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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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9월 16일 함경남도 고원군 수동면 미둔리#에서 아버지 강석우와 어머니 허석운의 2남 4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930년 고원보통학교, 1937년 함흥 영생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이후 교직 생활을 하다가, 1951년에 월남했다.
1931년에 '버드나무 열매'라는 동시를 잡지 '아이생활'에 발표하면서 작가로서 데뷔했다. 1937년부터는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1963년 5월 6일 간경화로 사망했다. 한창인 4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2] 그를 기리기 위해 소천아동문학상이 제정되었다.
아래 백석과의 관계가 길게 서술되어 있지만 친화력이 상당히 좋아서, 당시 문학계의 수많은 인사들과 교류가 많았다. 단신 월남을 했으나 인맥을 통해 국방부 정훈국, 문교부 교과서 편찬위원회 등에서도 일했다고 한다.
1931년에 '버드나무 열매'라는 동시를 잡지 '아이생활'에 발표하면서 작가로서 데뷔했다. 1937년부터는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1963년 5월 6일 간경화로 사망했다. 한창인 4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2] 그를 기리기 위해 소천아동문학상이 제정되었다.
아래 백석과의 관계가 길게 서술되어 있지만 친화력이 상당히 좋아서, 당시 문학계의 수많은 인사들과 교류가 많았다. 단신 월남을 했으나 인맥을 통해 국방부 정훈국, 문교부 교과서 편찬위원회 등에서도 일했다고 한다.
동시와 동요를 합하여 300여 편이 있다.
- 버드나무 열매 (1931)
- 호박꽃초롱 (1941)
2000여 편이 있다.
- 진달래와 철쭉 (1953)
- 꿈을 찍는 사진관 (1954)
백석의 제자이자 친구였다. 백석은 강소천과 소천의 문재를 몹시 아꼈다고 한다. 특히 소천의 시집 <호박꽃초롱>에 실린 백석의 축시, <호박꽃초롱 서시>는 백석의 시 중에서도 명편이거니와, 강소천에 대한 그의 애정이 몹시 깊음을 알아볼 수 있다.
<호박꽃 초롱> 서시
백석
한울은
울파주가에 우는 병아리를 사랑한다
우물돌 아래 우는 돌우래를 사랑한다
그리고 또
버드나무 밑 당나귀 소리를
임내내는 시인을 사랑한다
한울은
풀 그늘 밑에 삿갓 쓰고 사는 벗을 사랑한다
모래 속에 문 잠그고 사는 조개를 사랑한다
그리고 또
두틈한 초가지붕 밑에 호박꽃 초롱 혀고 사는 시인을 사랑한다
한울은
공중에 떠도는 흰 구름을 사랑한다
골짜구니로 숨어 흐르는 개울물을 사랑한다
그리고 또
아늑하고 고요한 시골 거리에서 쟁글쟁글 햇볕만 바래는 시인을 사랑한다
한울은
이러한 시인이 우리들 속에 있는 것을 더욱 사랑하는데
이러한 시인이 누구인 것을 세상은 모라두 좋으나
그러나
그 이름이 강소천인 것을 송아지와 꿀벌은 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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