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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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忠武路 / Chungmu-ro | ||
노선 번호 | 2707번 서울특별시도 | |
기점 | ||
종점 | ||
연장 | 914m | |
개통일 | ||
관리 | ||
왕복 차로수 | 4차로 | |
주요 경유지 |
忠武路 / Chungmu-ro
사실 지금 충무로는 본래의 충무로가 아니다. 현재의 '명동8나길~명동8가길~삼일대로4길~수표로2길~충무로2길~창경궁로1길~퇴계로49길'에 해당되는 골목길들이 진짜 충무로였다. 후술하듯 법정동 충무로1~5가의 영역도 이 골목길을 따라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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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가(親家)는 건천동(乾川洞)에 있었다. 청녕공주(靑寧公主) 저택의 뒤로 본방교(本房橋)까지 겨우 서른네 집인데, 이곳에서 국조 이래로 명인(名人)이 많이 나왔다.
김종서ㆍ정인지ㆍ이계동(李季仝)이 같은 때였고, 양성지(梁誠之)ㆍ김수온(金守溫)ㆍ이병정(李秉正)이 한 시대였으며, 유순정(柳順汀)ㆍ권민수(權敏手)ㆍ유담년(柳耼年)이 같은 시대였다. 그 후에도 노 정승(盧政丞 노수신(盧守愼))과 나의 선친 및 지사(知事) 변협(邊協)이 같은 때이며, 근세에는 유서애(柳西厓 서애는 유성룡(柳成龍)의 호)와 가형(家兄) 및 덕풍군(德豊君) 이순신(李舜臣)ㆍ원성군(原城君) 원균(元均)이 한 시대이다. 서애는 국가를 중흥(中興)시킨 공이 있었고, 원ㆍ이 두 장수는 나라를 구원한 공이 있었으니 이때에 와서 더욱 성하였다.ㅡ 《성소부부고》 제24권 성소부부고 #
허균의 작품 <성소부부고>에서 묘사된 건천동. 충무공 이순신이 태어난 곳을 묘사했다.
이름의 유래는, 아마도 대부분의 한국인이라면 자연스럽게 떠올리겠지만 충무공 이순신. 광복 이후 일본식으로 된 도로명을 한국식으로 바꿀 당시, 이곳 인근 건천동에서 태어난 가장 유명한 인물인 이순신 장군의 시호에서 이름을 따서 붙였다. 현재 명보극장 주변에 충무공이 태어났다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사실 정확한 위치는 명보극장 앞은 아니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시절 충무로의 이름은 드라마 야인시대에서도 나와서 잘 알려진 '혼마치(本町)'로, 구한말부터 일본 상인이 일대로 많이 진출하여 상업 중심지가 되었다. 이 거리에 이순신 장군의 이름을 붙인 것도 일본인이 많이 살던 곳이라서 광복 후 일본의 삿된 기운을 다스리고 일제강점기를 청산하는 의미로 붙인 격이기 때문이다.[2]
일찍이 건천동 일대는 "마른내"라고 불리었다. 마른내가 바로 건천(乾川)이다. 비가 올 때만 냇물이 되는 아주 가는 실개천이 흘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지금은 을지로와 퇴계로 사이에 동서로 구불구불 뻗어 있는 도로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부터 명동성당을 지나 롯데백화점까지 뻗어 있는 도로이다. 이 길은 일본인 거주구역 중심지인 메이지초(명동)와 혼마치(충무로)가 되었으며,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현재의 퇴계로가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의 세운-진양상가 구역과 퇴계로는 2차대전 후반기 미군 폭격을 우려한 일제 당국이 시가지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사지로 내몰며 강제로 철거하고 소개공지[3]를 닦아놓은 곳에 각각 건물과 길을 올린 것이다. 현재는 옛 길에 '마른내길'이라는 도로명을 붙여놓고 있다.
이순신 외에도 조선시대의 내로라하는 많은 위인이 태어났고 또한 거주했던 곳이다. 세종 때의 정치가인 정인지의 집, 홍길동전의 저자로 유명한 허균과 그의 누이 허난설헌의 친가의 집[4], 북방 개척으로 유명한 김종서의 집, 세조 때의 양성지의 집과 김수온의 집, 연산군 때의 신수근의 집이 이곳에 있었다. 또한 임진왜란 때의 명재상 류성룡과 이항복, 고전시가의 대표자이자 예송논쟁의 중추였던 고산 윤선도도 이곳에서 살았다. 실제로 류성룡과 이순신은 이 건천동 시절부터 알고 지낸 막역한 사이다.
