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호(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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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오야마가쿠인대학 출신
- 그라비아 아이돌
- 개명한 인물
- 일본으로 귀화한 인물
역임한 직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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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제20-26대 참의원 의원 렌호 蓮舫 | Renhō | |||||||||||||||||||||
본명 | 사이토 렌호 齊藤蓮舫[1] | ||||||||||||||||||||
귀화 전 이름 | 셰롄팡(謝蓮舫, 사연방) | ||||||||||||||||||||
출생 | |||||||||||||||||||||
국적 | |||||||||||||||||||||
현직 | 무직 | ||||||||||||||||||||
재임기간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행정쇄신) |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소비자식품안전) | |||||||||||||||||||||
내각총리대신 보좌관 (행정쇄신, 소비자식품안전) |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행정쇄신, 새로운공공, 저출산대책, 여성활약) | |||||||||||||||||||||
링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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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시절의 렌호 |
옷깃을 세우는 패션 감각으로 유명한데 도호쿠 대지진 때 국회의원들이 작업복을 입고 퍼포먼스를 하는 와중에 그 작업복의 깃마저 세워서 입었다. 또 지진 피해를 점검한다며 슈퍼마켓을 둘러보는 것을 대단히 중요한 것마냥 보좌관들과 기자들을 데리고 몰려다녀 일본 국민의 빈축을 샀다. 하지만 민진당에서는 가장 인기가 있는 정치인이다. 지난 참의원 선거 때 5명을 뽑는 도쿄도 선거구에서 171만 표를 받아 압도적인 1위로 당선되었다. 2위인 공명당의 다케야 도시코(竹谷とし子)는 80만 표였다.
2016년 6월, 마스조에 요이치 도쿄도지사가 불명예 퇴진함에 따라 보궐 선거를 실시하게 되었다. 민진당에서 최유력 후보로 꼽힌 렌호를 출마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6월 19일에 노다 요시히코가 개인 면담까지 하면서 설득을 하였으나 결국 출마하지 않았다.
2016년 7월 10일 치러진 제24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3선에 성공하였다. 지난 2010년처럼 압도적인 득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도쿄 선거구에서 약 20% 가까이를 득표해 1위로 당선되었다.[7]
옆 나라의 양안관계에 있어서 일본의 보수 정치인보다 더욱 강경하게 중화민국의 국가 승인을 주장한다. 일본에서는 아무리 보수 정치인이고 대만-일본 관계를 중일관계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도 중국 눈치를 보며 발언 수위를 조절할 수밖에 없다. 아베 신조 총리의 "대만은 우리의 친구"라는 발언이 최대 수위일 정도다. 하지만 렌호는 거리낌 없이 일본의 중화민국 불승인 문제를 비판하며 자민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너무 의식한다고 비판했다. 다만 타이완 독립운동 지지자인지 단순히 "두 개의 중국"을 지지하는지는 불분명한 상태다. 일단 본인은 민주진보당 인사들과의 교류가 국민당 인사들보다 더 많다. 물론 두 당이 성향이 같으니 교류하는 것일 수도 있다.
12월에는 스마트폰으로 딴짓하는 사진이 찍혀 논란을 일으켰다.# 한국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의 스마트폰 사용이 엄격히 금지된다.[8]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렌호가 아베 총리에게 사실상 밀렸다는 시각이 우세한 현 상황에서 이러한 악재로 렌호의 이미지에 적지 않은 타격인 셈이다.
토론 시 발성이 매우 또렷하고[9] 달변가이다. 유머까지 섞어 말할 정도로 토론에 능숙해 인기가 높은 아베 신조 총리와 맞토론 시 매우 볼만하다.[10] 실제로 대정부 질문 시 이나다 도모미 방위상은 렌호 대표의 송곳 같은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못 했고, 이 때문에 아베 총리가 대신 일어나 답변하는 바람에 방위상의 자질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2016년 9월, 민진당 대표 경선을 했으며, 오카다 가쓰야, 호소노 고시, 아즈미 준 등이 지지했다. 경쟁자로는 마에하라 세이지, 다마키 유이치로가 있다.
