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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계 러시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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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거주 지역3. 상세4. 문화5. 러시아의 카자크6. 러시아의 우크라이나계 유대인7. 러시아의 크림 타타르인8. 인물9.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시베리아의 코사크 정착촌
  • 시베리아의 코사크 정착촌
우크라이나계 러시아인러시아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 또는 우크라이나인 후손들이다. 원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키예프 루스를 기원으로 하는 같은 나라였으나 13세기 몽골 제국의 침략 이후 서로 독자적인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루스 차르국 시절부터 우크라이나인들은 전통적으로 러시아 사회 내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으며 러시아 제국 말 공식적인 인구 통계 조사가 이루어진 시점부터 소련 붕괴 이전까지는 항상 러시아인 다음으로 많은 민족이기도 했다. 소련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가 독립해 나가면서 러시아 연방에서 우크라이나계 러시아인은 공식적인 통계 상으로는 러시아인타타르인 다음으로 3번째로 인구가 많은 민족이 되었다.[1] 단순히 정체성이 아니라 혈통으로 따지면 훨씬 많다.

2. 거주 지역[편집]

우크라이나계 러시아인들은 기본적으로 수도 모스크바남부 연방관구 쿠반을 중심으로 유럽 러시아 지역에 많이 거주하지만 시베리아, 극동 지역, 중앙아시아에도 상당히 많은 편인데 루스 차르국과 후신 러시아 제국이 우크라이나 일대의 코사크 경기병과 경보병들을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영토 확장에 적극 활용했던 영향과 표트르 스톨리핀의 이민 장려 정책의 영향 때문이다.

러시아 제국에서 1861년부로 농노를 해방한 후 러시아 제국의 유럽 영토 지역 농촌은 인구 과밀 문제가 심각하였는데 스톨리핀은 농민들의 빈곤 문제도 해결하고 시베리아와 극동, 중앙아시아 영토도 확실히 개발할 겸 아시아 영토로 이주하는 농민들을 대상으로 모든 체납금 탕감, 기차표 가격 인하, 5년 동안의 세금 면제, 무이자 대출 등 엄청난 특혜를 밀어주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인들 외에도 상당수의 우크라이나인들이 중앙아시아 외에도 극동 지역과 시베리아 각지로 이동, 정착했다. 당시 러시아 제국의 아시아 영토에 정착한 우크라이나인들이 1914년 기준으로 200만명에 달했고 이후에도 상당수의 우크라이나인들이 소련 각지에 정착하였다. 이들은 러시아인들과의 통혼으로 러시아인으로 동화되었으며 성씨를 통해 그 흔적을 짐작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경제 상황이 어렵다 보니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 연방으로 가서 일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 이쪽은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동부지역 우크라이나인이나 러시아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2014년 돈바스 전쟁 이후 돈바스에서 이주한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로 귀화하는 경우가 많다.

3. 상세[편집]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문화, 종교 등 모든 면에서 매우 가깝다 보니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 사이의 통혼은 굉장히 일상적인 일이었다. 이 점에서는 벨라루스인도 마찬가지다. 다른 한편으로 러시아 제국 시대 우크라이나어 및 우크라이나 민족 문화 탄압 정책에 의해 우크라이나계 러시아인들 중에는 사실상 러시아인, 소련인으로 살며 우크라이나계 정체성을 숨겨야 했던 경우 혹은 아예 혈통과는 별개로 러시아계 정체성이 더 강한 경우도 적지 않은 편이다. 예를 들어 표트르 차이콥스키는 부계가 우크라이나계였으며 대한민국 방송에도 자주 출연하는 러시아인 일리야 벨랴코프 역시 어머니가 우크라이나인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소련 서기장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의 러시아어에는 우크라이나어식 발음이 묻어나왔지만 본인의 정체성을 러시아인으로 생각했으며 한국에서도 유명했던 이종격투기 선수 표도르 예멜리야넨코는 본래 우크라이나계지만 러시아 국기를 두르는 세리머니나 블라디미르 푸틴의 초청을 받은 일화 등을 생각하면 그의 정체성은 확고한 러시아인이라고 보는 쪽이 옳을 듯 하다.

