론 김태영 감독 역시 민주주의 사회에서 예능 프로에 출연하거나 정치 활동 등을 할 수는 있으나 본업은 어디까지나 K3리그 천안시 축구단 선수들 지도인 만큼 이는 자칫 근무 태만으로도 보일 수도 있으며, 특히 당시 천안시 축구단이 2023시즌부터 K리그2에 입성한다는 점인데, 당장 내년 봄부터 프로 팀 전환이라는 중대한 상황 속에서 이 팀의 수장은 너무 팀을 자주 비우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책임감이 없는 행동이었다.
당장 당시 K리그에서 성적이 부진해 깊은 시름에 빠졌던 경남FC 설기현 전 감독과 성남FC 김남일 전 감독이 쏟아지는 예능 프로그램 섭외를 거절하고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20주년 행사 참석도 최소한으로 줄인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이영표는 강원 FC 대표이사 재직 단시 부진한 상황 속에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잦다는 비난이 있었는데, 이에 이영표는 팀 홍보 차원이라 반론한 바 있으며,[25]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FC 액셔니스타 감독과 선수로 인연을 맺은 최여진이 집사부일체에 출연해 "이영표 감독님은 구단 업무 때문에 바쁠 때면 거의 훈련에 나오지 않으시고 선수들에게 자율훈련을 지시하셨다"고 증언할 정도로 예능은 부업이고, CEO가 본업이라는 본분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김태영의 경우 이영표 처럼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팀의 홍보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 섭외도 ‘천안시 축구단 감독’보다는 ‘2002년 레전드’에 맞춰져 있다.
김태영 감독은 지금 천안시 축구단에 집중해 성적을 내야 할 때다. 지금 이 모습은 천안시 축구단의 팬들과 축구인들에게 상처만 주는 행동이다. 만일 K리그1의 인기 상위권 구단이 팀 성적이 바닥을 기는데 팀 운영에 집중을 안하고 감독이 예능 프로그램 축구팀 두 개의 감독을 맡아 고정 출연하고 있다면 이건 당장 경질 당해도 할 말 없는 일이며, 경질뿐 아니라 팬들과 언론의 거센 비판을 받을 만한 심각한 일이다.
한국프로축구에서 관습처럼 내려오는 온정주의에 따라 성적을 내지 못하는 감독은 상호합의 또는 자진 사퇴로 계약을 종료하여 소위 아름다운 이별의 형식으로 팀을 떠나지만 김태영 감독은 결국 이례적으로 경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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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내용은 김태영(1970)/골 때리는 그녀들 문서 참고하십시오.
- MBC 공감토크쇼 놀러와의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특집에서 이정수가 골을 넣는 걸 예언하기도 했다. 공격수 출신으로 골맛을 아는 이정수의 특징과 전남 드래곤즈 시절의 스승 허정무 전 감독의 성향을 감안하여 예측한 듯 하다.
[1] [2] 대한축구협회 선수별 A매치 기록[3] 이에 윤석영은 "2002월드컵 4강 - 이영표, 김태영, 최진철, 송종국. 2012올림픽 동메달 - 윤석영, 김영권, 김창수 그리고 아쉽게 빠진 홍정호. 이상 모두 혈액형 O형. 그 외 최고의 수비력 박지성 O형"이라고 적었다. 누가 봐도 최 감독의 인터뷰에 대해 반박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사[4] FIFA 공인 기록 (104경기).[5] 네이버 프로필 기준.[6] MBC 뉴스데스크 영상 1:10 부터[7] 당시 부상을 낸 축구 선수는 바로 크리스티안 비에리.[8] 이천수의 유튜브에 나와서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이 김태영이 코뼈가 부러진 사실을 알면 상대팀 공격수에게 보복성 플레이를 가할까봐 미리 팀닥터와 이야기를 한 후 타박상이라고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9] 이 타이거 마스크에는 비화가 있는데, 당시 대표팀 의료진은 김태영과 똑같이 코뼈 부상을 당했던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수비수인 미야모토 츠네야스가 특수 제작한 마스크를 착용하고 나온 것을 떠올렸고, J리그 소속이었던 유상철이 일본의 마스크 제작업자를 수소문하게 된다. 