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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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신격은 하느님에 해당하는 주신(主神)이나, 중세 이후로는 여러가지 신령의 우두머리를 나타내는 개념에 가까워졌다. 현대에도 '제석신앙'이라는 명칭으로 각종 기복신앙에 연결되는데, 이에 이신론적인 해설을 덧붙일 경우에는 인격신 이전의 원시적인 섭리를 나타낼 수도 있다. 실제로 중세 이후의 환인은 무교에서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된다. 제석천, 옥황상제, 하느님까지 온갖 신격들이 대입되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전국 각지에 전승되는 제석본풀이를 참조하면 업제석·복제석·천궁제석·천존제석·일월제석·용신제석·고깔제석·업영제석·삼신제석·나옹제석·넌출제석·부군제석·도당제석·몸주제석·전안제석·후대제석 등 매우 다양한 영역을 담당하고 있다. 민속학자 조자용은 '이 수많은 신들이 환인에게서 창조되었다'고 보았다. 힌두교의 브라흐마에 대입시켜 보면 일리 있는 해석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전국 각지에 전승되는 제석본풀이를 참조하면 업제석·복제석·천궁제석·천존제석·일월제석·용신제석·고깔제석·업영제석·삼신제석·나옹제석·넌출제석·부군제석·도당제석·몸주제석·전안제석·후대제석 등 매우 다양한 영역을 담당하고 있다. 민속학자 조자용은 '이 수많은 신들이 환인에게서 창조되었다'고 보았다. 힌두교의 브라흐마에 대입시켜 보면 일리 있는 해석일지도 모른다.
일부 역사학계 및 불교학계의 주류 의견으로 환인이 불교 혹은 라마교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학설이다. 아예 불교측에서는 환인이 불신(佛神)의 한 종류에 불과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직접적으로 단군신화를 기록한 일연과 이승휴가 라마교를 믿던 몽골제국 영향하의 고려인 불교도였다는 점[3]과 내용적인 측면에서 전체적으로 두 종교의 요소가 많이 드러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학설은 상당히 설득력이 높다. 최소한 그들이 한국의 신화를 불교의 시각에서 이해하였음은 분명하다.
대표적인 근거로는 《삼국유사》에서 환인이 제석천(謂帝釋也)을 가리킨다고 주를 달아놓은 것이 있다. 제석천은 인도의 신 인드라의 불교식 이름으로, 인드라의 풀네임은 샤크라 데바남 인드라(Śakra devānām indraḥ, "강력한-천신들의-제왕")이다. 이걸 한자로 음역한 것이 석가라-제환-인타라(釋迦羅-帝桓-因陀羅)인데, 줄여서 석제환인(釋帝桓因)이라고 표기되기도 한다. 이러한 연유로 환인이라는 명칭은 제석천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여겨진다.
물론 신에 대한 생각은 보편적이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천신(天神)에 후대에 도입된 불교가 결합하면서 삼국유사의 신화가 정립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현재 전승되는 한국 신화 중에는 미륵이 세상의 창조주로 되어있기도 하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비슷했다. 한국 신화의 사례는 1923년에 민속학자인 손진태가 지금의 함경도 일대에서 채록한 사례였다. 일제 강점기 때의 학자인 이능화는 도교의 원시천존과 한국의 환인을 동일시하였다. 이능화의 저서 조선도교사에서 환인과 원시천존을 같은 위격으로 놓았다. 다만 이 주장은 토르=제우스=인드라 설과 마찬가지로 직접적으로 뒷받침하는 사료가 있는 게 아니라 신의 위격을 보고 이능화가 주장한 것이다. 따라서 반론도 많다.
이러한 불교의 인드라와 토착신앙의 최고신의 동일화는 일찍부터 생겨났는데, 삼국유사에도 제석궁에 상제가 기거한다는 기록이 나오고 동국이상국집에 실린 이규보의 시 노무편(老巫篇)에 보면 이규보가 개성의 늙은 무당이 개성에서 쫓겨나게 되자 이를 통쾌히 여기며 그 무당의 평소 굿하는 모습을 적고 비판하고 있는데, 여기서 언급되는 신격으로 제석천과 칠원성군(칠성신), 구요가 언급된다. 이규보는 무속을 비판할 목적으로 노무편에 당시 무속인들이 굿하는 모습과 그들이 섬기는 신격 등에 대해 매우 세밀하게 적어 놓았는데, 현대에는 이 부분이 한국 무속신앙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서 아주 잘 쓰이고 있다.