그러나 복수국적 논란으로 인해 2017년 도쿄 도의회 선거에서 정부 책임론을 들고 나온 도민퍼스트회에 자민당 대항마로서의 존재감이 매우 옅어지면서 겨우 있던 7개의 의석 중 2개나 잃어버리는 데다 지난 선거에서 민주당이 얻었던 의석의 3분의 1밖에 차지하지 못하여 이로 인해 노다 요시히코 민진당 간사장이 7월 25일 사퇴를 표명했고 결국 렌호 대표 또한 이틀 뒤에 사퇴를 표명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그녀의 정치적 생명은 물론, 민진당의 미래 또한 상당히 예측 불가의 상태가 되었다.
한편 렌호 대표가 사퇴를 표명한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저녁 시간대에 이나다 도모미 방위상 또한 자위대의 남수단에서의 PKO(평화 유지 활동)를 기록한 문서의 은폐 의혹을 받다가 육상막료장[11]의 사퇴에 이어 본인 또한 사퇴를 표명하게 되었다.[12] 우연히 같은 날 거물급 여성 정치인 두 명의 사퇴 표명이 일어나 정계에 상당한 뉴스거리를 가져온 셈이다.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입헌민주당의 에다노 유키오 대표와 함께 연설에 동참하면서 마에하라 세이지와 고이케 유리코 대표를 격하게 비판하는 등 행보를 보이면서 희망의 당과 완전하게 선 긋기를 하고 있다. 렌호 본인의 성향과도 맞지 않을뿐더러 도쿄 도의회 선거 때 이미 경쟁을 한 경험이 있는데 괜히 철새 소리만 들을 수도 있다. 참의원의 민진당이 해산하게 될 경우 바로 입헌민주당으로 들어갈 것으로 예상이 되었고, 결국 2017년 12월 26일 민진당에 탈당계를 내고, 2017년 12월 28일 입헌민주당에 입당이 승인되어 입헌민주당 소속이 되었다.[13] 근데 이 과정에서 민진당 지도부가 렌호의 탈당 신고서를 수리하지 않는 꼼수를 보여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14]
2018년 11월 한국 인터넷에서 잠깐 동안 화제의 유머 글에 출연하게 되었다. 임시 국회에서 사쿠라다 요시타카 올림픽상의 자질 논란을 지적하며 "정부의 올림픽 예산이 얼마나 되느냐"라고 질문했는데 사쿠라다 대신이 1500 엔이라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는 바람에[15] 유머 소재가 된 것이다. #
그리고 2018년 참의원 입헌민주당 간사장과 당 부대표에 취임하게 되었다.
2020년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설이 돌았으나 보류했다. 결국 입헌민주당에서 독자 후보를 내지 않고, 혁신 성향 무소속 우쓰노미야 겐지 후보를 지원하기로 함에 따라 부대표 자격으로 선거 운동을 전면에서 지원했다. 하지만 우쓰노미야 후보는 13.76% 득표에 그치며 낙선했다.
입헌민주당-국민민주당 통합 이후에도 당의 대표 대행 업무를 계속 수행하고 있다. 현재는 대표 대행직이 오사카 세이지에게로 옮겨가면서 집행부에서 중책을 맡고 있지는 않다.
제26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도쿄도 선거구에 다시 출마해 당선되었지만 6년 전(110만 표)에 비해 득표수가 40만 여 표가량 낮아지며 공산당 야마조에 타쿠 의원에 밀려 득표수 4위로 내려앉는 등, 과거에 비해 크게 존재감이 낮아진 게 확인된지라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정치 생활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부분은 입헌민주당 측에서 도쿄에서 후보자를 두 명 내면서 인지도가 높고 개인기가 강한 렌호가 개인 승부를 하고, 나머지 한 후보에게 입민당의 조직 표를 몰아준 탓도 있었다.
2023년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 선거에서 입헌민주당이 참패한 이후로는 이즈미 겐타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를 비판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다만, 도쿄도련 내에서 내분을 주도해 마쓰바라 진이 탈당하고, 입헌민주당의 주 지지 기반인 렌고 도쿄(連合東京)와의 관계가 악화되는 데 있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어 본인 역시 이미지가 좋지는 않은 편이다.
2016년 6월, 마스조에 요이치 도쿄도지사가 불명예 퇴진함에 따라 보궐 선거를 실시하게 되었다. 민진당에서 최유력 후보로 꼽힌 렌호를 출마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6월 19일에 노다 요시히코가 개인 면담까지 하면서 설득을 하였으나 결국 출마하지 않았다.