이름의 유래는, 아마도 대부분의 한국인이라면 자연스럽게 떠올리겠지만 충무공 이순신. 광복 이후 일본식으로 된 도로명을 한국식으로 바꿀 당시, 이곳 인근 건천동에서 태어난 가장 유명한 인물인 이순신 장군의 시호에서 이름을 따서 붙였다. 현재 명보극장 주변에 충무공이 태어났다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사실 정확한 위치는 명보극장 앞은 아니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시절 충무로의 이름은 드라마 야인시대에서도 나와서 잘 알려진 '혼마치(本町)'로, 구한말부터 일본 상인이 일대로 많이 진출하여 상업 중심지가 되었다. 이 거리에 이순신 장군의 이름을 붙인 것도 일본인이 많이 살던 곳이라서 광복 후 일본의 삿된 기운을 다스리고 일제강점기를 청산하는 의미로 붙인 격이기 때문이다.[2]
일찍이 건천동 일대는 "마른내"라고 불리었다. 마른내가 바로 건천(乾川)이다. 비가 올 때만 냇물이 되는 아주 가는 실개천이 흘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지금은 을지로와 퇴계로 사이에 동서로 구불구불 뻗어 있는 도로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부터 명동성당을 지나 롯데백화점까지 뻗어 있는 도로이다. 이 길은 일본인 거주구역 중심지인 메이지초(명동)와 혼마치(충무로)가 되었으며,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현재의 퇴계로가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의 세운-진양상가 구역과 퇴계로는 2차대전 후반기 미군 폭격을 우려한 일제 당국이 시가지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사지로 내몰며 강제로 철거하고 소개공지[3]를 닦아놓은 곳에 각각 건물과 길을 올린 것이다. 현재는 옛 길에 '마른내길'이라는 도로명을 붙여놓고 있다.
이순신 외에도 조선시대의 내로라하는 많은 위인이 태어났고 또한 거주했던 곳이다. 세종 때의 정치가인 정인지의 집, 홍길동전의 저자로 유명한 허균과 그의 누이 허난설헌의 친가의 집[4], 북방 개척으로 유명한 김종서의 집, 세조 때의 양성지의 집과 김수온의 집, 연산군 때의 신수근의 집이 이곳에 있었다. 또한 임진왜란 때의 명재상 류성룡과 이항복, 고전시가의 대표자이자 예송논쟁의 중추였던 고산 윤선도도 이곳에서 살았다. 실제로 류성룡과 이순신은 이 건천동 시절부터 알고 지낸 막역한 사이다.
1983년 초반에 첫 선을 보인 KBS의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추적 60분의 첫 방송 소재가 이 충무로 영화가를 소재를 다루었는데 당시 방영되었던 제목은 "한국의 헐리우드, 충무로 영화가"였다.
과거 이 길가에 대형 영화관과 영화 제작사 사무실이 많았기 때문에[5] 한국 영화의 대명사가 되었으며, 이 때문에 충무로 국제 영화제 같은 대규모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대 현재 이 지역 전통 극장은 멀티플렉스 유행에 밀려나서 숫자가 크게 줄면서 그나마 변신을 꽤 한 대한극장 등 소수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세한것은 충무로(은어)항목 참조
과거 이 길가에 대형 영화관과 영화 제작사 사무실이 많았기 때문에[5] 한국 영화의 대명사가 되었으며, 이 때문에 충무로 국제 영화제 같은 대규모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대 현재 이 지역 전통 극장은 멀티플렉스 유행에 밀려나서 숫자가 크게 줄면서 그나마 변신을 꽤 한 대한극장 등 소수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세한것은 충무로(은어)항목 참조
퇴계로 5~6가 사이에 위치한 충무로 애견거리는 애견/애묘 매니아들 사이에서 반려동물의 메카라고 하여 명성이 자자한데, '애견센터'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1955년부터 명동 제일백화점 자리에 있었던 국내 최대 애완동물 상점인 '애조원'이 1960년대 명동 개발로 밀려나 충무로로 옮기면서 상권이 형성되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애완동물은 부유층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그냥 동물원처럼 눈요깃거리로 취급하는 분위기였으나, 1970~80년대에 걸쳐 경제성장이 진전되고 산아제한 정책으로 가족 형태가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바뀌자 반려동물 사육 인구가 늘어나면서, 애견 시장 규모가 커져 충무로 애견 상권은 유례 없던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에는 "애완동물을 사려면 충무로로 가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
그러나 1999년 안티 충무로 카페가 개설되고 2001년 4월 오마이뉴스 기사와 2007년 1월 MBC의 불만제로를 통해 몇몇 점포에서 벌어진 부정적인 면이 폭로되어 애견 타운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고, 2010년대 들어 '몰리스펫샵', '펫가든', '이리온' 등 대기업들의 반려동물 판매업계 진출과 인터넷 거래 성행, 충무로 재개발 등으로 예전과 달리 명성을 누리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상태이다.