대표적인 근거로는 《삼국유사》에서 환인이 제석천(謂帝釋也)을 가리킨다고 주를 달아놓은 것이 있다. 제석천은 인도의 신 인드라의 불교식 이름으로, 인드라의 풀네임은 샤크라 데바남 인드라(Śakra devānām indraḥ, "강력한-천신들의-제왕")이다. 이걸 한자로 음역한 것이 석가라-제환-인타라(釋迦羅-帝桓-因陀羅)인데, 줄여서 석제환인(釋帝桓因)이라고 표기되기도 한다. 이러한 연유로 환인이라는 명칭은 제석천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여겨진다.
물론 신에 대한 생각은 보편적이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천신(天神)에 후대에 도입된 불교가 결합하면서 삼국유사의 신화가 정립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현재 전승되는 한국 신화 중에는 미륵이 세상의 창조주로 되어있기도 하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비슷했다. 한국 신화의 사례는 1923년에 민속학자인 손진태가 지금의 함경도 일대에서 채록한 사례였다. 일제 강점기 때의 학자인 이능화는 도교의 원시천존과 한국의 환인을 동일시하였다. 이능화의 저서 조선도교사에서 환인과 원시천존을 같은 위격으로 놓았다. 다만 이 주장은 토르=제우스=인드라 설과 마찬가지로 직접적으로 뒷받침하는 사료가 있는 게 아니라 신의 위격을 보고 이능화가 주장한 것이다. 따라서 반론도 많다.
이러한 불교의 인드라와 토착신앙의 최고신의 동일화는 일찍부터 생겨났는데, 삼국유사에도 제석궁에 상제가 기거한다는 기록이 나오고 동국이상국집에 실린 이규보의 시 노무편(老巫篇)에 보면 이규보가 개성의 늙은 무당이 개성에서 쫓겨나게 되자 이를 통쾌히 여기며 그 무당의 평소 굿하는 모습을 적고 비판하고 있는데, 여기서 언급되는 신격으로 제석천과 칠원성군(칠성신), 구요가 언급된다. 이규보는 무속을 비판할 목적으로 노무편에 당시 무속인들이 굿하는 모습과 그들이 섬기는 신격 등에 대해 매우 세밀하게 적어 놓았는데, 현대에는 이 부분이 한국 무속신앙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서 아주 잘 쓰이고 있다.
민족주의적 역사학계에서 제기되는 학설으로 대표적 학자로는 최남선과 이병도가 있다. 환인과 제석천의 관계를 축소하고 토착 하늘신과의 관련성을 강화했다.
이 견해에선 환인이라는 표현은 순우리말 형태의 한님 혹은 하늘님이라는 신의 이름을 후대에 석제환인의 한자 표기에 착안하여 '환인(桓因)'으로 음차한 것이며, 그와 동시에 제석천이라는 불교 용어로서의 뜻이 더해졌다고 추정된다. 신라가 원래는 사로국, 사라, 서라벌 등으로 순우리말을 음차했으나 '신라(新羅)'를 국호로 정하면서 덕업일신 망라사방(德業日新 網羅四方)[4]이란 유교적 의미를 부여한 것과 비슷한 경우인 것이다.
실제로 신라 경덕왕 때부터 이루어진 기조로 인명이나 지명 등이 모두 한자화되기 이전까지는 추모왕, 연개소문처럼 사람 이름이나 아사달과 같이 땅 이름도 모두 순우리말이었으므로 후대에 외적인 의미가 부여받았을 가능성은 크다.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이런 불교적 의미 부여를 크게 비판했다.
