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의 서울대학교 졸업을 기념하는 손명순 여사 |
1929년 경남 김해시 진영읍에서 아버지 손상호(孫相鎬)와 어머니 김근이(金劤伊)[5]의 2남7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손명순의 집안은 전국에서 손꼽히던 규모를 자랑하던 고무회사를 경영하던 재벌집안이었다. 이화여자대학교 약학대학 출신으로, 이순자와 마찬가지로 이화여대를 다니다가 남편을 만났다. 당시 이화여대는 금혼 학칙이 있어서 재학 중에 결혼하면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는데[6],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에 다니다 중퇴하고 결혼한 이순자와 달리, 결혼 사실을 학교에 끝까지 숨기고 다녀 졸업한다.
첫 아이를 가졌을 때는 천으로 배를 두르는 고생을 해 가면서 겨우 약사 면허증을 땄지만, 약국을 개업한 적은 없다. 그리고 대한민국 대통령 배우자가 되면서 결국 장롱면허가 되었다.[7] 결혼 후에도 남편을 총재님 또는 대통령 각하 등 존칭으로 높여 부르는 것으로 유명하다가 남편의 대통령 임기가 끝난 뒤에야 말을 놓았다고 한다. 반면 김영삼은 사석에서 손명순을 친근하게 '맹순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첫 아이를 가졌을 때는 천으로 배를 두르는 고생을 해 가면서 겨우 약사 면허증을 땄지만, 약국을 개업한 적은 없다. 그리고 대한민국 대통령 배우자가 되면서 결국 장롱면허가 되었다.[7] 결혼 후에도 남편을 총재님 또는 대통령 각하 등 존칭으로 높여 부르는 것으로 유명하다가 남편의 대통령 임기가 끝난 뒤에야 말을 놓았다고 한다. 반면 김영삼은 사석에서 손명순을 친근하게 '맹순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998년 김대중 정부(국민의 정부) 시절, 김대중의 초청으로 4명의 전직 대통령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이 청와대 만찬 자리에 함께 한 일이 있는데 당시 최규하의 아내인 홍기를 제외한 이순자, 김옥숙, 손명순, 이희호 4명의 영부인도 한 자리에 모였다.
손명순과 이순자가 나란히 붙어 앉은 사진 기록에는 서로 눈길도 주지 않는 등 여러모로 껄끄러웠던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두환과 김영삼의 정치적 관계를 고려한다면 그 부인인 둘의 관계 역시도 마냥 화기애애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 가능하다. 비교적 단란한 모습을 보인 김옥숙, 이희호와는 비교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손명순과 이순자가 나란히 붙어 앉은 사진 기록에는 서로 눈길도 주지 않는 등 여러모로 껄끄러웠던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두환과 김영삼의 정치적 관계를 고려한다면 그 부인인 둘의 관계 역시도 마냥 화기애애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 가능하다. 비교적 단란한 모습을 보인 김옥숙, 이희호와는 비교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입관식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는 손명순 |
공식 영정 |
남편 김영삼 전 대통령과 사별한 지 약 8년 4개월 만인 2024년 3월 7일[8]17시 39분, 향년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숙환. 서울대병원은 손명순 여사가 2022년 12월 코로나19로 폐렴이 악화돼 계속 입원했다고 밝혔다.[9]
손명순의 사망을 끝으로 삼김시대의 일원과 그 배우자는 모두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장례는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주최로 5일장으로 치렀다. 김무성처럼 몇몇 상도동계 인사들은 매일같이 빈소를 지키곤 했다.
같은 달 11일 국립서울현충원 김영삼대통령묘소에서 남편과 합장되었다.
아들 김현철의 말에 따르면 남매들과 상의하여 아버지와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거주했던 집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어 기념관화하는 것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10]
손명순의 사망을 끝으로 삼김시대의 일원과 그 배우자는 모두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장례는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주최로 5일장으로 치렀다. 김무성처럼 몇몇 상도동계 인사들은 매일같이 빈소를 지키곤 했다.
같은 달 11일 국립서울현충원 김영삼대통령묘소에서 남편과 합장되었다.