2016년 7월 10일 치러진 제24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3선에 성공하였다. 지난 2010년처럼 압도적인 득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도쿄 선거구에서 약 20% 가까이를 득표해 1위로 당선되었다.[7]
옆 나라의 양안관계에 있어서 일본의 보수 정치인보다 더욱 강경하게 중화민국의 국가 승인을 주장한다. 일본에서는 아무리 보수 정치인이고 대만-일본 관계를 중일관계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도 중국 눈치를 보며 발언 수위를 조절할 수밖에 없다. 아베 신조 총리의 "대만은 우리의 친구"라는 발언이 최대 수위일 정도다. 하지만 렌호는 거리낌 없이 일본의 중화민국 불승인 문제를 비판하며 자민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너무 의식한다고 비판했다. 다만 타이완 독립운동 지지자인지 단순히 "두 개의 중국"을 지지하는지는 불분명한 상태다. 일단 본인은 민주진보당 인사들과의 교류가 국민당 인사들보다 더 많다. 물론 두 당이 성향이 같으니 교류하는 것일 수도 있다.
12월에는 스마트폰으로 딴짓하는 사진이 찍혀 논란을 일으켰다.# 한국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의 스마트폰 사용이 엄격히 금지된다.[8]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렌호가 아베 총리에게 사실상 밀렸다는 시각이 우세한 현 상황에서 이러한 악재로 렌호의 이미지에 적지 않은 타격인 셈이다.
토론 시 발성이 매우 또렷하고[9] 달변가이다. 유머까지 섞어 말할 정도로 토론에 능숙해 인기가 높은 아베 신조 총리와 맞토론 시 매우 볼만하다.[10] 실제로 대정부 질문 시 이나다 도모미 방위상은 렌호 대표의 송곳 같은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못 했고, 이 때문에 아베 총리가 대신 일어나 답변하는 바람에 방위상의 자질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2016년 9월, 민진당 대표 경선을 했으며, 오카다 가쓰야, 호소노 고시, 아즈미 준 등이 지지했다. 경쟁자로는 마에하라 세이지, 다마키 유이치로가 있다.
그러나 복수국적 논란으로 인해 2017년 도쿄 도의회 선거에서 정부 책임론을 들고 나온 도민퍼스트회에 자민당 대항마로서의 존재감이 매우 옅어지면서 겨우 있던 7개의 의석 중 2개나 잃어버리는 데다 지난 선거에서 민주당이 얻었던 의석의 3분의 1밖에 차지하지 못하여 이로 인해 노다 요시히코 민진당 간사장이 7월 25일 사퇴를 표명했고 결국 렌호 대표 또한 이틀 뒤에 사퇴를 표명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그녀의 정치적 생명은 물론, 민진당의 미래 또한 상당히 예측 불가의 상태가 되었다.
한편 렌호 대표가 사퇴를 표명한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저녁 시간대에 이나다 도모미 방위상 또한 자위대의 남수단에서의 PKO(평화 유지 활동)를 기록한 문서의 은폐 의혹을 받다가 육상막료장[11]의 사퇴에 이어 본인 또한 사퇴를 표명하게 되었다.[12] 우연히 같은 날 거물급 여성 정치인 두 명의 사퇴 표명이 일어나 정계에 상당한 뉴스거리를 가져온 셈이다.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입헌민주당의 에다노 유키오 대표와 함께 연설에 동참하면서 마에하라 세이지와 고이케 유리코 대표를 격하게 비판하는 등 행보를 보이면서 희망의 당과 완전하게 선 긋기를 하고 있다. 렌호 본인의 성향과도 맞지 않을뿐더러 도쿄 도의회 선거 때 이미 경쟁을 한 경험이 있는데 괜히 철새 소리만 들을 수도 있다. 참의원의 민진당이 해산하게 될 경우 바로 입헌민주당으로 들어갈 것으로 예상이 되었고, 결국 2017년 12월 26일 민진당에 탈당계를 내고, 2017년 12월 28일 입헌민주당에 입당이 승인되어 입헌민주당 소속이 되었다.[13] 근데 이 과정에서 민진당 지도부가 렌호의 탈당 신고서를 수리하지 않는 꼼수를 보여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14]
2018년 11월 한국 인터넷에서 잠깐 동안 화제의 유머 글에 출연하게 되었다. 임시 국회에서 사쿠라다 요시타카 올림픽상의 자질 논란을 지적하며 "정부의 올림픽 예산이 얼마나 되느냐"라고 질문했는데 사쿠라다 대신이 1500 엔이라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는 바람에[15] 유머 소재가 된 것이다. #
그리고 2018년 참의원 입헌민주당 간사장과 당 부대표에 취임하게 되었다.
