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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바르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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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제59대 총리
장 루이 바르투
Jean Louis Barthou
빈 가로 이미지
출생
프랑스 올로롱생트마리
사망
1934년 10월 9일 (향년 72세)
재임기간
제59대 총리
직업
정치인, 변호사
정당
민주공화연맹
1. 개요2. 생애3. 암살

1. 개요[편집]

장 루이 바르투는 프랑스 제3공화국 시절 프랑스 정치인으로, 외무장관과 법무장관, 잠시 총리직을 재임한 인물이다. 동시대의 레몽 푸앵카레조르주 클레망소 등에 가려졌지만 복지정책이나 대독 강경파 외교 등에서 의미가 큰 인물이며 외무장관 재임 중 암살당했다.

2. 생애[편집]

루이 바르투는 1862년 8월 25일 프랑스 제2제국 올로롱생트마리에서 태어나 법률을 공부하여 변호사가 되었다. 1889년 프랑스 제3공화국 5대 하원의원 선거에서 당선됨으로써 정계에 입문하였다. 5대부터 12대까지 8선 하원의원으로 1924년까지 35년이나 재임하였다.

1894~1895년 공공사업부 장관, 1896~1898년 내무장관, 1913년 교육부 장관과 법무장관 등 관직을 역임하다 1913년 3월 22일부터 1913년 12월 9일까지 프랑스 총리를 역임했다. 소속은 중도우파인 민주공화연맹[1]으로, 프랑스의 공화정 유지와 복지 확대, 대독 강경파 성향이었다. 총리 재임기간에는 출산 전후 여성들을 위한 법 제정, 자녀 있는 가정에 수당 도입 등등 복지정책을 우선적으로 폈다.

1917년과 1934년에 두차례에 걸쳐 외무장관을 역임했다. 1933년 옆나라 독일에서 나치당이 집권하자 그는 프랑스의 재무장을 주장하며 군사력 확대,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그동안 사이가 데면데면했던 소련과의 친선을 추진하기도 했다.

1931년 대선에도 출마하였으나 유의미한 성과 없이 3위에 그쳐 낙선했다.

3. 암살[편집]

루이 바르투는 1934년 10월 9일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두브로브니크 호를 타고 온 유고슬라비아 왕국알렉산다르 1세를 접견, 프랑스의 군중들의 환호 속에 같이 차를 타고 가다 유고슬라비아에 불만이 깊은 불가리아의 민족주의자 블라도 체르노젬스키[2]에 의해 암살당했다.

정확히는 한 발이 국왕의 가슴에 명중하고, 또 한발이 암살자로부터 국왕을 지키려던 바르투의 팔에 명중하여 그게 치명타가 된 것이었다. 빨리 지혈했으면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동맥에 총을 맞은데다 그걸 버티기 힘들 정도의 고령이어서 병원에 옮겨진 지 한시간 뒤에 숨을 거뒀다.

하필 그의 후임 외무장관은, 프랑스의 이완용이라 평가받는 피에르 라발이었다.
[1] 창당 당시에는 중도좌파로 분류되었으나 바르투가 활동했던 시기에는 중도우파로 돌아섰다. [2] 본래 그는 알렉산다르 1세만 죽일 생각이었으나, 본의 아니게 바르투도 같이 죽이게 되었다. 다만 당시 친 유고였던 열강 중 하나인 프랑스에도 불만이 있던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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