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봉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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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당적은 국민의힘이다.
1945년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에서 태어났다. 길은초등학교, 호남삼육중학교, 호남삼육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64년 한일 회담에 반대하는 6.3 항쟁에 참여하여 6‧3범청년조국수호투쟁위원회 조직부장을 지냈다. #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40여년간 그의 고향인 진도군에서 연거푸 선거에 나섰으나 단 한 번도 당선된 적은 없다. 특히 그동안 출마했던 모든 선거에서 민주당계 정당이 아닌[1] 보수정당 내지는 제3지대 정당 소속으로 나왔다.
11대 총선에서는 민권당 후보로 전라남도 해남군·진도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한국당 민병초 후보와 한국국민당 이성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정치개혁당 후보로 전라남도 해남군·진도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김봉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진도군수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박승만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전라남도 해남군·진도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이정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진도군수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새천년민주당 양인섭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9년 인천 부평구 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예비후보로 등록하였으나 최종적으로 출마하지 않았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진도군수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이동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진도군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해남군·완도군·진도군에 출마하였으나 92.35%를 득표한 박지원에게 밀려 7.64%를 득표해 낙선하면서 22대 총선에서 가장 큰 득표율 차이로 낙선한 후보가 되었으며, 선거 비용 보전도 전혀 받지 못하게 되었다.
1964년 한일 회담에 반대하는 6.3 항쟁에 참여하여 6‧3범청년조국수호투쟁위원회 조직부장을 지냈다. #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40여년간 그의 고향인 진도군에서 연거푸 선거에 나섰으나 단 한 번도 당선된 적은 없다. 특히 그동안 출마했던 모든 선거에서 민주당계 정당이 아닌[1] 보수정당 내지는 제3지대 정당 소속으로 나왔다.
11대 총선에서는 민권당 후보로 전라남도 해남군·진도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한국당 민병초 후보와 한국국민당 이성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정치개혁당 후보로 전라남도 해남군·진도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김봉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진도군수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박승만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전라남도 해남군·진도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이정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진도군수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새천년민주당 양인섭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9년 인천 부평구 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예비후보로 등록하였으나 최종적으로 출마하지 않았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진도군수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이동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진도군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해남군·완도군·진도군에 출마하였으나 92.35%를 득표한 박지원에게 밀려 7.64%를 득표해 낙선하면서 22대 총선에서 가장 큰 득표율 차이로 낙선한 후보가 되었으며, 선거 비용 보전도 전혀 받지 못하게 되었다.
2024년 22대 총선 TV 토론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후보에게 '진도가 범죄자의 피난처가 아니다', '진도군민에게 사과하라' 등 횡설수설하는 태도를 보여 인터넷 상에서 소소하게 화제가 되었다.# 하나같이 술 먹고 토론 왔냐, 채 상병한테 부끄럽지 않냐[2]는 평을 내린 것은 덤이다.
결국 92.35%라는 득표율을 박지원에게 내주고 해당 선거 최다 득표율차로 참패했는데, 전남이 민주당 텃밭이기도 하지만 그런걸 떠나 개인의 자질 자체가 당선되긴 힘들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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