2020년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설이 돌았으나 보류했다. 결국 입헌민주당에서 독자 후보를 내지 않고, 혁신 성향 무소속 우쓰노미야 겐지 후보를 지원하기로 함에 따라 부대표 자격으로 선거 운동을 전면에서 지원했다. 하지만 우쓰노미야 후보는 13.76% 득표에 그치며 낙선했다.
입헌민주당-국민민주당 통합 이후에도 당의 대표 대행 업무를 계속 수행하고 있다. 현재는 대표 대행직이 오사카 세이지에게로 옮겨가면서 집행부에서 중책을 맡고 있지는 않다.
제26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도쿄도 선거구에 다시 출마해 당선되었지만 6년 전(110만 표)에 비해 득표수가 40만 여 표가량 낮아지며 공산당 야마조에 타쿠 의원에 밀려 득표수 4위로 내려앉는 등, 과거에 비해 크게 존재감이 낮아진 게 확인된지라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정치 생활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부분은 입헌민주당 측에서 도쿄에서 후보자를 두 명 내면서 인지도가 높고 개인기가 강한 렌호가 개인 승부를 하고, 나머지 한 후보에게 입민당의 조직 표를 몰아준 탓도 있었다.
2023년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 선거에서 입헌민주당이 참패한 이후로는 이즈미 겐타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를 비판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다만, 도쿄도련 내에서 내분을 주도해 마쓰바라 진이 탈당하고, 입헌민주당의 주 지지 기반인 렌고 도쿄(連合東京)와의 관계가 악화되는 데 있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어 본인 역시 이미지가 좋지는 않은 편이다.
2024년 일본 도쿄도지사 선거 당신과 다음 도쿄로. RENEWAL TOKYO |
2024년 5월 27일 기자 회견에서 7월 치러지는 도쿄 도지사 선거에 출마할 것을 선언했다.# 조만간 입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다고 한다.[16]
2024년 6월 12일에 탈당계를 제출했고, 6월 18일 승인되었다.# 선거 고시일인 6월 20일, 공직선거법에 따라 참의원 의원직에서 자동 사임되었다.
이후 치러진 2024년 일본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현직 지사인 고이케 유리코에게 패했는데, 2위가 아닌 3위로 패했다. 심지어 기초단체장 출신의 이시마루 신지에게도 밀리는 결과로 상당한 굴욕을 맛보게 되었다. 렌호가 인지도가 낮은 정치인도 아니고, 고이케의 재선 가능성이 높다고는 하지만 자민당과 기시다 내각에 대한 지지도가 낮은 상황이라 어느 정도 선전하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는데 뚜껑을 열고 보니 충격적인 결과가 나온 것이다. 입헌민주당뿐 아니라 각종 혁신계 정당들이 총결집하여 렌호 후보를 지원했고, 보수측 후보들은 3명으로 분열된 상황임에도 3위로 참패했으니 앞으로의 정치행보에 상당한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버지는 대만인이고 어머니는 일본인이며,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일본은 1984년생까지 부계주의 국적법을 택하여 아버지의 국적만을 부여했으며, 따라서 렌호는 1967년생이기 때문에 단독 중화민국 국적이었다. 그리고 1985년 일본으로 귀화하면서 중화민국 국적을 포기했다고 알려져 있었다.[17]
그러나 중화민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복수국적 의혹 논란이 일어났다. 렌호는 그 당시에 일본 국적을 취득하면서 중화민국 국적을 포기했다고 주장하고 있었으나, 1997년 문예춘추 여성지의 기고에서 본인의 국적이 중화민국 국적이라고 발언했던 인터뷰가 발견되어서 오히려 논란에 불을 붙이는 격이 되어버렸다. 렌호 측은 당시 국적 포기 절차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확인함과 동시에 다시 중화민국 국적 포기 서류를 타이베이 대표부에 제출했다고 한다. 결국 호적 등본을 공개되었다. 뉴스, 호적 등본 사진 렌호 대행은 2016년 9월 13일에 여전히 중화민국 국적]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 공식 사과했다.