다행히 연락이 닿아 이탈리아전 다음날 새벽에 일본에서 제작자 두 명이 대한민국으로 날아와 김태영의 얼굴 본을 뜬 뒤 10시간 만에 마스크를 만들 수 있었다.[10] 공교롭게도 이로부터 20년 후 UEFA 챔피언스 리그 중 마르세유와의 조별리그에서 마르세유 소속 선수 음벰바와의 충돌로 손흥민이 안면에 부상을 당하여 김태영과 유사한 형태의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 출전할 것을 결의한 바 있다. 두 선수의 국가대표 등번호도 7번으로 같다.[11] 2016년 피파 온라인 3 2002년 레전드 리턴즈 이벤트로 찍었던 영상에서 오랜만에 쓰고 나왔다.[12] 다만 이 실점은 수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이민성, 홍명보, 유상철의 책임도 있었다.[13] 당시 영상을 자세히 보면 패스 미스를 한 선수의 등번호가 7번이다.[14] 사실, 김태영 코치의 고향인 고흥군은 옛날부터 완력이 좋은 장사들을 배출하기로 이름이 있는 곳이다. 호남에서는 여수시에서 돈자랑하지 말고, 고흥군에서 힘자랑하지 마라는 말이 지금도 전해진다.[15] 요르단전 이후 무릎 부상을 당해 남은 대회를 소화하지 못했고, 김태영의 빈 자리는 당시 전남 시절 동료였던 만 19세의 김진규가 출전했다. 김진규는 어린 나이로 인한 경험 부족을 제대로 드러내어 8강 이란전에서 이영표와 함께 수비 불안을 노출하여 3:4 패배의 원흉이 되었다.[16] 무릎 부상만 아니었다면 2004년 중국 아시안컵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17]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얌전한 플레이를 많이 했던 2002년 히딩크호 멤버들에게 더 거칠고 쎈 플레이를 하라고 끊임없이 자극했던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이 김태영에게만큼은 살살 하라고 다독였다고 한다.[18] 만약 이적이 성사되었다면 한국인 최초의 프리미어 리거가 나왔을 판이었다.[19] 당시 동아시아 기준으로 작은 키는 아니다. 당시 일본 수비의 정신적 지주였던 미야모토 츠네야스가 176cm였고 히딩크호 출범 초기 황태자로 불리웠던 송종국은 175cm의 신장으로 히딩크호의 중앙수비(스위퍼)를 담당했다. 단, 180cm 이하의 센터백이 드물지 않았다는 것이지 당시 K리그에서도 안익수, 이임생, 최영일 등 상당수의 센터백들은 180cm 초반대 이상이었고, 유럽의 센터백들은 지금의 센터백들과 큰 차이가 없는 거구들이 즐비했다.[20] 그래서 그런지 피파 온라인 4에서는 김태영을 센터백 포지션보다 윙백이나 풀백 포지션으로 자리를 잡았을 때 능력치가 한 단계 더 올라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21] 조성용 천안시 축구단 유소년 총괄 디렉터가 감독 대행을 맡게 된다.[22] 강원 FC 대표이사와 FC 안양의 단장 및 야구의 키움 히어로즈 단장을 지냈던 그 분 맞다.[23] 각 군부대를 돌며 경기를 펼치는 tvn 예능 프로그램 <전설이 떴다 군대스리가>에서 감독을 맡고 있고 7월부터는 SBS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도 새롭게 감독을 맡았다.[24] 차라리 천안시장 선거면 '예산 따오려고 저러나보다'라고 이해라도 가는데, 4월 이후 2개월 동안 팀이 무승인 시기에 천안시에서 한참 떨어진 고흥군까지 내려가 선거를 도와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행보임은 분명하다.[25] 실제로도 이영표의 경우 골때녀 멤버들을 강원 홈경기에 초청한 적도 있고, 쿠팡이 강원 FC 스폰서를 맡는다는 조건 하에 토트넘 내한 경기 해설위원을 맡을 정도로 강원 FC에 대한 진심을 여러 군데에서 엿볼 수 있었다.[26] 2004년 김태영이 대표팀에서 은퇴한 이후 7번은 2005년부터 박지성이 이어받게 되면서 한국 국대의 에이스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고, 현재는 손흥민이 이 등번호의 주인이다.[27] 먼 훗날 맨체스터 시티 FC에서 김태영처럼 7번을 달게 된 수비수가 있었는데, 바로 첼시 FC로 떠난 라힘 스털링의 등번호를 이어받은 풀백 주앙 칸셀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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