리그베다 위키에선 MBC 불만제로 등의 영향으로 해당 항목 내에서 애견 업계에 대한 부정적인 서술이 있었으나, 충무로 애견 업자들이 명예훼손을 이유로 고소할 것[6]이라는 우려로 문단이 삭제되었다. 나무위키에서도 매의 눈으로 지켜보는 업계인이 존재할지 모르니 작성에 유의하자.
1955년부터 명동 제일백화점 자리에 있었던 국내 최대 애완동물 상점인 '애조원'이 1960년대 명동 개발로 밀려나 충무로로 옮기면서 상권이 형성되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애완동물은 부유층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그냥 동물원처럼 눈요깃거리로 취급하는 분위기였으나, 1970~80년대에 걸쳐 경제성장이 진전되고 산아제한 정책으로 가족 형태가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바뀌자 반려동물 사육 인구가 늘어나면서, 애견 시장 규모가 커져 충무로 애견 상권은 유례 없던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에는 "애완동물을 사려면 충무로로 가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
그러나 1999년 안티 충무로 카페가 개설되고 2001년 4월 오마이뉴스 기사와 2007년 1월 MBC의 불만제로를 통해 몇몇 점포에서 벌어진 부정적인 면이 폭로되어 애견 타운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고, 2010년대 들어 '몰리스펫샵', '펫가든', '이리온' 등 대기업들의 반려동물 판매업계 진출과 인터넷 거래 성행, 충무로 재개발 등으로 예전과 달리 명성을 누리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상태이다.
리그베다 위키에선 MBC 불만제로 등의 영향으로 해당 항목 내에서 애견 업계에 대한 부정적인 서술이 있었으나, 충무로 애견 업자들이 명예훼손을 이유로 고소할 것[6]이라는 우려로 문단이 삭제되었다. 나무위키에서도 매의 눈으로 지켜보는 업계인이 존재할지 모르니 작성에 유의하자.
영화 골목이라는 이미지는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밀집한 인쇄소가 그 이미지를 대신한다. 그리고 인접한 퇴계로 오토바이 거리의 영향으로 모터사이클 점포와 수리점, 용품점들도 아주 많다. 전국적으로도 모터바이크 관련 상가가 가장 밀집된 지역 중 하나. 동국대학교가 인근에 있지만 타 대학가에 비해서 맛집이나 먹자골목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편. 오히려 인쇄소를 상대로 하는 먹자골목이 흥한다. 퇴계로를 기준으로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호프골목은 남단에, 인쇄소를 상대로 하는 먹자골목은 북단에 있다. 인쇄소쪽 먹자골목에서는 추억의 영화 포스터들을 가게 간판에 걸어놓아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충무로(개그콘서트)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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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충무대로는 충무동에서 유래하였으나 충무동 역시 충무로와 마찬가지로 충무공에서 유래하였다.[2] 인근의 을지로도 원래 '황금정(黃金町)'이었는데, 이곳은 중국인(화교)들이 몰려 상권을 형성했던 곳이라 역시 해방 이후 '중국의 기운을 다스린다'는 의미로 을지문덕 장군의 성을 따 '을지로'로 개칭됐다.[3] 공터를 만들어 폭격으로 인한 화재가 더 이상 옮겨붙지 않도록 방화선을 구축해놓은 곳[4] 허균, 허봉, 허난설헌은 강릉에서 태어났다. 문서 참조.[5] 충무로역 앞에 현재도 운영 중인 대한극장 외에도 현재 아시아경제신문이 입주하고 있는 아시아미디어타워 자리에 있던 스카라극장, 스카라극장의 대각선 위치에 있는 명보극장(현 명보아트홀) 등이 충무로의 대표적인 개봉관이었다.[6] 이미 업계측은 2000년대 초 안티충무로 커뮤니티를 겨냥하며 '허위 사실'이라고 소송까지 불사하겠다고 하며 맞선 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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