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탈주민/탈북자 소재 매체 및 탈북민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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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탈주민 유명 인물 혹은 북한이탈주민을 소재로 한 매체에 대해 서술하는 문서.
나무위키에 등재될 정도의 저명성 있는 인물만 기록 가능합니다. |
- 고영환 - 북한의 전 외교관. 프랑스어 능통자로 김일성의 프랑스어 통역을 맡기도 했고 1980년대 내내 아프리카 프랑스어권 국가에서 근무하였다. 자이르 대사관 참사관으로 근무하던 중 기관원들과의 마찰로 반동으로 몰릴 위기에 처하자[1]1991년 5월 탈북해서 한국에 입국하였다.[2] 최초의 외교관 탈북자로, 구 공산권이 무너지고 소련이 흔들리던 시점이라 언론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국정원 산하 연구기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해 왔다. 아무래도 정보기관 소속이라 최초 입국 때의 주목에 비해서 언론 노출이 줄어들었었던 적이 있는데, 정년퇴직한 후로는 다시 방송에 활발히 나오고 있다. 경력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짜배기 북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3]. 이 사람의 탈북 스토리를 알고 싶다면 본인의 저서인 '평양25시'를 참고하자.
- 강춘혁 - 탈북 래퍼
- 김련희 - '비자의적 입남(入南)'을 주장하며 2011년 한국입국 이래 지속적으로 자신을 북송시켜 달라고 주장하는 인물.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 김만철씨와 그 가족들.
- 김용 - '머리를 빠는 남자'의 저자.
- 김현식 - 김형직사범대학 러시아어과 교수 출신으로, 김일성, 김평일, 김정일, 황장엽 등 이름만 대도 알 만한 북한의 주요 인사들에 대한 러시아어 전속 통역을 했던 인물이다. 김평일, 김정일 등에게 직접 러시아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특히 김평일을 비롯한 김경애 계열의 러시아어 공부를 돌보아줬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어 실력이 너무 뛰어나 그대로 두는 것이 마땅하다는 김정일의 평을 받을 만큼 북한의 러시아어 최고 권위자였다.[11] 1990년대 초 소련에서 한국어ㆍ조선어 열풍이 불게 되자 많은 러시아인들이 한국과 북한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는데, 김현식은 소련에서 연수를 온 한국어 교수진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때 많은 소련 교수진이 조선로동당에 김현식 교수를 소련으로 파견해줄 것으로 요청했고, 김정일이 이를 받아들여 모스크바대학 교환교수로 파견되게 되었다. 여기서 한 브로커를 통해 미국에 거주 중이던 흥남 철수 때 헤어진 누나를 만나게 되었고, 이것을 계기로 서유럽권 대한민국 대사관을 통해 탈북하게 된다. 대한민국에서는 국가정보대학원 연구원,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여 예일 대학교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조지 메이슨 대학교 연구교수로 있다.탈북학자 김현식박사, Kim Hyun Sik
- 류희진 - 2015년 탈북. 북한 수중발레 국가대표 출신이다.
- 박상학 -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북한인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으나 공개적인 삐라살포와 공금횡령 등으로 수차례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 박인숙 - 2006년 탈북. 이후 기초생활수급자로 지내다 재입북하여 김정은 정권 유지수단 밎 탈북자를 막기 위한 선전에 출연 중. 사실 그 전에도 일부 탈북자들이 다시 북한으로 되돌아갔는데, 되돌아왔다고 대놓고 광고하는 건 2번째라고. 재입북한 이유는 아들이 평양음악학교 교사였는데 그녀의 탈북으로 불이익을 받는다는 소식과[12] 남한 생활의 어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그녀의 인생 역경에 대해서는 기사 참조. 그녀를 아는 북한 주민들의 반응은 '남조선 바람이 좋으니 칠십 넘은 노인이 당 간부들보다 살이 찌고 혈색도 좋아져서 온 것에 깜짝 놀라고 있다'고 한다. 이후 소식이 없다가 2013년 12월 21일에 다른 재입북자인 최계순(2011년 12월 탈북)과 함께 다시 출현하여 남한의 사회가 냉혹하다며 비판했다. 일단 자신은 평양에서 잘 지내고 있다곤 밝혔지만 여생을 마칠 때까지 안전할지는 보장이 없다. 한국의 탈북자들도 이 노인이 재입북하게 된 원인에 대해서만큼은 동정해주는 편이다.
