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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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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 IDC(AS26496)
토론 역사

고려 문종의 왕자
고려의 제왕
진한공 왕유 | 漢陽侯 王愉
출생
미상
사망
본관
유(愉)
부모
부왕 문종
모친 인경현비
형제자매
배우자
진한공비(辰韓公妃)
→ 화신공비(和信公妃)로 추정
자녀
2남 2녀 [ 펼치기 · 접기 ]
장남 - 회안백 왕기(王沂)
차남 - 진강백(晉康伯) 왕연(王演)
장녀 - 문정왕후(文貞王后)
차녀 - 경창원주(敬昌院主)
지위
제왕(諸王)
작호
진한후(辰韓侯)
진한공(辰韓公)[1]
시호
화신(和信)

1. 개요2. 생애3. 가족관계


1. 개요[편집]

고려의 왕자.

고려 제11대 국왕 문종의 아들로 생모는 인경현비다.

동복형제로는 조선국양헌왕 왕도, 부여공 왕수이 있다.

2. 생애[편집]

문종과 후궁 인경현비 이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종 3년인 1086년 2월 21일에 검교태위 수사공(檢校太尉 守司空)에 임명되었다.

헌종 즉위년인 1094년 6월 30일에 한산후, 낙랑백과 함께 수사도(守司徒)로 승진하였다.

숙종 즉위년인 1095년 10월 18일에 상서령(尙書令)이 더해지고 식읍 6천호, 식실봉 4백호를 하사 받았다.

숙종 4년인 1099년 11월 4일에 사망하였다. 당시 후작이었는데, 사후에 공작으로 추봉된 것으로 보인다.

3. 가족관계[편집]

외조부는 인천 이씨인 장화공(章和公) 이자연이다. 장남 왕기는 예종의 딸 대녕공주와 결혼해 회안백에 봉해졌다. 무뢰한과 어울려 다니다 예종 12년(1117) 유배된다. 차남 왕연은 숙종의 딸 복녕궁주와 결혼해 진강백에 봉해진다. 장녀 왕씨는 예종비가 됐는데, 남편이 죽은 뒤는 영정궁(永貞宮)에서 거처했다.

이복남매이자 이종남매간인 부여후 왕수와 적경공주(積慶宮主)가 혼인할 때 동성간의 혼인은 불가하다고 간언한 점을 고려했을 때, 족외혼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2] 어차피 이 시기에 남아 있는 왕족 여성이 없기도 했다.
[1] 《고려사》 후비열전 인경현비 편에서 진한공으로 기록되어 있다.[2] 유력한 후보는 남편이 알려지지 않은 이정의 막내딸로 언니 두 명이 모두 왕가와 혼인한데다가 인천 이씨가문이 전반적으로 왕가와 통혼이 잦았기 때문이다.[3] 숙종의 장녀[4] 숙종의 4녀[5] 《고려사》엔 이름의 훈음은 같으나 한자는 달리하는 경우가 많다. 충선왕의 부마인 허종 역시 이름이 琮 또는 悰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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