일본은 원칙적으로 복수 국적을 허용하지 않으며 일본 이외의 국적이 있을 시 포기할 것을 권유한다.[18] 다만 일본 법률에 복수 국적자는 정치 활동을 금한다거나 공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조항은 없다. 또한 이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고 있는 것은 일본은 중화민국을 승인하지 않기 때문에 중화민국 국적 역시도 인정하지 않는 것 때문이기도 하다.
이중 국적 문제가 불거지자 렌호는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일본인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반대로 과거 2000년 10월 인터뷰에서는 "국적에 모두 정체성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귀화했으므로 국적은 일본이지만 정체는 대만인"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그러나 중화민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복수국적 의혹 논란이 일어났다. 렌호는 그 당시에 일본 국적을 취득하면서 중화민국 국적을 포기했다고 주장하고 있었으나, 1997년 문예춘추 여성지의 기고에서 본인의 국적이 중화민국 국적이라고 발언했던 인터뷰가 발견되어서 오히려 논란에 불을 붙이는 격이 되어버렸다. 렌호 측은 당시 국적 포기 절차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확인함과 동시에 다시 중화민국 국적 포기 서류를 타이베이 대표부에 제출했다고 한다. 결국 호적 등본을 공개되었다. 뉴스, 호적 등본 사진 렌호 대행은 2016년 9월 13일에 여전히 중화민국 국적]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 공식 사과했다.
일본은 원칙적으로 복수 국적을 허용하지 않으며 일본 이외의 국적이 있을 시 포기할 것을 권유한다.[18] 다만 일본 법률에 복수 국적자는 정치 활동을 금한다거나 공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조항은 없다. 또한 이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고 있는 것은 일본은 중화민국을 승인하지 않기 때문에 중화민국 국적 역시도 인정하지 않는 것 때문이기도 하다.
이중 국적 문제가 불거지자 렌호는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일본인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반대로 과거 2000년 10월 인터뷰에서는 "국적에 모두 정체성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귀화했으므로 국적은 일본이지만 정체는 대만인"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2016년 9월 7일 중화민국 국적을 정식으로 포기하는 수속을 밟았다. 이후 단독 일본 국적이 되었다.
- 민진당 시절 신바 가즈야와 마찰이 생겨서 지금도 불화가 있다. 정확히는 신바 가즈야가 원래 자민당 출신이라서[19] 자민당 참의원 간부와 친분이 있는 신바와 아베 내각과의 대결색을 강하게 띠려고 한 렌호는 민진당 시절부터 계속 충돌해 왔고, 신바는 국민민주당에, 렌호 본인은 입헌민주당 참의원 간사장으로 각각 취임한 후에는 "신바 가즈야만은 절대로 용서 못 한다"라고 말하면서 제25회 참원선에서 입헌민주당이 신바의 지역구인 시즈오카현 선거구에 자객 후보를 옹립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런 이유로 신바가 마에하라 세이지의 주장#에 찬동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2020년 남편과 이혼했다.