- 박지현 - 인권운동가로 2008년에 영국에 정착하여 2021년 영국 지방선거에서 그레이터맨체스터주 베리의 무어사이드 지역구 보수당 구의원으로 출마했다. 탈북민이 해외에서 공직 선거에 출마한 최초의 사례이다.기사
- 신동혁 - 북창 수용소 출신 탈북자. 다른 탈북자들과는 달리 아예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탈북에 성공했다고 알려져있으나, 사실은 거짓말을 했던 것이 들통났다.
- 이철은 - 황해남도에서 보위원으로 근무하다가 당시 TV로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를 보고 친구와 함께 서해를 헤엄쳐서 탈북했다. 현재는 각종 북한 관련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 안명철 - 정치범수용소 경비대원이었으나 탈북하여 정치범 수용소의 존재를 알렸다. 정치범수용소의 실상을 폭로한 저서 '완전통제구역'이 유명하다.
- 유태준 - 1998년 11월에 아들과 함께 탈북해 12월 귀순했다. 2000년 2월에는 동생과 어머니도 탈북했는데, 같은 해 6월 유태준은 북한에 남아 있는 아내를 데려오겠다며 재입북했다. 이후 그에 대한 소식이 끊기면서 북한 당국에 체포돼 공개처형됐다는 설이 돌기도 했지만, 2001년 6월 평양방송에서 기자회견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앞서 2001년 1월 아내를 만나려다 장모의 신고로 체포돼 38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고 있었는데, 같은 해 11월 감옥에서 탈옥한데 이어 재탈북에 성공했다.[15] 탈북자 중 재입북한 첫 사례이면서 또한 재탈북에 성공한 첫 사례로 재탈북 이후 한국판 빠삐용으로 보도되면서 근성의 대명사로 남을 수도 있었지만, 이후 망상장애에 시달리면서 행보는 영 그렇지 못했다. 2004년 7월 김정일을 찬양하며 북한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피켓 시위를 하다가 이를 제지하는 경찰을 폭행하며 입건됐고, 같은 해 10월에는 아들의 양육 문제를 두고 동생과 말다툼하다가 동생을 흉기로 찌르면서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되어 징역 3년과 치료감호 10년을 선고받았다. 복역을 마치고 치료감호 기간이 종료된 후에도 망상장애가 계속되면서[16] 2016년 3월부터 나주의 한 정신병원에서 보호 관찰을 받았는데, 2017년 8월 1일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했다. 2달 넘게 그의 행방을 찾지 못해 다시 월북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지만, 10월 중순 인천에서 경찰에 체포되었다.
- 이경희 - 前 리듬체조 선수, 현직 국가대표 상비군 감독.
- 이순실 - '이제 만나러 갑니다" 출연자.
- 이용운씨와 그 가족들 - 1996년 SBS가 탈북의 전 과정을 취재보도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 이애란 - 요리 연구가. 이화여대 대학원 식품영양학 박사 학위를 받은 탈북 여성 1호 박사로 유명해졌다.
- 이유미 - 개인사업가, 유튜버. 혜산군 출신으로 2006년에 귀순했다. 귀순 전까지 총 10여차례의 북송을 겪었을 만큼 대한민국에 오기까지 굉장히 고생을 많이 했다. 이후 2009년부터 중고차매매업을 시작했고 2019년엔 유튜브를 시작했다.
- 이정열 - 2016년 7월, 18살 나이로 홍콩의 홍콩과기대학에서 열린 제 57회 국제 수학올림피아드(IMO)에 참가했다가 대표팀에서 몰래 빠져나온 뒤 홍콩 한국총영사관에 진입하여 탈북했다. 북한 영재 교육기관인 평양 제1중학교 출신으로 국제 수학올림피아드에서 4차례나 은메달을 수상했던 수재였지만, "내가 아무리 공부를 잘 해봤자 결국 핵이나 만드는 곳으로 끌려갈 것이다." 라는 북한의 미래에 한계를 느껴서 탈북을 결심했다고 한다. 서울과학고등학교에서 1년간 재학한 후 2018년 3월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에 입학하였다. 자세한 탈북 내용
- 이철호 - 2008년 노크귀순으로 유명했던 인물. 남한 정착에 어려움을 겪다가 2015년에 아내를 폭행하고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되어 2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 이현서 - "7개 이름을 가진 여자애(The girl with seven names)"(영문판)의 저자로 TED talk에 출연해서 유명해졌다.