다만 우리말 한은 '크다', '최고', '광명' 정도의 뜻이지 직접적으로 하늘을 뜻하는 말은 아니기 때문에 설득력이 좀 부족한 느낌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한에 설명에 대해 최상급 형용사로 설명하고 있으며,[5] 환인에 대한 설명에서도 하늘신으로서의 의미 해석만 담은 게 아니라 다른 설들도 같이 소개하고 있다.[6] 물론 학설의 추론대로 크다는 의미를 가진 최상급 형용사 '한'에 존대를 의미하는 '님'까지 붙은 말이라면 환인이 최고신의 이름으로서 격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그런 위상과는 별개로 하늘신이라는 환인의 특성과 간접적으로만 연결되는 이름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한 '한'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의미인 '광명'과 '환하다'의 '환'에 주목하여 '햇님-한님-환인' 순으로 음운변화가 일어났다고 추정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한민족의 태양숭배사상에 연결지어 환인이 태양신이나 태양 그 자체 혹은 빛에 해당하는 신격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한다. 더불어 환인의 다른 표현인 제석이나 천제의 경우 둘 다 하늘의 최고신에 해당하기 때문에 환인의 하늘신적 성격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라고 본다.
또 환인(桓因)이라는 표기 자체는 '제석'처럼 불교적 의미가 거의 확실하므로 순우리말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불교식으로 윤색되었을 뿐 실전된 것은 아니라는 논리로 반박할 수 있다.
이 견해에선 환인이라는 표현은 순우리말 형태의 한님 혹은 하늘님이라는 신의 이름을 후대에 석제환인의 한자 표기에 착안하여 '환인(桓因)'으로 음차한 것이며, 그와 동시에 제석천이라는 불교 용어로서의 뜻이 더해졌다고 추정된다. 신라가 원래는 사로국, 사라, 서라벌 등으로 순우리말을 음차했으나 '신라(新羅)'를 국호로 정하면서 덕업일신 망라사방(德業日新 網羅四方)[4]이란 유교적 의미를 부여한 것과 비슷한 경우인 것이다.
실제로 신라 경덕왕 때부터 이루어진 기조로 인명이나 지명 등이 모두 한자화되기 이전까지는 추모왕, 연개소문처럼 사람 이름이나 아사달과 같이 땅 이름도 모두 순우리말이었으므로 후대에 외적인 의미가 부여받았을 가능성은 크다.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이런 불교적 의미 부여를 크게 비판했다.
다만 우리말 한은 '크다', '최고', '광명' 정도의 뜻이지 직접적으로 하늘을 뜻하는 말은 아니기 때문에 설득력이 좀 부족한 느낌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한에 설명에 대해 최상급 형용사로 설명하고 있으며,[5] 환인에 대한 설명에서도 하늘신으로서의 의미 해석만 담은 게 아니라 다른 설들도 같이 소개하고 있다.[6] 물론 학설의 추론대로 크다는 의미를 가진 최상급 형용사 '한'에 존대를 의미하는 '님'까지 붙은 말이라면 환인이 최고신의 이름으로서 격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그런 위상과는 별개로 하늘신이라는 환인의 특성과 간접적으로만 연결되는 이름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한 '한'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의미인 '광명'과 '환하다'의 '환'에 주목하여 '햇님-한님-환인' 순으로 음운변화가 일어났다고 추정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한민족의 태양숭배사상에 연결지어 환인이 태양신이나 태양 그 자체 혹은 빛에 해당하는 신격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한다. 더불어 환인의 다른 표현인 제석이나 천제의 경우 둘 다 하늘의 최고신에 해당하기 때문에 환인의 하늘신적 성격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라고 본다.
또 환인(桓因)이라는 표기 자체는 '제석'처럼 불교적 의미가 거의 확실하므로 순우리말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불교식으로 윤색되었을 뿐 실전된 것은 아니라는 논리로 반박할 수 있다.
고대에는 다른 민족들의 천신과 비슷한 한민족의 천신 개념이었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에 따라 환인 신앙도 변천을 겪게 되는데, 특히 사대교린을 표방하며 천제 거행을 중지한 조선 시대에 하느님으로서의 제석은 거의 잊히게 된다. 이때는 마니산 참성단 제사나 소격서 등에서 옥황상제로서 눈 가리고 아웅 식 천제를 올렸다. 자세한 내용은 옥황상제 항목 참조.
