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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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시 출생으로 생몰연도는 미상이며 세종대왕 때 도화서 정4품 호군을 지낸 것으로 보아 세종 때부터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강행실도의 밑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초상화, 사군자, 의장도 등 각종 그림에 능했지만 안견이 가장 뛰어났던 분야는 산수화였다. 1447년 안견은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광경을 산수화로 그렸는데 몽유도원도이다. 작품에서 안견은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 현실 세계와 무릉도원으로 나뉜 독창적인 화폭 구성을 보여주어 양팽손, 신사임당, 슈우분[1] 등 후대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안평대군은 그림을 보고 감탄하여 그림에 손수 시를 지었다. 이외에도 안견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들이 여럿 있지만 현재 안견이 그린 것으로 확실시되는 작품은 몽유도원도가 유일하다.
전해오는 바에 따르면 안견은 안평대군의 총애를 받으면서도 언제부턴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는데도 안평대군은 허락하지 않았다. 어느 날 안평대군이 아끼는 귀한 먹이 없어져서 안평대군이 저택의 사람들을 추궁할 때 안견의 품에서 먹이 나왔다. 노한 안평대군은 안견을 쫓아냈는데 얼마 못가 계유정난이 일어나서 안평대군이 죽자 사람들은 안견이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수군거렸다고 한다.
전해오는 바에 따르면 안견은 안평대군의 총애를 받으면서도 언제부턴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는데도 안평대군은 허락하지 않았다. 어느 날 안평대군이 아끼는 귀한 먹이 없어져서 안평대군이 저택의 사람들을 추궁할 때 안견의 품에서 먹이 나왔다. 노한 안평대군은 안견을 쫓아냈는데 얼마 못가 계유정난이 일어나서 안평대군이 죽자 사람들은 안견이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수군거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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