아들 김현철의 말에 따르면 남매들과 상의하여 아버지와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거주했던 집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어 기념관화하는 것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10]
- 손상호(1902~1977)
아버지. 영남 최대의 군복·타이어·고무신 생산업체였던 경향고무의 사장
- 김근이(1908~1935)
친어머니.일찍 사망했다.
- 감덕순(1910~?)
의붓어머니.아래로 10명을 더 낳았으며 아버지가 죽고 31년 후까지 살아있었다.
- 김영삼(1929~2015)
배우자.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이다.
- 김혜영(1952~)
김영삼과 본인 사이에 낳은 첫 자녀이자 장녀. 배우 이덕화와는 초등학교 6학년 때(1964년) 같은 반 친구 사이였다. 이때의 인연으로 이덕화가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 당시 김영삼 후보의 지원 유세에 나섰고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기도 광명시 갑 선거구에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지만 낙선하면서 정치권에서 발을 끊었다.
- 김혜정(1954~)
차녀
- 김은철(1956~)
동생과 달리 정치 근처에는 접근조차 하지 않으며, 미국에서 옷장사를 하며 평범하게 살고 있다. 본래 평범하게 살고자 했으나 서슬퍼런 제5공화국 시대에 대학 졸업 후에도 야당 정치인이었던 부친 때문에 도저히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었고, 심지어 김영삼이 5공 정권에 의해서 가택연금 중이었기 때문에 결혼식도 아버지 없이 치러야 했다. 그 뒤에 곧바로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언론과 접촉을 피하면서 살고 있다. 사실상 미국으로 망명을 간 셈이다. 5공 때 미국으로 갔으니 무려 40년 이상을 한국과 거리를 두고 있다. 대통령의 아들임에도 근황이 거의 공개되지 않는 매우 특이한 케이스다. 어머니의 장례식 때도 아버지의 장례식 때 특유의 옷차림을 한 채로 포착되었다. #[11]
- 김혜숙(1961~)
3녀
- 손주환(1939~2022)
제3대 공보처 장관이자 사촌동생이다.
- 여성인권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영부인 재직 시절, 성폭력 범죄 피해자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했으며, 1994년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 당시 본인도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
- 전두환의 장례식에 근조 화환을 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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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대훈장 수훈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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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력 1928년 12월 6일[2] 대한민국의 대통령 배우자 중 2번째로 장수한 인물이다. 가장 오래 장수한 대통령 배우자는 향년 96세의 이희호 여사이다.[3] 남편과 같은 병원에서 사망했다.[4] 족보에 등재되어 있지 않으나, 남편의 족보에 배우자 즉 본인의 본관이 밀양 손씨라고 기재되어 있으므로 밀양 손씨인 것은 확실하다. 다음은 출처 사진들이다. [5] 출처: 위키백과 손명순 문서.[6] 이것은 이화학당 시절에 생겨난 교칙으로, 신체적ㆍ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소녀들이 조혼(강제결혼)으로 학업을 중단당하는 사태를 막기 위하여 당시 미국인 선교사들이 제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뀜에 따라 금혼 학칙은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었고, 2003년에 폐지되었다.[7] 남편 김영삼은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20대 때부터 야당 국회의원 생활을 했을만큼 금수저 집안이었다. 서슬퍼런 시대에 아들을 야당의 정치인 시킬 수 있을 정도로 시가의 살림살이가 워낙 부유했고 친정 역시 대지주 집안이었기에 일부러 약국을 개업하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상황이었다.[8] 차남 김현철의 65번째 생일 전날에 세상을 떠났다.[9] 2024년 의료정책 추진 반대 집단행동이 건강상태에 영향을 주었냐는 말에 대해 김영태 병원장은 전혀 관련없다고 답변했다.[10] 현재 상도동 사저의 법적 소유자는 형(김은철)의 아들 즉, 김영삼의 장손 김성민이다.[11] 현철과 사이에 앉아 있는 사람은 앞서 언급한 YS의 장손 김성민이다.[12] 당시 최형우는 결사반대하는 입장이었다.[13] YS의 호인 거산과 최형우의 호인 온산을 두고 빝댄 말이다.[14] 이 일화의 주인공 최형우는 YS의 장례 당시 매일 빈소를 찾아온 것과 달리 그때보다 건강이 많이 악화되었기 때문에 손명순의 빈소를 찾아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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