그런데, 가신(家神)으로서의 제석신 신앙이 발달하고, 무당의 제석거리와 각 집의 제석신앙으로 이어져 산신(産神)·수명신·생산신 등으로서 신앙되면서 인간 생존에서 가장 기본적이고도 필수적인 기능을 지닌 신으로서 믿어지게 되었다. 그러다 1996년 말 제석의 바른 인식과 전통 제석굿을 보존하기 위하여 전통제석굿보존회가 서울에서 결성되고 전통제석굿발표회를 여는 등 제석신앙의 복원운동이 일각에서 일고 있다.
오늘날에는 한때 하늘의 제일신이었던 그 위상은 거의 사라지고 대개 부귀영화의 신령이나 조상을 위하는 신령으로 믿는 경향을 보인다. 이것은 한국 내 거의 모든 종교의 신 및 초월적 존재가 겪는 공통현상이다.
그나마 환인, 환웅, 단군 삼신을 모시던 황해도 구월산의 '삼성사(三聖祠)'에서는 환인의 본래 신격이 제대로 유지되었는데, 황해도 지역이 원래부터 단군신앙이 강한 지역이기도 했고, 조선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제사와 유지비를 지원해 준 덕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무려 이승휴의 제왕운기에 나올 정도로 역사가 깊은 사당이다.
매년 10월 3일 개천절에 서울의 사직공원과 평양의 단군릉을 비롯하여, 한반도 전체의 단군사당에서 일제히 개천절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가신(家神)으로서의 제석신 신앙이 발달하고, 무당의 제석거리와 각 집의 제석신앙으로 이어져 산신(産神)·수명신·생산신 등으로서 신앙되면서 인간 생존에서 가장 기본적이고도 필수적인 기능을 지닌 신으로서 믿어지게 되었다. 그러다 1996년 말 제석의 바른 인식과 전통 제석굿을 보존하기 위하여 전통제석굿보존회가 서울에서 결성되고 전통제석굿발표회를 여는 등 제석신앙의 복원운동이 일각에서 일고 있다.
오늘날에는 한때 하늘의 제일신이었던 그 위상은 거의 사라지고 대개 부귀영화의 신령이나 조상을 위하는 신령으로 믿는 경향을 보인다. 이것은 한국 내 거의 모든 종교의 신 및 초월적 존재가 겪는 공통현상이다.
그나마 환인, 환웅, 단군 삼신을 모시던 황해도 구월산의 '삼성사(三聖祠)'에서는 환인의 본래 신격이 제대로 유지되었는데, 황해도 지역이 원래부터 단군신앙이 강한 지역이기도 했고, 조선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제사와 유지비를 지원해 준 덕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무려 이승휴의 제왕운기에 나올 정도로 역사가 깊은 사당이다.
매년 10월 3일 개천절에 서울의 사직공원과 평양의 단군릉을 비롯하여, 한반도 전체의 단군사당에서 일제히 개천절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1] 김대중 정부 시절 북한과 교류가 활발할 때 소개되었다. 초상화의 기법 등으로 보아 근대에 창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진품이라고 해도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신인 만큼 어느 시기에 무속적 용도로 쓰이던 초상화를 모사하여 근대 기법으로 그려냈을 것이다.[2] 연세대학교 박물관 '2016 파른본 삼국유사 교감' 58쪽 참조.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재인용.[3] 다만 일연은 5교9산에서 선종계통의 구산선문 중 가지산문 출신으로 티베트불교와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주류 티베트불교는 그 교학적 특성이 선종과 구분되며 이는 삼예논쟁의 사례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현대 한국이나 조선시대와는 달리 고려시대만 해도 종파 간 대립과 분열이 존재하던 시절이므로 몽골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하여 티베트불교적 시각을 갖고 있었을 것이라 단언하기는 어렵다.[4] '덕업(德業)이 날마다 새로워져 사방을 널리 받아들인다는 뜻이다.[5] #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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