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숙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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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숙후 4년(기원전 346년), 조숙후는 주나라의 천자 주현왕(周顯王)에게 입조했다.
조숙후 6년(기원전 344년), 제나라를 쳐서 고당을 점령했다.
조숙후 7년(기원전 343년), 조숙후는 공자 각을 보내 위(魏)나라의 수읍을 쳤다.
조숙후 10년(기원전 340년), 조숙후는 제나라와 함께 위나라를 쳤다.
조숙후 11년(기원전 339년), 조숙후는 다시 위나라를 쳤다.
조숙후 15년(기원전 335년), 조숙후는 수릉에 성을 쌓았다.
조숙후 17년(기원전 333년), 조숙후는 위나라를 쳐서 위나라의 황성을 포위했다. 그러나 이기지 못했다. 조숙후는 장성을 쌓았다.
조숙후 18년(기원전 332년), 제나라는 위나라와 연합해 조나라를 쳤다. 이에 조숙후는 황하의 물로 수공을 가해 위군과 제군을 물리쳤다.
조숙후 22년(기원전 328년), 조나라의 장수 조자가 진군과 싸웠으나 패했다. 진(秦)나라는 하지에서 조자를 죽였다. 그리고 인 땅과 금식 땅이 점령당했다.
조숙후 24년(기원전 326년), 조나라, 한(韓)나라 연합군은 위나라의 양동을 포위했다. 조숙후는 이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그리고 그 아들 조옹(趙雍)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호복기사를 도입해 조나라의 전성기를 이끈 조무령왕이다.
조숙후 6년(기원전 344년), 제나라를 쳐서 고당을 점령했다.
조숙후 7년(기원전 343년), 조숙후는 공자 각을 보내 위(魏)나라의 수읍을 쳤다.
조숙후 10년(기원전 340년), 조숙후는 제나라와 함께 위나라를 쳤다.
조숙후 11년(기원전 339년), 조숙후는 다시 위나라를 쳤다.
조숙후 15년(기원전 335년), 조숙후는 수릉에 성을 쌓았다.
조숙후 17년(기원전 333년), 조숙후는 위나라를 쳐서 위나라의 황성을 포위했다. 그러나 이기지 못했다. 조숙후는 장성을 쌓았다.
조숙후 18년(기원전 332년), 제나라는 위나라와 연합해 조나라를 쳤다. 이에 조숙후는 황하의 물로 수공을 가해 위군과 제군을 물리쳤다.
조숙후 22년(기원전 328년), 조나라의 장수 조자가 진군과 싸웠으나 패했다. 진(秦)나라는 하지에서 조자를 죽였다. 그리고 인 땅과 금식 땅이 점령당했다.
조숙후 24년(기원전 326년), 조나라, 한(韓)나라 연합군은 위나라의 양동을 포위했다. 조숙후는 이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그리고 그 아들 조옹(趙雍)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호복기사를 도입해 조나라의 전성기를 이끈 조무령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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