- 장영진 - 자전소설 '붉은 넥타이'를 낸 작가. 특이하게도 남성 동성애자(=게이)다. 탈북한 이유 역시 자신의 성적 지향과 이를 감추면서 이어온 북한에서의 삶 사이의 괴리를 견디지 못해서였다. #
- 장정혁 - 격투기 선수.
- 전혜성 - 2014년 1월 탈북. 대한민국에서 방송인으로 사용한 예명은 임지현. 대한민국에서 방송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으나, 2017년 6월 돌연 재입북했다. 사실상 국내에서 탈북자에 대한 이미지를 망친 여성이다. 하지만, 전혜성이 애초에 간첩이나 자진월북이 아니라 그녀의 중국인 남편에게 속아 중국에서 북한 보위부에게 기획 납치를 당하여 강제로 북한으로 끌려간 것이라는 탈북민 지인의 주장도 있다. #
- 정유나 - 방송인, 사회운동가.
- 조명철 - 탈북자 최초 국회의원이다. 19대 총선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당선되었다. 재북 당시 김일성 대학 교원.
- 최진이 - 1991년 김형직사범대학 출신으로 1990년대 초~중반 북한 문학계의 신예로 촉망받았으나, 1994년 원자력 전문가와 결혼 후 아들의 사업실패 때문에 청진으로 추방됐고, 가난에 시달리다 1998년 중국을 거쳐 1999년 탈북에 성공했다. 2001년부터 2년 간 이화여대 여성학 석사과정을 밟으며 월간 <어린이세계> 등지에 칼럼 등을 연재했고, 저서로는 <북한 어린이들은 어떤 놀이를 할까(2001)>, <국경을 세 번 건넌 여자(2005)> 등이 있다.
- 한수애 - 방송인, 유튜버. 캄보디아 북한식당 근무 중 한국 남자와 사랑에 빠져 탈북했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 공개한 탈북 이야기가 실사판 사랑의 불시착이나 다름없어 화제가 되었다.
- 홍순경 - 구 태국주재 북한참사관. 첫째 아들은 아직 북한에 남아있었고 둘째 아들과 함께 태국에서 체류중이었다. 하지만 1999년 상관의 체포로 같이 연좌제 연루 위기에 처하자 태국 탈출을 결심하는데 결국 차량으로 라오스를 경유하여 북송 예정이었던 보위부 공작원에 의해 아들과 분리 납치된다. 그나마 해당 외교관 부부의 경우 중간에 교통사고로 운 좋게 보위부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나, 아들은 북한대사관으로 인계되었다. 하지만 북한의 무단 주권침해에 분노한 태국이 아들도 석방시켜주지 않으면 모든 외교관계를 끊어버리겠다며 북한을 강하게 협박했고 이에 아들 역시 이례적으로, 구사일생으로 풀려난다. 모두 2000년 한국 입국 성공.
- 블랙썸머 - 탈북민 캐릭터 우경선.
- 천국의 국경을 넘다
- GTA 시리즈 - GTA4에서 탈북 한국계 이민자 김영국이 나온다. 위조지폐 사업을 하다 니코에게 결국 살해당하는 것으로 보아, 북한이 위조지폐 찍는걸 풍자한 것으로 추정된다.