- 자세한 사정은 보도되지 않았으나 두 쌍둥이 자녀 중 아들이 렌호의 입헌민주당과 반대되는 자유민주당 소속 정치인의 양자로 입적되었다는 사실이 2022년 알려졌다.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04 | 924,643 (16.66%) | 당선 (3위) | 초선 | |||
2010 | 1,710,734 (28.06%) | 당선 (1위) | 재선 | |||
2016 | 1,123,145 (18.05%) | 3선 | ||||
2022 | 670,339 (10.64%) | 당선 (4위) | 4선[22] | |||
2024 | 1,283,262 (18.81%) | 낙선 (3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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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거 무라타 노부유키라는 남성과 결혼하였을 때는 무라타(村田)라는 성을 칭하였다. 당시 법적으로 성씨까지 개명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현재 정치인으로서 사용하는 이름은 사이토 렌호이다.[2] 일본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비공식적으로 일본과 중화민국의 복수국적을 보유하고 있던 것이 밝혀져서 비판을 받았다. 결국 2016년 10월 7일, 중화민국 국적을 공식적으로 포기하고 단독 일본 국적이 되었다.[3] 쌍둥이이며 아들은 2022년 자민당 소속 정치인에게 입양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져있다.[4] 입헌민주당 탈당으로 화제회 탈퇴.[5] 본성인이다.[6] 도쿄 도의원 선거 참패와 동시에 불거진 이중 국적 논란에 대해 제대로 된 해명을 하지 않은 데에 당내의 불만이 커졌고 결국 2017년 7월 27일 오후 1시 50분경 사퇴를 표명했다.[7] 그러나 렌호는 자민당 수준의 보수 회파인 화제회 소속이므로 민진당의 진보 계열 후보 오가와 도시오(간 나오토의 나라의 모습 연구회 소속)는 6위이다.[8] 그래도 잘 지켜지지 않는지 잠입 취재를 하면 졸거나 독서하는 등 딴짓을 하는 의원들이 수두룩 나온다.[9] 그래서 일본 현지에 체류 중인데 일본어가 다소 서툰 외국인들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기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지상파 언론에 등장해 발언할 때 이 사람은 유난히 발성이 명료해서 알아듣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앵커 출신인 고이케 유리코와 비슷한 수준이다.[10] 이 때문인지 유튜브 등지에서 렌호가 나오는 토론 영상의 댓글에서는 넷 우익으로 추정되는(혹은 골수 자민당 지지자들) 자들이 "돌아가 민진당", "빨갱이" 등의 단체 악플로 도배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11] 한국의 육군참모총장 격이다.[12] 이나다 방위상과 육상막료장은 해당 문서가 폐기되었다고 주장했지만, 육자대 내부의 전자 데이터 형태로 보관된 것이 드러났다. 이나다 방위상은 최근의 도쿄 도의회 선거 당시에도 "자위대에서도 부탁한다"는 유세 연설로 자위대의 정치 중립 의무 위반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결국 취소 및 사과를 했던 바 있다.[13] 사실 렌호 전 대표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집행부를 비판하고 민진당을 탈당할 수 있다고 시사하고 있었다.[14] 일본에서는 각 정당의 정당 교부금을 부여함에 있어서 매년 1월 1일을 기준으로 소속된 양원의 의원 수를 반영하는데 이미 당내의 분열상으로 탈당 의원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 1석이라도 지켜 더 많은 돈을 뜯어내기 위한 목적이 일반 대중에게도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15] 1500억 엔을 잘못 말한 것이다. 해당 질문 외에도 렌호 의원이 '왜 자신이 대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묻자 나도 잘 모르겠다는 황당한 답을 내놓아 더욱더 논란이 되었다. 실제로 일본의 각료는 딱히 전문성을 보고 입각시켜 주는 게 아니라 자민당 내 여러 파벌원들에게 자리를 분배하며 때가 된 6, 7선 의원들에게 적절히 시켜주는 자리이다. 사쿠라다 의원 역시 컴퓨터도 만져본 적 없는 건설업자 출신 정치인으로 2020년의 도쿄 올림픽 기획에 전문성이 있을 턱이 없이 적당히 임명된 것이고, 대부분 정치인은 그런 지적이 있어도 배워가겠다는 식의 답변을 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너무 솔직하게 답변한 것.[16] 일본 지자체장은 당적 보유가 금지이기 때문에 출마자는 소속 정당을 탈당한 뒤 원소속 정당의 추천을 받는 형식이 일반적이다. 다만 당선 후 재입당하는 것은 가능하다.[17] 일본은 1985년 이후 귀화자나 국적 회복한 자, 1985년 이후 출생자이며 22세를 넘은 사람에게는 복수 국적을 허용하지 않는다.[18] 단 1984년 12월 31일 이전 출생의 복수 국적자나 1984년 12월 31일 이전 귀화자 혹은 국적 회복자에게는 허용한다.[19] 단, 신바가 자민당에 있었을 때는 국회의원이 아닌 키쿠카와 정의회 의원이었다.[20] 해당 화를 보면 알겠지만 처음부터 노리고 만든 에피소드라고 봐도 무방하다.[21] , 사회 보장 재건을 위한 국민 회의와 신설 합당[22] 2024.06.18. 입헌민주당 탈당
2024.06.20. 도쿄 도지사 선거 출마로 인한 사임[23] 5번의 선거 중 첫 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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