루스 차르국에서는 같이 정교회를 믿는 우크라이나 코사크들을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가톨릭 강요의 압제에 맞서 구원한다는 주장 하에 코사크 지도자 보흐단 흐멜니츠키의 도움을 얻어 우크라이나 영토에 절반을 장악하였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3차에 걸친 폴란드 분할 이후 우크라이나 서부 갈리치아, 자카르파탸 지역 외에 대부분의 우크라이나 지역이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러시아에 대한 우크라이나인들의 감정은 복잡미묘하다. 한편으로 러시아 제국은 크림 타타르족들을 토벌하고 동시에 폴란드의 가톨릭 강요나 정교회 박해로부터 우크라이나인들의 정교회 신앙을 지켜준 형제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코사크들을 강제로 징발하여 노역을 시키고 우크라이나 민족 문화와 언어를 말살하는 사악한 압제자이기도 하다. 특히 러시아 제국 근대화의 시조로 평가받았던 표트르 대제부터가 상트페테르부르크 건설 과정에서 엄청난 수의 우크라이나인을 희생시킨 것으로 악명 높으며 러시아 제국에서는 점진적으로 우크라이나어 사용을 제한하고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탄압하는 정책을 강화해 왔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인 유명 인사 상당수는 우크라이나어 대신 러시아어로 글을 쓰고 활동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인에 대한 러시아 제국의 장기간의 동화 정책은 심지어 소련 시절에도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벨라루스인, 우크라이나인, 러시아인 간의 통혼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일례로 러시아인 중 조부모나 부모 중 한 쪽이 우크라이나계가 아닌 경우를 찾는 게 더 힘들다고 하는데 특히 시베리아 지역으로 가면 러시아인 정체성을 가진 이들 중에서도 우크라이나계 성씨(~ko, ~chuk 등)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양국이 키예프 공국을 뿌리로 두고 있다는 점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가깝다. 2010년대에 들어서 돈바스 분쟁 등의 이유로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이민자가 증가하면서 우크라이나인의 비율이 증가하였다. 2019년 2월 기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로 이민오는 이민자의 수가 가장 많은 국가로 뽑혔다. 2014년에서 2017년까지 러시아로 이민 온 우크라이나 국민은 60만명에 달했다.

4. 문화[편집]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들은 대부분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쓰는 경우가 일반적이며 대부분 정교회 중에서도 러시아 정교회 모스크바 소속의 정교회를 믿고 있다.

우크라이나계 러시아인 출신 유명 문인으로는 니콜라이 고골미하일 숄로호프가 있다.

5. 러시아의 카자크[편집]

우크라이나계 러시아인들 중 카자크[2] 정체성을 가진 이들. 러시아 제국 치하의 카자크는 특히 시베리아 개척 과정에서 활발히 활약했으며 이러한 연유로 시베리아의 러시아인 중 우크라이나계 성씨를 가진 경우가 많다. 우크라이나를 대표하는 코사크 집단은 자포로제 코사크인데 흑해 코사크, 아조우 코사크, 다뉴브 코사크는 자포로제 코사크를 기원으로 한다. 오늘날의 러시아 영토에 해당하는 쿠반 지역으로 이주된 쿠반 코사크 역시 자포로제 코사크를 기원으로 한다.[3]

소련에서 카자크 탄압이 줄어든 후에는 소련에서도 소련군 소속으로 활발히 활동하였다. 현재도 러시아군의 카자크는 비록 전근대 및 근대와 같은 기병은 아니지만 나름 이름값을 하고 있다.

6. 러시아의 우크라이나계 유대인[편집]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시절 우크라이나 일대에서 마름 일을 하던 유대인들의 상당수가 폴란드 분할 이후 러시아 제국의 신민으로 편입된 경우다. 폴란드-리투아니아와 다르게 러시아에서는 유대인들을 탄압했기 때문에 이들 중 러시아에 남아있는 경우는 드물었고[4] 19세기 상당수가 미국으로 이민하였다. 물론 러시아 본토로 이주한 경우도 많았다.

러시아 제국 치하의 우크라이나계 유대인들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에 대해 회의적인 경우가 많아서 일반 우크라이나인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나마 우크라이나 본토의 우크라이나계 유대인들은 현대에 들어서는 우크라이나인으로서의 정체성도 매우 강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계 유대인들은 현대에 들어서면서 러시아계 유대인들과 그다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러시아화된 경우가 많다.

7. 러시아의 크림 타타르인[편집]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크림 타타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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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 칸국 시절에 크림 타타르인은 우크라이나인[5]을 납치하여 노예로 삼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로 인해 크림 타타르인 남성이 우크라이나인 여성 노예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얻는 일이 대대로 일어나면서 현대 크림 타타르인은 전형적인 우크라이나인의 외모를 가지게 되었다.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크림 타타르인은 이슬람 믿는 우크라이나인으로 대접받으며 살아가지만 러시아의 크림 타타르인은 러시아의 변방을 약탈한 원수의 후손으로 취급받으며 열악한 삶을 살고 있다.

8. 인물[편집]

9.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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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정치·치안·사법
선거
외교
국방
역사
경제
지리
사회
언어
교통
문화
민족
디아스포라

[1] 2010년 기준 러시아인 111,016,896명, 타타르인 5,310,649명, 우크라이나계 러시아인 1,927,888명[2] 카자크는 러시아어 명칭이며 우크라이나어로 하면 상술한 것처럼 코사크가 된다.[3] 러시아 카자크를 대표하는 집단으로는 돈 카자크가 있는데 캅카스 산맥의 테레크 카자크, 바이칼 호 일대의 바이칼 카자크, 시베리아 카자크, 아무르 강 일대에 주둔한 아무르 카자크는 돈 카자크에서 갈라져 나왔다.[4] 러시아 제국 시절에는 유대인들이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 진입하는 것을 금지하였다.[5] 우크라이나인 뿐만 아니라 러시아인과 폴란드인도 납치하여 노예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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