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안
최근 수정 시각:
분류
역임한 직위 | ||
|
대한민국 제6대 새만금개발청장 김경안 金京安 | Kim Kyung-ahn | |||||||||
![]() | |||||||||
출생 | |||||||||
현직 | |||||||||
재임기간 | 제6대 새만금개발청장 | ||||||||
|
1956년 10월 15일 전라북도 정읍군(현 정읍시) 태인면에서 5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정읍 태인중학교(22회), 남성고등학교 졸업 후 1973년 원광대학교 행정학과(73학번)에 진학하여 졸업했다. 1978년 3월 20일 육군에 입대하여 제50보병사단에서 의무병(일반의무 특기)으로 복무했고, 1980년 12월 18일 병장으로 만기전역하였다.
전역 후 익산군청에서 일반직 공무원으로 2년간 근무했다.
1996년 원광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일반행정 전공으로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원광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전역 후 익산군청에서 일반직 공무원으로 2년간 근무했다.
1996년 원광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일반행정 전공으로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원광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전라북도의회 의원 선거에 비례대표 제3번으로 출마하여 낙선하였으나 이후 승계되었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전라북도의회 의원 선거에 비례대표 제1번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한나라당 전북도지부 조직부장 및 기획조정실장을 지냈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전라북도의회 의원 선거에 비례대표 제1번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한나라당 전라북도당 위원장을 지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비례대표 38번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전라북도 익산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민주통합당 이춘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다만, 당시 새누리당으로 출마한 전북 지역 후보 가운데 선거비용 전액을 보전받은 사람 중 한 명이다.[5]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서남대학교 총장을 지냈는데, 당시 관선 이사진이 지역 내에서 명망이 있고, 여당 소속으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당시 박근혜 정부와 연결고리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김경안을 총장으로 앉힌 것이다. 물론 서남대학교가 워낙에 폐급 대학으로 악명이 높았던 탓에, 회생에 실패하고 만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미래통합당 후보로 전라북도 익산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더불어민주당 김수흥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6]
2023년 7월, 윤석열 정부에서 새만금개발청장으로 발탁되었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전라북도의회 의원 선거에 비례대표 제1번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한나라당 전라북도당 위원장을 지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비례대표 38번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전라북도 익산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민주통합당 이춘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다만, 당시 새누리당으로 출마한 전북 지역 후보 가운데 선거비용 전액을 보전받은 사람 중 한 명이다.[5]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서남대학교 총장을 지냈는데, 당시 관선 이사진이 지역 내에서 명망이 있고, 여당 소속으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당시 박근혜 정부와 연결고리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김경안을 총장으로 앉힌 것이다. 물론 서남대학교가 워낙에 폐급 대학으로 악명이 높았던 탓에, 회생에 실패하고 만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미래통합당 후보로 전라북도 익산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더불어민주당 김수흥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6]
2023년 7월, 윤석열 정부에서 새만금개발청장으로 발탁되었다.
- 새만금 TF 전문위원으로 있으면서 새만금은 원래 농업용지 비율이 70%였으나 이를 30%로 줄이고, 비농업용지(산업 및 관광) 비율을 70%로 늘리면서 새만금 발전 방향을 결정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95 | 비례대표 | - | 승계 (3번) | 초선 | ||
1998 |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전라북도의회 의원) | 당선 (1번) | 재선 | |||
2002 |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전라북도의회 의원) | 72,670 (9.68%) | 3선 | |||
2008 | 비례대표 | 6,421,727 (37.5%) | 낙선 (38번) | |||
2012 | 전북 익산 갑 | 8,674 (16.12%) | 낙선 (2위) | |||
2020 | 5,513 (7.43%) | 낙선 (3위) |
|
[1] 現 정읍시[2] 일반행정 전공[3] 석사 학위 논문 : 地方自治(지방자치)에 있어서 政黨參與(정당참여)에 관한 硏究(연구)(1996)[4] 공직 임용을 위해 탈당. 원소속 정당은 [5] 당시 전북 지역에서는 새누리당 후보가 11개 선거구 중 7명이 출마했고, 2명이 선거비용 전액을 보전받았는데 그 중 나머지 한 명이 4년 후인 2016년 제20대 총선 전북 전주시 을에서 새누리당으로 당선된 정운천이다. 당시 정운천 후보는 35%대 득표로 비록 낙선했으나, 1988년 제13대 총선 이후 소선거구제 실시 이래 전주시에서 보수정당 후보가 가장 많이 득표한 후보 중 1명이였다.[6] 그러나 소기의 성과는 이뤄냈는데, 당시 중앙동에서 10%를 넘긴 것과, 일부 읍면에서는 민생당 후보를 제치고 2등을 한 지역도 있다.[7] 22번까지 당선되었다. 이때 22번이 바로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8] 본인이 출마한 선거 중 첫 낙선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