[1] 결정타는 현지 근무 중 프랑스 방송에서 뉴스속보로 보도된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부처의 처형소식을 보고 “앗, 저런 일이 우리나라(북한)에서 생겨선 안되는데!”라고 말한 것을 앙심을 품고있던 기관원이 ‘고영환이 차우셰스쿠 처형 장면을 보고 ‘위대한 수령님께도 저런 일이 생길 수 있다’고 함’이라고 왜곡해서 북한에 보고한것이다.[2] 태영호와 달리 단신으로 망명했다. 도저히 가족을 챙길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군인들이 "어머니!" 하고 외치는 걸 보면 눈물만 하염없이 흘린다고 한다.[3] 북한 내에서 알 사람들만 아는 여러 비화들을 많이 증언했다.[4] 효충인성교육원은 다른 학교의 평생교육원/산업교육원 정도에 해당하는 기관으로 정식교수라고 보긴 힘들다.[5] 단, 기사에 오류가 있다. 해당학과에 사이트에 보면 정교수가 아니라 조교수이고, 최초 전임교수는 주승현 고신대교수가 1 호이다.[6] 초기에는 특이한 식성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7] 북한에 있는 국립 과학 연구소.[8] 여담으로, 이때 당시에 연구소 컴퓨터실을 불법으로 개조해서 PC방 사장 노릇도 했다고 한다.[9] 주로 학술서적을 번역했다고 한다.[10] 북한은 가로등을 자동적으로 껐다켰다 할 수 있는 기술이 없어서, 수동으로 일일이 끄는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남한 사람들이 보기엔 이런 황당무계한 직업도(...) 있다.[11] 저서 '나는 21세기 이념의 유목민'을 보면, 자신의 출신 성분이 상당히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의 배려로 김형직사범대학의 교수가 되었다고 한다. 러시아어 통역을 잘 했다고 김정일이 직접 귤 선물을 보내줄 정도였다고 한다. 해당 도서에는 김정일종합대학 설립 계획 등과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있으니 참고.[12] 북한 측에서 "당장 안 돌아오면 당신 아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는 소문이 있다.[13] 배우 박진희와는 동명이인이다.[14]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 스스로 4년 공부하기 싫어서 탈북했더니 14년을 공부했다며 자학드립을 치기도 했다. 당시 자기한테 공부하라고 하는건 사지로 몰아넣는 일과 다를 바 없었다고...[15] 다만, 그의 증언에 따르면 수용소에 수감됐다가 탈출했다는데, 수용소 감시가 상당히 철저하다는 걸 감안하면 수용소 탈출만으로도 기적과 같은 일인지라 그의 재탈북 경위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유태준은 이에 대해 처음 수감됐을 때는 고문을 엄청 받았지만 이후 두 차례 기자회견을 하면서 감시가 소홀해졌다고 주장했다.[16] 유태준이 도주하기 전인 2017년 7월에 주권방송에서 인터뷰를 했었는데, 자신은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국정원이 이를 지속적으로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감옥에 수감된 것도 국정원 때문이라며, 살인미수를 저질렀던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도 않았다.[17] 살인죄는 공소시효가 2007년 개정 이전까지 15년이었고 1997년에 사건이 벌어졌으니 2012년 기준으로 공작원이 잡히지 않았다면 나중에 잡아들인다고 해도 이제는 이한영 살인 혐의로는 처벌할 수 없게 되었다.[18]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장으로 내각제 국가의 국가원수와 비슷한 직위였다. 탈북자건 아니건 통틀어 북한 밖의 북한 고위층 인사는 조선로동당 조직부장과 선전선동부장, 정치위원을 역임한 박영빈 밖에 없다. 그조차도 친공산권 국가인 소련으로 갔으니 의미는 없다. [19] 한국 오디션 참가자 중 최초 탈북민 출신이기도 하다.[20] 다만 리정혁과 5중대원 부하들이 윤세리에게 복수하기 위해 남한으로 탈북한 보위부원을 처치하러 잠시만 탈북을 하여 남한 생활을 하고 다시 북으로 돌아가는 드라마이다.[21] 다만, 정태양의 경우 김부장에게 패배하고 난 후 의도치 않게 남한으로 건너가게 되고, 치료를 받은 후 어쩔 수 없이 아레스에 영입된다.[22] 북한이탈주민 출신으로 추정되는 제707특수임무대대원. 어린시절의 탈북하는 과정에서 가족을 모두 잃은 탓인지 상당히 어둡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 되었다.[23]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탈북 엔딩을 볼 수 있다. 사실 원 게임은 가상의 독재 국가를 배경으로 하고있지만 문화어로 병맛 현지화가 이루어지면서 현재 개막장 상황을 보이는 북한의 현 모습과 원작 페이퍼 플리즈의 세계관이 묘한 시너지를 일으키며 원작초월(...)이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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